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ortal RAW novel - Chapter 95
095 그게 말이야, 방구야?
해가 서편으로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시각.
낙양 수향루 맞은편 일로객잔의 객방.
이층 창가의 벽에 바짝 붙은 진무앙은 한쪽 눈만 빼꼼하게 내밀어 수향루를 살폈다.
이곳에서는 수향루의 담장 안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장사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수향루 내부는 간간이 오가는 하인과 하녀 몇이 보일 뿐 움직임이 거의 없었다.
한참 동안 수향루의 동정을 살피던 진무앙이 뒷머리를 북북 긁으며 중얼거렸다.
“백지 성격에 방에 박혀 있지는 않을 텐데… 다른 곳에서 지내고 있는 건가?”
연백지의 성격을 잘 아는 터라 그는 그녀가 낙양을 떠났을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저기에 꼬맹이만 없었어도 곽북현에서 변방으로 바로 튀었을 텐데… 염병…….”
그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곽북현을 떠난 그가 일로객잔에 도착한 건 불과 이각 전, 곽북현을 출발한 지 칠 일 만이었다.
갈 때 하루 반나절밖에 안 걸렸던 걸 생각하면 느림보 거북이만큼이나 오래 걸렸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정.
창문 아래 쪼그리고 앉은 그는 엄청나게 진지한 고민에 빠졌다.
“꼬맹이만 몰래 데리고 나와서 관외로 튈까? 백지가 하서회랑 너머까지 쫓아오지는 않을 거 같은데…….”
파천혈신륜을 비롯해서 복잡하게 얽힌 일과 인연이 한둘이 아니었다.
당장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소의 병을 고치려면 유가흔도 만나야 했고, 괴의도 찾아야 했다.
그 모든 걸 두고 튀다니.
무책임의 극치라 할 만한 생각이 아닌가.
하지만 진무앙은 그런 것에 전혀 얽매이지 않았다.
그라는 남자에게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었다.
“꼬맹이가 밖으로 나왔을 때 데리고 튀면 몰라도, 내가 안으로 들어가면 즉시 난향이 알아차릴 거야. 그렇다고 여기 계속 있는 것도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데…….”
그의 눈앞에 강석초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쯤이면 내가 도착했다는 게 그 녀석 귀에 들어갔을 거야. 그럼 난향이 아는 건 시간 문제고…….”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똑.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의 기운을 읽고 단숨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린 진무앙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들어와라.”
문이 열리며 난향 전속 심부름꾼인 동기 옥아가 웃으며 들어와 그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고개를 든 옥아가 말했다.
“진 호위님, 여기서 상갓집 개처럼 궁상맞게 계시지 말고 들어오시래요.”
진무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떤 놈이 감히 날 보고 상갓집 개라는 거냐!”
하지만 옥아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대꾸했다.
“루주님이요.”
“으으으으…….”
옥아가 말을 이었다.
“만약 소소를 납치해서 튈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꿈도 꾸지 말라는 말씀도 전하라 하셨어요. 그때는 진짜 루주님과 사생결단을 할 각오를 하라고도 하셨고요.”
진무앙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는 잠시 잊고 있었다.
수향루에는 연백지보다 만 배는 더 무서운 여자가 살고 있다는 것을.
그가 울적한 얼굴로 옥아에게 물었다.
“루에 백지도 있냐?”
“연 낭랑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예, 계세요. 진 호위님이 루주님의 의뢰를 받고 떠난 그날부터 그분은 루에서 사세요.”
대답을 듣자마자 진무앙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나 못 들어간다.”
옥아는 별 표정 변화 없이 그에게 물었다.
“왜요?”
“내가 루에 들어가면 오늘부로 수향루는 폐허가 될 게 뻔하니까. 내가 안 들어가는 게 루를 위하는 거야. 알아들었냐?”
“예. 잘 알아들었어요.”
“그럼 가봐라. 루주님한테는, 낙양을 벗어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사생결단같이 살벌한 생각은 하지 말라고 전하고.”
옥아는 생글거리며 말을 받았다.
“진 호위님이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실 거라고 하시면서 루주님이 전하라 하신 말씀이 또 있어요.”
귀신도 울고 갈 난향…….
“뭔데?”
“루주님은 천하에 수향루보다 안전한 곳은 없다는 말을 전하라고 하셨어요.”
진무앙의 얼굴이 밝아지며 눈에 희망에 찬 빛이 일었다.
