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8
008 조사
낙양부(洛陽府) 직속 빈의관(시체 보관소) 경덕청은 부내가 아닌 후문에서 백여 장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경덕청은 다른 빈의관과 달리 장례와 관련된 일은 하지 않고 시신만 보관했다.
땅 위로 드러난 경덕청 건물은 단층으로 허름하게 보일 정도로 소박했다.
이곳에서 중요한 건 지하에 있는 시체 보관소지, 지상의 서류 작업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의사 소평은 아침 일찍 방문한 진무앙을 바로 지하에 있는 시체 보관소로 안내했다.
바닥에 십여 개의 목관이 가지런히 놓인 보관소에 들어서자 기온이 서늘해졌다.
동시에 수박이 썩을 때 나는 것과 흡사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이 낭랑의 부탁이라 허락하긴 했소만, 빨리 봐주시구랴. 포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사건에 관련된 시신이라서…….”
“오래 걸릴 일이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요.”
진무앙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조사가 진행 중인 사건과 관련된 시신을 상부의 허락 없이 보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난향은 소평을 돈으로 구워삶았다.
소평은 불안한 듯 연신 문밖을 힐끔거리며 관들 중 하나의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얼굴에 하얀 분을 바르고 수의를 입은 묘령의 여자 시신이 누워 있었다.
사망한 상태임에도 여인에게서는 어지간한 사내의 혼을 뺏고도 남을 색기가 느껴졌다.
소평이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여자가 희봉이라우. 송옥루 최고의 미색 중 한 명이었지. 낙양의 사내들이 한 번이라도 같이 자면 죽어도 원이 없겠다던 기녀가 이처럼 어이없게 비명횡사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수…….”
그가 중얼거릴 때 진무앙은 희봉의 시신을 번쩍 들어서는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수의를 묶고 있는 염포를 풀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고, 진무앙이 이런 짓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터라 소평은 그의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어… 어……. 그러시면… 안 되… 는……!”
놀라 말을 더듬거리며 소평이 진무앙의 팔뚝을 잡았다.
팔뚝을 잡은 손을 내려다보고 고개를 든 진무앙과 눈이 마주친 소평의 안색이 희봉의 얼굴처럼 하얗게 질렸다.
그는 무서운 독사라도 본 것처럼 눈을 질끈 감으며 번개처럼 손을 거뒀다.
그의 관자놀이에는 여러 개의 굵은 식은땀이 맺혀 있었다.
‘…무슨 놈의 눈이 저렇게…….’
수십 년 동안 험한 꼴의 시신들을 보며 간담을 키운 그였지만 진무앙의 두 눈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무엇’을 감당할 배포는 없었다.
눈을 뜬 후에도 그의 감히 진무앙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진무앙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소평과 같은 반응을 보이는 자를 처음 본 것도 아니었다.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오. 난 남자가 내 몸에 손을 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아닙니다유. 오히려 제가 죄송하지유. 제가 무례하게 행동했습죠.”
어느새 진무앙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말투는 공손하게 변해 있었다.
진무앙은 염포를 풀고 수의를 벗겼다.
알몸을 드러낸 시신은 그야말로 난자(亂刺)당했다는 말의 표본과도 같아서 온전한 곳이 별로 없었다.
가슴과 배가 열려 있어 터지고 끊어진 장부와 내장들이 다 보였고, 사타구니와 복부에도 칼질을 해놔서 자궁이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염습을 했음에도 초여름이라 시신은 빠르게 부패되고 있었다.
소평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찔린 상처가 스물세 곳이고, 베인 상처가 열아홉 곳인데, 아주 난자를 해놨습니다요. 유 공자가 그리 잔인한 성품이라는 걸 저도 이번에 알았습니다요.”
진무앙은 희봉의 시신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외부를 먼저 조사했다.
전신을 샅샅이 훑어 내려가던 그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시신의 손과 발이었다.
그는 소평이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희봉의 손과 발을 마치 애무라도 하듯 여러 차례 어루만졌다.
이어서 그는 양득군의 관을 열었다.
안에는 부패 때문에 피부 빛이 변한 양득군의 시신이 들어 있었다.
그에 대한 진무앙의 검시는 빠르게 끝났다.
그는 시신의 손발과 상처의 위치, 그리고 상한 부위의 뼈를 손으로 만져 보는 것으로 검시를 마쳤다.
두 시신의 외부 검시를 마친 그는 시신을 반듯하게 눕히고 허리춤에서 가죽으로 둘둘 만 다섯 치 길이의 작은 뭉치를 꺼냈다.
풀어헤친 천 속에는 세 치에서 다섯 치 길이의 소도와 수십 개의 크고 작은 바늘이 들어 있었다.
하나같이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정련된 물건들이었다.
진무앙은 그중 다섯 치 길이의 소도를 잡았다. 그리고 희봉의 시신을 헤집기 시작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소평이 목을 길게 빼고 진무앙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살인사건이 나면 초검(初檢)과 복검(覆檢) 등 두 번의 검시를 하고, 그래도 의심스러우면 네 번까지도 검시를 한다.
하지만 인구 거의 육십만이 넘는 대도시 낙양에서는 살인사건이 매일 일어나다시피 한다.
그래서 인력 부족에 허덕이는 검시관들은 중요사건이 아니면 대부분 형식적인 검시에 그칠 뿐이었다.
