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79
379 나 믿지?
전각의 이층에 오른 주작과 백호위사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방으로 접근했다.
비록 신녀가 치명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녀는 마계의 삼대지배세력 중 하나인 성혈마가의 가주였으니까.
방 앞에서 기감으로 안쪽을 살피던 백호가 주작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방의 내부는 단출했다.
창가에 커다란 침상 하나가 놓여 있을 뿐, 일상생활에 필요한 집기들은 보이지 않았다.
백호와 주작은 미끄러지듯 침상으로 다가갔다.
소음뿐만 아니라 공기의 파동조차 없을 만큼 놀라운 보법이었다.
침상 위엔 혈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의 신녀가 흰옷을 입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백호위사는 그녀를 보자마자 지체 없이 그녀의 심장에 일권을 내질렀다.
쑤와아아앙-
단순한 일격이었지만 그 주먹엔 당대의 초절정고수들조차 피하기 힘들 만큼 빠르고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다.
신녀의 심장이 박살이 나려는 찰나,
붉은빛을 띤 강기의 벽이 그녀의 전신을 단숨에 감싸며 은은한 빛을 발했다.
그걸 본 백호위사의 눈가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수라환혼혈류심공! 그래도 성혈마가주라고 순순히 죽지는 못하겠다는 겁니까!”
백호위사는 내력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끌어올렸다. 그의 주먹에 실린 기세가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주작위사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신녀의 가슴을 향해 전력을 다한 일장을 날렸다.
쿠쿠쿵-
두 위사의 일권일장과 신녀의 호신지벽이 충돌하며 전각이 무너질 듯 뒤흔들렸다.
“아흑!”
그 사이로 여인의 참혹한 신음이 흘러나오며 침상 위로 붉은 핏물이 분수처럼 뿌려졌다.
신녀는 가슴이 절반쯤 함몰된 채 무너진 침상과 함께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공격을 받았을 때 정신을 차린 듯, 그녀의 부릅뜬 두 눈엔 안타까움과 절망의 빛이 가득했다.
백호와 주작위사가 방에 침입했을 때 그녀는 십이단으로 이루어진 수라환혼혈류심공의 마지막 단계만 남겨둔 상태였다.
그것을 넘어서기만 하면 상처에서 회복되어 일어날 수가 있었는데, 그때 두 위사가 그녀를 공격한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서쪽을 향했다.
방금 전까지 심상에 선명하게 떠오르던 소소와 진무앙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위사들의 공격을 받았을 때 심령감응수라마공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를 보고 떠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무앙… 빨리 와 줘…….’
그 순간 막강한 힘을 담은 백호위사의 일권이 그녀의 머리 위로 바위처럼 떨어졌다.
쿠우우-
이미 신녀는 호신공이 파괴된 상태라 저 일권을 맞으면 시체도 온전히 남기기 어려웠다.
그때였다
콰콰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전각의 지붕이 통째로 날아가며 세찬 바람이 방에 몰아닥쳤다.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한 백호위사의 주먹이 더 빨라졌다.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보다 신녀를 죽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그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그의 일권보다 배는 빠른 발길질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그의 옆구리를 걷어찼기 때문이다.
쾅!
“크악!”
피하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옆구리가 박살이 난 백호위사가 방구석까지 날아가 구겨진 휴지처럼 처박혔다.
콰당탕!
그는 용수철이 튕기듯 다시 일어섰지만 차라리 쓰러져 있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암청색을 띤 반월형의 도강이 그를 머리부터 사타구니까지 양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으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두 쪽이 난 백호위사가 쓰러졌다.
지붕이 박살이 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촌각에 불과했다.
상황의 변화가 그 정도로 빨랐다.
주작위사가 적의 존재를 느꼈을 때는 이미 백호위사가 피 구덩이에 쓰러지고 있었으니까.
