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정씨 일족의 상인 중에서 정지룡을 따라 청으로 간 이는 소수에 불과하였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청나라는 상인에게 있어 가장 폭압적인 정책이라 할 수 있는 천계령을 내린 나라였다.
모든 기반이 남중국해에 있기도 하였기에 청나라로 떠나는 판단은 쉽게 내리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남명에 남은 정씨 일족의 상인들은 양자택일을 해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양자택일이란, 정지룡의 장남인 정성공을 따를지, 아니면 정성공의 사위인 요한을 따를지를 말하였다.
처음 상인들의 여론은 정성공이 우세하였었다.
정지룡의 장남인 정성공은 일단 정통성이 있었다.
물론 상인에게 있어 정통성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권력이었다.
요한이 일국의 왕이라 하지만, 정성공은 남명의 권력자였다.
남명에 기반을 둔 상인들로선 당연히 정성공에게 우선순위를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상인들의 여론도 한 가지 소문이 퍼지고 급격히 바뀌었다.
그 소문이란 다름 아닌, 남명 조정에서 마카오와 샤먼을 요한에게 하사한다는 소문이었다.
마카오와 샤먼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바로 상인들이었다.
요한이 이 두 도시를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상인들은 요한을 정지룡의 진정한 후계자로 여겼다.
그런데 소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외국과의 무역 독점권’까지 요한에게 하사할 것이라 하였다.
이는 복주와 천주(취안저우)의 상인들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샤먼이 가장 발전했다지만, 복주와 천주 역시도 외국과의 무역으로 상당히 번성하고 있었다.
두 도시 모두 중국 동남부에 있는 도시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연히 요한이 외국과의 무역을 독점하게 되면 두 도시의 상인들은 사실상 파산이었다.
이러니 정씨 일족의 상인들은 요한을 정지룡의 후계자로 여길 수밖에 없었다.
누가 봐도 미래에 남중국해의 지배자가 될 것은 요한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
“황제 폐하께서 양녀를 들일 계획이시라고?”
요한은 복주의 한 상인, 임흥주라는 이에게 되물었다.
말이 상인이지, 대상 중의 대상이었다.
정지룡이 거느린 상인 집단에서 정씨 성을 가진 이를 제외하면 가장 부유한 상인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그리고 남명은 상인의 위상이 상당한 나라였고, 대상 중의 대상인 임흥주는 정치적 인맥도 대단하였다.
남명 황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요한에게 전해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인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를 친왕으로 삼으려는 모양이군.”
“아, 알고 계셨습니까?”
“방금 자네가 말해주지 않았나. 폐하께서 양녀를 들이실 거라고.”
임흥주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겨우 그 정도의 정보로 진실에 도달하였다 하니 놀랄 만도 하였다.
“전하께서는 실로 현명하시면서 남다른 식견을 가지신 거 같습니다.”
상인답게 리액션이 남다른 그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부를 떠니, 누구라도 기분이 들뜰 수밖에 없었다.
요한도 다르지 않았다.
물론 요한이 들뜬 이유는 조금 달랐다.
겉으로 태연하게 굴기는 하였으나, 그는 사실 융무제가 양녀를 들인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기분이 들떴었다.
‘친왕이라. 남명 내부에서도 왕작을 하나 얻는 셈이잖아?’
지금 요한이 가진 왕작만 두 개였다.
대두국의 왕이면서 유구의 왕이었던 것.
그런데 여기서 남명의 친왕 작위가 하나 추가되는 셈이었다.
이는 마치 유럽의 군주를 보는 거 같았다.
유럽에선 한 나라의 왕이 무슨 백작령의 백작이자, 무슨 공작령의 공작이며 또 하나의 왕작을 갖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았으니까.
그래서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이 소유한 영지와 작위를 줄줄이 말하고는 하였다.
요한 같은 경우도 남명의 왕작을 받게 되면 네덜란드나 스페인을 상대로 자랑할 것이 하나 더 느는 셈이었다.
단순히 자랑이라고 볼 수도 없는 게, 유럽에서 남명의 존재감은 실로 대단하였다.
