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52
052 미쳤습니까?
진무앙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본 주신언이 말했다.
“내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는 불청객이라고 해도 면전에서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면 내가 얼마나 무안하겠나.”
“무안해하는 표정이라도 하고서 그런 말을 하면 좀 더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나는 자네와 달라서 표정 관리를 좀 하거든.”
“그럼 계속 표정 관리 하시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허!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낮술이라도 같이 한잔하는 게 사람 사는 이치 아닌가.”
진무앙은 별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다 듣겠다는 얼굴로 명치 어림을 지그시 누르며 말했다.
“주 대협, 옆에 있는 사마 소협하고 낮술 많이 드세요. 나는 남자하고는 같이 술 안 마시거든요. 얹혀서 말이죠.”
“내가 어지간하면 개인의 취향은 존중하는 편이네만, 자네의 그런 취향은 조금 우려스러운 바가 있군. 그러고도 원만한 사회생활이 가능한가?”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어서 그런지, 남자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크게 힘들었던 적은 없습니다만?”
말문이 막힌 주신언의 입술 사이로 앓는 듯한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음…….”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그의 얼굴엔 ‘한 대 쥐어박았으면 소원이 없겠네’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싱긋 웃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마무룡이 끼어들었다.
“진 호위, 우리와의 대화가 내키지 않는 건 알겠소. 그래도 시간을 내주었으면 하오. 송옥루 살인사건과 관련해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있소.”
그와 진무앙의 신분 차이를 생각하면 굉장히 정중한 태도였다.
상대가 이렇게 나오면 막무가내로 나가기 어렵다.
진무앙은 떨떠름한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딱히 할 일도 없었고, 두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주신언과 사마무룡은 진무앙을 바로 옆에 있는 다관으로 초대(?)했다.
점소이가 차를 내오자마자 진무앙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물어보고 싶은 거라는 게 뭡니까?”
주신언이 혀를 찼다.
“번갯불에 콩 구워 먹을 친구로군. 목이나 좀 축이고 얘기하세나.”
하지만 진무앙은 그의 의견을 수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가 말했다.
“반 각 드리죠. 그 안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하십시오.”
주신언이 혀를 차며 투덜거렸다.
“쯧, 인정머리 없는 사람 같으니.”
그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자네, 혹시 한 달쯤 전에 낙양 북쪽에 있는 고하리라는 마을에 들렀던 있지 않나?”
“그런 마을, 이름도 처음 들어봅니다.”
“자네는 낙양 토박이가 아니니 그 마을의 이름은 모를 수 있지. 고하리는 낙양 성곽 너머로 북망산이 보이는 곳일세. 빈민촌이지.”
진무앙은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런 마을엔 간 적 없습니다.”
“그래? 그건 좀 이상하군. 그 마을 사람들 중에 여럿이 자네와 비슷한 체구와 옷차림을 한 남자를 보았다고 진술하고 있거든.”
진무앙은 싱긋 웃었다.
“못 믿겠다면 그 마을 사람들과 대질이라도 하시죠.”
고하리에 갔을 때 그는 죽립과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었다.
설령 눈썰미가 좋은 마을 사람이 있어서 그의 얼굴을 기억한다고 해도 지금은 절대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왜?
인피면구를 쓰고 있으니까.
그가 물었다.
“그 마을에서 살인사건이라도 있었습니까?”
주신언의 눈이 반짝였다.
“호오! 자네는 왜 그런 생각을 한 건가?”
“그 정도 사건이 아니라면 무림맹 낙양 분타주씩이나 되시는 바쁜 분이 빈민촌을 조사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자네 생각대로 죽립인이 마을을 방문한 날 세 명의 무림인이 죽었네. 혈사당이라는 살수 집단에 소속된 살수들이었지.”
