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407
407 종(終) 하지만 새로운 시작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 깊숙한 곳.
휘이이이잉-
등골이 서늘한 바람이 쉴 새 없이 불어왔다.
고원의 정상, 지옥의 입구처럼 시커먼 입을 쩍 벌린 무저갱 주변.
이남일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잘생긴 청년과 코끼리도 울고 갈 만큼 뚱뚱한 중년 남자, 그리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아름다운 아가씨.
그들은 진무앙, 독고운진, 그리고 독고홍련이었다.
시커멓게 아가리를 벌린 무저갱 아래를 주시하던 진무앙이 독고운진에게 물었다.
“돼지야, 여기가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라는 거지?”
“그렇다니까.”
“진짜 그 후레개잡놈의 새끼가 여기로 도망친 거 맞아?”
독고운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다니까 그러네. 내가 이 큰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말을 하며 그는 손가락 두 개로 어린아이 주먹만큼이나 커다란 자신의 둥그런 눈을 가리켰다.
진무앙이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모로 꼬며 물었다.
“진짜?”
“무앙, 날 못 믿겠다는 거야?”
“풋, 돼지야, 천하에 믿을 놈이 없어서 널 믿겠냐?”
독고운진의 얼굴에 억울해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너무하는 거 아니냐? 그리고 날 안 믿으면 어쩔 건데? 그놈이 이 아래로 튀는 걸 본 사람이 나밖에 없는데.”
“목격자가 너밖에 없다니까 더 의심스러워.”
참다못한 독고운진이 버럭 짜증을 냈다.
“안 갈 거면 말아!”
진무앙이 손가락으로 귓구멍을 후비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누가 안 간대? 가뜩이나 울림통도 큰 놈이 귀 아프게 소리는 지르고 지랄이야.”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독고홍련이 끼어들었다.
“숙부님, 아버님을 믿어주세요. 이런 일로 숙부님을 속일 분이 아니라는 걸 아시잖아요. 그랬다가는 뒷감당을 못할 게 뻔한데.”
진무앙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누가 못 믿는다고 했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독고운진의 얼굴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무앙, 방금 전 네 입으로 날 못 믿겠다고 했잖아!”
“내가? 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 난 그런 말 안 했다.”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하냐!”
“흥, 이 돼지 자식이 자꾸 누굴 거짓말쟁이로 모는 거야.”
진무앙의 태연한 오리발에 독고운진은 주먹으로 가슴을 쳤다.
“으아, 홍련이가 옆에서 다 봤는데, 사람이 어떻게 너처럼 뻔뻔스러울 수가 있냐!”
쿵쿵.
둥글둥글한 그의 가슴에서 북치는 소리가 났다.
진무앙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네 눈엔 내가 아직도 사람으로 보이냐?”
투닥거리는 그들을 본 독고홍련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냥 두면 날을 새고도 남을 사람들이라는 걸 잘 아는 그녀는 다시 끼어들었다.
“숙부님, 이러다가 그놈을 놓치겠어요.”
진무앙은 힐끗 무저갱을 내려다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가 마음을 정한 기색을 보이자 독고운진이 말했다.
“무앙, 그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주의사항을 말해줄 테니까 귀담아들어. 거기 가면 일단 적응이 될 때까지 쥐 죽은 듯 조용히 숨어 지내.”
진무앙이 멈칫하며 물었다.
“숨어 지내라고? 내가?”
“응. 여기에서처럼 내키는 대로 행동하지 말란 말이야. 수틀린다고 사람을 막 죽이면 안 돼. 절세미인을 봐도 무조건 들이대면 안 되고. 심심하다고 아무 때나 신마병을 불러내서 부려 먹는 것도 금지, 무공도 함부로 쓰면 안 돼.”
“말만 들어도 재미없는 세상이네. 하면 안 되는 게 뭐가 그렇게 많아?”
진무앙이 퉁명스럽게 투덜거렸다.
하지만 독고운진은 못 들은 척하며 말을 계속했다.
“잘 들어. 거긴 주먹보다 말이 먼저인 세상이야. 마음에 안 든다고 먼저 두들긴 후에 말을 하는 습관 버려. 그리고 그 세상엔 쇳덩어리가 도로를 달리고, 하늘도 날아.”
