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93
093 뭐지, 이 뜬금없는 분위기 전환은?
“천지무극 건곤차법!”
“반야바라밀 반야바라밀!”
“으하하하하, 유명전의 마졸들아, 뒈져랏! 형신여검!”
퍼퍼퍼퍼펑!
지하 미로를 벗어난 진무앙과 섭소천은 천살귀문진의 입구에 도착하기도 전에 거칠게 외치는 연적하의 목소리와 연속해서 폭발하는 섬광을 볼 수 있었다.
더불어 허공을 휘젓는 나무 넝쿨과 수백 개의 사람 팔도.
진무앙이 혀를 찼다.
“쯧, 용소구천술까지 가르쳤는데 저 자식들을 아직도 못 잡고 있네. 이러면 가르친 보람이 없잖아.”
섭소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갸웃했다.
“연 대협에게 뭔가 가르치셨어요?”
용소구천술은 그녀와 영채신이 정자 안에 있었을 때 진무앙이 단음강벽까지 치고 연적하에게 가르친 법술이다.
그러니 그녀가 알 리 없었다.
“하하… 그런 게 있소.”
진무앙이 말을 얼버무리며 신형을 날렸다.
연적하와 음혼마군 등이 싸우는 공터는 얼마나 치열했는지 사방 오십여 장이 폐허로 변해 있었다.
번쩍번쩍!
퍼퍼퍼퍼펑!
요란한 굉음과 함께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났고, 허공은 눈부신 섬광으로 가득 찼다.
연적하는 전진교의 법술과 금강항마진언을 뒤섞어 사용하면서 음혼마군과 음양반인귀를 정신없이 몰아붙이고 있었다.
음혼마군이 이를 갈면서 악을 썼다.
“으아아아! 취도사, 너나 뒈져 버려!”
음혼마군과 음양반인귀는 전력을 다하고 있었지만 전세를 역전시키지는 못했다.
마령주가 도난(?)당하면서 난약사의 사기는 확연하게 약해졌다.
따라서 그들의 사술과 환술의 힘도 따라서 약해졌기 때문이었다.
영채신은 전장과 떨어진 곳에서 침을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진무앙과 섭소천이 바로 등 뒤에 도착했는데도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는 데다가 무공을 모르는 그가 경공술을 사용하는 두 사람의 기척을 알아차리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진무앙이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채신아.”
넋을 놓고 있던 영채신이 질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진무앙을 보고 밝아졌던 그의 표정은 섭소천을 보고는 두려움으로 창백해졌다.
그는 허겁지겁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진무앙은 눈살을 찌푸렸다.
“너, 왜 그러냐?”
“연 대협 말로는… 섭 낭자가 남자의 양기를 취하는 귀신이라고…….”
진무앙은 헛웃음을 흘렸다.
살을 붙여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 했더니 섭소천을 귀신으로 둔갑시킨 모양이었다.
졸지에 귀신이 된 섭소천은 어이가 없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연적하에게 다른 생각이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진무앙이 영채신에게 말했다.
“그녀는 귀신이 맞지만, 이미 개과천선했다. 더는 나쁜 일을 하지 않을 거고, 오늘만 지나면 환생도 할 거다. 그러니까 두려워할 필요 없다.”
영채신이 섭소천에게 물었다.
“진 호위님의 말이 사실입니까?”
“예.”
섭소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영채신의 얼굴에 반신반의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진무앙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믿어. 믿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있다.”
영채신은 무슨 복을 왜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난약사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가 알고 있던 세상의 상식과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는 진무앙이 있었다.
그러니 그에게는 믿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진무앙이 고개를 돌려 연적하를 보며 소리쳤다.
“연 대협, 나 왔습니다. 빨리 끝내요. 배고픈데 도와줄까요?”
연적하의 얼굴에 천군만마를 얻은 장군의 얼굴에서나 볼 법한 밝은 미소가 떠올랐다.
반면 열세에 몰린 탓에 진무앙의 도착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음혼마군과 음양반인귀의 얼굴은 완전히 썩은 돼지 간 색깔로 변했다.
연적하도 상대하기 버거운 판에 진무앙이 손을 보탠다면 그들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눈을 마주쳤다.
이심전심이랄까.
그들은 단숨에 상대의 마음을 읽었다.
튀자!
싸움을 지켜보던 진무앙이 피식 웃었다.
다른 눈치는 둔한 그지만, 두 가지 분야는 천하무쌍의 경지에 이른 지 오래되었다.