기절초풍한 주작위사는 뒤로 물러서며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침입자, 진무앙은 신녀의 앞에 버티고 선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무앙과 눈이 마주친 주작위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이었다.
그의 반응은 아주 많이 이상했다. 주작위사가 진무앙을 본 건 이 자리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엄청나게 놀란 듯 뒤로 물러나는 것도 잊어버리고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무앙에게 물었다.
“가주님… 대체 왜……?”
하지만 그의 말은 더는 이어지지 못했다.
서걱!
진무앙이 암월도를 중단세로 세우자 도신에서 튀어나온 암청색의 도강이 번개처럼 주작위사의 목을 베었다.
털썩! 데구루루-
시신이 된 주작위사을 보는 진무앙의 눈에서 천천히 암청색이 사라졌다.
그는 주작위사가 마지막에 한 말이 마음에 걸렸지만 곧 잊어버렸다.
그런 것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눈앞에서 신녀가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상처를 확인한 진무앙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신녀의 오장육부는 온전한 부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심장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었고, 다른 장부들도 형태를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찢어지고 짓이겨져 있었다.
그녀의 체질과 무공이 다른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면 죽어도 벌써 죽었을 중상이었다.
신녀가 그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힘… 들겠지……?”
고개를 끄덕인 진무앙이 바닥에 털썩 앉아 그녀를 품에 안으며 구박을 했다.
“사사, 꼴이 이게 뭐냐? 옷에 먼지 하나만 묻어도 참지 못할 만큼 깨끗하던 네가 피칠갑이나 하고.”
“무앙… 할 말이… 너무… 많은데…….”
“하지 마.”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그도 신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는 핏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신녀의 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뒷일은 내게 맡기고 넌 편하게 쉬어. 그러면 돼. 내가 다 알아서 할게. 나 믿지?”
신녀는 안간힘을 다해 손을 들었다. 그리고 진무앙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럼… 믿지… 당신은 진무앙… 내가 사랑한 남자잖아……. 당신 품에서… 죽을 수… 있어서… 행복해…….”
툭-
힘을 잃은 신녀의 손이 진무앙의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감지 못한 그녀의 두 눈은 똑바로 진무앙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그의 모습을 죽어서도 잊지 않겠다는 듯이.
진무앙은 손을 뻗어 천천히 그녀의 눈을 쓸어내렸다.
상황이 일단락된 듯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진무앙은 죽은 신녀의 정수리에서 한가닥 검은 기운이 흘러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에서 무시무시한 묵청광이 뿜어졌다.
그는 검은 기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잡을 수는 없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검은 기운을 보며 그가 중얼거렸다.
“근원마기라… 개새끼가 사사를 죽인 게 저걸 얻기 위해서였군. 모자란 마병기들의 자리를 저것으로 채우려고… 으드득.”
진무앙은 이를 갈았다.
“종가주… 조금만 기다려. 내 손으로 네놈의 목을 비틀어 버릴 테니까.”
입을 다문 그가 왼쪽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묵령, 나와라.”
그의 어깨 위로 키가 한 자밖에 되지 않는, 소녀의 모습을 한 묵령이 불쑥 솟아올랐다.
[주공, 제가 뭘 하면 돼요?]그의 몸에 둥지를 튼 마병들은 그와 감각을 공유한다. 그래서 그가 보고 들은 건 그들도 안다.
물론 진무앙이 그들의 이목을 차단하는 것도 가능하다.
“너도 근원마기 봤지?”
[예.]“쫓을 수 있겠냐?”
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근원마기는 마병기의 진체나 다름없어요. 쫓는 건 어렵지 않아요.]“쫓아가.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 그리고 어떤 놈이 저걸 거두는지 확인해.”
[알았어요.]고개를 끄덕인 묵령이 물었다.
