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88
388 적은 절대 인간이 아닙니다
황성 건청궁.
태사의에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은 신무제, 아니, 그의 몸을 차지한 종가주 불멸마신이 부복한 유가흔에게 무심한 목소리로 물었다.
“현무, 그것은 운무곡에 도착했느냐?”
“예, 가주님. 제가 존마와 연결된 만겁마안으로 계속 지켜보고 있습니다.”
만겁마안은 시술자가 피시술자의 시력과 청력 등의 감각을 공유하는, 마계에서도 익힌 사람이 몇 되지 않는 신비로운 마공이다.
일단 이 마공으로 연결되면 거리와 상관없이 시술자는 피시술자가 보고 듣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불멸마신이 물었다.
“지금은?”
“존마는 방금 진무앙과 전투에 돌입했습니다.”
“계속 지켜봐라. 그 싸움의 성패에 따라 대계가 영향을 받으니.”
“존명.”
유가흔이 잠시 망설이다가 말문을 열었다.
“가주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무엇이냐?”
“저도 대역천영겁결계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존마가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굳이 그것을 운무곡까지 보내 진무앙의 손을 빌려 차도살인할 필요가 있는지요.”
“여기서 내가 죽이면 되지, 왜 번거롭게 진무앙의 손을 빌리느냐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가주님.”
“그 이유가 그렇게 알고 싶으냐?”
“예. 죄송합니다.”
불멸마신이 무심한 눈으로 고개 숙인 유가흔의 정수리를 보며 말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아……!”
“첫째는 내가 지금 그것을 죽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가흔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예? 그저 존마에게 자결을 명하시기만 하셔도 되는 일이 아닌지요. 그것은 가주님의 명이라면 용암 속에라도 기꺼이 들어가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까?”
“흠, 너는 환우십병의 천무령을 다뤄본 적이 없지?”
“예, 가주님.”
“그러니 그런 의문을 가졌겠지.”
불멸마신이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존마는 네 말처럼 내 지시를 맹목적으로 따른다. 하지만 그것에도 예외가 있다.”
“예외가 있다고요?”
“그렇다. 그것은 영성을 갖고 있기에 자신에게 해를 가하는 것이라면 나의 지시라 해도 거부한다. 내가 자결을 명해도 따르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유가흔의 벌어진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
“그리고 회랑이 열리지 않은 지금, 나는 아직 존마를 죽일 만한 힘이 없다. 그러니 이쪽 세상에서 존마를 제거할 수 있는 건 진무앙뿐이다. 그래서 그에게 보낸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불멸마신의 눈에 섬뜩한 빛이 어렸다.
“진무앙이 이단계의 암혼을 불러내 상대할 만한 적은 이 세계에 존마밖에 없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유가 결계의 완성을 위해서라면, 두 번째는 나를 위해서다.”
불멸마신은 ‘나를 위해서’라는 말에 대한 설명을 할 생각이 없는 듯 입을 다물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그가 진무앙이 암혼을 소환하는 게 단계별로 이루어진다는 걸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유가흔이 고개를 숙였다.
“말씀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불멸마신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너는 대혼돈시대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진무앙과 연인관계였다. 그리고 나는 네가 그에게 진심이었음을 안다. 그런데도 너는 내가 그를 죽이고자 하는 것에 불만이 없느냐?”
유가흔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가주님, 제가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가주님을 숭앙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은 잊혔던 존재의 새로운 부활이며, 가주님이 완전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제가 불만을 느끼거나 고민할 이유가 없습니다.”
의미를 이해하기 쉽지 않은 말이었지만 불멸마신은 다 알아들은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했다.
“현무, 지켜보다 싸움이 끝나면 즉시 결과를 보고하도록.”
“존명.”
불멸마신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진무앙을 공격한 장력에 실린 기세와 힘은 인세의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력했다.
보통의 무인은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한 줌 피 모래로 부서지고도 남을 위력이었다.
갑작스러운 공격이었지만 그는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싱긋 웃으며 말했다.
“왔냐? 생각보다 많이 늦어서 안 오는 줄 알았잖아.”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그는 자신을 공격한 자가 누구인지 아는 듯했다.