진무앙은 짐짓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살수라고요? 빈민촌에 그런 자들이 왜 갔을까요?”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죽립인은 소화라는 여아를 찾고 있었다고 하더군. 그런데 살수들이 죽은 장소가 바로 그 소화라는 아이가 어떤 노인과 함께 살던 집이었단 말일세. 죽립인과 살수들이 싸움을 벌였던 것 같은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아이와 노인은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없었네. 마을 사람들도 그들이 언제 떠났는지 모르겠다고 하더군.”
“안타까운 일이군요. 속사정을 알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인데요.”
주신언이 불쑥 물었다.
“혹시 자네가 그 속사정을 알고 있는 거 아닌가?”
“제가 알 리가 없잖습니까?”
“알게 되면 말해주겠나?”
“생각 좀 해보죠.”
주신언이 한층 깊어진 눈으로 진무앙을 보며 다시 물었다.
“자네, 혹시 이십여 일쯤 전에 북망산 무덤 지대에 올라갔던 적 있나?”
“없습니다만, 왜요? 거기도 저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죽립인을 본 목격자가 있습니까?”
주신언은 빙긋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몇 사람이 죽립인을 보았다고 하더군.”
“죽립인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부지런한 친구 같습니다.”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무자비하기도 한 자일세.”
“왜요?”
“북망산에서도 혈사당의 살수들 시체가 널려 있었다네. 당주인 사귀 장억도 포함해서 말이지. 나는 그것도 죽립인이 한 짓으로 추정하고 있네.”
“이 얘기도 재미있군요.”
“역시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네. 나도 재미있었거든. 그런데 아직 재미있는 이야기가 더 남아 있네.”
“그게 뭡니까?”
“무덤가의 동굴에서 한 노인의 시신을 발견했네. 그런데 말이야. 그의 인상착의가 고하리 사람들이 말했던, 소화라는 여자아이와 함께 살던 노인의 그것과 일치했다네.”
진무앙은 감탄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
짝짝!
“무척 열심히 조사하셨네요. 주 대협이 여자였으면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제가 술 한잔 샀을 텐데, 아쉽습니다.”
“남자한테는 안 사나?”
“제가요? 미쳤습니까?”
흰 이를 드러내며 싱긋 웃은 진무앙이 툭 던지듯 물었다.
“그런데 비룡무관 참사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왜 저는 주 대협이 제 뒤를 캐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까요?”
“왜? 가슴이 뜨끔거리거나 뒤가 켕기는가?”
“그럴 리가요. 그냥 느낌이 그래서 물어본 겁니다.”
주신언도 마주 웃으며 말했다.
“오해는 하지 말게. 나는 그저 용의자인 죽립인의 종적을 쫓고 있을 뿐이라네. 그의 외모가 자네와 비슷하다는 말이 많아서 물어본 것뿐이고.”
“죽립인이 비룡무관 참사와 관련이 있다는 겁니까?“
“하하하, 아직까지는 단순한 내 추측에 불과하네만, 나는 그가 범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네.”
“왜요?”
“고하리와 북망산 무덤 지대에 나타났던 죽립인이 참사 당일 비룡무관 뒷길에서 얼쩡거리는 걸 본 목격자가 여럿 있거든.”
“아! 그렇군요.”
진무앙은 아무 생각이 없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아래위로 주억거렸다.
주신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진무앙에게 불쑥 물었다.
“진 호위, 자네가 여자아이를 한 명 데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네.”
진무앙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소소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걔는 사촌 조캅니다. 얼마 전에 사촌 형이 나한테 던져 놓고 튀었죠. 걔가 왜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무앙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미리 소화의 이름을 소소로 바꿔놓은 게 천만다행 아닌가 말이다.
주신언이 말을 받았다.
“자네가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네만, 나는 그 아이를 만나볼 생각이네.”
“걔는 아홉 살밖에 안 된 꼬맹이인데요?”
“북망산에서 혈사당 살수들이 몰살당한 바로 그날 자네가 그 아이를 데리고 오는 걸 봤다는 사람들이 있어서 말이지. 우연의 일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확인을 해봐야 하지 않겠나.”
주신언의 입가에 드리워진 미소가 진해졌다.