당연히 그건 싸움 상대와 마음에 든 여자다.
그가 다시 소리쳤다.
“연 대협, 저놈들 튀려고 합니다! 새로 배운 용소구천술은 뒀다가 국 끓여 먹을 겁니까? 아끼다 똥 됩니다!”
연적하의 얼굴은 진지해졌고, 음혼마군 등은 해쓱해졌다.
속내를 들킨 이상 머뭇거리다가는 도주할 기회조차 사라질 것임을 직감한 음혼마군과 음양반인귀는 최후의 절기를 펼쳤다.
“명부마도!”
이건 음혼마군의 환술.
말을 탄 무사의 환영이 거대한 도를 휘두르며 연적하를 공격했다.
“초혼유명!”
이건 음양반인귀의 사술.
그의 손에서 자라난 수십 가닥의 나무 넝쿨이 거미줄처럼 연적하의 사지를 휘감아갔다.
연적하의 눈에서 강렬한 신광이 쏟아졌다.
“용소구천 만검조종!”
그의 손에 들린 보천검이 눈부신 황금광에 휩싸이는 듯하더니 수백 자루로 분열되었다.
그리고 번개처럼 둥글게 모여들어 거대한 방패로 변했다.
보천검의 방패 위로 대도와 나무 넝쿨이 무서운 기세로 부딪쳐 왔다.
퍼퍼퍼퍼퍼퍼펑!
보천검의 방패와 충돌한 환영과 사술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그때 진무앙이 소리 없이 손가락을 두 번 튕겼다.
지법의 정점에 이른 무공 중 하나인 소림의 탄지신통은 펼칠 때 종 치는 소리가 난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율법에 따라 상대에게 경고음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탄지신통에 무영경의 신공삼절 중 하나인 섬뢰잠영공이 섞이면 무형무음의 암살지공이 된다.
번개처럼 허공을 가른 무형무음의 탄지신공이 음혼마군과 음양반인귀의 발바닥 용천혈을 꿰뚫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암격에 당한 그들의 얼굴이 놀람과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하지만 그들의 입에서 비명이 터지기 전, 연적하가 용소구천술의 공격 법술을 연이어 펼쳤다.
“신검복요!”
방패를 이루었던 수백 자루의 보천검이 줄에 꿴 구슬처럼 허공을 날아 고통에 몸부림치던 음혼마군과 음양반인귀에게 쇄도했다.
허공에 황금빛 검의 무지개가 놓인 듯한 일대 장관이 펼쳐졌다.
난약사의 사기가 햇살을 쏘인 눈처럼 녹아들며 창창한 서기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법술의 위력은 극에 달했고, 서기는 노군산을 덮는 듯했다.
피할 시간도, 틈도 없다는 걸 직감한 음혼마군과 음양반인귀의 안색이 시체처럼 창백했다.
수백 자루의 보천검이 그런 그들의 전신을 무자비하게 관통했다.
콰콰콰콰콰쾅!
“으아악!”
“끄아아아아!”
구천에 사무치는 처절한 비명과 함께 황금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대신 검은 재로 변한 마두들의 흔적이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평생을 쌓은 사기와 환술이 깨지자 두 명의 마두는 시신도 남기지 못하고 산화해 버린 것이다.
연적하가 진무앙의 앞에 표표히 날아내렸다.
실전에서 용소구천술을 사용해 유명전의 전대 마두들을 제거한 그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
흥분한 그가 뭐라 말을 하려고 하는 것 본 진무앙이 눈을 부라렸다.
닥치라는 눈빛.
연적하는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진무앙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어느새 밤이 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말했다.
“요괴들을 제거했으니, 마을로 돌아갑시다. 섭 낭자도 환생을 준비해야 하니.”
그렇게 일행은 곽북현으로 돌아왔다.
노군객잔에서 가장 큰 객방.
섭소천이 열린 창문으로 미끄러지듯 날아들어 왔다.
귀신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경신술.
이미 들어와 있던 진무앙과 연적하, 영채신이 그녀를 맞았다.
영채신이 슬픔에 젖은 눈을 하고 섭소천에게 물었다.
“섭 낭자… 정말 오늘이 지나면 사람으로 환생하는 겁니까?”
섭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영 공자의 도움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영채신은 사건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냈다. 그런 그가 그녀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을까.
간단했다.
그가 없었다면 진무앙은 난약사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그녀는 아직도 유명전의 마수를 벗어나지 못했으리라.
