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4
004 호혼각과 흑심고
오살과 칠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그냥 불어. 그럼 보내줄 테니까. 좋은 생각이지 않나? 내 궁금증을 풀지 못하면 너희를 보내줄 수 없으니 나는 피곤해지고, 너희는 고통스러워질 거야. 하지만 순순히 말해주면 나는 편하고, 너희는 살아서 돌아갈 수 있어. 어때? 좋은 생각이지?”
칠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떠올리며 소리쳤다.
“미친놈!”
진무앙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말로 하는 대화는 역시 힘들어.”
오살이 비웃으며 말했다.
“헛고생하지 말고 죽여라.”
만약 오살이 진무앙의 본래 성격이 어떤지를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말을 할 때 좀 더 신중했을 테지만, 그는 진무앙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진무앙은 길게 탄식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별수 없네. 그럼 죽어.”
진무앙의 말이 무슨 뜻인지 칠살과 오살이 이해하기도 전에 그의 손목이 비틀렸다.
우두둑!
수수깡처럼 목이 부러진 오살이 혀를 빼물며 축 늘어졌다.
그의 가랑이 사이로 악취와 누런 물이 흘러내렸다.
진무앙은 오살의 시신을 내던지고 칠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여전히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미안, 칠살이라고 했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오늘은 말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결심하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더라고. 그래도 노력은 하는 중이야. 어때? 우리 사람답게 말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칠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죽여라!”
짧은 한 마디와 함께 입을 다문 그녀는 무심한 시선으로 진무앙의 눈길을 받아냈다.
그녀의 눈에서는 두려움의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진무앙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의 경험상 저런 눈을 한 자들에게서 정보를 얻어내는 건 정말로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칠살이 마음을 완전히 죽인 특급 수준의 살수라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코앞에 닥친 죽음 앞에서 두려움의 기색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건 그녀에게 진무앙보다 훨씬 더 두려워하는 자가 있다는 걸 의미했다.
진무앙은 미간을 찡그렸다.
“죽는 게 소원이야?”
칠살이 힘없는 음성으로 말을 받았다.
“미친놈.”
우문현답이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
진무앙은 혀를 차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얼마 전에 결심한 게 있어서 가능하면 말로 대화를 하고 싶거든. 좀 도와주면 안 될까?”
그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누군가를 심문하지 않았다.
성격과 너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여.”
“이건 내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야. 네가 죽여달라고 빌었기 때문이라고. 그렇지?”
“미친…….”
칠살의 목을 움켜쥔 손목을 비틀려던 진무앙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그가 손을 움직이기도 전에 칠살이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을 까뒤집으며 축 늘어졌던 것이다.
그가 손을 쓰지 않았는데도 칠살이 죽은 것이다.
그렇다고 심맥을 끊어 자살한 것도 아니었다.
진무앙은 칠살의 시신을 휙 내던지며 번개처럼 집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그는 입맛을 다셨다.
“쩝…….”
골목에는 단 한 사람만이 있었다.
그는 진무앙을 이곳으로 안내했던 소년, 아육이었다.
손에 엄지손가락 크기의 작은 호각을 쥔 아육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입가로 검은 피가 줄줄 흘렀다.
그는 진무앙을 올려다보며 히죽 웃었다.
“너는… 예상… 밖이었어.”
“나도 그래.”
솔직한 말이었다.
이렇게 과감하게 동료를 죽이는 놈들이라니.
아무리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쉽게 끊어지는 난세라지만 좀 심하지 않나?
“네가 누군지 모르지만, 우리와 얽힌 걸… 후회하게… 될 거야…….”
진무앙은 말이 없었다.
아육의 눈은 빛을 잃고 있었다. 죽은 것이다.
진무앙은 죽은 자에게 말을 거는 취미는 없었다.
휘이이잉-
골목을 휘돌아온 후덥지근한 바람이 진무앙의 머리카락을 흔들며 지나갔다.
그는 아육의 손아귀에서 호각을 잡아 빼 들었다.
동물의 뼈를 깎아 만든 호각은 회백색을 띠고 있었고, 표면에 해골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허리를 편 그는 고개를 들었다.
사방은 어두웠고, 하늘은 검었다.
도둑처럼 슬그머니 밤이 와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간 그는 삿갓을 챙겨 썼다.
‘장운…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냐? 왜 살수들이 네 딸을 노리고 있는 거지?’
그는 혀를 찼다.
그는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의 임무 수행을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남자였다.
그런 경우가 얼마나 위험한지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는 서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진무앙의 마음속에 갈등이 일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정말로 단순했다.