“마침 고하리에 그 아이의 얼굴을 확실하게 기억하는 촌민이 있어서 도움도 받을 수 있을 것 같고.”
“무림맹 낙양 분타주님께서 하시겠다는데 일개 호위무사가 거부나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오늘은 내가 일정이 바빠서 안 되겠고. 내일 고하리 촌민과 함께 수향루에 들르겠네. 그도 우리 분타에 머물고 있거든.”
“알겠습니다. 루주님께 얘기해 놓죠. 얘기 다 끝났습니까?”
“끝났네.”
“그럼 난 가보겠습니다.”
벌떡 일어난 진무앙은 어슬렁거리는 걸음으로 멀어졌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사마무룡이 주신언에게 물었다.
“주 대협, 저자가 정말 증인인 고하리 촌민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할 거라고 확신하십니까?”
주신언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떻게 그것을 확신할 수 있겠나. 그러기를 바랄 뿐이지.”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가는 진무앙을 보는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하지만 내가 이 정도까지 정보를 주었는데 저자가 범인이라면 손 놓고 있지는 못할 걸세.”
그는 탁자 위에 동전 몇 개를 올려놓으며 일어섰다.
다관을 나서는 주신언이 사마무룡에게 말했다.
“저자가 증인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와 함께 수향루에 가서 아이를 확인하면 될 일일세.”
* * *
물론 진무앙은 멀거니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수향루 그의 거처.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은 소소가 맑은 눈을 깜박이며 진무앙에게 물었다.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보면 모르냐? 그림 그리려고 하는 중이잖아.”
“그런데 왜 그림을 제 얼굴에 그리려고 하세요?”
진무앙은 검은 약물에 담갔던 붓끝을 소소의 오른쪽 눈 아래에 가져다대고 있었다.
그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네 얼굴을 좀 바꾸려고 하는 중이니까 입 다물고 있어.”
소소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변장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
“그 붓… 으로요?”
“왜? 미덥지가 않냐?”
“그걸로 제 얼굴에 그림을 그리면 누가 봐도 변장한 줄 알 텐데요?”
“누가 그림을 그린다고 했냐? 점 하나만 찍을 거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한 소소의 머리가 갸우뚱 기울었다.
“점 하나로 변장이 가능해요?”
“안 될 게 뭐 있냐. 오래전에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얼굴에 점 하나를 찍었더니 같이 살았던 남편도 못 알아봤다는 실제 사례도 있어, 임마.”
“그게 가능해요?”
“말 많네. 가능한지 어떤지는 해보면 알 거 아니냐.”
진무앙은 붓으로 소소의 눈 아래에 검은 점 하나를 콕 찍었다.
단순한 먹물이 아니라서 약물은 피부로 스며들며 실제와 구분이 되지 않는 작은 점 하나를 만들어냈다.
진무앙은 그것을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역시 내 솜씨는 완벽해.”
소소는 작은 손가락으로 점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특별한 감촉이 느껴지지 않자 진무앙에게 물었다.
“아저씨, 벌써 변장이 끝난 거예요?”
“끝났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아마 죽은 네 아비 장운이 돌아와도 너를 알아보지 못할 거다.”
소소는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지만 진무앙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당연히 얼굴에 점 하나 그려 넣은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동안 진무앙이 정성(?)을 기울여 보살핀 덕분에 소소는 제 또래 아이들과 비슷할 정도로 체중이 불었고, 피부도 좋아졌다.
뽀얀 피부, 또렷한 이목구비, 맑고 큰 눈동자…….
소소는 놀라울 정도의 미소녀로 변해 있었다.
그러니 고하리의 촌민이 누구든 소소가 그곳에 머물던 소화와 같은 아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진무앙은 소리 없이 웃었다.
‘주신언, 내가 오늘 밤 증인의 입을 막기 위해 낙양 분타의 담을 넘는 걸 기대하고 있겠지만, 꿈 깨쇼. 나는 남이 깔아놓은 판 위에서 춤추는 취미는 없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