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91
091 좀 그렇잖냐!
연적하는 혀로 손가락 끝을 물어뜯어 피를 낸 후 그것으로 손바닥에 태극 도형을 그렸다.
그리고 손바닥을 덮쳐 오는 나뭇가지들에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반야바라밀 반야바라밀!”
그의 장심에서 쏟아져 나간 장풍이 나뭇가지들을 태풍처럼 휩쓸었다.
퍼퍼퍼퍼퍼펑!
재로 변한 나뭇가지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그가 펼치고 있는 것은 검후에게 전수받은 금강항마진언과 전진교의 제마법술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혼종의 장법이었다.
이름도 불도양가의 용어가 뒤섞인 대범천태극신장.
연적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진무앙에게 용소구천술을 받은 후 대범천태극신장의 위력이 배는 강해졌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호기롭게 소리쳤다.
“반야바라밀 반야바라밀!”
* * *
진무앙은 숲으로 뛰어들자마자 자세를 바꿨다.
섭소천의 손목을 잡았던 오른손을 떼더니 그녀의 허리를 감아 품에 안은 것이다.
섭소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두 팔로 그의 목을 꼬옥 끌어안으며 말했다.
“이곳의 나무들은 사술이 걸려 있어요.”
우지직- 우지지지직-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숲의 나무들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나뭇가지를 뻗어 그들을 잡으려 들었다.
사이한 기운이 충천하며 하늘이 어두워졌다.
소름이 끼치는 상황인데도 진무앙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섭소천에게 물었다.
“무섭지 않소?”
섭소천이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요. 소협과 함께 있잖아요.”
“하하하하하.”
진무앙은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섭소천이 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거대 나무는 저쪽으로 가야 해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거대 나무와 아무 상관도 없는 방향이었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곳은 환각으로 뒤덮여 있어서 눈에 보이는 대로 가면 길을 잃고 헤매게 되어요.”
“알았소.”
진무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도 알고 있는 것이었지만, 그걸 입밖으로 내서 섭소천을 무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휘이이이이익-
경공술을 이용해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는 와중이라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엔 세찬 바람 소리가 남았다.
나뭇가지듯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뒤엉켰다.
그리고 해일처럼 일어난 그것들은 엄청난 높이의 성벽을 만들어 두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섭소천이 당황한 표정으로 진무앙을 올려다보았다.
진무앙이 그녀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예전에 검후가 내게 알려준 강력한 항마진언이 있소. 무상항마금강다라니라는 수법인데, 낭자도 그것의 위력을 보면 마음에 들 거요.”
그는 왼손을 들어올리며 진언을 읊조렸다.
“마하가로 니가야 옴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그의 왼손은 보천검이 발하던 금광을 초라하게 만들 정도로 강렬한 황금빛 광채에 휩싸였다.
그 빛에 닿은 나뭇가지들이 불에 댄 것처럼 몸서리를 치며 타들어갔다.
치치치치이이익- 치이이이이익-
진무앙은 진언이 빠르고 강해졌다.
“사바하 싯다 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간타야…….”
다음 순간, 그의 장심에서 태양과도 같은 광구가 떠오르더니 가공할 기세로 나뭇가지 성벽에 부딪쳐 갔다.
쾅콰쾅!
벼락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성벽이 폭발하며 터져 나갔다.
끄아아아아아아-
동시에 숲을 떨어 울리는 기괴한 비명소리가 났다.
방어가 소용없다는 것을 깨달은 듯 부서진 나뭇가지들이 썰물처럼 물러나며 앞이 훤하게 트였다.
원형의 황금광에 둘러싸인 진무앙과 섭소천은 무서운 속도로 숲을 뚫고 달려갔다.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왼쪽에 보이는 듯했던 거대한 나무가 갑자기 그들의 앞에 환상처럼 나타났다.
나무는 정말 거대했다.
높이는 오십 장이 넘었고, 장정 스무 명이 손을 맞잡아야 간신히 끝이 닿을 정도로 굵었다.
