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another world, I run a territory with my own rent RAW novel - Chapter (146)
제146화
21화 : 그녀의 비밀(3)
“…….”
“…….”
무거운 침묵.
헬리아는 마치 석화 광선이라도 맞은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세상이 정지한 거 같았다.
그만큼 무거운 정적이 저주처럼 내려앉았다.
그에 에이든은 고개를 저으며 바닥에 떨어진 가발과 면사포를 주웠다.
탁탁.
“먼지가 좀 묻었지만 괜찮죠?”
“…….”
“에휴, 제가 씌워드리죠.”
에이든은 주워 든 가발을 그녀에게 씌워줬다.
조금 어설프게 삐뚤어지긴 했지만, 대충 씌우고 면사포까지 씌웠다.
그러곤 태연하게 몸을 돌렸다.
“자, 가시죠, 이제…….”
“잠깐, 잠깐잠깐!”
“에? 왜 그러시죠?”
“왜 그러시죠? 너……. 왜 그렇게 태연해? 왜 아무렇지 않게 가발을 씌워 주는 건데? 나한테 할 말 없어?”
“할 말이요?”
“그래! 할 말!”
“가발이 생각보다 잘 어울리십니다?”
“그거 말고!! 너 따라와!!!”
헬리아는 에이든을 끌고 골목으로 들어가 거칠게 벽으로 밀쳤다.
“너! 가발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
“에이, 설마요~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니, 그렇지 않고서야 네 반응을 이해할 수 없잖아!”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심지어 말투도 변했다.
조금 전에는 성녀답게 존대하며 상대에 대한 존중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딘가 시정잡배와 같이 조금 걸걸한 말투에 분위기도 변했다.
온화하며 자애로운 성녀다운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묘하게 골목길과 분위기가 어울렸다.
성깔 있어 보인다고 해야 하나?
‘아, 그랬지.’
그제야 에이든은 왜 헬리아를 보며 계속 위화감을 느꼈는지 알 거 같았다.
바로 성격이다.
원작에서 봤던 헬리아의 성격은 결코 온화하고 자애롭다고 할 수 없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지.’
정확하게는 내숭을 떨고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는 성녀인 척 내숭을 떨지만, 주인공 일행 앞에서만 본모습을 드러냈다.
원작에서 주인공이 물은 적이 있었다.
‘헬리아, 그런 식으로 하면 힘들지 않아? 언제까지 내숭을 떨고 있을 생각이야?’
‘언제까지라니? 내가 은퇴할 때까지지.’
‘힘들 텐데.’
‘힘든데 재미있어.’
‘재미있다고?’
‘나의 본모습도 모르고 내 내숭에 속아서 찬양하는 놈들을 보는 재미가…….’
그 말에 레아가 질색하는 반응을 보였었다.
‘헬리아, 너 정말 성격이 꼬였어.’
‘흥, 나도 알고 있거든~ 그리고 어쩔 수 없잖아~ 이것도 전부 사람들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야.’
‘마음을?’
‘그래, 사람들은 성녀라는 캐릭터에 뭔가 환상을 품고 있잖아? 나는 그것을 지켜 주는 거라고.’
‘……기만자.’
‘마음대로 말해~ 나는 이게 좋거든.’
‘기만하는 거 성격만이 아니라, 그것도 기만이잖아.’
‘……따라 나와, 레아, 내가 그 활을 다시는 못 쓰게 박살을 내 줄 테니까.’
‘하! 그러면 누가…….’
이랬던 에피소드도 있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에이든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헬리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표독스럽게 에이든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어떻게 알았냐고!”
“몰랐는데요?”
“몰랐는데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에이, 저는 사람의 외모 가지고 차별하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때는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좋을 거 같아서…….”
“…….”
“그나저나 그 젊은 나이에 벌써……. 고생이 많으셨군요.”
“탈모 아니야!”
“원래 탈모 온 사람은 자신이 탈모라는 것을 부정하기 마련이죠, 이해합니다.”
“그런 거 아니라고! 이건……. 아아악!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헬리아는 속이 답답한 듯 소리를 질렀다.
당연하겠지만 원작을 읽은 에이든은 그녀가 왜 대머리가 되었는지 알고 있다.
‘성녀는 전부 저랬거든, 전대 성녀도 그렇고, 전전대도 전전전대도 그랬지.’
