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391
391 침략이 시작될 거다
낙양 북문.
난향은 평소 잘 입지 않는 백색 무복 차림으로 성루에 서서 성문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뭔가 크게 거슬린 듯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미 해가 뜬 지 오래라 평소라면 아주 멀리까지도 잘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흑회색을 띤 옅은 안개가 낙양성과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개는 색도 이상했고, 마치 유황이 섞인 것처럼 매캐한 냄새가 났다.
게다가 시야도 제한하고 있어서 눈에 내공을 담아도 일백 장 너머의 사물은 또렷하게 볼 수 없었다.
난향은 고개를 들었다.
지평선 끝까지 융단처럼 두꺼운 먹구름이 깔린 하늘은 푸른색이라고는 단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묘하게 기분 나쁜 구름이야…….”
옆에 서 있던 강석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맞아, 이 낭랑. 안개도 그렇고 먹구름도 이상해.”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흑회색 안개라니, 저런 건 듣도 보도 못했어. 그리고 저걸 봐. 먹구름 속에 붉은 번개까지 치고 있잖아.”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먹구름 속에서는 번개가 치는 것처럼 쉴 새 없이 빛이 번쩍이고 있었는데, 그 색이 피처럼 붉었다.
마치 흑룡과 적룡이 뒤엉킨 듯한 그 광경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난향이 시선을 내려 성벽 아래를 보며 말했다.
“무앙이라면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 텐데… 그 사람이 생각보다 늦는구나.”
“걱정하지 마, 이 낭랑. 대형은 금방 올 거야. 그분이 썰어버릴 작정을 하고 갔는데 숭천무련 따위가 얼마나 버틸 수 있겠어.”
“그거야 그런데…….”
난향이 강석초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황군은 얼마나 물러난 거니?”
흑회색 안개 때문에 시야가 제한된 터라 황군이 구축한 군영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십 리.”
대답한 후 강석초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지난밤, 유코 누나는 대장군 남곤을 비롯한 천인장 이상 간부급 무장을 절반 가까이 암살했어. 그뿐이야? 동서남문 근처에 얼쩡거리던 황군들이 세 누나의 기습으로 수천이 몰살당했잖아.”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때문에 황군은 지금 지휘 계통이 완전히 마비돼서 내부가 난장판이야. 살아남은 간부들이 급하게 재정비를 하고 있지만, 지휘 체계를 다시 확립하려면 며칠은 걸릴 거야. 그동안은 낙양 공략에 나설 엄두도 내지 못할 거고.”
“모두 기대했던 역할을 잘해내고 있는 모양이네.”
“어련하겠어? 누나들은 대혼돈 시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야. 싸움이라면 이골이 난 전투 전문가들이라고.”
그때였다.
강석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저거… 뭐지?”
그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돌린 난향의 안색이 굳어졌다.
지평선 끝에서 뭉게구름처럼 일어난 정체불명의 거대한 무엇인가가 낙양으로 굼실거리며 밀려오고 있었다.
마치 해일처럼 느릿느릿 가까워지는 그것을 본 강석초가 멍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무리 봐도 저거… 모래 폭풍 같이 생겼는데… 말도 안 돼. 어떻게 낙양에 모래 폭풍이…….”
그의 말처럼 밀려오는 ‘그것’의 형체는 사막에서나 볼 법한 모래 폭풍과 흡사했다.
난향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것’의 규모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그것’의 높이는 먹구름에 닿을 정도라 가늠조차 되지 않았고, 폭은 수십 리에 달했다.
시야에 들어오는 북쪽 전체가 마치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힌 것 같은 광경이었다.
강석초가 안절부절못하며 난향에게 말했다.
“큰누나, 저거… 볼수록 불길해. 뭔지 알겠어?”
그는 자신이 난향을 이 낭랑이 아니라 금지어인 큰누나라고 부른 걸 의식하지도 못했다.
그 정도로 긴장한 것이다.
모래 폭풍(?)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낙양성과 십여 리까지 가까워졌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구천까지 사무칠 것 같은 처절한 비명이 모래 폭풍을 뚫고 울려 퍼졌다.
