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VOC(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대표하여 대두국에 온 톰 코펜은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 바로 만나주지 않는 건가.’
워낙 양국의 사이가 험악하다 보니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기는 했다.
요한이 뭐가 아쉬워서 그를 바로 만나주겠는가.
아마 최대한 뜸을 들인 뒤에 접견을 허락해줄 것이다.
“오히려 좋아. 이 시간을 이용해서 최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톰 코펜은 바타비아 총독의 심복이었다.
그리고 그가 바타비아 총독의 심복이 될 수 있었던 건 바로 능력 때문이었다.
“본국에서 왔다고?”
“정확히는 바타비아에서 왔습니다.”
“포르모사(대만)에서 태어난 나에겐 바타비아나 본국이나 그게 그거요.”
가장 먼저 그가 향한 곳은 백인 사내의 저택이었다.
안평에서 백인을 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상인이었고, 아예 정착해서 사는 이는 거의 없었다.
이렇게 근사한 저택을 꾸린 이는 당연히 극소수였다.
톰 코펜의 눈 앞에 있는 사내가 바로 그 극소수에 해당하는 인물로, 그와 같은 네덜란드인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네덜란드‘인’이었었다.
“그래서 전권 대사씩이나 되는 양반이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이오?”
젊은 사내는 어딘가 퉁명스러웠다.
“미다그(대두국) 왕국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곧 미다그 왕국과 협상을 해야 하는데, 그들의 약점을 알고 싶습니다.”
“하! 지금 나보고 조국의 약점을 알려달라 말하는 거야?”
“…조국이라니. 경의 조국은 네덜란드입니다.”
“내 나라를 당신이 뭔데 정해? 나는 이 나라의 시민이야. 내가 괜히 이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사내의 반응을 보고 톰 코펜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보를 주는 것에 이렇게까지 거부감을 드러낼 줄은 예상 못했다.
‘적국 출신이니 차별을 당하고 있을 줄 알았건만.’
어찌 보면 이것도 정보였다.
물론 그에게, 그리고 VOC에게 유리한 정보는 절대 아니겠지만 말이다.
***
협력자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톰 코펜은 상당한 수완가였다.
“이것은 선물입니다. 저도 제 사업을 하는데, 포르모사에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서 선물하는 것이니, 너무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는 애국심을 이용하지 않았다.
원래 그가 즐겨하던 수법인 뇌물을 활용하였다.
그리고 이 방법은 언제나 그렇듯 실패가 없었다.
물론 대단한 정보를 얻어낸 것은 아니었다.
“밍(명) 제국에게 도시를 하사받았다는 말입니까?”
“한 개도 아니고 세 개나 하사받았습니다. 그 중엔 대사께서도 알 만한, 마카오와 샤먼도 있습니다.”
“마카오와 샤먼이라니. 두 개의 도시라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겠군요.”
“관세로만 아무리 못해도 수백 만 길더를 벌어들일 겁니다.”
그 말을 듣고 톰 코펜은 저도 모르게 질린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못해도 수백 만 길더일 거라니.
바타비아에서도 고연봉을 받는 그가 1년에 벌어들이는 돈이 1만 길더가 조금 안 된다는 걸 생각하면 실로 천문학적인 돈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바타비아의 부정부패는 워낙 심해서 뒷돈으로는 그 이상 벌어들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도대체 타타르와의 전쟁에서 얼마나 활약했으면 그런 보상을 받는 겁니까?”
“이야기 듣기로는 밍 제국이 멸망당할 뻔했다는데, 우리 왕이 밍 제국을 구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요한의 별명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군신이라는 거창한 별명을 말이다.
“동양인인데 머스킷을 활용한 전술을 유럽의 장군들보다 훨씬 잘합니다. 흑기군이란 군대는 유럽의 1선 군대보다 더 강하고 말입니다.”
유럽에 가본 적이 없는 사내가 그리 말하니 별로 신용이 가지는 않았다.
다만, 요한이 대단한 군재를 가진 건 사실인 듯하였다.
‘이것도 확실해졌다. 돈으로 그를 회유하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톰 코펜은 짧은 시간 동안 요한과 대두국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하였다.
정보를 수집하는 그의 능력만 봐도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톰 코펜은 기뻐할 수가 없었다.
기껏 정보를 얻어내면 뭐할까?
쓸 수 있는 정보가 없는데.
‘도대체 이자는 약점이 뭐야? 돈도 많고 군사력도 좋고 유능하기까지 하다니. 게다가 나이는 이제 겨우 20대 초중반이라고?’
동양인을 부러워한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요한만은 예외가 될 거 같았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완벽한 사내처럼 느껴졌다.
그가 건국한 대두국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생국인데도 약점이 보이지 않았다.
백인들조차 대두국을 조국이라 생각할 정도로 장악력이 좋은데다, 경제도 대단히 안정적이었다.
외세의 위협도 거의 없다시피 하였으니, 앞으로 대두국은 크게 성장할 날만 남았다.
“후우. 정보를 파악하면 파악할수록, 협상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
***
요한은 네덜란드와의 협상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처럼 VOC의 전권 대사를 시큰둥하게 대하였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는 협상의 일환이었다.
며칠 동안 접견을 허락하지 않은 것도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었는데, VOC의 전권 대사는 이때 재미난 짓을 하였다.
대놓고 스파이 짓을 하며 온갖 정보를 빼돌리려 하였던 것.
“이번에는 그에게 무슨 정보를 넘겼지?”
“오늘 아침에 영국과의 협상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정보를 넘겼습니다.”
VOC의 전권 대사, 톰 코펜은 눈치 못 챘겠지만, 그에게 전달되는 정보는 사실 우리 쪽에서 통제하고 있는 정보들이었다.