태양 신전의 성녀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성녀로 선택받으면 저런 식으로 머리카락이 빠진다.
성녀 이전에 아무리 풍성해도 선택받으면 그 풍성함은 태양의 은총을 받아 사라진다.
원작에서도 몇 번 다뤘던 이야기다.
수많은 성녀가 원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포기했었다.
‘그리고 저 가발은 성물이었지?’
오로지 성녀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성물 중 하나다.
바람에 벗겨지지 않고 위화감을 눈치챌 수 없게 만들어 주는 성물!
이번 경우 실프의 장난으로 벗겨진 것이지 원래라면 사람이 잡아당겨도 벗겨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걸 내가 알고 있다는 걸 말할 순 없잖아.’
이 설정은 원래라면 성녀들 사이에서만 내려오는 극비였다.
원작을 읽은 에이든은 알지만.
보통 사람은 절대로 접근할 수 없는 그러한 정보였다.
“그만 놓아주시죠, 저는 오늘 아무것도 못 봤던 겁니다.”
“…….”
멱살을 잡은 손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헬리아는 온갖 복잡한 심경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에이든을 노려봤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했는지 입을 열었다.
“너 이 사실을 어딘가에 말하면…….”
성녀라는 가면을 벗어던진 헬리아는 한 마리의 표범을 보는 듯.
날카로운 안광이 번득이고 있었다.
그녀는 낮게 속삭였다.
“내가 어떻게든 너를 찾아내서 찢어 죽인다, 알겠지? 절대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
* * *
에이든과 헬리아는 다시 영지를 돌아다녔다.
처음과는 다르게 둘 사이에는 어색한 분위기가 벽이 되어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일생일대의 최대 비밀을 들킨 헬리아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어떻게 하지? 들켰어! 스승님이 절대 들키면 안 된다고 했는데! 아니! 가발 안 벗겨진다면서!! 성물이라면서!!’
“이거 설마 불량품인 건 아니겠지?”
그녀는 성녀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불경한 생각까지 품을 정도로 패닉에 빠져 있었다.
그러든 말든.
에이든은 관심 없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여긴 대장간입니다.”
“……대장간이요?”
“네.”
“그러고 보니 듣기로는 헤스티아 영지의 대장간에는 드워프가 있다면서요?”
그것도 소문이 난 모양이다.
하긴.
게렌은 딱히 숨거나 하지 않으니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헬리아는 강한 호기심에 살짝 대장간 안을 들여다봤다.
“응?”
뭔가 이상했다.
그녀가 아는 대장간은 불을 다루기 때문일까?
대부분 뜨거운 열기가 후끈하게 전해지며 강한 활력이 넘쳐흐르는 곳이었다.
철을 내리치는 망치 소리와 대장장이의 기합이 울려 퍼지는 말 그대로 열정의 장소.
그것이 그녀가 아는 대장간이다.
그런데…….
“여긴 왜 이렇게 우울하게…….”
그런 그녀의 눈에 쭈그려 앉아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게렌의 모습이 보였다.
뭔가 열심히 바느질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다른 여자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도 손을 바쁘게 놀리고 있었다.
그에 의아한 듯, 헬리아가 물었다.
“뭘 하는 건가요?”
“아, 커피 필터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커피 필터요?”
“네, 이번에 커피 사업이 대박이 나서 추가 발주가 났거든요.”
커피 사업은 말 그대로 대박이 났다.
니케가 홍보를 잘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바루스의 사업 수완이 좋은 건지.
커피 주문이 쇄도했다.
덕분에 추가 발주가 났다.
그 양은 무려 10,000개!
필터는 소모품이다 보니 커피 글라인더보다 훨씬 많은 양을 필요로 했다.
지금 게렌은 그 추가 발주를 소화하는 중이었다.
“빌어먹을…….”
커피 필터를 만들던 게렌은 얼굴을 찡그렸다.
10,000개의 필터는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파는 것처럼 느껴졌다.
무한하게 이어지는 천을 자르고, 바늘에 꿰고, 이어 붙이는 작업은 상상 그 이상의 힘과 인내력을 요구했다.
“이게 끝이 없어……. 이것 때문에 나는 몇 시간째 잠을 못 자고 있다고…….”
게렌은 탄식했다.
그의 손은 피로와 상처로 벌어져 있었다.
“게렌 님……. 쉬지 마세요, 10,000개나 되는 필터를 만들어야 한단 말이에요…….”
