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another world, I run a territory with my own rent RAW novel - Chapter (165)
제165화
15화 : 천 년의 약속
“그러니까…….”
“당신이 뱀파이어 로드의 혈육, 레일라 블러드라는 겁니까?”
“네, 맞아요.”
백기를 들고 홀연히 거점을 찾아온 뱀파이어의 정체는 놀라웠다.
그녀는 뱀파이어 로드의 혈육, 레일라 블러드였다.
핏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
그와 반대로 피로 물든 듯한 핏빛 눈동자가 총명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온 하얀 머리카락은 실크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오뚝한 코까지.
‘인형 같네.’
레일라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인형을 보는 거 같았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느껴져야 할, 따뜻한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가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 온도가 정확하게 3도는 떨어진 거 같았다.
‘인간 에어컨이네.’
“그래서.”
쿵.
아단은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쳤다.
그의 두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그 분노에 호응하듯 아단의 근육도 꿈틀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미친개처럼 레일라에게 달려들 것처럼 보였다.
“으르르릉.”
정말 개라도 된 건가?
이상한 소리까지 내는 것을 보니 제정신은 아닌 모양이었다.
“아버지…… 워워, 진정하세요. 참으셔야 합니다.”
자단은 그 뒤에서 난감하다는 듯이 아단이 폭주하지 못하게 어깨를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으르르릉!”
“아버지, 아무리 흥분해도 개 소리를 내시면 안 되죠. 체통을 지키시죠.”
“지금 원수가 앞에 있는데 체통이 중요하더냐!?”
“그래도 진정하셔야 합니다.”
자단은 아단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또한 당장이라도 눈앞에 있는 뱀파이어의 목을 베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었다.
참을 수 있던 이유는 그녀가 백기를 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든 말든.
레일라는 태연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후우~ 차 맛이 좋네요.”
이 긴장감이 넘치는 막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처럼 그녀는 너무나도 여유로웠다.
레일라의 붉은 눈동자가 에이든에게 향했다.
그녀는 매혹적인 눈웃음을 날렸다.
그에 에이든은 그 매혹적인 눈웃음에 홀린 듯 입을 열었다.
“뭘 봐.”
“…….”
“뭘 그렇게 쳐다보고 있어? 할 말 있다면서. 얼른 하지?”
에이든의 심통한 반응에 레일라는 민망한 듯, 헛기침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기 위해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민망함을 감추며 최대한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일단 일족의 공격으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에 대한 조의를 표합니다.”
그 말과 함께 레일라는 깊게 고개를 숙여, 정수리를 보였다.
그 모습에 지금까지 참고 있던 아단의 분노가 폭발했다.
“조의!? 조의를 표한다고!? 이 빌어먹을 뱀파이어가! 감히 누구 앞에서!”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던 아단은 테이블을 부수며 레일라의 멱살을 잡았다.
레일라는 아단의 눈에 담긴 분노와 슬픔 그리고 증오를 읽으며 말했다.
“당신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 이해한다고 했나?”
“네, 이해할 수 있죠. 왜냐하면 저희 뱀파이어들도 인간의 손에 수없이 죽임을 당했으니까요.”
“뭐?”
“뱀파이어를 사악한 무리, 마수, 몬스터로 취급하며 죽여 오지 않았습니까.”
뱀파이어는 어둠 속에 사는 존재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인간들은 빛은 선하고, 어둠은 악하다는 선입견을 품고 있었다.
거기에 뱀파이어는 피를 주식으로 삼는다.
아마 그것 때문에 더더욱 뱀파이어를 마수, 몬스터로 생각하고 죽여 왔다.
“그런데도 저희는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숨었지만, 인간은 끝까지 추격해서 저희를 죽여 왔죠.”
“그건…….”
“그때까지 저희가 먼저 피해를 준 일이 있던가요? 없을걸요?”
“…….”
그건 맞는 말이었다.
뱀파이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목격했다, 라는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뱀파이어는 단 한 번도 인간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 일은 어떻게 된 거지? 하나의 영지가 사라졌다!”
“그건…….”
레일라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후우…… 이러한 일이 벌어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에요.”