분명 그것은 사람의 비명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엔 소리가 너무 컸다.
낙양성 전체에 커다란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백성들도 비명을 들은 것이다.
휘휘휘휘휘휘휙-
여러 방향에서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는가 싶더니 다섯 명의 남녀가 놀라운 경공술로 성루에 날아들었다.
그들은 다른 성문을 지키던 연백지, 우문향, 냉사하, 그리고 유코와 창천사마세가주 사마천웅 등이었다.
이미 장벽과도 같은 모래 폭풍과 엄청난 비명을 들은 터라 사람들의 안색은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사마천웅이 난향에게 물었다.
“마후, 어떤 상황인지 말해주실 수 있으시오?”
강석초처럼 그 또한 난향에게 평소라면 사용하지 않을 명칭을 쓰고 있었다.
‘마후’는 대혼돈 시대 당시 난향의 지인들이 그녀에게 사용하던 호칭이었다.
그녀의 별호가 ‘요지혈마후’였으니까.
난향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가주,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어요. 무앙이 돌아와야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으음…….”
“아…….”
여기저기서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난향이 모른다면 그들에겐 진무앙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남은 방법이 없었다.
난향이 사마천웅에게 말했다.
“가주는 세가의 무인들과 낙양부의 관원들을 지휘해서 백성들을 안정시켜 주세요.”
“피난을 준비시켜야 할 거라 생각하시오?”
“그건 지금 제가 답을 드리기 힘든 질문이네요.”
그 순간,
“피난 준비 같은 건 할 필요 없다.”
담담한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단숨에 알아차린 사람들은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성루의 끝.
그곳에 산산을 등에 업은 진무앙이 몽지림, 오청연과 함께 서 있었다.
산산이 난향과 강석초에게 손을 흔들었다.
“큰언니, 넷째 오빠, 나 왔어!”
강석초가 반색하며 진무앙에게 뛰어갔다.
“대형!”
그의 등장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구르듯이 달려간 강석초는 그를 덥석 끌어안으려 했다.
물론 진무앙이 그것을 허용할 리가 없었다.
그는 발을 들어 강석초의 얼굴을 막았다.
턱!
“으악, 퉤퉤퉤!”
얼굴 한복판에 신발 자국이 난 강석초가 비명을 지르며 연거푸 침을 뱉었다.
신발 바닥이 혀에 닿기라도 한 듯했다.
그런 그를 보며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미쳤냐? 감히 사내놈이 누구 몸에 손을 대려는 거야?”
강석초가 악을 썼다.
“반가워서 그런 거잖아! 아무리 남자를 거부하는 인간이라고 해도 그렇지. 발로 얼굴을 차? 사람 마음을 그렇게 몰라주냐!”
진무앙은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얼굴로 말을 받았다.
“사람? 남자겠지. 그리고 난 남자 마음 같은 거 모른다. 여자 마음 알기도 바쁜 판에 그런 거에 신경쓸 시간이 어딨어?”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한숨을 푹하고 내쉬었다.
우문향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 상황에… 둘 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어쩜 하나도 변한 게 없을까.”
유코가 말을 받았다.
“몰라서 그런 말하는 거 아니지? 무앙의 지론이 초지일관이잖아.”
냉사하가 세차게 코웃음을 쳤다.
“흥! 그놈의 초지일관.”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진무앙이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성루에 흐르던 긴장과 불안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난향이 한결 편해진 얼굴로 물었다.
“무앙, 운무곡은?”
“궤멸.”
“애들은?”
두 사람이 애들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은 암천겁마조의 형제들이다.
“모두 무사해. 곧 도착할 거야.”
사마천웅이 끼어들어 물었다.
“토벌대 피해는 어느 정도입니까?”
“사상자가 이천 정도 났다.”
“숭천무련이 발악을 했군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잖냐.”
진무앙은 제국의 황제가 만든 세력을 지렁이 취급하고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그럴 만한 남자였으니까.
난향이 물었다.