“아직 8,000개 남았어요.”
“하아…….”
다른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심정을 나타냈다.
쉽지 않았다.
단순한 작업처럼 보였고 쉬워 보여서 지원한 작업이었다.
월급도 좋길래 ‘와! 개꿀이다!’라며 환호성을 질렀었다.
하지만.
‘괜히 좋아했어!’
‘너무 힘들잖아…….’
‘역시 돈을 많이 주는 건, 이유가 있는 거야, 괜히 월급을 많이 줄 리가 없지.’
지루하다.
재미없다.
거기에 양이 너무 많았다.
이 무슨 노가다란 말인가.
일이라는 것이 하면 할수록 줄어들어야 하는데 이 일은 하면 할수록 일이 증식해 나가고 있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크아아악! 나는 더는 못 하겠다!!!”
그때였다.
게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발작하기 시작했다.
“더는 못 해! 아니! 안 해! 나는 드워프라고! 차라리 광산 가서 곡괭이 휘두르는 게 낫지! 여기서 바느질하는 건 더는 못 해!!”
게렌이 일어나자 주변에 있던 여자들은 익숙하다는 듯 서로 눈짓을 보냈다.
‘또 시작이다.’
‘잡아.’
여자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게렌을 붙잡았다.
“게렌 님, 진정하세요, 아직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도망가시면 어떻게 해요!!”
‘어딜 도망치려고! 네가 도망치면 우리가 저거 다 해야 하잖아! 절대 안 돼!’
“맞아요! 영주님이 시키신 일이잖아요! 설마 영주님을 실망하게 하실 생각이세요!?”
‘도망치면! 영주님한테 꼰질러 버릴 거야!!!’
“야, 이 새끼야! 안 그래도 시간 없어 죽겠는데! 왜 자꾸 발작하고 지X이야!”
‘게렌 님, 일단 진정하고 차분하게 흥분을 가라앉혀요, 우리 시간도 없는데 빨리 해야죠!’
게렌은 자신을 붙잡은 여자들을 향해 외쳤다.
“한 명! 생각이랑 겉으로 말하는 거 바뀐 거 같은데!?”
“웁! 아하하하, 게렌 님, 사랑합니다.”
“사랑은 됐고!! 놔! 나는 더는 못 해!”
“아이고! 게렌 님! 시간 없는데! 자꾸 발작하시지 말라고요!”
“누가 밧줄 가져와! 더는 안 되겠어! 손만 움직일 수 있게 하고! 묶어 놔!!”
“이, 이놈들! 그만둬라! 나에게 인권이 있다!”
“당신! 드워프잖아! 드워프가 인권 찾지 마!!”
“아아악! 이건 차별이야!”
“…….”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헬리아는 조용히 대장간의 문을 닫았다.
구경할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왠지 모를 불안감도 느껴졌다.
‘들어가면 잡힐 거 같아.’
냄새가 난다.
지독한 물 냄새.
들어가는 순간 무언가가 그녀를 휘감으며 똑같이 부려 먹을 거 같은 물귀신의 냄새였다.
들어가기 꺼려질 정도였다.
“여긴 이상한 영지야.”
“…….”
에이든도 그 부분에 대해서 차마 어떻게 부정할 말은 찾지 못했다.
자신이 봐도 이곳에서 정상적인 사람은 그다지 없는 거 같았다.
“어라? 영주님 아니십니까?”
“레비……. 너는 왜?”
둘이 그러고 있을 때, 지금쯤 목공소에 있어야 할 레비가 대장간을 찾아왔다.
“잠시 게렌 님을 좀 만나러 왔습니다.”
레비는 대장간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히죽-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영주님, 저는 잠시 바빠서…….”
“너…….”
에이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레비는 대장간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들려오는 괴성!
“레비!!!”
“껄껄껄껄!!!”
“…….”
“……그렇게 쳐다보지 마시죠.”
나도 할 말 없으니까.
* * *
평화로운 영지.
헤스티아 영지에 대한 인식과 소문을 접한 이주민이 많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런 이주민 중 한 명이 유독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는 긴장한 듯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거만 성공하면……. 내 가족을 구할 수 있어……. 이,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공포에 질려 있는 남자.
그는 주변에 웃고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보지 않게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자신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그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명령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렇게 빛으로 가득했던 헤스티아 영지에 작은 어둠이 스며들었다.
아무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