Immortal RAW novel - Chapter 374
374 내 마부
난향의 집무실로 들어선 진무앙은 세 명의 남녀를 볼 수 있었다.
난향과 사마휘, 그리고…….
진무앙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세 번째 사람에게 물었다.
“공사다망하신 초초초우량 돼지 자식의 따님께서 여긴 왜 왔을까?”
사마휘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독고홍련이 방긋 웃으며 포권을 했다.
“숙부님 얼굴 뵙고 싶어서 왔죠.”
“날이 갈수록 거짓말만 느는구나.”
“거짓말이라니요! 절절한 진심이랍니다.”
“퍽이나!”
진무앙은 사마휘에게 시선을 돌렸다.
“넌 왜 온 거야?”
사마휘는 무표정한 얼굴로 짧게 대답했다.
“독고 호법님 호위.”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리며 독고홍련에게 말했다.
“네가 본론이란 얘기네?”
“그래요.”
“돼지가 뒤에 있는 거고?”
“물론이죠.”
“볼일 있으면 그 자식이 직접 올 것이지, 널 보내냐?”
“얘기하면 숙부님께서 또 성질내면서 때리실까 봐 무서워서 못 오시겠다네요.”
“살덩이가 아깝다고 전해라.”
“네, 숙부님.”
“그런데 돼지가 말하는 걸 겁낼 일이면, 진심으로 듣고 싶지 않다.”
독고홍련이 날아갈 듯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먼 길 온 질녀에게 몇 마디라도 할 기회를 주신다면 그 은혜 결코 잊지 않겠사옵니다, 숙부님.”
“그런다고 예쁘게 봐줄 것 같냐?”
듣고 있다가 혀를 찬 난향이 세 사람에게 말했다.
“모두 앉아서 얘기하지?”
누구 말이라고 토를 달까
진무앙과 독고홍련, 사마휘는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난향이 독고홍련에게 물었다.
“홍련, 무앙을 만나고 싶다고 해서 부르기는 했는데, 무슨 일이야?”
“언니의 도움이 필요해요.”
“내 도움? 무앙의 도움이 아니고?”
“예.”
난향의 눈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난향과 독고홍련은 초면이 아니었다. 그렇기는커녕 대혼돈 시대와 이어진 대난투 시절에는 굉장히 친했던 사이였다.
그 이후 오랫동안 왕래를 하지 않았을 뿐.
독고홍련이 말을 이었다.
“숙부님을 움직이려면 언니의 도움이 필요하잖아요.”
두 여자의 대화를 듣고 있던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런 일이면 날 부를 것 없이 둘이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니었냐?”
독고홍련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그랬다가 나중에 숙부님이 알게 되면 아버님을 또 괴롭힐 게 뻔해서요.”
“음… 그건 그렇지. 그때는 진짜 돼지 자식의 껍질을 벗길지도 모르지.”
난향이 손을 들어 이야기가 샛길로 흘러가려는 것을 막았다.
“말해봐. 어떤 일인지 알아야 가타부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
고개를 끄덕인 홍련이 진무앙을 돌아보며 말문을 열었다.
“언니, 형산에서 숙부님이 본맹의 오행기와 함께 염왕시라는 괴물들을 몰살시킨 건 들으셨죠?”
“그래. 들었어.”
“당시 숙부님께서 아버님에게 부탁하신 일이 있어요.”
진무앙이 심드렁한 어조로 끼어들었다.
“부탁이 아니라 지시였다.”
독고홍련은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고 말을 이었다.
“천하에 형산파와 같은 참사를 당한 문파나 마을이 얼마나 많은지 실태를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마련하라는 부탁이었죠.”
난향의 눈에 흥미로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그래서? 부탁대로 한 거야?”
“당연하죠. 안 그러면 숙부님이 아버님을…….”
힐끗 진무앙을 일별한 독고홍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본맹의 정보 조직인 풍령부운전과 각 지역의 지부들이 전력을 다해 정보를 모았어요.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놀라웠어요.”
“형산파와 같은 경우가 많았던 거야?”
“예. 구대문파 중 희생자는 형산파뿐이었지만, 그에 버금가는 중견 문파 이십여 곳이 소리 소문 없이 멸문당했더군요.”
독고홍련은 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멸문당한 문파들의 명단이에요.”
