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41
041 너, 인성 문제 있냐?
다음 날 이른 아침.
진무앙의 거처에서 타박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계속 깨작깨작할래? 음식 앞에 놓고 고사 지내는 거 아니다. 내가 일부러 부엌까지 가서 숙수한테 부탁해 가져온 건데 그렇게 성의 없게 먹으면 이 아저씨가 짜증이 나겠냐, 안 나겠냐?”
“…죄송해요, 아저씨. 입맛이 없어서…….”
침상에 일어나 앉은 소소가 손에 젓가락을 꼭 쥔 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이의 앞에는 나무 쟁반에 담긴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의자에 앉아 고개 숙인 소소의 정수리를 보며 진무앙이 말했다.
“꼬맹아, 네 병 치료하려고 의원 부르고 약 사는데 돈이 어마무시하게 들었거든. 그런데 나는 가난한 호위무사란 말이지. 그러니까 네가 잘 먹고 빨리 건강해져야 내 전낭이 비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고개를 든 소소가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더욱 숙였다.
“빨리 건강해질게요, 아저씨.”
“그러려면 이거 싹 비워라. 그리고 지금 한 말 잊지 말고.”
진무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먹으면 석초 아저씨한테 말해. 치워줄 거다.”
고개를 든 소소가 물었다.
“어디 가시게요?”
“저녁 식사 전에 올 테니까 점심 거르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석초에게 말해.”
“예.”
“나 없다고 식후 산책하는 거 빼먹으면 혼난다.”
“예…….”
“참 손이 많이 가는 꼬맹이야.”
진무앙은 투덜거리며 방을 나섰다.
그가 나가자 소소는 입술을 깨물며 손등으로 눈가에 맺힌 물기를 훔쳤다.
몇 년 동안의 강호 유랑 생활로 또래보다 훨씬 조숙해지긴 했지만, 소소는 아직 아홉 살의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 나이의 아이가 어떻게 진무앙이 툭툭 내뱉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 넘길 수 있겠는가.
문밖, 강석초가 눈을 부라리고 서 있다가 진무앙이 나오자마자 문을 닫고는 바로 그의 멱살을 거머쥐었다.
앉아 있는 진무앙과 선 키가 비슷한 그가 멱살을 잡아봐야 고목나무에 매미가 붙은 격이다.
하지만 진무앙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는 남자가 몸에 손을 대는 걸 질색하는 사람이니까.
그가 강석초의 손을 잡아 비틀어 떼며 말했다.
“식전 댓바람부터 미쳤냐?”
그래도 목소리는 낮췄다.
아침부터 소소에게 어른들이 싸우는 꼴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강석초가 그를 올려다보며 이를 갈았다.
“으득, 인간아, 그게 애한테 할 소리냐?”
열은 잔뜩 받은 게 분명했지만 강석초의 목소리 역시 작았다.
진무앙이 눈을 껌벅였다.
“응? 내가 뭐랬다고?”
“다 들었어!”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남의 말 엿듣는 거, 그거 직업병이야. 의원한테 가서 치료나 받아라.”
“내가 듣고 싶어서 들었냐? 저절로 들릴 정도로 큰 네놈 목소리를 탓해.”
“그럼 한 귀로 흘리면 되지, 왜 시비야?”
“네놈이 말을 할 때마다 소소의 상처 난 마음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내 방까지 들리는데 어떻게 한 귀로 흘려!”
“싱거운 놈. 별 개소리를 다하네. 마음이라는 게 가뭄에 마른 논바닥이냐? 쩍쩍 갈라지게?”
“애한테 미안하거나 그런 마음 없어?”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너, 아침부터 새삼스럽게 왜 이래?”
“너, 인성에 문제 있냐?”
“그렇게 물어보는 네 자신이 민망하진 않고? 내 인성에 문제 있다고 동네방네 나발 불고 다닌 놈이 너였잖아, 새끼야.”