[그런데 직접 쫓지 않으세요? 그게 더 확실하고 빠르잖아요.]“꼬맹이 상태가 안 좋아. 걔도 자신의 특이능력으로 사사가 죽은 걸 보았을 거야. 분명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텐데 개한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아!]탄성을 토한 묵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군요.]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꼬맹이한테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할 때까지 내가 옆에 있어야 해. 그 자식한테 문제가 생기면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나밖에 없다.”
[그렇긴 하죠.]“묵령아.”
[예.]“추적, 들키지 않게 조심해라. 내 생각이 맞다면 저 기운을 거두는 놈은 종가주야.”
그는 근원마기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게다가 너는 나와 기운이 섞인 것 때문에 내게서 멀어지면 힘을 온전하게 발휘하지 못하잖냐. 잡히면 소멸될 수도 있다. 그러니 일을 끝낼 때까지 절대 긴장을 풀지 마라.”
묵령의 얼굴에 겁에 질린 기색이 떠올랐다.
“무섭냐?”
[무섭죠. 그분은 우리, 칠마병을 창조하신 분인데 어떻게 무섭지 않을 수 있겠어요.]“그러니까 놈의 이목에 걸리지 마. 아차 하면 너도 존마전환대법의 제물이 된다.”
[저도 잘 아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조심할 테니까요.]갑자기 생각난 듯 진무앙이 물었다.
“묵령아, 그런데 너, 종가주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냐?”
묵령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좀 이상해요. 천무령으로 각성하면 기억 전체가 온전히 회복되잖아요. 그런데 제가 창조된 초창기 시절의 일들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예전부터 그랬어요. 다른 마병들도 사정은 저와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기억이 온전치 못한 게 나하고 비슷하네…….”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린 진무앙이 묵령에게 말했다.
“알았다. 가봐.”
[다녀올게요.]꾸벅 인사를 한 묵령의 모습이 꺼지듯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진무앙은 신녀를 안은 채 그렇게 한참을 핏물 위에 앉아 있었다.
* * *
제국 황성의 지하 광장.
신무제는 한가운데 서서 검붉은 원의 한가운데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푸른 불꽃, 종가주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가 말문을 열었다.
“가주, 무슨 일로 짐을 부른 건가?”
푸른 불꽃에서 장중한 종가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황제여, 환요를 돌아보라.”
그제야 고개를 돌려 마병환요를 본 신무제의 눈에 의아해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만년한옥관에 누운 마병환요의 머리 위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두 개의 수정 구슬이 둥둥 떠 있었던 것이다.
그가 종가주에게 물었다.
“저 수정구들은 무엇인가?”
“얼만 전 그대가 내게 부탁했던 것을 벌써 잊었나?”
신무제의 눈이 번뜩였다.
“확보하지 못한 마병들의 기운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단 말인가?”
종가주의 대답은 간결하고 명료했다.
“그렇다.”
“그럼 저것이……?”
종가주가 황제의 질문을 도중에 끊었다.
“아직은 아니다. 하지만 내일 아침이 밝기 전 마병의 기운을 대체할 마기가 저것에 깃들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수정구의 색이 변할 테니 알아보기는 어렵지 않다.”
생각에 잠긴 것처럼 눈이 가늘어진 신무제가 물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모양이로군. 그렇지 않은가, 종가주?”
“황제여,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가?”
“평소의 가주라면 수정구의 색이 변한 후 짐을 불렀을 테니까.”
“예리하군.”
“칭찬으로 듣지. 종가주, 말하라, 문제가 무엇인가?”
“방금 말한 것처럼 마병의 기운을 대체할 수 있는 마기가 이곳으로 오는 중이다. 그런데, 그것을 추적하는 존재가 있다. 황제여, 그대가 그것을 처리해야만 마기를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존재? 마기를 추적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는 것처럼 들리는군.”
“나도 아직 확실한 건 알지 못한다. 단지 위협적인 무엇인가가 마기의 뒤를 쫓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푸른 불꽃이 천천히 모습을 감췄다.
신무제도 등을 돌렸다.
대화가 끝이 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