말과 함께 그는 암월도의 손잡이를 잡았다.
쐐애애액-
암월도의 도신에서 불쑥 튀어나온 검푸른 반월형의 도강이 날아드는 장력을 둘로 쪼개 버렸다.
쾅!
다음 순간, 진무앙의 입가에 떠올랐던 미소가 싸악 사라졌다.
한 걸음 뒤로 밀려난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혀를 찼다.
“쩝, 너는 만날 때마다 더 강해지는구나.”
그의 시선이 닿은 허공엔 심홍색 궁장을 입은 우문백령이 유령처럼 둥둥 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전과 달리 그녀의 전신을 감싸고 있던 마병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은은한 혈광을 뿌리는, 금강저처럼 생긴 두 자 길의 기묘한 무기를 들고 있었다.
진무앙이 묵령에게 혜광심어를 펼쳤다.
[묵령, 저 녀석이 들고 있는 기물, 뭐냐?] [저건… 환우지존령이에요. 칠마병이나 삼신기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만들어지는 신물이죠.] [쟤가 환요에서 존마로 진화했다는 증거네.] [조심하세요. 환우지존령은 주인이 상상한 걸 현실에서 병기의 형태로 구현시켜 주기 때문에 여의마병이나 여의신병이라고도 불려요. 위력이야 말하면 입만 아프고요.] [내 걱정할 시간 있으면 눈앞에 있는 것들을 치우는 데나 집중해. 난 저 녀석 때문에 너희에게 신경을 쓰지 못할 것 같으니까.] [알았어요.]둘의 대화는 생각의 속도만큼 빠르게 이루어졌다.
우문백령이 공격을 멈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환우지존령을 진무앙에게 쭉 뻗었다.
수백 개의 핏빛 화살이 진무앙의 전신으로 우박처럼 떨어졌다.
츄츄츄츄츄츄츄-
진무앙도 망설임 없이 암월도를 휘둘렀다.
쑤와왕!
반월형의 검푸른 도강이 수백 개의 핏빛 화살과 무시무시한 기세로 충돌했다.
콰콰콰콰콰콰쾅!
화살에 실린 힘은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해서 암월도강은 그것을 밀어낼 수는 있었지만 파괴할 수는 없었다.
사방으로 튕겨 나가던 화살들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진무앙의 전신으로 파고들어 왔다.
쉬쉿! 쐐애애애애애액-
그 위력은 이기어시를 연상케 했고, 영활함은 장창이 울고 갈 지경이었다.
진무앙은 석 자 길이의 화살 뒤끝에서 뻗어 나온 거미줄처럼 가는 실이 우문백령이 든 금강저에 연결된 것을 발견했다.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병기라더니, 우문백령은 화살과 채찍이 결합된 비도 형태의 무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암월도에서 서른여섯 개의 검푸른 도강이 튀어나와 화살의 무리를 태풍처럼 쓸어갔다.
암월구식의 제오초 굉월이 펼쳐진 것이다.
그 순간, 수백 개의 화살이 마치 고무처럼 낭창낭창거리며 도강을 휘감았다.
눈 깜박할 사이 그것들의 형태는 화살에서 양날의 연검으로 변했다.
그러더니 그것들은 도강의 표면을 타고 아래로 주욱 미끄러지며 진무앙의 손과 상체를 베어왔다.
스스스스스스-
그의 손은 물론이고 상체 전체가 환우지존령의 공격 범위에 놓였다.
이대로라면 암월도강이 우문백령에게 도달하기 전에 먼저 그가 연검에 의해 난자당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진무앙의 얼굴엔 다급한 기색이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빛만 더 차가워졌다.
“갈!”
그의 맹렬한 일갈과 함께 서른여섯 개의 도강이 마치 화탄으로 변한 것처럼 동시에 폭발했다.
콰콰콰콰콰콰콰쾅!
엄청난 폭음과 함께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도강의 파편들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도강의 파편들은 환우지존령과 연검의 연결선들을 강타했다.