“쇳덩어리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그렇다니까. 그뿐만이 아니야. 수백 장 떨어진 적을 눈 깜박하기도 전에 살상할 수 있는 무기도 엄청나게 많아. 한 방에 황도만 한 도시를 날려 버리는 화탄도 부지기수고.”
“그 정도는 나도 해.”
“너는 한 명이지만 그런 힘을 가진 물건들이 엄청나게 많은 세상이라니까. 그리고 수만 리 떨어진 사람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도 있어. 여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아무리 너라 해도 큰코다쳐. 그러니까 적응을 끝낼 때까지 무조건 조용히 지내.”
진무앙이 코웃음을 쳤다.
“흥, 어울리지 않게 잔소리는. 내가 애냐?”
독고운진이 고개를 돌리고 개미가 기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구시렁거렸다.
“너보다 애가 백배는 낫지.”
진무앙이 고개를 핵 돌려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의 예민한 청각은 십 리 밖에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도 듣는다.
“돼지야, 방금 한 말 다시 해봐라. 가기 전에 네 껍질부터 벗겨줄게.”
흠칫한 독고운진이 통통한 손으로 입을 가리며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그러냐. 얼른 가라. 너, 이러다가 진짜 그 자식 놓친다고.”
진무앙은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채 무저갱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뛰어내리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삐딱한 그의 자세에 의혹을 느낀 독고운진이 물었다.
“너, 안 가고 뭐 하냐? 혹시 남겨둔 사람들 걱정하는 거야? 그거라면 염려 붙들어 매고 다녀와. 그녀들은 내가 잘 챙기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진무앙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답답해진 독고운진이 재차 물었다.
“아까운 시간이 계속 가고 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거냐고?”
“아무래도 꺼림칙해.”
“뭐가?”
“저 너머에 있다는 다른 세상에 가본 놈이 너밖에 없잖아. 그런데 너는 틈만 나면 내 뒤통수를 치고 싶어 하는 놈이고. 네가 한 말 믿고 저기 갔다가 똥 밟는 거 아냐?”
독고운진이 정색하며 손사래를 쳤다.
“이번엔 아니라니까. 절대 뒤통수 안 쳐.”
“돌아올 수 있는 거, 확실하지?”
“당연하지.”
“그럼 증명해 봐.”
“어떻게?”
진무앙이 독고운진을 보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고금제일미남 소리를 듣는 그이기에 미소 또한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독고운진이 그 미소에서 느낀 건 매혹이 아니라 불길함이었다.
주춤 한 걸음 물러선 그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무앙… 갑자기 왜… 웃냐? 불안하게.”
진무앙은 말 대신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번개같이 독고운진과 독고홍련의 멱살을 틀어쥐고 인정사정없이 무저갱으로 집어 던졌다.
허공에 붕 뜬 독고운진이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통나무처럼 굵은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으아아악! 무앙, 이 미친놈아!”
그는 허공답보의 경공술을 펼쳐 무저갱을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진무앙이 그의 멱살을 잡을 때 뭘 어떻게 했는지 그는 거슬러 올라오지 못했다.
오히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빨리 까마득하게 아래로 떨어져 갈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아아, 무앙, 이 개자식아, 언젠가, 반드시, 기필코, 꼭, 죽여 버릴 거다!”
진무앙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중얼거렸다.
“꿈도 야무진 새끼.”
독고운진과 함께 추락하던 독고홍련이 울먹이며 구슬픈 목소리로 진무앙에게 소리쳤다.
“흑흑, 숙부님, 저한테 왜 이러세요? 제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왜겠냐. 아비 잘못 만난 죄지.”
심드렁하게 대꾸한 진무앙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길 잃지 말고 돼지 잘 따라다녀라.”
그리고 그는 고개를 돌려 동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금방 다녀올게. 다들 너무 걱정하지 마. 소소 잘 챙기고.”
그는 망설임 없이 무저갱으로 뛰어내렸다.
휘이이이이잉-
어디선가 불어온 세찬 바람이 무저갱 주위를 휩쓸고 지나갔다.
이때 진무앙은 알지 못했다.
이 선택으로 그가 얼마나 길고 다채로운(?) 여행을 하게 될지.
$공$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