진무앙은 관심 없다는 듯 명단에 눈길도 주지 않고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난향은 명단을 단숨에 읽었다.
명단 중에는 정도의 태산파, 남해 홍가, 마도의 흑룡문, 혈웅교, 사도의 귀혼당, 환사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들은 구대문파에 필적하는 성세를 가졌다고 알려진 무림의 유명한 중견 문파들이었다.
독고홍련이 말을 이었다.
“이들 외에 많은 화전민 마을이나 해변의 어촌들이 참화를 당했어요. 저희가 추정한 피해자의 수만 해도 얼추 삼만여 명에 달할 정도예요.”
“많네…….”
“그런데 이 조사를 진행 중에 풍령부운전에서 아주 귀중한 정보를 얻었어요.”
“어떤?”
“염왕시를 제련하는 장소에 대한 정보였어요. 그에 의하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염왕시들까지 모두 그곳에 있다더군요.”
난향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
“어딘데?”
“이곳에서 멀지 않아요. 태행산맥에 있으니까요.”
“산맥? 어느 성이야?”
태행산맥은 하남성의 북부와 경계를 이루는 산서, 섬서, 하북성에 걸친 대산맥이다.
“산서성 쪽이에요.”
독고홍련은 진무앙을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무림맹의 오행기와 형산파를 제외한 팔대문파와 개방, 명문세가의 정예 이천오백이 그곳으로 가고 있어요. 사흘 뒤 도착 예정이고요. 지휘는 맹주이신 무당의 반우 진인이 맡았어요.”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진무앙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 반푼이가 직접 나섰어?”
“예. 그분뿐만 아니라 본맹의 장로와 호법, 거의 대부분이 출전했어요. 적이 과거 혈마강시에 필적하는 염왕시 일천이니까요.”
“일천? 정확한 숫자냐?”
“풍령부운전의 부하 스물두 명이 목숨을 버리며 확인한 거예요. 십 단위의 오차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아닐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
“네 말처럼 그곳에 염왕시가 일천이 있다면 싸우나 마나다.”
독고홍련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알아요. 우리로만 싸운다면 전멸할 거라는 걸요.”
“맞아. 반푼이와 무림맹 수뇌부가 총 집결했다고 해도 동귀어진 정도가 최상의 결과일 거다. 그걸 알면서도 그 반푼이가 출전을 강행했단 말이냐?”
“다른 방법이 있다면 출전하지 않았겠죠. 숙부님도 아시다시피 맹주는 벌레가 죽는 걸 봐도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잖아요. 하지만 이 사안은 다른 선택지가 없어요. 무림과 백성들을 생각하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요. 그게 본맹의 존재 이유잖아요.”
“돼지 자식이 결과를 모를 리 없었을 텐데, 그놈도 반푼이의 의견에 찬성했어?”
“맹주와 호법, 장로님들의 의지가 강했고, 아버님도 피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에 동의했거든요.”
“그래? 돼지가 손놓고 무림맹 정예가 전멸당하는 걸 두고 볼 리는 없고, 뭔가 수를 부렸을 텐데, 그게 뭐냐?”
독고홍련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역시 아버님이 천하에서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숙부님뿐이라고 말씀하실 만하세요.”
“헛소리는 집어치우고.”
“아버님은 십만대산과 고월애에 사자를 보냈어요.”
진무앙은 미간을 찡그렸다.
“집마부와 단심맹에?”
사해집마부의 총타는 십만대산에 있고, 일월단심맹은 감숙성 하서회랑 부근의 고월애에 근거지가 있다.
“예.”
“걔들이 동의했냐?”
“예. 만약 본맹이 전멸당한다면, 그다음 차례는 볼 것도 없이 그들이 될 거예요. 그런 상황은 단심맹과 집마부가 원치 않죠. 그들도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것 정도는 아는 사람들이니까요.”
“흠… 단심맹이야 섬서성 바로 옆의 감숙에 있으니 제때 오겠지만 큰 곰탱이 자식은 남쪽에 있어서 시간을 맞추기 어려울 텐데?”
“그래서 공야승추 부주는 장강 이북에 있는 집마부의 무인에게 총동원령을 내렸어요. 일단 그들로 지원을 하고, 최대한 빨리 총타의 무인들을 보내주겠다더군요.”
진무앙은 입을 다물었다.
생각에 잠긴 그를 보며 난향이 물었다.