때문에 소평이 제대로 된 부검을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처음에 장기에 난 상처를 하나씩 들여다보기만 하던 진무앙은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것들을 들춰내고 뼈에 난 상처들을 살폈다.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장기와 뼈의 상처들을 손끝으로 만지며 확인까지 했다.
살아오며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는 소평의 안색이 누렇게 떴다.
그는 손으로 토악질을 하려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입술 사이로 삐져나오는 헛구역질은 감출 수가 없었다.
“우욱… 우욱…….”
코를 찌르는 악취가 보관소를 맴돌았다.
위를 열어 내용물을 살피던 진무앙이 미간을 찡그렸다.
부패한 음식물 속에 어린아이의 손가락에도 맞지 않을 것 같은, 아주 작고 오래되어 보이는 은반지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반지를 꺼내 살펴보던 진무앙은 얼마 전 수향루에서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게 왜 여기에?’
그는 반지를 소맷자락 안에 넣었다.
일각 동안 두 구의 시신을 헤집던 진무앙이 칼을 거두고 일어났다.
그는 소평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시체 보관소를 나섰다.
밖에는 낙양의 지리에 어두운 그를 위해 난향이 붙여준 하인 종오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체 보관소를 나온 진무앙이 다음에 찾아간 곳은 낙양부의 후문이었다.
그곳에는 관복을 입은 포두 한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골격이 크고 구레나룻이 무성한 사십대 초반의 포두를 본 종오가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육 포두 나리께서 직접 나오셨네유.”
낙양부의 최고참 포두 중 한 명인 육기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받았다.
“종오구만. 자네가 이 낭랑이 말한 진무앙이라는 친군가?”
대뜸 하대였다. 하지만 진무앙은 기분 나쁜 기색을 보이기는커녕 싱긋 웃으며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그렇습니다.”
관부와 깊게 얽히는 건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일로 얽히게 되는 경우에는 관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는 게 좋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범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었다.
“특급 호위무사로 채용되었다는 말을 들었네. 내게 낯선 얼굴인 걸 보면 이곳 토박이는 아닌 듯한데, 이 낭랑과 범상치 않은 관계인 것 같구만.”
육기의 눈이 날카롭게 자신을 훑는 것을 느낀 진무앙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첫 만남에서부터 고압적이고 심문하는 듯한 자세로 궁금한 걸 묻는 건, 수사 분야에 오래 종사한 관료들의 직업병이다.
“일개 낭인이 루주 같은 분과 무슨 인연이 있었겠습니까. 그저 루주께서 잘 봐주신 덕분이죠.”
“그런가…….”
“사람들의 눈이 있으니 모아두셨다는 자료와 유 공자를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만.”
진무앙의 직설적인 요구에 육기는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알겠네. 시간을 끌어서 좋을 일이 아니긴 하지.”
십여 년째 매달 난향에게 상납받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 그녀를 대리하고 있는 진무앙의 요구는 곧 그녀가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인 종오는 밖에 남았고, 진무앙은 육기를 따라 낙양부로 들어섰다.
감옥은 부의 중앙 건물 뒤편 지하에 위치해 있었는데, 육기가 진무앙을 데리고 간 곳은 감옥이 아니라 그 옆의 따로 마련되어 있는 작은 건물이었다.
육기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은 외부의 중요인사가 감금되어 있는 죄인을 만날 때 사용하는 장소였다.
건물의 앞에서 경계를 서던 포졸이 육기에게 인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열 평가량 되는 건물 내에는 탁자와 그 위의 책 두 권, 그리고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육기와 진무앙이 들어서자 의자에 앉아 있던 스물 전후의 젊은이가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가 유정명이었다.
검거된 후 며칠 동안 고문을 많이 당한 듯 미남이라던 그의 본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머리는 풀어헤쳐지고 드러난 얼굴과 손발엔 검푸른 멍자국들이 빼곡했고, 옷에는 말라붙은 핏자국들이 완연했다.
진무앙은 유정명의 맞은편에 앉고 육기는 문가에 섰다.
의자가 둘뿐이라 그가 앉을 자리는 없었다.
유정명은 겁에 질린 눈으로 육기를 힐끔거리다가 진무앙에게 물었다.
“그대가… 이… 이모가… 보내신… 분이요?”
“그렇소. 수향루에서 호위무사를 하고 있으니 공자는 나를 진 호위라고 부르면 되오.”
“흑흑흑, 진 호위, 나… 나는… 그들을 죽이지 않았소! 나는 결백하오. 엉엉엉! 내가 왜 그들을 죽이겠소. 나는 지금까지 닭 한 마리 죽여본 적도 없단 말이오!”
유정명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눈물과 콧물, 줄줄 흐르는 침까지 더해지면서 피와 땟국에 젖어 가뜩이나 더럽던 얼굴이 거지꼴이 되었다.
유정명의 말이 끝나자 진무앙이 물었다.
“그날 공자의 옆에 앉아 시중들던 기녀의 이름이 뭐요?”
“연… 연홍이오만… 그건 왜……?”
연홍은 죽은 희봉과 함께 송옥루의 십대 기녀 안에 드는 미인이었다.
“육 포두님, 이제 유 공자를 데리고 가셔도 됩니다.”
육기가 미간을 찡그렸다.
“벌써 유 공자에 대한 조사가 다 끝났다고?”
“예.”
“뭘 했다고 조사가 끝났다는 말인가?”
“유 공자에게서 필요한 건 다 얻었습니다.”
“허…….”
육기는 어이가 없는 듯 헛기침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