“정말이냐?”
“예.”
옥아의 대답을 들은 그는 바로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그럼 들어가야지.”
그는 냉큼 옥아를 옆구리에 끼었다.
옥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진 호위님, 왜 이러세요?”
“수향루에 들어가는 건 네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진무앙은 대답은 하지 않고 수향루의 정문을 바라보았다.
그곳까지의 거리는 이십 장.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에게도 멀다 할 수 없고, 그와 같은 고수에게는 숨 한 번 쉬기도 전에 가로지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리를 재는 진무앙의 얼굴에는 생사대적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의 분위기가 이상하자 옥아도 더는 묻지 못하고 말똥말똥한 눈동자만 굴렸다.
진무앙이 옥아에게 물었다.
“옥아야, 나올 때 백지 봤냐?”
“아니요.”
“이 시간에 그녀는 보통 어디에 있냐?”
“후원 별채에 머무세요. 진 호위님의 방이 있는 그곳이요.”
움찔한 진무앙이 옥아를 돌아보며 물었다.
“정확히 그녀가 머무는 곳이 어딘데?”
“진 호위님의 객방 바로 맞은편이에요.”
진무앙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난향이 아주 날 말려 죽이려고 작정을 했구나…….”
깊게 심호흡을 한 그가 옥아에게 말했다.
“잠깐 눈을 감고 있어라, 어떤 소리가 나도 눈을 뜨지 말고.”
옥아는 오히려 눈을 더 크게 뜨며 물었다.
“왜요?”
진무앙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꼬맹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무림고수와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들의 궁금증은 끝이 없으니까.
하지만 옥아에게는 아쉽게도 그는 친절하게 아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성격의 남자가 아니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분명 경고했다.”
옥아가 또 질문하기도 전에 진무앙의 몸이 한 덩이 구름처럼 둥실 떠오르더니 거리를 가로질렀다.
소리도 없고 기척을 느낄 수도 없지지만, 그 속도는 가공스럽다는 말로도 부족한 경공.
사신암행과 어우러진 유성탄영이었다.
옥아는 눈을 뜨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진무앙이 보호하고는 있었지만, 어린아이가 찰나지간에 수십 장의 공간을 가로지를 때 발생하는 압력을 견디는 건 쉽지 않았다.
옥아는 기루에서 일하며 무림인들이 무공이라는 신비한 기법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믿지 않았다.
가끔 기루 내에서 무인들이 싸우는 것을 보았지만 일반인들보다 움직임이 조금 빠를 뿐, 별로 대단한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새처럼 이십여 장을 단숨에 가로지르는 진무앙의 경공이 아이에게 얼마나 신기하게 느껴졌겠는가.
하지만 옥아의 놀라움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막 수향루의 정문과 석 자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도착했을 때, 손가락 한 마디 길이의 청백색 화살 수백 개가 그의 앞을 벽처럼 막아섰다.
그것을 본 진무앙의 눈매가 와락 일그러졌다.
“청뢰신전? 내 이럴 줄 알았지.”
휘이익-
그의 신형이 직각으로 꺾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청뢰신전들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같이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가속하면서 그물처럼 그의 전신을 덮으며 날아들었다.
“백지, 청뢰신전을 이렇게 막 뿌려대고… 아주 그냥 돈이 썩어나는구나. 못 본 사이에 금광이라도 발견한 거야?”
진무앙은 투덜거리며 선풍처럼 몸을 회전했다.
“석초야, 네 혼원탄옥강 좀 쓰자!”
다급하게 말하는 그의 주변에 눈에 보이지 않는 무시무시한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혈우팔법 중의 하나인 흡룡와류폭 중 흡룡와의 기법.
그를 향해 날아들던 청뢰신전이 선풍에 휘말렸다.
직후 이어진 대선폭의 강렬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화려하게 폭발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쾅!
연속적으로 피어난 아름답고 화려한 불꽃이 수향루와 일로객잔 사이의 허공을 수놓았다.
거리를 오가던 행인은 물론이고,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까지 창문을 열고 그 폭발을 구경했다.
“멋진 폭죽이구나!”
“오늘 수향루에서 무슨 잔치라도 하나?”
“으아, 아깝다! 폭죽을 터트리려면 밤에 하지. 왜 해도 지지 않은 이 시간에 하는 거야!”
“이 낭랑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이 있더니, 이런 구경도 시켜주는구나. 계속 돈 많이 버세요, 이 낭랑!”