따다다다다다다다당-
연결선은 끊어지지 않았지만 궤적이 뒤틀리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자 진무앙을 베어오던 수백 개의 연검도 사방으로 날아갔다.
찰나, 진무앙은 암월구식의 제사초 참월을 펼치며 암월도와 하나가 되어 우문백령을 향해 빛살처럼 날아갔다.
쑤와아아아아아앙-
신도합일 상태로 날아오는 진무앙을 본 우문백령은 환우지존령을 쥔 오른손을 세차게 떨쳤다.
휘이이이잉-
거친 바람이 부는 듯하더니 환우지존령은 거대한 핏빛의 겸(鎌:낫)으로 변했다.
우문백령은 혈겸을 풍차처럼 회전하며 귀신이 울부짖는 것 같은 고함을 지르며 진무앙에게 부딪쳐 갔다.
“끼아아아아아아아-”
부우우우웅- 부우우우우우웅-
하늘을 가린 혈겸의 그림자가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진무앙의 머리를 향해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쑤와아아아앙-
찰나, 진무앙의 눈동자에서 시작된 검푸른빛이 그와 암월도를 감싸며 허공이 소름끼치는 살기로 물들었다.
그가 암혼을 불러낸 것이다.
방금 전과 달리 혼돈지력이 실린 암월도에서는 눈을 뜨고 보기 힘들 만큼 강렬한 묵청광이 흘러나왔다.
가공할 힘이 실린 암월도와 혈검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콰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십여 장을 튕겨 나갔던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향해 도와 겸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쾅! 쾅! 쾅! 쾅! 쾅!
둘이 충돌할 때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고, 뼈를 깎는 예기가 백여 장 이내를 초토화시켰다.
지상의 싸움은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초월적인 존재들의 싸움은 그 여파가 지상에도 미쳤다.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 파편에도 사지가 찢겨 나갈 판인데 어떻게 근처에 있을 수 있겠는가.
무상은 살아남은 숭천무련 무사 이천여 명과 함께 삼백여 장이나 뒤로 물러나 있었다.
멀쩡한 염왕시는 한 구도 보이지 않았고, 살아남은 자들도 피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행색이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무상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진무앙과 우문백령의 싸움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존…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적은 절대 인간이 아닙니다…….”
그의 중얼거림을 들은 무사들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어느 한 사람도 그의 말에 불만을 품지 못했다.
당연했다.
그들이 그렇게 믿었던 염왕시 오백 구는 싸움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괴당했다.
그것들은 절대초강자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두 여인과 혈륜과 피리를 이용한 음공의 합격에 변변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뿐이랴.
현천을목마금의 섭혼탈백음에 의해 자중지란에 빠진 무사들은 무자비하게 서로를 공격했다.
그리고 그 결과 삼천 중 일천여 명이 허무하게 죽었다.
숨이 붙은 이천 명도 몸이 성한 자는 수백 정도에 불과했다.
반면 적의 피해는 전무했다.
애당초 그들이 피해를 입히는 게 불가능한 적이었다.
그들을 공격한 건 인간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두 여인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는 혈륜, 그리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는 탄금과 피리 소리였으니까.
게다가 지금 그들의 머리 위, 까마득한 하늘 위에서는 한 쌍의 남녀가 신과 같은 위용을 보이며 싸우고 있었다.
저들을 어떻게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진무앙과 우문백령의 무시무시한 싸움은 숭천무련 무사들에게 숨 돌릴 여유를 주었다.
하지만 무상은 그 여유가 절대 길게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기대를 품기엔 적은 너무 무자비했다.
그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염왕시를 궤멸시켰던 두 여인과 혈륜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번개 같은 속도로 날아오고 있는 게 보였다.
무상의 눈빛이 암담해졌다.
‘지존… 다시 뵙지 못할 듯합니다. 부디 뜻을 이루시기를!’
이를 악문 그가 악을 썼다.
“전투를 준비하라! 적이 온다!”
이천 무사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결의를 비웃듯 탄금과 피리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삘리리리리- 삘리리-
띵띵- 띠잉- 띵- 딩-
공포와 절망에 빠진 무사들의 얼굴이 무참하게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