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68
068 개 같군요
진무앙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석채은에게 말했다.
[잡생각 말아요. 내 등으로 전해지는 맥박이 너무 빨라서 신경 쓰입니다.]대꾸하는 석채은의 목소리도 뾰족했다.
[누… 누가 잡생각을 한다고 그러는 거예요!]어둠 속이라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그녀의 면사 속 얼굴은 잘 익은 붉은 사과빛이었다.
[아니면 아닌 거지, 성질은 왜 냅니까.]진무앙은 심드렁하게 말을 받으며 허리춤에서 천을 꺼내 복면처럼 눈 아래를 가리고는 걸음을 옮겼다.
스스스-
어둠과 동화된 그가 미끄러지듯 전진했다.
이전과는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미로의 규모는 엄청나게 컸다.
쉬지 않고 전진하는 데도 끝이 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석채은은 달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무앙의 움직임이 특이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마치 누군가의 길 안내를 받기라도 하는 것처럼, 두 갈래, 세 갈래로 나뉜 길이 나와도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한 그녀가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고 가는 거예요?] [냄새 따라 가는 겁니다.] [무슨 냄새요?] [피냄새 안 나요? 코가 떨어져 나갈 지경인데.]석채은은 어리둥절해졌다. 피냄새라니? 어디서 혈향이 난단 말인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코를 씰룩이며 냄새를 맡았다.
[……킁킁… 킁킁킁…….] [개 같군요.] [……!]석채은은 손톱을 확 세웠다. 이렇게 대놓고 면박 주다니.
하오밀문 낙양의 책임자인 그녀가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봤겠나.
손톱 끝이 바들바들 떨렸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았다.
꼬집으면 왠지 진무앙과 더 가까워질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더 갔을까.
석채은은 코를 찌르는 피냄새와 날카로운 금속의 충돌음을 들을 수 있었다.
채채채채챙!
진무앙이 구비를 하나 돌았다.
눈앞이 확 트이며 밝아졌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건 폭 이 장 정도 되는 공터였고, 반대편은 두 갈래로 나뉜 동혈이 있었다.
공터엔 일곱 사람이 있었지만, 서 있는 건 둘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피를 흘리며 바닥에 누워 있었다.
쓰러져 있는 건 잠룡오걸.
싸우는 사람은 사마휘와 오십대의 팔 척 거한이었다.
사마휘는 푸른 검기가 흐르는 쌍검을, 거한은 폭이 한 자가 넘는 날을 가진 거대한 도끼를 풍차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바닥엔 잠룡오걸이 들고 있었던 듯한 다섯 개의 횃불이 여기저기 흩어진 채 여전히 타오르며 사방을 밝혔다.
구름같이 일어나는 검영과 그에 맞서는 거대한 도끼의 그림자.
채채채채챙!
검과 도끼가 연쇄적으로 충돌하며 눈부신 불똥을 피워 올렸고, 공터엔 뼈를 깎는 예기와 경풍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횃불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춤을 췄고, 경풍에 휘말린 잠룡오걸은 쓰러진 채 지푸라기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사마휘와 거한을 본 석채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들… 창천옥룡 사마휘와 야수팔흉 중 한 명인 지흉(地凶) 인도부(人屠斧) 주고영이잖아요…….] [맞습니다. 그들이죠.]진무앙은 덤덤한 어조로 말을 받으며 싸움에 집중했다.
사마휘는 남자로 변하려면 아직 며칠 더 있어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남장을 하고 있었다.
가슴은 천으로 눌렀을 것이고, 허리는 풍성한 장포로 가린 차림새였다.
싸움을 보며 진무앙은 혀를 찼다.
‘상황이 좋지는 않군. 장소가 최악이야.’
사마휘는 인도부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녀의 창천질풍류는 경쾌한 보법을 기반으로 상대의 허점을 찾아 움직이다가 그것을 발견하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것이 강점인 검법이다.
하지만 이곳은 창천질풍류의 진수를 제대로 발휘하기엔 공간이 너무 좁았다.
그 때문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인도부의 도끼와 정면으로 충돌하며 힘 대 힘의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식의 싸움이라면 그녀가 유리할 리가 없었다.
인도부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걸 장기로 삼는 무기와 무공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사마휘보다 수십 년 앞서 검기상인의 경지에 이른 절정고수여서 검기로 그의 도끼를 잘라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하지만, 밀리고 있긴 해도 사마휘가 인도부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은 강호 무림을 진동시킬 일이었다.
인도부가 도끼로 사마휘의 어깨를 내리찍으며 거친 광소를 터트렸다.
