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으윽!”
“아, 아파. 너무 아프다고!”
아침이 되자, 전투의 참상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용맹하기 그지없는 타오카스족 전사들이 곳곳에서 신음을 흘렸다.
사지를 잃은 전사가 수십 명이었고 아예 목숨을 잃은 이는 이백 명에 달하였다.
실로 끔찍한 피해였는데, 타오카스족의 군대는 사실상 전멸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아군의 피해는?”
“총 7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사망자는 24명, 중상자는 22명, 나머지 31명은 경상자입니다.”
“피해가 적지는 않았어.”
요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입지 않아도 될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이번 승리로 감히 누구도 전하에게 반란을 일으킬 생각은 하지 못할 겁니다.”
장교의 위로에 요한은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이 같은 지시를 내렸다.
“저들의 우두머리를 내 앞으로 끌고 와라.”
“명을 받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한의 앞에 타오카스족의 부족장이 강제로 끌려왔다.
철푸덕!
웬 중년 사내가 요한의 바로 앞에서 온몸이 묶인 상태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바로 이 중년 사내가 타오카스족의 부족장이었다.
“이 총은 누구에게 받았지?”
부족장은 잠시 멍한 얼굴로 요한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패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긴, 그냥 패배도 아니고 압도적인 패배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요한은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그를 독촉하였다.
“이걸 누구한테 받았냐고 물었다.”
총구까지 들이밀며 독촉하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부족장이 요한에게 되물었다.
“누구에게 받았는지 알려주면 나를 살려줄 것인가?”
“아니. 반란을 일으킨 당사자를 살려줄 수는 없지. 하지만 너의 가족은 살려주겠다.”
요한은 따지고 보면 관대한 군주의 유형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처음 대만을 장악했을 때도 그는 상당히 많은 피를 본 적이 있었다.
파제흐 족이 VOC의 편을 들어 반기를 들 때는 단호하게 응징하기도 했었고 말이다.
이런 요한이니 반란을 일으킨 당사자를 살려주는 일은 웬만해선 없다고 봐야 했다.
“…알았다.”
그는 곧 숨을 들이마시더니 이와 같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 무기를 우리에게 넘겨준 이들은 홍모인들이다.”
“홍모인들?”
여기서 언급될 홍모인이라면 둘 중 하나였다.
스페인 또는 네덜란드.
그리고 요한은 확신했다.
타오카스족을 배후에서 조종한 홍모인들의 정체는 네덜란드라는 사실을.
‘또 네덜란드인가.’
참으로 지긋지긋한 악연이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처음 시작은 그가 대만을 장악할 때부터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전부터 네덜란드는 요한과 적대 관계에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요한의 후원자이자 장인인 정지룡 역시도 네덜란드의 오랜 숙적이었으니 말이다.
‘대만의 불만 세력을 이용해서 나를 어떻게든 견제하려는 수작이겠지?’
다시 대만을 노리는, 그런 터무니없는 망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덜란드의 목표는 아마 요한의 성장을 견제하려는 것일 터.
바다에서 집요하게 대두국의 상선을 노리는 것도 같은 이유일 테고 말이다.
‘그렇담, 나 역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너희를 방해해주마.’
안 그래도 올해를 기점으로 네덜란드의 본격적인 전성기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전성기가 시작된다는 말은 앞으로 대두국과 충돌할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요한 입장에서도 네덜란드를 견제할 필요가 있었다.
***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는 오랑 라우트라 불리는 민족이 살았다.
오랑 라우트는 말레이어로 바다 사람을 뜻하였는데, 실제로 이들은 바다에서 배를 타며 낚시와 해산물 채집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물론 가장 많은 오랑 라우트가 선택하는 직업은 다름 아닌 해적이었다.
고대부터 일정한 거처 없이 바다를 떠돌아다니며 동남아 각지를 약탈한 민족이 바로 그들이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이들을 바다의 집시라고 불렸는데 당연히 네덜란드에서는 이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최근 들어 동남아시아의 바다는 향신료를 둘러싼 경쟁이 어느 때보다 치열하였다.
그런데 바로 이 해적들의 존재로 안 그래도 낮아진 무역 수익이, 리스크까지 커지게 된 것이다.
“하하하! 오랜만이군, 알리 선장!”
알리라는 사내는 오랑 라우트 내에서도 부기스족에 해당하는 부족의 일원이었다.
수십 척의 선박과 수백 명의 바다 전사를 이끄는 오랑 라우트의 지도자이기도 했는데 그런 알리 앞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거한이 찾아왔다.
얼굴에 흉터가 새겨진 중년의 거한은 알리를 향해 친근한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알리도 환하게 웃으며 거한, 장국계를 반겨주었다.
“라우틴 하리마우!”
“환영해줘서 고맙다.”
“우린 형제니까!”
스무 척밖에 안 되는 복선으로 네덜란드 상선을 약탈하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드넓은 바다에서 네덜란드 상선만 골라 약탈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고.
하지만 장국계는 아무런 생각 없이 요한에게 호언장담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인맥이란 것이 있었다.
정지룡은 남중국해의 지배자라 불리며, 남중국해뿐만이 아니라 동남아 일대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자랑하였다.
인맥 역시 인종과 종교를 가리지 않고 동남아 각지에 뻗어있었는데, 오랑 라우트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정지룡의 심복으로 무장 선단을 책임지던 장국계 역시도 바로 이 오랑 라우트와 엄청난 인연을 갖고 있었다.
과거, 정지룡이 네덜란드와 바다에서 전쟁을 벌였을 때, 정지룡이 끌어들였던 동맹 세력 중 하나가 오랑 라우트였기 때문이다.
장국계는 바로 그 오랑 라우트와 손을 잡고 네덜란드 선단을 털었던 경험이 있었다.