진무앙은 심드렁하게 대답한 후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가 강석초의 귀를 파고들었다.
“석초야, 나 바쁘다. 시답잖은 거로 시비 걸지 마라. 사마세가에 다녀올 테니까 애나 잘 챙겨.”
강석초가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으득, 그냥 관외나 떠돌며 살 것이지, 왜 중원까지 들어와서 이렇게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거냐고. 그러다…….”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
꼭 소소 때문에 화가 난 것만은 아닌 듯한 그런 여운이.
* * *
창천사마세가의 내원.
이른 아침인데도 채경옥은 자색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가벼운 화장도 한 상태였다.
목욕재계도 했다.
옷차림의 완성은 얼굴이라는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잡티 하나 보이지 않는 맑은 피부와 붓으로 그린 듯 선명한 이목구비는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불안해 보였고,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지, 누군가 보았다면 충분히 이상하게 생각하고도 남을 만한 분위기.
침상에 걸터앉은 채 천장을 힐끔거리던 그녀가 한숨과 함께 중얼거렸다.
“하아… 경동시키지 말라고 하셨으니 올라가 볼 수도 없고… 요상이 잘 진행되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너무 불안해…….”
그때였다.
톡톡.
천장에서 희미한 소리가 났다.
그것을 들은 채경옥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무앙과 약속한 신호였다.
그녀도 침상의 기둥을 두 번 두드렸다.
똑똑.
잠시 후,
투툭.
천장에서 희미한 소리가 나더니 구석의 일부가 위로 올라가며 구멍이 생겼다.
구멍은 어제저녁 진무앙이 올라갔던 바로 그 자리였다.
그곳으로 사내의 다리가 쑤욱 내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진무앙의 얼굴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채경옥이 종종걸음으로 진무앙에게 다가갔다.
“…소협, 내상은 괜찮아진 건가요?”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소저.”
그의 얼굴을 본 채경옥의 눈에 불안 대신 안도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의 입가엔 여전히 말라붙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지만 더는 비틀거리지도 않았고, 눈에는 은은한 신광이 어려 있었다.
어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력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진무앙에게 자리를 권한 채경옥이 손바닥만 한 나무상자를 하나 가져와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우리 가문에서 사용하는 비전의 요상약이에요. 내력 운용을 돕고 혈류의 흐름을 왕성하게 만드는 것이니, 드시고 운기조식하면 도움이 될 거예요.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미처 챙겨 드리지 못했네요.”
진무앙의 얼굴에 감동한 빛이 떠올랐다.
“소저… 보잘것없는 내게 이처럼 깊은 배려를……. 절대 잊지 않으리다.”
채경옥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오히려 본가의 의약당에서 치료받을 수 있게 하지 못하는 게 미안할 뿐인걸요.”
“그게 어떻게 소저의 잘못일 수 있겠소. 남의 눈에 띄면 안 되는 내 사정 때문이지 않소.”
채경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소협, 아침 식사를 챙겨 올게요.”
진무앙은 당황한 기색을 가장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실 필요 없소이다. 이미 벽곡단을 먹었소.”
채경옥은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손을 빼지 않으며 말했다.
“그걸로 되겠어요? 뭐라도 드셔야…….”
진무앙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벽곡단으로 충분하오. 그것보다 조금 도와주시지 않겠소?”
“제가 도울 일이?”
“상처가 있는데 손이 닿지 않아 금창약을 바르지 못하고 있소.”
채경옥의 얼굴에 걱정스러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진작 말씀하시지요. 어느 부위죠?”
“등이요.”
“어서 보여주세요.”
“그럼 부탁드리겠소.”
진무앙은 품에서 금창약을 꺼내 채경옥에게 건네주고 상의를 벗었다.
그의 상체가 드러나자 채경옥은 자신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핥았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뜨거운 입김과 함께 희미하게 달뜬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아… 아.”
보기 좋게 넓은 어깨와 잘록한 허리, 철벽처럼 단단한 가슴과 그린 듯 매끄러운 복부의 왕(王) 자.