나무 주변은 엄청난 두께의 나무뿌리들이 뒤엉킨 채 땅을 뚫고 나와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발톱으로 대지를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무를 살펴본 진무앙은 미간을 찡그렸다.
‘이 나무는 환영이 아니야. 사기(邪氣)와 목기(木氣)를 무한대로 공급받은 덕분에 이렇게 큰 거다. 이런 목기를 뿜어낼 수 있는 마병이라면…….’
땅을 뚫고 튀어나와 있는 뿌리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은은한 검은 기운이 어려 있었다.
‘현천을목마금(玄天乙木魔琴)… 틀림없어. 그것의 열쇠 조각 중 하나야. 세 조각 중 기운이 가장 강한 건 마령주인데… 그것이 이곳 어딘가에 묻혀 있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만으로 이 정도의 환영을 만들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인데……. 염병…….’
그의 눈 깊은 곳에 불안한 어둠이 깃들었다.
‘만약 마령주만이 아니라면… 또 다른 칠마병의 각성이 진행되고 있는 거라면… 지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의 눈에 드리워진 어둠이 짙어졌다.
‘내 생각이 맞다면, 한 시대에 그것도 한 성내에서 칠마병이 열쇠도 아니고 본체가 두 개나 나타났다는 건데……. 지금까지 이런 경우는 없었는데……. 설마… 아니겠지…….’
그의 고민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거대 나무의 뒤편에서 여섯 명의 여자가 걸어나오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을 본 섭소천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중앙에 선, 차가운 인상의 젊은 여인이 섭소천에게 소리쳤다.
“사저, 외부인과 결탁해 사부님을 곤란케 하다니, 이게 무슨 망동이에요!”
섭소천은 입술만 잘근잘근 깨물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진무앙이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고 가볍게 다독이며 물었다.
“섭 낭자, 저들은 누구요?”
“제 사매들이에요.”
“저들도 남자의 양기를 탈취하는 짓을 했소?”
“예. 저들은 무공에 대한 자질이 저보다 뛰어나 삼 년 이상 그 일을 해왔어요.”
“많은 남자가 희생되었겠구려.”
섭소천의 눈빛이 흐트러졌다.
진무앙의 질문에서 그녀도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답하는 목소리는 모기 날갯짓보다도 작았다.
“……예.”
진무앙은 싱긋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안았다.
“그럼 됐소.”
섭소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예? 뭐가요?”
진무앙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움직였다.
스팟!
한 걸음 내딛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그의 신형은 여섯 여자의 다섯 자 앞에 나타나 있었다.
단거리 이동에 있어서 최고속을 자랑하는 기법.
무영삼절 중 유성탄영이 펼쳐진 것이다.
여인들의 얼굴빛이 확 변했다.
그녀들 중 진무앙이 움직이는 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여인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위험을 예감한 그녀들이 진무앙을 공격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무앙과 그녀들의 속도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양측의 기본 속도 차이가 이렇게 심하게 나면 싸움의 결과는 볼 것도 없다.
진무앙의 손이 맨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인의 머리를 와락 움켜잡았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싶은 순간,
퍼석!
박살난 육편과 시뻘건 선혈이 폭발하듯 비산하며 구천에 사무치는 처절한 비명이 숲을 울렸다.
“아악!”
진무앙의 앞은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허리 위가 폭발하듯 터져 나간 여인의 하체가 분수처럼 피를 뿜어 올리며 쓰러졌다.
털썩!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가 펼친 것은 혈우팔법 중 구겁천뢰탄.
이 무공은 격산타우의 원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허공을 뛰어넘어 근처의 목표 아홉 개를 연속 타격할 수 있는 공능을 가지고 있었다.
갈지자를 그리듯 여인들의 상체가 차례로 폭발했다.
퍼퍼퍼퍼퍼퍼펑!
그리고 솟구치는 피분수.
푸화확!
“아아아아아악!”
비산하는 선혈과 이어지는 처절한 비명.
