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another world, I run a territory with my own rent RAW novel - Chapter (104)
제104화
4화 : 피곤한 하루
해밀턴 왕성 회의실.
이곳에서는 한창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레드 문으로 인한 피해 복구가 진행되곤 있지만, 식량이 문제였다.
레드 문으로 인해 날뛴 마수의 피가 대지를 오염시켜 식량이 메마르고 말았다.
귀족들이 식량 창고를 열어 내놓기는 했지만, 그 양이 미미했다.
상인 길드도 재고가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곧 수확철이라, 그전에 모아 놨던 식량을 풀어 놨기에 생긴 일이었다.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레드 문으로 인해 식량이 메말라 버리리라는 것을.
그것 때문에 국왕, 레스 해밀턴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이 일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최근 들어 그의 머리숱이 부쩍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뭔가 대책이 없나?”
“저희 쪽에서도 찾아봤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습니다.”
“오염은?”
“일단 태양 신전에 의뢰를 넣었습니다. 다만 정화에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얼마나?”
“한 달은 걸린다고 합니다.”
“너무 오래 걸리는군.”
“그쪽에서도 어떻게든 하고 싶지만, 지금 태양 신전이…….”
“내, 외부적으로 난리라서 힘든가 보군.”
“…….”
라바돈 영지에서 벌어진 대주교의 배신.
그 누가 태양 신전의 대주교가 흑마법사와 손을 잡았을 거라 생각이나 했을까.
그 덕분에 태양 신전도 움직이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지금 식량 창고가 비어서 더는 풀 것도 없습니다. 물론 정화 작업을 마친 논에서 어떻게든 작물을 키우고 있지만.”
“시간이 걸리겠지.”
“그렇습니다.”
“끄응…….”
레스는 머리를 긁었다.
귀족들도 어떻게든 방책을 내놓고 싶어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정녕 방법이 없단 말인가. 이대로 가면 굶어 죽는 이들이…….’
전부 시답잖은 이야기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심지어 이번 회의에는 사론톤 공작가, 메디아 공작가는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건방진 놈들……. 왕실에서 주최하는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는다니. 건방진 놈들.’
레스는 사론톤 가문과 메디아 가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족이면서도 그 권력이 왕족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강했다.
어떻게든 두 가문의 힘을 깎고 싶어도 방법이 없었다.
‘아슬하게 잡힌 이 균형은 누군가가 먼저 움직이면 깨진다.’
한쪽이 움직이면 다른 한쪽이 뒤를 칠 게 뻔한 상황이었다.
절묘하게 잡힌 균형.
아이러니하게도 이 균형을 먼저 깨는 쪽이 가장 먼저 당하게 되어 있었다.
‘뭔가 변수가 필요하다. 우리 말고 다른 쪽에서 흔들어 줄 수 있는 또 다른 세력이…….’
그때, 가만히 앉아 있던 니케가 손을 들었다.
“니케, 무슨 일이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하거라.”
레스의 허락이 떨어지자, 니케는 입을 열었다.
“식량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해결할 방법이 있다고?”
“원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순 없겠지만, 어느 정도 식량은 확보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말이냐?”
“플라워 상단을 통하면 가능합니다.”
“플라워 상단?”
“그 상단이면…….”
귀족들이 술렁였다.
쇠뇌를 파는 플라워 상단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들 모두 쇠뇌를 보유하고 있을 정도니까.
심지어 그 제작자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을 정도였다.
장내가 술렁이자, 레스가 손을 들며 진정시켰다.
“계속해 봐라.”
“예전 라바돈 영지에서 플라워 상단의 상단주를 만났습니다. 그가 말하길, 엄청난 양의 식량을 비축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식량을 비축했다고? 얼마나?”
“저도 자세히 파악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그 양이 절대 적지는 않습니다.”
한 상단이 비축한 식량이라고 해 봤자 거기서 거기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조차 필요했다.
“좋다, 니케. 그럼 네가 그쪽 상단주와 이야기해서 식량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봐라.”
“알겠습니다. 다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식량값이…….”
“그 정도는 괜찮다. 국고를 열마. 돈은 얼마든지 써도 되니, 협상을 잘해 봐라.”
“네, 폐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크라토, 최근 상황은 어떻지?”
“어느 정도 괜찮아졌습니다. 젤로스가 저를 잘 도와줘서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구나.”