그러니 그녀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후우…….”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보던 영채신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다시는… 낭자를 볼 수 없겠군요.”
섭소천의 얼굴에도 슬픈 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영채신이 아니라 진무앙을 보고 있었다.
영채신이 입술을 질끈 물며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족자 형태의 종이와 붓을 꺼내 섭소천에게 내밀었다.
“섭 낭자, 낭자가 귀신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습니다. 평생 낭자를 잊지 않을 겁니다. 내게 낭자의 흔적을 남겨주지 않겠습니까?”
섭소천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붓을 잡았다. 그리고 텅 빈 족자에 글을 써 내려갔다.
十里平湖霜满天(십리평호상만천).
십 리 잔잔한 호수 위 하늘엔 서리가 가득하고.
그녀가 한 줄을 쓰자 영채신이 붓을 넘겨 받아 다음 글귀를 채웠다.
寸寸靑絲愁華年(촌촌청사수화년).
마디마디 검은 머리칼은 아름다운 청춘을 걱정하네.
對月形單望相護(대월형단망상호).
홀로 달을 바라보는 이 몸 외로워 지켜주길 바라노니,
只羨鴛鴦不羨仙(지선원앙불선선).
신선보다는 원앙처럼 살고파라.
두 사람이 번갈아 쓴 시가 완성되었다.
섭소천이 영채신에게 대례를 올렸다.
“공자, 강녕하시기를!”
영채신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진무앙이 그의 수혈을 짚었다.
스르르.
진무앙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그를 두 개의 침상 중 오른쪽에 눕혔다.
연적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 공자는 유난스러울 만큼 정이 많아서 평생 섭 낭자를 잊지 못할 것 같은데, 걱정입니다.”
진무앙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살아 숨 쉬는 한 인생은 어차피 고해야. 그리움이 얕든 깊든 운명이란 파도는 언제든 닥쳐 와. 그 파도 위에서 채신이가 자신의 배를 어느 방향으로 몰지는 온전히 그의 몫이지. 그의 선택의 결과가 침몰일지, 안전한 항구의 발견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고.”
연적하와 섭소천의 눈이 깊어졌다.
진무앙의 외모는 갓 약관을 넘은 것처럼 보였다.
하는 짓도 그 나이에 걸맞은, 아니, 오히려 철이 덜 든 것처럼 보일 만큼 엉뚱한 것들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처럼 말을 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이 그랬다.
진무앙이 연적하에게 말했다.
“연 대협, 나는 섭 낭자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 둘만 있게 해주겠습니까?”
누구의 말인데 토를 달겠는가.
연적하는 바로 객방을 나갔다.
둘만 남자 진무앙이 섭소천을 돌아보았다.
그동안 갈고닦은 연기력을 발휘할 시간이 왔다.
그의 눈에 서글픈 빛이 떠올랐다.
이별을 예감하기라도 한 듯 섭소천이 입술을 가늘게 떨며 물었다.
“진 소협, 왜 그런 눈으로 저를 보시나요?”
“지하 미로에서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 마물들을 잡아야 하는 사명을 갖고 세상에 나왔소…….”
진무앙은 입술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섭소천의 눈에도 슬픈 빛이 떠올랐다.
진무앙이 그녀를 품에 안으며 입을 뗐다.
“마물들을 잡을 때까지 나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천하를 떠돌아야 한다오.”
“흑흑… 소협…….”
섭소천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올린 진무앙이 입술로 눈물을 핥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낭자와 함께 백년해로하고 싶은 마음이 골수에 사무치지만, 사문의 명이 지엄하니 그럴 수가 없어 한스럽구려.”
남자를 다루는 법을 배운 후 수많은 남자를 유혹까지 했던 섭소천이었지만, 진무앙의 말은 한 올의 의심도 하지 않고 믿었다.
만난 후 그가 보여준 모습들은 상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들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섭소천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보잘것없는 제가 어찌 감히 소협의 고귀한 사명을 막아설 수 있겠나요.”
“이해해 주어 고맙소.”
그때였다.
갑자기 섭소천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녀는 힘있게 진무앙을 밀어내며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강하고 힘찬 분위기.
진무앙은 갑자기 변한 그녀의 기세에 어리둥절했다.
“낭자?”
섭소천이 선언이라도 하듯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공자를 그리워하며 살지는 않겠어요!”
“……?”
진무앙의 얼굴에 뜨악한 표정이 떠올랐다.
뭐지, 이 뜬금없는 분위기 전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