대항할 틈도 없이 상체가 잃은 여인들의 하체가 피를 뿌리며 차례로 땅에 쓰러졌다.
털썩… 털썩… 털썩…….
섭소천은 넋을 잃었다.
여섯 사매는 그녀보다 무공이 강했다.
당연했다.
모두 그녀보다 무재가 뛰어났으니까.
그런데 일대일로 싸워도 이길 수 없는 여섯 사매가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몰살당한 것이다.
진무앙은 다시 섭소천의 허리를 안았다.
“갑시다.”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섭소천이 멍한 얼굴로 대답했다.
“……예.”
휘익-
진무앙은 거대 나무의 기둥을 돌아 뒤편으로 갔다.
그의 손에 죽은 여인들이 나온 곳에 문이나 동굴의 입구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섭소천은 당황했다. 하지만 진무앙은 실망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의 손에 앞서 보았던 황금광이 어렸다.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그가 진언을 암송하자 황금광이 폭발하듯 전방으로 쏟아졌다.
콰콰쾅!
날벼락이 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텅 비어 있던 허공의 일각이 지진이 난 것처럼 뒤흔들리며 쩌억 갈라졌다.
갈라진 틈 사이로 짙은 어둠에 잠긴,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보였다.
황금광이 진무앙과 섭소천의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진무앙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람처럼 틈을 비집고 들어가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나선형이었고, 끝도 없이 아래로 이어졌다.
섭소천을 안고 한 가닥 번개처럼 계단을 내려가던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쩐지 길이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섭소천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기에 진무앙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나선형 미로가 끝나자 두 사람의 앞에 긴 동굴이 나타났다.
여전히 섭소천을 안은 채 진무앙은 앞으로 달려갔다.
길은 십여 걸음을 갈 때마다 휘어지고 굽어졌다. 그리고 십여 장마다 두 개, 세 개로 나누어지는 길이 나타났다.
진무앙은 점점 더 큰 의혹을 느꼈다.
‘이건 그 석초를 닮은, 돼지 방광같이 생겼던 놈이 만들었던 형산의 대환상미로와 형태가 굉장히 비슷한데?’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며 시원하게 확 트였다.
앞에는 높이 오 장, 사방 이십여 장에 달하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그리고 공터에는 언뜻 봐도 삼백 명이 넘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부분은 넝마를 걸친 남자였지만 개중에는 화려한 나삼을 입은 여자도 열 명 정도 섞여 있었다.
남자들은 손에 박도와 대두도를 들고 있었는데,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앙상하게 마른 그들은 모두 죽은 사람처럼 눈에 빛이 없었고, 불에 탄 것 같은 거무죽죽한 피부는 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그들을 본 섭소천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떠올랐다.
“아! 저 남자들은…….”
진무앙은 섭소천을 내려놓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저들이 양기를 탈취당했던 남자들이요?”
섭소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들은 모두 죽었소, 그것도 오래전에.”
눈이 커진 섭소천이 반문했다.
“예?”
진무앙은 그녀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섭소천은 이곳까지 와본 적이 없어서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남자들을 보는 진무앙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죽은 자들이 편안하게 저승으로 가는 걸 방해하는 모든 것을 어마어마하게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남자들에게서 시선을 뗀 그는 그들 너머로 눈길을 옮겼다.
그곳엔 천장을 뚫고 내려온 건지, 바닥에서 위로 뚫고 올라간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거대한 나무뿌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음양반인귀와 사십대 중년인이 뿌리에 박힌 무언가를 빼내려고 용을 쓰고 있었다.
중년인은 백지장처럼 창백한 얼굴에 검은 관을 쓰고 있었는데, 그가 유명전주 음혼마군이었다.
진무앙이 손을 흔들려 소리쳤다.
“어이, 반인귀, 음혼. 옛 친구가 왔는데 쳐다는 봐야 하는 거 아냐? 예전에도 싸가지는 없었지만, 세월이 그렇게 흘렀는데도 나아진 게 하나도 없으면 좀 그렇잖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