진무앙의 벗은 상체는 신이 공들여 빚은 듯한 단단하고 탄력이 넘치는 근육의 향연이었다.
몸을 돌린 진무앙의 등에는 길이가 다섯 치에 달하는 긴 검상이 나 있었다.
그 상처를 본 채경옥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아아… 소협, 금창약 정도로 해결될 상처가 아니에요. 당장 의원이 치료하지 않으면 크게 흉이 남을 거예요.”
진무앙이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시오. 이런 상처를 입은 게 처음이 아니니까요. 소저의 눈에는 다른 상처들이 보이지 않는가 보군요.”
그제야 채경옥의 눈에 진무앙의 상체 곳곳에 난 오래된 상처의 흔적들이 들어왔다.
작은 것도 한 치를 넘었고, 어떤 것들은 한 자를 넘어서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의 아름다운(?) 근육에 정신이 혼미해서 미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어떻게…….”
말을 잇지 못한 채경옥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비명이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말했다.
“모두 일을 하다가 생긴 상처들입니다. 제가 잘못 살지 않았다는 삶의 흔적들이기도 하죠.”
채경옥은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상처에 금창약을 발랐다.
그녀의 손가락은 가늘게 떨렸고, 눈가엔 물기가 맺혔다.
진무앙의 말이 그녀의 감성을 강하게 자극한 것이다.
금창약을 다 바르자 진무앙은 옷을 입고 돌아앉았다.
채경옥은 두 손을 꼭 마주 잡았다.
진무앙을 보면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전설 속의 미남이라는 송옥과 반안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수려한 외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딱 잘라 뭐라 말하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을 확 잡아끄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있었다.
창공을 나는 한 마리의 매처럼 자유분방하면서도 신기루처럼 모호한 기묘한 분위기.
진무앙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한 기색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채경옥이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소협, 왜……?”
“세가 내에 만날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소. 이제 그녀를 찾으려 하오.”
안색이 변한 채경옥이 일어나며 말을 받았다.
“그 몸으로 직접 말인가요?”
“더는 지체할 수 없소. 지금도 많이 늦었소.”
“이곳이 어딘지 잊으셨나요? 합비의 대검남궁세가와 함께 속가 양대검종이라 불리는 창천사마세가라고요. 소협의 은신술과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여기서 잠행을 하며 사람을 찾는 건 불가능해요. 일각도 지나지 않아 발각될 거예요.”
“으음…….”
진무앙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표정은 거짓으로 꾸민 것만은 아니었다.
채경옥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채경옥의 방을 드나드는 것과 세가의 내원 전체를 뒤지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물론 그는 애당초 이곳을 뒤지는 수고를 할 생각이 눈곱만치도 없었지만.
진무앙의 어두운 기색을 본 채경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협, 제게 만나려는 분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수는 없나요? 어떤 일이 있어도 비밀은 지킬게요. 정말 돕고 싶어요.”
진무앙이 망설이자 용기를 낸 채경옥이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손을 내려다보는 진무앙의 눈에 회심의 기색이 떠올랐다.
이제 쌀이 익어 밥이 된 것이다.
잠시 고민에 빠져 있는 척하던 그가 탄식하며 입을 열었다.
“소저… 고맙소. 그리고 미안하오.”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을 직감한 채경옥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무앙이 말을 이었다.
“그럼 부탁하겠소. 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절대 소저에게 이런 부담을 주지 않았을 내 진심을 알아주시오.”
채경옥은 얼굴 가득 기쁨을 드러내며 말을 받았다.
“물론이에요, 소협. 제가 어찌 그 마음을 모르겠어요.”
그녀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소협이 만나야 할 사람이 누구인가요?”
진무앙은 잠시 그녀를 마주보다가 입을 열었다.
“단리영이라는 여인이오.”
채경옥의 안색이 눈에 보일 정도로 확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