“어쩔 수 없는 일?”
“지금까지 뱀파이어들이 경거망동하지 못하게 막고 있던 존재가 사라졌기 때문이에요.”
“존재가 사라졌다고? 그게 누구지?”
아단의 재촉에 레일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뱀파이어 로드, 드레인 블러드…… 제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든요.”
뱀파이어 로드의 사망.
지금까지 뱀파이어 로드의 명령을 따르고 있던 이들이 그의 죽음을 기점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당신들이 추격하고 있는 뱀파이어는 저희와 나누어진 강경파예요.”
“강경파?”
“네,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파벌이에요.”
“그런 넌…… 어느 쪽이지?”
“저는 온건파예요. 저희는 이전과 똑같이 변화 없이…… 그저 조용히 사는 것을 원했죠.”
“…….”
아단은 머리가 복잡했다.
설마 뱀파이어 내부에서도 파벌이 나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 흥분을 가라앉히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강경파의 목적은?”
“저희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염원이라면…….”
“빛으로 나오는 거죠.”
그 대답을 에이든이 대신 받았다.
원작을 읽은 에이든은 뱀파이어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읽었고, 그들이 뭘 원하는지도 안다.
“빛?”
“뱀파이어 일족은 태양 아래로 나올 수 없고 오로지 어둠 속에서만 살아야 하는 존재죠. 그렇기에 그들은 나오고 싶은 겁니다. 빛이 있는 양지로.”
에이든의 말에 레일라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역시나 페어리 프린세스, 잘 아시는군요.”
“페어리 프린세스가 아니라, 페어리 프린스.”
“하지만 제가 알기로는 프린…….”
“프린스.”
“하지만 저희 아버지가 페어리 프린세스라고…….”
“프린스.”
“하지…….”
“왜? 내가 거짓말하는 거 같아? 네가 나보다 요정에 대해 잘 알아? 나 요정이랑 친한데, 너 요정이랑 친해?”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내 말이 맞지 않겠어?”
“하지만 이건 아버지가…….”
“오래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헷갈리는 거지. 뱀파이어도 그러지 않겠어?”
“…….”
레일라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놓고, 네 아버지 머리가 이상하다고 하는데 뭘 어떻게 반응해야 한단 말인가.
레일라는 무어라 말하고 싶어도 심술 가득한 에이든의 표정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페어리 프린스가 맞는 거 같아요.”
“그렇다니까. 나 요정이랑 친구야, 친구.”
친구긴 했다.
비즈니스 친구.
친구비를 안 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데 우리를 찾아온 이유가 뭐지?”
“크흠, 제가 찾아온 이유는 여러분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뭐지?”
레일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핏빛으로 물들어 있는 눈동자에 굳은 각오와 결의라는 감정이 강하게 떠올랐다.
“강경파의 뱀파이어들을 막아 주셨으면 합니다.”
“막아 달라고?”
“네, 맞아요. 지금 강경파는 선을 넘었어요.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서 너무나도 많은 피를 흘리고 있어요.”
강경파 뱀파이어는 지금 금기까지 어겨가며 해서는 안 될 짓까지 하고 있었다.
선을 넘은 그들의 행동은 대의라는 이름 아래에서 폭주하고 있을 뿐이다.
“금기를 어겼다고?”
“밤피르를 만들고 있어요.”
“밤피르?”
“뱀파이어의 능력 중, 흡혈을 통해 생물을 밤피르라는 존재로 만들 수 있죠.”
“밤피르라면…….”
“밤피르는 이성이 없는 본능만 남은 마수예요. 원래라면 아버지가 사용 못 하게 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로드가 죽은 후, 강경파가 전력을 늘리기 위해서 사용한 것인가?”
“네.”
뱀파이어 로드에게는 절대 명령권이 있었다.
그 명령을 내리면 뱀파이어는 절대로 거역할 수 없었다.
하지만 로드가 죽자 절대명령의 효과는 사라졌고, 뱀파이어들은 금기를 어기기 시작했다.
레일라의 표정은 심각하게 굳어졌다.
“이대로 간다면 더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 거예요. 그 전에…….”