일 년간 동료로 함께 전장을 떠돌았던 용병낭인이 그의 품안에서 죽었다.
그는 죽음의 순간에 진무앙에게 자신의 딸을 보호해 달라는 부탁겸 의뢰와 함께 몇 마디 말을 했다.
의뢰와 상관없이 그가 남긴 마지막 몇 마디는 진무앙의 마음에 의혹을 뭉게구름처럼 키웠다.
진무앙은 그 의혹의 답을 얻기 위해서 중원으로 왔다. 그렇다고 그가 답을 절실하게 원하는 건 아니었다.
진무앙은 그 어떤 것에도 집착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남자였다. 그것이 자신의 목숨이라 해도.
하물며 의혹 따위야.
‘장운… 넌 솔직하지 않았다. 내가 네 딸을 보호하지 않는다 해도 너는 나를 원망할 수 없어. 그렇지 않나?’
변방을 떠돌 때의 그였다면 당장 손을 떼고 돌아갔을 상황이었다.
그는 의뢰를 완료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신뢰 넘치는 용병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노을을 보는 진무앙의 눈빛은 그리 빨리 단순해지지 않았다.
‘거 참…….’
뒷머리를 긁적이며 발아래 시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그의 눈에서 갈등의 기색이 사라졌다.
‘뭐… 내 품에서 피 쏟으며 죽은 놈 부탁을 외면하는 것도 그렇고… 애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으니……. 그리고 왠지 이 마지막 의뢰는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 뭐…….’
그는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그는 일단 결정을 내린 일에 대해서는 뒤나 좌우를 돌아보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이를 만나거나 그 아이를 노리는 자들을 잡아야 뭔가 알 수 있을 테니, 지금은 일단 의문은 접어두고…….’
생각이 빠르게 이어졌다.
‘그자들이 소화를 가장하고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는 건, 소화를 놓쳤다는 건데……. 어린아이가 자력으로 이들의 추적을 벗어나는 건 천운이 따라주어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 그렇다면 소화에게 살수의 추적을 뿌리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조력자가 붙어 있다고 보는 게 맞겠지. 하지만 이곳의 열악한 환경을 보면 조력자의 능력이 아주 탁월한 건 아닌 것 같다. 낙양을 벗어났을 것 같지도 않고. 빨리 찾지 않으면 그 아이가 이자들의 손에 떨어질 가능성이 커.’
칠살의 시체를 빠르게 훑어보던 그의 시선이 시신의 머리에서 멈췄다.
잠시 시신을 바라보던 그의 손이 칠살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퍼석!
기괴한 소음과 함께 머리는 으깨진 두부처럼 박살이 났다.
허연 뇌수와 산산조각난 뼈들이 핏물과 함께 이리저리 튀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칠살의 머릿속에 손을 쑥 집어넣어 뇌수를 헤집던 진무앙이 길이가 반 치가량 되는 실처럼 가느다란 검은 벌레를 집어 들었다.
칠살처럼 축 늘어진 벌레는 이미 죽어 있었다.
그 벌레는 오살의 머리에서도 나왔다.
손바닥 위에 늘어진 두 마리의 벌레와 아육에게서 얻은 호각을 올려놓은 진무앙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호혼각(呼魂角)과 흑심고(黑心蠱)… 이것을 처음 만들었던 것은 배교, 하지만 배교의 텃밭인 묘강에서도 구할 수 없게 된 지 오래된 기물들인데… 이걸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문파가 어디였더라…….’
호혼각과 흑심고는 섭혼술이나 최심술과 같은, 피시술자의 정신을 제어하는데 특화된 좌도방문 수련자들에게는 보물 취급을 받는 기물이다.
‘이자들을 부리는 놈, 솜씨가 만만찮아. 사술의 힘을 빌렸다 해도 수하들이 저렇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결하게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두 기물을 챙긴 진무앙은 마을 밖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조심스러운 인기척이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의 기척이었다.
외지인이 들어온 직후 싸움이 벌어지고 연이어 비명이 터졌는데 그들이 모를 리 없었다.
걸음을 옮기는 그의 뇌리에 생각들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아육은 감시자였을 거고, 호혼각이나 흑심고를 쓸 수 있는 걸 보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조직은 아닌데… 물건이나 죽음을 쉽게 다루는 걸 보면 정파 쪽은 아닌 것 같지만 속단할 수는 없지. 그 동네도 뒤로 호박씨 까는 놈들이 산더미라…….’
가볍게 찡그린 그의 코끝에 가느다란 주름이 잡혔다.