눈앞의 알리라는 사내가 그때 손을 잡았던 오랑 라우트의 선장 중 한 명이었고 말이다.
“홍모인들을 다시 노려보고 싶은데, 함께 해줄 건가?”
“물론이다, 형제여. 안 그래도 놈들이 이 근방의 바다를 너무 얕잡아 보는 거 같아서 교훈을 줄까 했었는데, 마침 잘 왔다.”
알리 선장의 말에 장국계는 호탕하게 웃었다.
이 근방에서 알아주는 해적인 그가 적극적으로 돕는다면 네덜란드 상선을 나포하는 일쯤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온 유럽이 무려 40년 동안 전란에 휩싸였다.
이는 네덜란드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네덜란드는 이 40년 동안 이어진 전쟁 끝에 마침내 독립을 쟁취하였다.
그리고 1651년이 된 지금, 네덜란드는 유럽의 금융과 무역을 사실상 지배하는 위치에 올랐다.
네덜란드를 견제해야 할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전쟁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네덜란드 정부는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북독일 시장을 기반으로 삼아, 더 넓은 영토와 더 넓은 부를 창출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식민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가장 중요한 식민지, 동인도에 이전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이 계획한 대로 모든 게 이루어진다면 아마 네덜란드의 경제적 패권은 수십, 수백 년이 지나도록 이어질 것이다.
“또 해적에 당했다니! 도대체 호송 함대는 아국의 상선들이 당하는 동안 어디서 뭘 한 거야!”
모든 것이 순항을 타고 있는 듯하였으나, 정작 동인도 지역의 상황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대만이라는 대중 무역의 가장 중요한 교두보를 잃은 이후로 네덜란드의 아시아 무역은 줄곧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타개책으로 필리핀을 노렸으나, 이 또한 요한에 의해 허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당연히 VOC는 이런 요한에게 엄청난 경계심과 적대심을 갖게 될 수밖에 없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요한을 견제하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렇게 한창 요한을 견제하는 상황에서 VOC는 골치 아픈 일은 겪기 시작하였다.
바타비아에서 출항한 네덜란드 국적의 상선이 해적의 습격을 받아 수십 척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인명 피해도 인명 피해지만, 무역이 감소한다는 면에서 특히 치명적인 피해가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우리의 움직임을 훤히 보는 거 같았습니다. 호송선들이 바다에 나타나자마자 해적들은 전부 유령처럼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 해적들의 정체는 뭐지?”
“이번에도 정크선이었습니다.”
“정크선이라고?”
바타비아의 총독, 카럴 레이니르스는 미간을 좁혔다.
정크선은 중국 배였고, 중국에서 유명한 해적은 한 명밖에 없었다.
“설마 피라튼코닝(해적왕, 정지룡을 말한다)이 다시 우리를 공격하려는 것인가?”
“피라튼코닝은 타타르로 귀순한 뒤에 바다에서의 영향력을 모두 상실하였습니다. 그자는 절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란 말인가!”
“한 명밖에 없지 않습니까. 미다그의 왕, 요한. 그자가 범인입니다.”
빠드득!
카럴 레이니르스 총독은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그에게 있어 요한은 철천지원수나 다를 게 없었다.
그가 총독으로 취임하고 한 정책들이 요한에 의해 모조리 실패했기 때문이다.
‘타타르와의 전쟁이 끝나기 전에 더욱더 적극적으로 움직일 걸 그랬군.’
요한이 한창 중국에서의 전쟁에 정신이 팔린 사이, 그는 대두국의 약점을 공략하였다.
무역로를 봉쇄하고 각 지역의 반란을 획책하는 식으로 대두국을 견제하였던 것.
하지만 막상 요한의 대응을 보니 지금까지 했던 견제책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카럴 레이니르스 총독이 그와 같은 생각을 할 때였다.
1등 서기관, 톰 코펜이 그에게 이와 같은 조언을 하였다.
“아무래도 방법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스펙스 의원의 말에 따라야 할 거 같습니다.”
어디든 마찬가지겠으나, 바타비아 평의회 내부 역시도 강경파와 온건파 간의 세력 다툼이 항상 존재하였다.
스펙스라는 인물은 온건파를 대표하는 이였는데, 그는 예전부터 중국에 도발하는 행위를 반대해 왔었다.
“그자의 말에 따르라는 건, 미다그 왕국과 협상하라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미다그 왕국은 마닐라, 타이오완(안평)뿐만이 아니라 마카오와 샤먼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아시아의 주요 거점은 전부 미다그 왕국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온건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요한이 거느린 세력은 적어도 남중국해에선 가히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였다.
바타비아 평의회의 의원들은 이런 요한에게 대적하는 것보다는, 그와 협상을 통해 주요 도시의 입항권을 얻어내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였다.
“지금 사절을 보낸다면 그자가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볼까? 우선 우리 회사의 힘을 제대로 보여주고 협상하는 것이 옳다.”
카럴 레이니르스 총독이라고 협상의 필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네덜란드가 강하다 해도 이미 공고해진 요한의 세력을 밀어내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적어도 포르모사(대만)의 반란군 소식을 듣고 협상에 응하는 것이 낫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기대하는 건 타오카스족의 반란이었다.
VOC가 대만을 식민 통치할 때, 항상 거슬렸던 것이 타오카스족이었다.
그들이 이번에는 아군이 되었으니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고 기대하였다.
하지만 그의 기대는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사정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타오카스족의 반란이 허무하게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1등 서기관. 경이 전권 대사로 가서 우리의 의사를 전해주게.”
카럴 레이느르스 총독은 더는 억지를 부리지 못하였다.
반란의 실패도 실패지만, 마침 본국 이사회에서 요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