“당신이 보기엔 어때?”
“뭐가?”
“이번 싸움의 결과.”
“무림맹과 집마부, 단심맹이 연합해도 싸움에서 이기기는 어려워. 숭천무련이라는 놈들은 염왕시만 갖고 있는 게 아니거든.”
“경계해야 할 전력이 더 있다는 거야?”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게 뭔데?”
“마병환요.”
“마병… 환요? 뭐야 그게?”
진무앙은 난향에게도 마병환요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만약 그게 태행산에 있다면 천하삼정은 전멸할 거다. 걔는 나하고도 백중세로 싸운 진정한 괴물이거든.”
난향은 물론이고 독고홍련과 사마휘의 입이 딱 벌어졌다.
독고홍련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숙부님과… 백중세로 싸운 존재… 라고요?”
“그래.”
거대한 충격파가 휩쓸고 간 집무실이 정적에 잠겼다.
난향이 굳은 표정으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어쩔 거야?”
“뭘?”
“뭐긴 뭐겠어? 이번 싸움에서 천하삼정을 도울 것인지 말 것인지 묻는 거지.”
진무앙이 대답하려고 할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상아가 머리를 빼꼼히 들이밀었다.
“루주님, 손님이 오셨어요.”
“내가 말할 때까지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느냐.”
난향의 엄한 어조에 상아가 주눅 든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려고 했는데 이 총관님이 아무래도 말씀드리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다고 하시면서 얼른 가서 루주님께 보고드리라고…….”
“큰일? 그렇다면 이 총관이 따로 전하라는 말이 있지 않았느냐?”
총관 이수홍은 어지간한 사내들보다 간이 커서 웬만한 일에는 큰일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는 여자였다.
상아가 아래위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예. 이 총관은 루주님께 그분이 고월애에서 오셨다고 꼭 말씀드리라고 했어요.”
“고월애?”
안색이 굳은 난향이 진무앙을 돌아보았다.
진무앙의 입가에 떠오르는 쓴웃음을 본 그녀의 눈에서 서늘한 신광이 번뜩였다.
“손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았느냐?”
“화의궁장을 입은 서른 전후의 여자 분이셨는데, 굉장한 미인이에요.”
“화의궁장미인… 혹시 그녀의 입술 오른쪽 끝에 붉은 점이 하나 있지 않았느냐?”
상아의 눈이 커졌다.
“어? 루주님이 아시는 분이었어요?”
점이 있다는 말이다.
난향은 대답하지 않고 진무앙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우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그년이 온 거 같아.”
진무앙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이 맞을 거다.”
그는 연이어 상아에게 말했다.
“상아야.”
“예.”
“이 총관님한테 그 여자를 집무실로 안내하라고 전해. 그리고 별채로 가서 곰탱이 좀 불러와라.”
“곰탱이요?”
“내 마부.”
“아! 공야무룡 소협이요. 알았어요.”
문이 닫혔다.
난향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뜬금없이 마부는 왜?”
“그 자식 덩치하고 성씨를 듣고도 아무 생각이 없었어?”
난향의 희고 반듯한 이마에 가느다란 주름이 잡혔다.
“정말 그 아이가 승추의 혈육이야?”
“역시 알고 있었네.”
독고홍련이 불쑥 끼어들었다.
“찾아온 사람이 그녀라면 숙부님이 마부를 부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네요. 그런데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숙부님, 아까 언니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세요.”
천하삼정을 도울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대답을 해달라는 말이다.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손님이 왔다잖냐, 걔부터 보고 나서.”
집무실에 있는 사람들 중 손님의 정체를 짐작하지 못한 사람은 사마휘뿐이었다.
그녀는 인상을 쓰며 진무앙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지금 그녀는 독고홍련의 호위라는 공적 임무를 수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복도가 쿵쿵 울리는 소리가 나더니 공야무룡이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는 난향에게 건성으로 꾸벅 고개를 숙인 후 진무앙에게 물었다.
“주공, 부르셨수?”
“그래, 불렀다.”
“왜 부른 거유?”
그의 버릇없는(?) 말투를 처음 접한 독고홍련과 사마휘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물론, 공야무룡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진무앙이 그에게 말했다.
“네가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이 있어서 불렀다.”
“여기에 말이유?”
“아니. 조금 있으면 올 거다.”
그때 집무실의 문이 열리며 두 여인이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