“감사합니다.”
“젤로스, 너도 수고했다.”
“네……. 감사합니다.”
크라토와 다르게 젤로스의 대답은 묘하게 맥아리가 없이 들렸다.
니케는 고개를 저었다.
뻔했다.
‘끌려다니고 있네.’
크라토는 철저하게 젤로스를 자신의 아래에 두고 있었다.
조금 전, 보고할 때도 그의 의중은 확실했다.
젤로스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서 자신이 메인이고, 젤로스는 서브라는 것을 강조했다.
‘정말이지…….’
니케는 태연하게 웃고 있는 크라토를 보면서 질색하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쉽지 않은 오라버니라니까…….’
* * *
“공주님, 괜찮을까요?”
“뭐가?”
론트의 질문에 니케는 고개를 기울였다.
“식량 말입니다. 그걸 굳이 공개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대로 갔다면 공주님의 실적이 되었을 겁니다.”
“알고 있어.”
“그럼 왜…….”
“나도 되도록 내가 품고 가려고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좋지 않거든. 나 혼자 처리하기 힘드니, 어쩌겠어? 아버지를 끌어들여야지.”
그런 니케의 말에 론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속내를 말씀하시죠. 저한테까지 숨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
“공주님.”
“그게 사실…….”
니케는 머리를 긁적였다.
원래라면 누구에게도 말할 생각은 없었지만, 확실히 론트에게는 숨길 수 없었다.
“후우……. 없어…….”
“예? 뭐라고요?”
“돈이 없어!”
“예?”
론트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해밀턴 왕국의 제3 공주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 ‘돈 없어’였다.
한데, 그 말이 니케의 입에서 나왔다.
“그놈! 에이든 사론톤! 그놈이 식량값을 몇 배나 올렸는지 알아? 그것 때문에 다 털렸어!”
“…….”
“에이든 사론톤! 친구라며!! 해 줄 거면 싸게 주든가! 엄청 비싸게 받고! 1골드도 안 깎아 줬다니까?”
“그, 그렇습니까? 설마 그래서?”
“맞아.”
론트는 그제야 니케가 어떤 생각으로 플라워 상단을 공개했는지, 알 거 같았다.
“회의실에서 그렇게 말했고, 전능하신 국왕 폐하께서 왕국 돈을 써도 된다고 했잖아?”
국고를 써도 된다는 허락.
이것이 니케가 이번 회의에서 받고 싶었던 약속 중 하나였다.
그랬다.
니케는.
“내 돈이 없다면 아버지의 돈을 쓰면 되는 것을.”
아빠 찬스를 쓰기로 했다.
이것이 그녀가 악마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 * *
“…….”
회의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온 크라토는 생각에 잠겼다.
“니케 해밀턴…….”
크라토는 니케의 이름을 나직이 중얼거렸다.
예전에는 눈치만 보며 얌전하게 있었던 그녀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젤로스는 움직이기 쉬웠다.
자신에 대한 대항심, 질투심에 불타는 놈을 조종하는 것쯤은 쉬우니까.
하지만 니케는 아니었다.
‘읽을 수 없다.’
크라토는 머리가 좋고, 눈썰미도 뛰어난 편이었다.
워낙 많은 귀족을 상대해 왔기 때문에 표정과 눈빛만 봐도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니케는 아니었다.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고 있었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한데.
최근 그녀의 행보는 이전과 다르게 과감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파격적으로 변했다.
‘라바돈 영지, 태양 신전……. 거기에 식량까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왜 그 식량을 그 자리에서 푼 걸까?
자신이라면 최대한 비밀로 하고 있다가 적당한 타이밍에 풀었을 것이다.
니케의 행동은 아무리 봐도 너무 성급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뭔가 이유가 있나? 혹시 내가 모르는 숨겨진 내막이라도 있는 건가?’
크라토는 머리를 굴렸다.
그 누가 예상이나 할까?
해밀턴 왕국의 제3 공주가 돈이 없어서, 아빠 돈 털어먹겠다고 그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을.
그 잘난 크라토조차 그것을 예상할 수 없었다.
“조금씩 거슬리기 시작하는군…….”
크라토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조금 무겁게 변하기 시작했다.
거슬리지 않았던 것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태양 신전의 절대적인 지지와 식량 때문인지, 최근 판세가 아주 조금이지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쓸데없는 잡음이야, 무시하면 그만이긴 하지만…….’
