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66
066 왜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수향루 후원 별채 앞.
강석초는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며 코앞에 있는 열대여섯 살 먹은 소년을 노려보고 있었다.
소년은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강석초에게 활짝 편 손바닥을 쭉 내밀었다.
“빨리 주세요, 닷 푼! 심부름시킨 사람이 그 천쪼가리를 아저씨한테 전해주면 돈을 줄 거라고 분명히 말했단 말이에요.”
강석초가 물었다.
“너, 제대로 찾아온 거 맞냐?”
“그럼요. 포대화상 닮은 남자, 아저씨 맞잖아요!”
강석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이 자식아! 내 어디가 포대화상을 닮았다는 거야!”
소년은 태연하게 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며 말했다.
“목청도 배만큼이나 크시네. 여기 와서 포대화상 닮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전부 아저씨밖에 없다고 했단 말이에요! 그리고 둥근 이목구비, 둥근 얼굴, 둥근 배. 그 나이에 부인할 걸 부인하셔야지.”
“아으으…….”
울화가 치민 강석초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아, 빨랑 돈이나 내놔요! 나 바쁘단 말이에요!”
“나한테 맡겨둔 돈이라도 있냐? 이 쬐끄만 악덕고리대금업자 같은 놈아.”
소년이 손바닥으로 강석초의 머리끝과 자신의 머리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홍! 쬐그맣기는. 제가 아저씨보다 더 크거든요.”
열받아 붉게 변한 강석초의 얼굴이 만두처럼 부풀어 올랐다.
한 대 때리고 싶어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
그러거나 말거나 소년은 바락바락 악을 썼다.
“아저씨,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티끌 모아 태산이라도 돈 떼먹을 사람이 따로 있지, 저같이 불쌍한 아이한테 줄 돈까지 욕심냅니까!”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별채에 머문 다른 손님들과 식솔, 기루의 기녀들까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누군가 소리쳤다.
“아, 빨리 주고 보내요! 졸려 죽겠는데 아침부터 애하고 싸우고 지랄이야!”
“저 커다란 배속에 뭐가 들었나 했더니, 욕심이 꽉 차 있었던 거구나.”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애하고 뭔 짓이래?”
기타 등등…….
강석초는 인상을 와락 쓰며 전낭에서 닷 푼을 꺼내 소년에게 내밀었다.
천 조각을 그에게 보낸 사람이 진무앙이라는 걸 아는 터라 그의 심부름을 한 소년에게 돈을 줄 때의 기분은 꼭 생살이 뜯겨 나가는 듯했다.
“옜다, 이거나 처먹고 떨어져라.”
“어차피 아저씨 같은 사람한테 붙어 있을 일 없거든요!”
소년은 끝까지 이죽거리며 돈을 냉큼 받아 챙기고 후다닥 수향루를 떠났다.
“아으으… 아으으……. 한 대라도 쥐어박았어야 했는데!”
혼자 남은 강석초는 화를 삭이느라 끊임없이 앓는 소리를 냈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짜증을 가라앉힌 강석초는 천 조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위에 쓰인 글을 본 그는 눈살을 확 찌푸렸다.
그는 대번에 천의 글이 담고 있는 의미를 파악했다.
진무앙과 이런 암호문을 주고받은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남서쪽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미와 려? 걔들을 향산 상공에 띄우라고? 이 자식 또 뭔 짓을 꾸미고 있는 거야?”
미와 려는 강석초가 공들여 키운 전서응으로, 영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강하고 영리한 해동청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낙양에 진무앙과 난향밖에 없었다.
강석초는 투덜거리면서도 지체 없이 움직였다.
천 조각의 마지막엔 분명히 적혀 있었다. 아주 똑바른 정자체로.
늦으면 죽을 줄 알아.
정자체는 진무앙이 진지하다는 걸 의미했다.
그리고 진무앙이 진지할 때는 절대 개기면 안 된다.
이건 그의 진면목을 아는 모든 사람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철칙이었다.
물론 한 여자는 예외였지만.
* * *
헤엄쳐서 이수를 건넌 진무앙과 석채은은 원숭이처럼 가볍게 절벽에 올라갔다.
전에 진무앙이 왔던 길이었다.
절벽 위에 올라 머리카락과 옷의 물기를 짜내던 석채은은 진무앙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자신의 움직임에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한여름,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얇았다.
당연히 물에 젖은 옷은 몸에 착 달라붙어 그녀의 매혹적인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설마… 저 사람, 고자는 아니겠지?’
그녀는 남자에게 별 관심이 없는 여자였다.
너무 바쁘게 사는 데다 남자보다 일이 더 좋았으니까.
그렇지만 자신의 외모가 만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아름답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남자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으로 작용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모습에 가슴이 뛰지 않을 남자가 없을 거라는 그녀의 자신감은 전혀 허튼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진무앙의 반응은 그녀의 드높은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주었다.
진무앙은 남자, 그것도 자신의 관심을 끌려고 수작을 부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런 기색을 굳이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니 그녀처럼 영리한 여자가 그의 속마음을 눈치채지 못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랬던 진무앙이 물에 젖어 고혹적인 그녀의 모습에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겠나.
진무앙이 석채은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무영백랑을 본 후 그녀에 대한 수작질(?)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자각했다는 것.
둘째, 그는 다른 고민을 하느라 석채은의 몸매에 눈을 줄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
‘환우마령을 꺼내면 환무경과 흡철령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긴 한데… 그놈을 통제하려면 암혼을 불러내는 수밖에 없단 말이지…….’