‘소화도 찾아야 하지만, 어떤 놈들이 그 아이를 쫓고 있는지를 빨리 알아내야 해. 그래야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삿갓 아래 그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에게 낙양은 초행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 왔던 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전 일이었고, 길게 머문 적도 없었다.
당연히 그는 낙양 지리에 어두웠고, 도움을 받을 만한 마땅한 인맥도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방문한 후로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잠시 머물 곳이 필요한데… 정보를 모아줄 사람도 필요하고… 낙양에 누가 있더라……?’
전장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과 낙양과 같은 대도시에서의 그것은 기법의 영역이 완전히 달랐다.
진무앙은 전자의 전문가였지만 후자는 아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진무앙의 얼굴이 밝아졌다.
누군가 떠오른 것이다.
‘석초하고 향아가 이 도시에서 장사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향아는 아직도 화가 많이 나 있으려나… 그 성격이 여전하면 위험한데… 그래도 설마 내 목을 부러뜨리기야 하겠어? 이참에 죽었다 생각하고 그녀의 속도 좀 풀어줘야겠다.’
얼굴이 밝아진 그는 마을을 빠져나왔다.
* * *
낙양은 용문석굴과 백마사를 비롯해서 옛 황조들의 유적이 사방에 즐비한 전통의 대도시다.
그래서 낙양에는 타지의 부유한 유람객들이 일 년 내내 몰려든다.
하지만 그들 중 옛 유적들이나 보고 돌아가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호주머니에 금전이 넉넉한 외지인들이라면 너 나 할 것 없이 술과 여자, 그리고 도박을 찾는다.
당연히, 낙양은 유흥가가 잘 발달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기루는 도박장과 더불어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양대 업종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낙양의 사대 번화가 중 하나인 북부 대로 주변은 특히 물장사가 번창한 지역이다.
이름난 청루(음주가무만 파는 술집)와 홍루(몸을 파는 술집)만 꼽아도 백여 개가 훌쩍 넘는다.
수향루는 그 많은 기루 중에서도 규모가 크고 미인이 많기로 손꼽히는 청루다.
수향루 뒤편 정원.
거대한 연못의 중앙에 지어진 정자 안.
간이침상 위에 비스듬히 누운 채로 장죽을 빨고 있던 여인이 입으로 연기를 길게 뿜어내며 시선을 돌렸다.
건너편 땅과 연결된 구름다리 위를 열서넛가량 되어 보이는 앳된 동기가 치맛자락을 부여잡고 종종걸음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정자로 건너온 동기가 여인의 앞에서 허리를 넙죽 숙였다.
“루주님.”
루주라 불린 여인의 눈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지금 시각은 정오를 막 지난 미시 중엽(오후 2시경).
그녀가 매일 이 시간에 이루어지는 식사 후의 짧은 휴식을 방해받는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적어도 수향루 내에는 아무도 없다.
동기는 그런데도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즉,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는 뜻.
“옥아, 무슨 일인데 그리 걸음이 빠른 게냐?”
옥아는 공손히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입을 열었다.
“손님이 오셨다고 이 총관이 전하라 하셨어요. 이 물건을 보시면 루주님께서 말씀이 있으실 거라고… 이 물건을 준 손님이 이것을 건네면서 낭랑께 여쭙지 않고 자신을 문전박대하면 후환이 무궁할 거라는 협박도 했대요.”
수향루의 주인, 난향은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수향루의 총관인 이수홍은 아담한 체구에 아직도 곱상한 외모를 유지하고 있는 오십대의 여자다.
여리여리한 외모의 소유자지만 물장사 경력이 삼십 년을 넘는 터라 어지간한 남자 열은 찜 쪄 먹을 만큼 강단 있고 배포가 컸다.
손님이 시답잖은 자라면 그녀가 협박 따위에 겁을 먹고 자신의 휴식을 방해할 리가 없었다.
난향의 시선이 옥아의 손에 들린 물건을 향했다.
옥아는, 물건을 보는 난향의 얼굴을에 오만 가지 감정이 다 떠오르는 것을 보고 내심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생활한 지 오 년이 넘는 동안 난향의 저런 얼굴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옥아의 손바닥 위에는 세 치 길이의 진청색을 띤 비녀 하나가 은은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특이한 건 비녀가 봉황 형상의 머리만 남은, 중간이 부러진 반쪽 물건이라는 것이었다.
느릿하게 비녀를 건네받은 난향이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개자식… 협박할 만하네.”
다음 말은 옥아에게였다.
“손님을 모시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