현대에서 중국산은 싸구려 취급을 받았으나 지금 시대는 오히려 명품 취급을 받고 있었으니까.
그런 중국의 왕작을 가진 요한은 당연히 엄청난 존재로 인정받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왕작만 주지는 않을 테니, 새로운 수입원이 추가되는 셈이잖아?’
군왕도 아니고 친왕이었다.
전답 역시 적지 않게 받을 것이고, 남명 조정으로부터 따로 식록을 받기도 할 것이다.
이 역시 작은 액수는 아닐 터.
요한으로선 당연히 더더욱 기분이 들뜰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남명의 친왕이 되는 게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융무제가 요한을 친왕으로 삼으려는 것도, 요한의 군대를 적극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배신을 막으려는 의도도 있었고 말이다.
실제로 남명의 친왕이 되면 요한은 청나라와 어떤 협상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즉,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그만큼 많다는 뜻.
그래도 워낙 욕심이 큰 요한이었기에 당장은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뭐, 이 모든 것이 그저 설레발일 수도 있었지만 말이다.
“좋은 소식을 가져와줘서 고맙군. 이 은혜는 잊지 않도록 하지.”
“제 공을 알아주신다니, 실로 감격스럽습니다.”
요한은 임흥주란 상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가 전해준 소식은 여러 이유로 요한을 기쁘게 하였다.
그리고 며칠이 채 지나지 않아, 요한을 즐겁게 해줄 또 한 명의 사람이 찾아왔다.
조선의 사신이 그를 찾은 것이다.
***
안동 사람, 권상길은 조선 국왕 이호로부터 밀명을 받았다.
청나라 몰래 요한과 접선하여 자신의 서신을 전달하라는 밀명이었다.
유혁연의 지원 덕에 접선은 어렵지 않게 성공하였다.
나룻배 하나 타고 대두국 함대에 접근한 것인데, 처음엔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하였었다.
“쏘, 쏘지 마시오! 일국을 대표하는 사신이외다!”
범선의 크기를 보고 감탄하던 중, 범선에서 다짜고짜 그에게 대포를 겨누었다.
경고 사격을 몇 번 날리기도 하였다.
바로 근처에서 포탄이 떨어지자, 위기를 느낀 그는 저도 모르게 조선어를 사용하였다.
권상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대두국의 공용어는 조선어였다.
만약 중국어를 사용했다면 죽지는 않았겠지만,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 와라.”
“아, 알겠소.”
대두국 장교의 지시에 따라 권상길은 사다리를 타고 범선에 올랐다.
‘이렇게 많은 병사가 한 배에 타 있다니!’
힘겹게 범선에 오른 권상길은 자신을 포위한 대두국 병사를 보며 크게 놀랐다.
병사들은 하나같이 조총으로 보이는 총기를 무장하고 있었다.
그것도 물론 놀랍지만, 겨우 한 척의 배에서 100명은 족히 넘어 보이는 병사가 탑승해 있다는 점이 가장 놀라웠다.
“총구를 내려라. 상대는 어떠한 무장도 하지 않았다.”
척!
그러던 중,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가 조선어로 명령을 내리자, 병사들은 그 즉시 지휘관의 명령에 따랐다.
권상길은 그 모습을 보고 두 가지 이유로 놀랐다.
하나는 모든 병사가 조선어를 알아들었다는 점이었다.
병사들의 외형은 조선인과는 사뭇 달랐기에 더욱 놀랍게 느껴졌다.
‘실로 정예한 병사들이구나.’
그가 놀란 또 다른 이유는 병사들의 군기가 한눈에 봐도 남달라 보인다는 점이었다.
지휘관 외에는 누구 하나 떠드는 이가 없었다.
떠들기는커녕 몸을 들썩이는 이조차 보이지 않았다.
만약 조선에서 외국 사람을 문정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외모가 어떻다느니, 의복이 특이하다느니 저들끼리 떠들기 바빴을 것이다.
“목적이 무엇이냐?”
“국왕 전하를 뵙고 싶소.”
“전하를 뵙고 싶으면 정체를 밝혀라.”
권상길은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의복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를 포위한 병사들이 일제히 총구를 겨누었다.