가장 쉬운 길이 눈앞에 보였지만 그 길을 가는 데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안 되겠다. 그건 너무 위험해. 환우마령을 제압하는 것과 그놈을 종처럼 부리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라, 내가 암혼에 대한 통제력을 잃을 수도 있어. 그럼 환우지약에 못지않은, 어쩌면 그보다 더 큰 풍파가 일어날지도 몰라.’
암혼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것도 문제였지만 정말 큰 일은 그 뒤였다.
‘암혼이 날뛰면 당연히 난향도 알게 될 거고, 그러면… 으으으……. 조급해 하지 말자. 바쁠 때는 돌아가는 게 지름길이라는 말도 있잖냐…….’
속으로 구시렁거리던 그가 석채은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와 눈이 마주친 석채은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가 자신을 여자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묘하게 기분을 상하게 하는 눈빛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그 눈빛, 마음에 안 들어요.”
뜬금없는 말이라 진무앙은 뜨악한 표정으로 눈을 껌벅였다.
“내 눈이 어때서요?”
“그냥 마음에 안 들어요.”
진무앙은 피식 웃었다.
그녀의 말에 담긴 의미가 궁금하긴 했지만, 지금은 말장난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따라와요.”
진무앙이 향하는 곳은 동산 석굴 쪽이었다.
용문산에 있는 서산 석굴의 규모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동산 석굴도 많은 동굴과 불상들이 있었다.
동산 석굴에서 가장 유명한 동굴은 고평군왕동이다.
진무앙은 석채은과 함께 군왕동이 보이는 곳까지 접근했다.
아름드리나무에 올라, 가지 사이에 몸을 숨긴 진무앙과 석채은은 군왕동을 내려다보았다.
진무앙의 눈빛이 강해졌다.
고평군왕동은 그가 어제 주육화상과 낙일망재가 서산석굴 방향으로 사라지는 걸 봤을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곳이다.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먼젓번에 왔을 때도 이러더니 군왕동이 가까워지니까 환우마령의 요동이 또 심해지는군.’
흑염주 안에 들어간 환우마령이 그의 심령에 전해질 정도로 강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환무경과 흡철령은 활성화된 환우마령에 반응하지만, 그 반대의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그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이런 현상이 가능한 경우는 단 한 가지뿐이었다.
‘이 근처에 환우제칠마병 파천혈신륜이 있다는 건가…….’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건의 규모가 그의 예상보다 너무 커지고 있었다.
‘섭광운을 찾는 게 문제가 아니야. 파천혈신륜이 이 근처에 있는 게 확실하다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 아무도 모르게.’
그는 속으로 한숨을 푹 하고 내쉬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근처에서 섭광운이 실종되고 고수들이 모여드는 거지?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환우지약을 노리는 자들 중에 파천혈신륜의 소재를 아는 자가 있는 걸까?’
그의 침묵이 답답했는지 석채은이 입을 열어 뭐라 말을 하려 했다.
그때 진무앙이 손가락을 세워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눌렀다.
깜짝 놀란 그녀가 소리를 치려 할 때 모깃소리처럼 가느다란 진무앙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쉿! 조용히 해요.]전음입밀이다.
석채은의 눈이 또 한 번 커졌다.
전음입밀은 무공에 대한 자질을 타고났다는 말을 듣는 그녀조차 불과 얼마 전에야 터득한 상승무공이었다.
‘비천표령신법의 부족한 부분을 단숨에 보완하더니 이제는 전음입밀까지……. 이 사람, 정말 정체가 뭐지?’
그녀의 입술이 달싹였다.
[왜 이래요?] [접근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최대한 기척을 죽여요. 고수들이니까.]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평군왕동 입구에 여섯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스님, 도사, 문사 등 각양각색의 차림을 한 주육화상과 낙일망재를 비롯한 오남일녀였다.
그들 중 유일한 홍일점인 여자를 본 진무앙은 암향무영과 사신암행을 극성으로 펼쳤다.
그는 초긴장한 얼굴이었다.
‘후우, 주육과 석두가 있는데 나찰이 없을 리 없지……. 왜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그의 시선이 향한 여인은 서른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풍만한 몸매의 미인이었다.
그녀는 몸매가 다 드러나는 푸른색의 나삼을 입고 있었는데, 옷의 가슴골이 깊게 푹 패여 있어 터질 듯한 가슴이 절반 넘게 나와 있었다.
비천표령신법을 펼쳐 은신했던 석채은은 바로 옆에 있는 진무앙의 존재가 전혀 느껴지지 않자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경악했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하지만 나무와 완벽하게 동화되어 있었고, 기척과 기세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마치 환상이나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그가 그곳에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 손을 뻗어 확인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석채은은 소름이 쭉 돋았다.
이런 은신술이라면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와도 눈치채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든 것이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은신술이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은 동굴 입구의 여섯 사람을 보고 느낀 놀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진무앙에게 말했다.
[저 사람들… 주육화상, 낙일망재, 염정나찰… 풍파육기, 맞죠?]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생사평 대회전 후에 강호 활동을 하지 않던 저들이 왜 여기 한꺼번에……?]석채은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이곳에 오기 전 진무앙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일이 너무 위험해서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그 말이.
진무앙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파고들었다.
[저들에게 들키면 일이 많이 꼬입니다. 그러니까 은신 상태 절대 풀면 안 됩니다. 내 옆에서 일 장 이상 떨어지지도 말고요. 알았죠?] [예.]대답하면서도 그녀는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
풍파육기는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강호를 떨어 울렸던 절정고수들이었다.
진무앙이 개량하긴 했지만 비천표령신법으로 과연 저들의 이목을 피할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려웠다.
그녀가 걱정하고 긴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또 쓸데없는 짓이기도 했다.
풍파육기가 그녀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한 건 비천표령신법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었다.
진무앙이 은무환영으로 그녀의 기척을 지워주었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