“뒈져라,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아! 으하하하하하!”
쿠와아앙!
무시무시한 파공음과 함께 두툼한 회색의 기류에 휩싸인 도끼날이 가공할 기세로 허공을 갈랐다.
사마휘의 조각처럼 수려한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녀는 쌍검으로 십자 형태의 검세를 피워올리며 인도부의 도끼를 막아갔다.
콰콰콰콰쾅!
격렬한 충돌음과 함께 경기의 폭풍이 공터를 휩쓸었다.
“크크크크크, 무림십수 어쩌고 하기에 얼마나 쓸 만한 후배들이 나왔나 궁금했는데, 널 보니까 별 볼 일 없구나.”
부웅, 부웅, 부우우우웅!
도끼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엄청난 풍압에 짓눌린 공기가 비명을 질러대는 소리가 났다.
채채채채챙!
인도부의 도끼가 그리는 궤적은 크고 거칠었다.
당연히 틈이 있었다.
사마휘는 끊임없이 그곳을 파고들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인도부의 압도적인 힘과 두터운 내공이 만들어낸 무형의 장벽에 가로막혀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마휘는 인도부와 충돌할 때마다 한 걸음씩 뒤로 밀려났고, 조만간 등이 벽에 닿을 것처럼 보였다.
더는 피할 곳이 없게 되는 순간, 승패가 갈릴 것이다.
싸움을 지켜보던 석채은의 눈에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진 호위, 나를 내려줘요. 사마 소협을 도와야 해요.] [관둬요. 어설프게 끼어들면 사마휘와 같이 도끼밥이 될 뿐입니다. 팔흉의 명성은 마작을 해서 딴 게 아닙니다.] [당신과 내가 사마 소협과 힘을 합하면 인도부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거 참 말 많네. 당신이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를 죽게 내버려 둘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좀 닥치고 있어요.]그의 말을 들은 석채은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건 거의 막말 수준이 아닌가.
아무리 자신이 채근하는 게 짜증이 났다고 해도 그의 말은 정도를 한참이나 넘은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얼마 전까지 자신에게 수작을 부리던 사람과 동일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당연히 화가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는 화보다 오히려 서운함이 더 컸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사마휘는 드디어 벽에까지 밀려났다.
채채채채채챙!
난무하는 검영과 부영 속에 격렬한 금속의 충돌음과 눈부신 불똥이 피어올랐다.
사마휘의 악문 입술 끝에 한 줄기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도끼와 검이 부딪친 때마다 손해를 보면서 내부 충격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것을 본 진무앙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제 나설 때가 되었군.’
그가 두 사람이 싸우는 현장에 도착했는데도 나서지 않은 데는 당연히 이유가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구해주면 휘아가 날 대할 때 좀 더 야들야들해지겠지.’
그에게 이런 속내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니 강석초가 그에게 철이 덜 들었다고 하지…….
석채은이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진 호위, 내려줘요. 내릴 거예요!]격앙된 감정이 그대로 실린 목소리.
하지만 진무앙은 대답이 없었다. 대신 그의 움직임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석채은은 가뜩이나 은밀하던 그의 움직임이 진동을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고요해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동시에 그녀의 몸과 맞닿은 그의 등과 허리 근육이 미묘하게 꿈틀거리는 것도.
그것은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그것과도 흡사했다.
[석 목주, 내 목 꽉 잡아요.]진무앙의 착 가라앉은 음성이 귓전을 파고들었다.
뭐라 말을 하려던 석채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녀의 엉덩이를 받치고만 있던 진무앙의 손이 그것(?)을 꽈악 움켜쥐었던 것이다.
그때 사마휘도 진무앙의 전음을 듣고 있었다.
[휘, 내가 왔다! 같이 온 사람이 있으니까 너무 친한 척은 하지 마!]진무앙의 신형이 한 덩이 구름처럼 소리 없이 떠오르더니 가공할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무영경 이십팔절의 정수는 무영삼절이라고 한다.
그것은 은밀하고 빠르게 목표와의 거리를 좁히는 데 최적화된 은신술과 경공술의 정화다.
지금 진무앙이 펼친 건 사신암행과 암향무영, 그리고 무영삼절 중 유성탄영(流星彈影)이 복합된 것이었다.
저간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인도부가 사마휘를 향해 도끼를 미친 듯이 휘둘렀다.
그의 비전절기인 광풍부법의 절초 광풍회류였다.
산사태가 일어나듯 도끼의 그림자가 사마휘의 전신으로 쏟아졌다.