“보, 보여줄 것이 있소. 나를 증명할 물건이오.”
그가 가슴 속에서 꺼낸 건 다름 아닌, 금인이 담긴 이호의 서신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두국 장교는 그것이 증표로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대두국은 보고 체계가 확실하게 잡혀 있었다.
곧 권상길에 관한 내용은 요한에게 전해졌다.
권상길이 요한을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다섯 시간이었다.
왕이란 지고한 위치의 인물과 대면하기까지 다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자가 대두국의 왕, 김요한이라는 자인가.’
그는 요한을 보고서 눈을 크게 떴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떡 벌어진 어깨, 뚜렷한 이목구비, 위엄 넘치는 눈빛까지.
다른 이가 요한을 소개해주지 않았어도 그가 일국의 왕임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놀란 표정을 드러낸 것도 잠시.
그는 이내 고개를 숙였다.
용안을 보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
“반갑다. 여는 대두국의 왕, 김요한이다.”
요한은 조선의 사신으로 왔다는 이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그와 같이 인사하였다.
그러자 사신으로 온 권상길이란 자가 대뜸 무릎을 꿇고 넙죽 엎드렸다.
넙죽 엎드린 채 빠르게 자신을 소개하였는데, 생전 처음 보는 의전에 근위대 장교들은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요한은 당황하지 않고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라.”
“예?”
“앉아야 대화를 할 것이 아니냐.”
요한이 그리 말하자, 그는 얼결에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크게 놀랐다.
요한과 눈을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어, 어찌 용안을….”
“조선에서 여를 찾은 이유가 무엇이냐?”
하지만 요한은 그가 놀란 것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용건을 물었다.
원래 그는 타국의 사신을 만나면 악수부터 하는 서구적인 군주였다.
오히려 동양의 예법에 문외한이었기에 그런 것을 일일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전하께 우리 조선의 입장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조선의 입장을?”
“그렇습니다. 조선은 대두국이 그러하듯, 이 전쟁에 강제로 끌려 온 입장입니다.”
요한은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아닌데?’라고 대꾸하지 않았다.
아직 조선의 입장을 확실히 안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여 우리 조선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선 군사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한테 조선군을 공격하지 말아 달라 부탁하려고 온 것인가?”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그리 물으니, 권상길이 탁자에 머리를 박으며 말하였다.
“부디, 우리 조선인들에게 선처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들은 아무 이유도 모른 채 강제로 끌려온 선량한 백성들입니다. 만에 하나 전하의 군대가 우리 조선군을 공격해야 할 상황이 생기면 아량을 베풀어 피해를 줄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권상길의 그 같은 모습을 보고 요한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이건 협상하겠다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냥 아량을 구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잘 이용하면 나에게도 손해가 아니겠는데?’
조선의 요구는 조선군만 최대한 약하게 때려달라는 것인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조선군이 적극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우리 군을 만나면 싸우는 시늉만 하고 항복하도록.”
“예?”
“바로 항복하면 우리 군은 더 공격하지 않고 포로로 잡을 거야. 그리고 그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바로 풀어주도록 하지.”
물론 요한이 기껏 얻은 조선군 포로를 아무 대가 없이 풀어줄 생각인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은 이들은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그들을 최대한 대우해줘서 조선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만들 것이었다.
이미 조선의 삶이 팍팍하여 대만으로 이민 온 이가 적지 않았다.
앞으로도 최소 만 단위의 조선 백성이 대만이나 다른 대두국의 영토로 이민 올 것이고.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대두국에 이민 온 이들 중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는 이들은 거의 없는 수준이었다.
대두국은 풍요로웠고 조금 덥다는 것을 제외하면 기후도 조선보다는 훨씬 살기 좋았다.
심지어 병역은 아예 없었고 세금도 조선보다 훨씬 적었다.
무엇보다 대두국에서 조선인이란 신분 자체가 엄청난 무기였다.
국왕인 요한이 조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대두국에서는 조선인이란 사실 하나로 상류층 취급을 받고 있었다.
조선의 하류층조차 대두국에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러니 포로로 끌려 온 이들을 포섭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오히려 그들의 가족까지 대두국으로 데려올 좋은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