여기저기서 별의별 얘기들이 다 튀어나왔다.
대부분 감탄이었다.
하지만 그 폭발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진무앙은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쿠쿠쿠쿠쿠쿠-
폭발의 열기와 충격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했다.
청뢰신전은 어린아이 장난감처럼 생겼지만, 그 위력은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무려 벽력당의 선조들이 사용을 금지한 오대금용화탄에 드는 괴물이 그것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진무앙이 재가 되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는 혼원탄옥강을 끌어올려 투명한 강기로 몸을 감쌌다.
무서운 기세로 강기와 부딪친 열기와 충격파는 결국 그것을 뚫지 못하고 허공중에 흩어졌다.
진무앙은 옥아를 꽉 끌어안고 가장 격렬하게 폭발하는 청뢰신전의 중심부로 신형을 날렸다.
수향루의 담장을 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곳이 담장 위였으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아직 폭발하지 않은 청뢰신전들이 그에게 벼락처럼 쇄도했다.
쐐애애애애액-
이어지는 폭발.
콰콰콰콰콰쾅!
“으드드드득… 청뢰신전이 나를 복날 개 패듯 하는구나!”
투덜거리면서도 진무앙은 청뢰신전의 방해를 뚫고 드디어 수향루의 담장을 넘었다. 하지만 그를 따라온 폭발의 여파는 가볍지 않았다.
그것에 휩쓸린 그는 정원에 구겨진 종잇장처럼 내동댕이쳐졌다.
우당탕! 쿠당탕!
옥아를 안고 정원을 서너 바퀴 뒹군 그가 긴 한숨과 함께 큰대자로 뻗었다.
사전에 난향이 지시를 내린 듯 정원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품에 안겨 있던 옥아가 상체를 일으켜 그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진 호위님, 괜찮아요?”
진무앙의 옷은 넝마처럼 찢어졌고, 시커멓게 그을려 있어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멀쩡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모습.
진무앙은 말없이 옥아를 보며 싱긋 웃었다.
그때 가까운 곳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야, 그는 이 정도로 다칠 사람이 아니니 그만 일어나도 된다.”
맑고 강렬한 힘이 깃든 여인의 목소리.
옥아는 허겁지겁 일어났고, 진무앙은 누운 채로 목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백색 장포, 흑발, 적안의 절세미인이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은 채 그를 보고 있었다.
옷과 머리색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 정도로 가려질 미모가 아니었다.
진무앙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 백지구나. 여전히 예쁘네. 하긴 이화궁의 맑은 공기가 몸에 좋기는 하지.”
그가 상체를 일으키는 것을 보며 연백지가 말했다.
“야반도주한 후 삼십 년 만인데, 나한테 하기에는 너무 말이 평범하다고 생각되지 않아?”
진무앙이 눈을 크게 떴다.
“벌써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 난 몇 달 안 지난 줄 알았지…….”
“그게 말이야, 방구야?”
“말인데?”
“내 귀에는 왜 방귀 뀌는 소리처럼 들릴까?”
“설마 내가 입으로 똥이라도 싼다는 말이야?”
“당신은 그러고도 남을 남자잖아.”
진무앙이 어깨를 떨구며 말했다.
“백지, 말이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연백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혀! 당신이 나한테 한 짓을 생각해 본 적은 있어? 어떻게 내게 심하다는 말을 할 수가 있어!”
그녀가 진무앙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언니의 얼굴을 봐서 이곳에서는 참겠어. 하지만 당신이 밖으로 나가는 순간이 명년 제삿날이야.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거야”
그녀는 찬바람이 불 정도로 매몰차게 몸을 돌렸다.
진무앙이 콧등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명년 오늘이 내 제삿날이 될 거다……. 너한테 그런 능력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 백지야…….”
그새 옷매무새를 정돈한 옥아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그에게 말했다.
“연 낭랑과의 화끈한 만남이 끝나면 바로 모시고 오라 하셨어요.”
“화끈한 만남이라고? 루주님이 그렇게 말했어?”
진무앙이 심드렁하게 묻자 옥아가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예.”
“그래그래, 가자. 이제 와서 누굴 탓하겠냐. 이게 다 낙양에 도착했을 때 난향을 떠올린 내 업보인 것을… 그때 왜 그녀가 생각났을까… 염병…….”
진무앙은 구시렁거리며 난향의 거처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