“무앙, 저 모래 폭풍같이 생긴 이상한 거, 뭔지 알아?”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장벽은 혼돈마벽이고, 안개의 이름은 절암무, 그리고 저 구름은 암왕운이라는 거야.”
강석초가 어깨를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이름들이 으스스하네.”
힐끗 그에게 시선을 준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이름만 으스스한 게 아니야, 임마.”
혼돈마벽을 보는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혼돈마벽, 절암무, 암왕운은 회랑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걸 뜻하는 거니까.”
난향이 물었다.
“회랑? 그게 뭔지 설명해 줄 수 있어?”
“어려운 말이 아니야. 회랑은 이 세상과 마계를 연결하는 통로야.”
난향을 제외한 사람들의 얼굴에 얼떨떨한 표정이 떠올랐다.
사마천웅이 물었다.
“무존… 지금 마계… 라고 하신 겁니까?”
“그래.”
“그거, 그냥 옛 만담에 나오는, 지어낸 세상 이야기 아니었습니까?”
“그러면 얼마나 좋았겠냐. 그런데 그게 아니야. 그곳은 실재한다.”
난향이 다시 물었다.
“저게 회랑이라는 곳이 열리기 시작해서 생긴 현상이라는 거지?”
“응.”
“회랑이 완전히 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거야?”
“열리면… 침략이 시작될 거다.”
난향의 눈이 깊어졌다.
“침략? 마계로부터의?”
“맞아.”
“침략당하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거야? 위험해?”
“위험이라… 그 정도로는 설명이 안 돼. 종말을 맞을 테니까.”
“…….”
할 말을 잊었던 난향이 침을 삼키며 물었다.
“당신도 못 막아?”
“해봐야 알겠지만 쉽지는 않을 거다.”
충격을 받은 사람들은 무거운 얼굴로 혼돈마벽을 돌아보았다.
사라졌던 긴장과 불안이 성루에 다시 차올랐다.
사마천웅이 진무앙에게 물었다.
“아까 피난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는데,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회랑이 완전히 열리면 안전한 곳 따위는 없어. 회랑의 범위는 우리가 사는 세상 전체를 포함하니까. 괜히 헛힘 쓰는 거야.”
“으음… 그럼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난향이 시킨 거 잊었냐? 백성들을 안정시켜. 그게 피난 따위 준비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중요해. 저것들은 인간의 허약한 마음속에 자라난 공포와 살기를 자양분으로 삼아 힘을 키우니까.”
“아…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탄성을 토한 사마천웅은 다급한 기색으로 진무앙에게 포권을 한 후 성루를 떠났다.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무앙은 이런 류의 사안에 대해서는 결코 거짓말이나 과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들 겁먹은 거야? 왜 말이 없어?”
난향이 그를 흘기며 말을 받았다.
“당신이 겁을 먹게 했잖아.”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겁먹지 마. 그래 봤자 죽기밖에 더 하겠냐.”
진무앙의 등에 딱지처럼 붙어 있던 산산이 물었다.
“대가, 마계라는 곳과 싸워 패하면 우리 전부 죽는 거야?”
“음, 뭐 살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럼 안 되는데…….”
“왜? 사람은 어차피 죽어.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다 가면 그걸로 족한 거야.”
“나도 그건 알아. 하지만 우리는 그럴 수 있어도… 대가는 아니잖아.”
진무앙이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응? 막내야, 너,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
“우리 전부 가면… 세상에 대가 혼자 남잖아. 흑흑흑…….”
산산이 울음을 터트리며 진무앙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우리 진 대가 불쌍해서 어떡해! 엉엉엉… 혼자잖아, 대가, 혼자가 되는 거잖아… 엉엉엉…….”
난향을 비롯한 여인들과 강석초의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흐려졌다.
산산은 누구도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았던 부분을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그런데 진무앙의 표정은 태연했다.
그가 산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럴 일 없으니까, 울지 마.”
산산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진짜?”
“그래. 너희가 죽는 꼴, 절대 못 봐. 아니, 안 봐. 그전에 개새끼는 내 손에 죽어.”
말을 하는 그의 눈동자에서 무서무시한 신광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