모든 일에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무려 몇 년을 철저하게 준비해 오던 일이다.
작은 변수가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 알 수 없는 이상,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사론.”
“부르셨습니까, 크라토 왕자님.”
사론은 크라토를 따르는 부하 중 하나로 세실리아의 그림자와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쪽에 연락을 넣어라. 계획을 실행하라고.”
사론은 조금 성급한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긴 했지만, 크라토가 하는 일이다.
도구는 주인의 의견을 묻지 않는 법.
그저 주인이 휘두르면 휘두르는 대로 따르는 것이 도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론이 사라지고, 다시 혼자 남게 된 크라토는 자신의 동생인 니케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방해된다면 치운다. 그것이 설사 혈육인 동생이라고 해도 말이지.”
* * *
“이야기는 들었단다.”
“예? 뭘요?”
“생일 파티 초대장이 왔다지?”
“아아…….”
에이든은 알프레도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비앙카에게 알프레도가 말한 모양이다.
딱히 비밀은 아니었다.
“네, 공주님께서 보내 주신 초대장이라서 차마 거절은 할 수 없었거든요.”
“하긴, 왕가에 밉보여서 좋은 건 없지.”
공주의 초대를 거절하면 주변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괜히 꼬투리 잡힐 여지를 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됐어요.”
“그렇구나. 그런데…….”
비앙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설마 그런 옷을 입고 갈 생각은 아니겠지?”
“예? 옷이요? 왜요?”
“설마 진심으로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
에이든이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비앙카는 두통을 느낀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에이든이 평소에 뭘 입든 딱히 상관은 없다.
이미 반쯤 포기했으니까.
하지만 귀족의 생일 파티에 저런 복장으로 가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최소한의 드레스 코드는 맞춰야 했다.
“아들.”
“네?”
“옷 사자.”
“에이, 뭘 사요. 저 옷 많아요.”
“다섯 벌밖에 없잖아.”
“그거 돌려 입으면 돼요. 위아래, 다르게 조합 맞추면 항상 다른 느낌의…….”
“돈도 많은 게 왜 옷을 안 사는 거니…….”
“그거야…….”
에이든은 볼을 긁적였다.
“옷 사는 게 아깝잖아요.”
“아…….”
“옷은 그냥 따뜻하고, 가릴 것만 가려 주면 되는 거잖아요. 전투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비앙카의 현기증이 더욱 강해졌다.
“그래서 다섯 벌을 돌려 입고 있었다는 거야? 옷 사는 게 아까워서?”
“충분하지 않아요?”
저쪽 세계에 있을 때, 에이든은 세 벌을 돌려 입고 다녔었다.
딱히 패션에는 관심 없었고, 남이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도 그러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우리 아들이 이렇게 된 걸까…….’
예전에는 그래도 옷 입는 걸 좋아했던 거 같은데, 한 번 열병을 앓고 나고는 많은 게 달라졌다.
귀족이 되어서 옷에 저렇게 신경 쓰지 않다니.
이번 생일 파티에 저런 옷을 입고 갔다가는 어떤 소리를 듣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어쩔 수 없구나.”
“예?”
“아들.”
“말씀하세요.”
“파티까지 얼마나 시간이 남았니?”
“음, 날짜를 보니까, 이 주일은 남았어요.”
“거리는?”
에이든은 마부, 카터에게 들은 것을 떠올렸다.
“마차를 타고 일주일은 걸린다고 했으니까…….”
“아직 일주일은 시간 있는 거지?”
“네.”
그 말에 비앙카는 마침 잘됐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엄마랑 같이 옷 사러 가야겠구나.”
“아니, 어머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아들.”
“예?”
“잔말 말고 따라오렴. 나는 내 아들이 어디 가서 기죽는 꼴은 못 보니까.”
단호하며, 강경하게 말하는 비앙카를 보며 에이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대충 아무 옷이나 사면 되겠지.’
옷 사는 거야, 대충 보고 사면 될 거라고, 에이든은 간단하게 생각했다.
저쪽 세계에서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는 몰랐다.
‘우리 아들이 어디 가서 기죽는 건 볼 수 없어. 최대한 좋은 걸 입힌다.’
여자……. 아니 정확하게는 아들을 위한 엄마의 쇼핑이 어떤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