“없애 달라는 건가?”
레일라는 대답하지 않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허.”
아단은 어이없다는 듯이 레일라를 쳐다봤다.
설마 뱀파이어 로드의 딸이 그러한 부탁을 할 줄은 몰랐다.
곧 아단의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강경파든…… 온건파든 그건 우리랑 상관없다. 뱀파이어가 일을 저질렀다면 머리가 책임을 져야지. 하지만 로드가 죽었다고 하니…….”
멱살을 잡은 아단의 손아귀에 점차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기세가 한없이 쏟아졌다.
“네가 대신 책임을 져라.”
“……책임을 질 겁니다. 이 모든 일이 끝나면…….”
“끝나고는 필요 없다! 지금 당장 너를…….”
퍼억!
그때였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기세를 뿜던 아단의 기세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강한 충격에 그는 눈을 뒤집어 까며 쓰러졌다.
“…….”
“…….”
“…….”
고요한 정적 속.
모두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페어리 프린스?”
“에이든 경?”
“이런…… 아무래도 아단 님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신 모양입니다.”
“뭐?”
“갑자기 열을 내니, 혈압이 올라서 정신을 잃으신 거 같은데요? 일단 밖으로 옮길까요?”
에이든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이래서 사람이 다쳤을 땐, 화를 내면 안 되는 거죠. 저렇게 위험할 수 있습니다.”
“방금 때리지 않으셨나요?”
“제가요? 언제요?”
“제가 본 거 같은데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잘못 보신 거 같은데요? 아단 님은 혈압 때문에 기절하신 거예요.”
아닌데?
자단은 확실히 봤다.
아단이 흥분을 가라앉힐 기미를 보이지 않자, 상당히 귀찮은 표정을 짓고 있던 에이든이 그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백작가의 가주의 뒤통수를 강하게!
“손에 피 묻으셨는데요?”
“아, 씁, 더럽게.”
“…….”
“제 피는 아닙니다.”
“그건 압니다.”
네 피겠냐?
아단의 피겠지.
아단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때릴 때 묻었던 모양이다.
“일단 귀찮은 꼰대는 정리했으니까, 이야기를 정리하죠.”
“지금 정리했다고…….”
“그쪽…….”
“레일라라고 불러 주세요, 페어리 프린스.”
“좋아. 레일라가 원하는 건 강경파를 막는 거고, 아단 님이 원하는 건 뱀파이어를 토벌하는 거죠?”
“그렇죠.”
“그럼 목적은 일치하네요. 우선 강경파 뱀파이어를 막고 그 뒤는 나중에 생각하죠.”
“나중에?”
“굳이 지금 정할 필요가 있습니까? 어찌 되었든 레일라는 우리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찾아온 것일 거고.”
레일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이용할 건 최대한 이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지금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입니까?”
“…….”
자단은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했다.
본능보다 이성을 우선시해야 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최고의 선택은 아니라도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다.
“……좋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설득하도록 하겠습니다.”
뱀파이어와 손을 잡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에이든의 말대로 수단과 방법을 가릴 때가 아니다.
이 시간에도 강경파로 인한 피해가 커지고 있으니,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했다.
그러던 차에 에이든은 살짝 신경 쓰이는 것을 물었다.
“그런데 굳이 존댓말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가문의 은인인데 이 정도 존중은 당연한 겁니다, 부담스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음…….”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존댓말을 하니 유교의 피가 흐르는 에이든은 조금 부담스럽긴 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단은 자신의 의지를 꺾으려고 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편한대로 하시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레일라.”
“네.”
“내가 페어리 프린스라는 걸 알고 찾아온 거 같은데…… 뱀파이어와 요정은 무슨 관계지?”
레일라는 마치 에이든이 질문해 주길 기다렸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천 년의 약속을 지켜 달라고 하기 위해서 찾아왔어요.”
“천 년의 약속? 그게 뭔…….”
그때였다.
띠링.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메시지창이 날아왔다.
[퀘스트, ‘천 년의 약속’이 생성되었습니다.]“이게 뭔…….”
퀘스트가 생성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에이든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