콰우웅-
사마휘는 금방이라도 도끼 아래 으깨질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인도부의 안색이 확 변했다.
그는 강호 무림이 인정한 절정고수.
“웬 놈이냐!”
그는 거친 일갈과 함께 사마휘를 공격하던 도끼를 거두며 몸을 돌려 등 뒤쪽을 풍차처럼 휩쓸었다.
쑤와아아앙-
광풍부법의 후반 삼절초 중 하나인 광풍난마였다.
인도부의 반응은 악명만큼이나 뛰어났다.
하지만 진무앙은 이미 다섯 자밖에 떨어지지 않은 허공에서 그를 향해 손을 쭉 뻗고 있었다.
그의 장심에서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무형의 기운이 거대한 송곳처럼 일어났다.
혈우팔법 중 하나인 폭뢰경혼추가 펼쳐진 것이다.
폭뢰경혼추는 전사경을 이용한 관통력의 극점에 있는 공격 수법이다.
스읏!
가공할 힘이 실린 일격이 풍차처럼 회전하는 거대한 도끼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인도부의 가슴을 강타했다.
막거나 피할 틈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도부는 대경실색했다.
그는 전력을 다해 몸을 틀었다.
쾅!
“크윽!”
벼락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인도부가 격한 신음을 토하며 뒤로 훌훌 튕겨 나갔다.
그가 물러나는 허공이 진홍색의 핏물로 붉게 물들었다.
핏물에 살 조각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일격에 내장이 상할 정도로 큰 상처를 입은 걸 알 수 있었다.
석채은이 소리쳤다.
“그가 도망쳐요!”
더는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마음이 급해서인지 그녀의 말은 전음이 아닌 육성이었다.
진무앙 역시 인도부가 무엇을 하는지 보았다.
인도부는 쓰러질 듯 비틀거리면서 두 갈래로 나뉜 동혈 중 오른쪽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석채은의 외침을 분명히 들었을 텐데도 진무앙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 쫓아가요?”
진무앙이 눈을 껌벅이며 되물었다.
“내가? 왜요?”
“천하의 대마두 지흉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잖아요! 그는 중상을 입었다고요.”
진무앙이 슬쩍 고개를 돌려 등에 업힌 석채은을 돌아보았다.
하오밀문은 정사 중간에 있다고 알려진 회색의 문파다.
그런 문파의 낙양 책임자가 갑자기 마두 제거 운운하는 것이 웃겼다.
그는 석채은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사마휘를 구하는 그를 보고 정파 계열의 무인이라고 판단한 듯했다.
정파인들에게 대마두 척살은 높은 명성과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다.
자신이 그런 말을 함으로 해서 정파(?) 무인인 진무앙의 호감을 얻으려는 것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돌아가는 깨알 같은 잔머리.
진무앙은 그녀를 등에서 내리며 말을 받았다.
“석 목주, 나는 인도부를 죽일 정도로 강하지 않아요. 그리고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난 기루의 호위무사지, 무림의 대협이 아닙니다. 게다가 내가 여기 들어온 목적은 마두 제거가 아니라 섭 장주를 찾는 거고요.”
진무앙은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사마휘에게 걸어갔다.
석채은은 할 말을 잃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반박하기가 쉽지 않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진무앙과 눈이 마주친 사마휘가 소맷자락으로 입가의 핏물을 쓱 닦으며 짧게 한마디 했다.
“고마워.”
그리고 그녀는 바로 품에서 요상단을 꺼내 입에 물고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운기조식을 하려는 것이다.
그것을 본 진무앙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처음 만났을 때는 물가에 내놓은 애 같았는데 그동안 무림맹에서 먹은 강호물이 헛된 건 아니었나 보네.’
진무앙은 사마휘가 한 행동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쓰러진 잠룡오걸의 상태를 보지도, 진무앙과 석채은의 정체를 묻지도 않았다.
가장 먼저 한 건 상처의 치료였다.
보통 사람들의 세상에서는 무례하고 몰인정하게 보일 게 분명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무림에서라면 관점이 달라진다.
진무앙의 눈에 그녀의 선택은 현명한 것이었다.
그는 무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대응할 수 있는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거라고 믿는 남자였다.
인도부가 사라진 동혈을 보며 진무앙은 싱긋 웃었다.
‘휘아는 챙겼으니까, 이제는 설란을 찾아야겠지.’
섭광운과 ‘그놈’의 순서는 한참 뒤였다.
그에게 자기 여자의 안전보다 우선하는 건 천하에 존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