불리한 정보는 차단하고 유리한 정보만 넘겨주고 있었는데, 아마 톰 코펜은 우리를 두렵게 여기고 있을 게 분명하였다.
그동안 얻어낸 정보들로만 대두국의 국력을 파악하려 든다면, 대두국은 약점이 없는 국가처럼 느껴질 테니까.
“영국과 협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지금쯤 나를 만나고 싶어서 안달내고 있겠군.”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침착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그래?”
요한은 어깨를 으쓱하였다.
상대가 조급하면 더 좋았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눈앞의 사내, 조신길이 톰 코펜의 성격까지 파악했다는 점이었다.
“바타비아에도 사람을 심어놨을 줄은 몰랐어. 장인께서 미래를 보신 건가?”
조신길은 정지룡이 소개해준 인재 중 한 명이었다.
정씨 일족 내에서 정보를 담당하는 인물이었는데, 그의 정보력은 실로 놀랍기 그지없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까지 그의 눈과 귀가 뻗어있었던 것이다.
“네덜란드는 20년 넘게 이어진 적대 세력입니다. 적의 정보는 미리 파악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우호적인 관계였던 일본에도 사람을 꽤 많이 심어놓은 거 같던데 말이야.”
“…….”
은근슬쩍 떠봤으나 조신길은 늘 그렇듯 빈틈없는 모습을 보였다.
요한은 혀를 차며 속으로 이 같은 생각을 하였다.
‘장국계도 그렇고, 이자도 확실히 범상치 않단 말이지. 그런데 정지룡 그 양반은 이런 인재들 데리고 왜 청에 귀순한 거야?’
아직 또 한 명의 인재, 하국상 같은 경우는 검증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남명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보면 그 또한 평범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네덜란드 범선을 무려 20척 이상 나포해온 장국계처럼, 하국상 역시도 요한을 놀라게 해줄 거 같았다.
그렇기에 요한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돈도 많고 이렇게 훌륭한 인재까지 갖춘 사람이 뭐가 그리 두려워서 청에 귀순했는지 황당하게만 느껴졌던 것.
“아무튼, 슬슬 그자를 만나줘야겠어.”
톰 코펜은 상당한 수완가로 보였다.
만약 그가 조선어를 알았다면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정보를 빼돌렸을 것이다.
그러니 요한은 톰 코펜에게 더 시간을 주지 않기로 하였다.
지금까지 넘긴 정보들로 충분히 협상에서 우위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알겠습니다. 대두국의 상선은 특별히 관세 10%로 고정해드리겠습니다. 설령 바타비아의 관세가 샤먼이나 마카오처럼 20%나 30%로 오르는 일이 생긴다 해도 말입니다.”
“아, 그리고 내가 우연히 네덜란드 상선을 얻었는데, 이것이 추후에 문제될 리는 없겠지?”
“물론입니다. 바타비아에서는 절대 이 일을 문제 삼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 앞으로는….”
“걱정하지 마라. 내가 해적들을 확실하게 통제해줄 테니.”
요한이 의도했던 대로 톰 코펜은 엄청난 저자세로 나왔다.
유용한 정보를 하나라도 수집했다면 아마 그의 반응이 조금 달랐을 것이다.
어떻게든 자신이 파악한 정보를 이용하려 들었겠지.
하지만 조신길의 활약 덕에 그가 파악한 정보는 크게 의미 없는 정보들뿐이었다.
그가 접선한 네덜란드계 백인들은 전부 조신길이 미리 접선했던 일종의 이중 첩자였기 때문이다.
“너희 상선을 최대한 보호해줄 테니, 너희도 우리 상선을 보호해줬으면 좋겠어. 또 우리 상선이 당하게 된다면, 해적들을 통제할 마음이 사라질 거 같거든.”
“대두국의 국기를 단 상선은 바타비아에서 안전을 보장할 것입니다.”
관세 협상이 끝나자 단번에 평화 협정까지 맺어버렸다.
앞으로 바다에서 서로 공격하지 말자는 약속이 담긴 평화 협정이었다.
물론 이 협정이 얼마나 지켜질지는 의문이었다.
요한만 해도 동아시아에서 네덜란드의 영향력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면 협정을 지킬 마음이 사라질 것이다.
경쟁자를 견제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학자는 얼마나 보내줄 수 있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50인 이상 보내겠습니다.”
“50인이라. 나쁘지 않군.”
영국 학자 30명에 네덜란드 학자 50명이라.
이 정도면 대학교를 세 개 이상 지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물론 어렵게 초빙한 유럽의 학자를 교수로만 써먹을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민 사업에 대해서도 상당히 관심이 있습니다.”
“호오, 그래?”
요한은 톰 코펜의 말을 듣고 반색하였다.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이민 사업에 대해 이야기하였는데, 톰 코펜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올 줄이야.
“전쟁으로 북독일 지역이 상당히 피폐해졌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이민자 지원 정책이 사실이라면, 쉽게 이민자를 모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얼마나 데리고 올 수 있지?”
“제 예상으로는 최소 만 명 이상은 데리고 올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만 명이라니.
요한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백인 인구가 만 명 이상 늘어난다면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거 같았다.
백인이 우월하다는 것은 아니고, 인구 비율을 바꾼다는 것에서 의미가 있었다.
워낙 한족이 독보적으로 많으니 그들의 비중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던 것.
“그리고 대두국에는 은행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갑자기 은행 이야기는 왜 꺼내는 거지?”
“네덜란드는 유럽에서 가장 선진적인 금융 시스템을 갖춘 나라입니다.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요한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안 그래도 요한은 중앙 은행을 설립하고 화폐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지금의 은행은 명나라 시대에 일종의 은행 역할을 했던 ‘표호’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즉, 돈을 보관해주거나 빌려주는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확히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전문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유대인이라는, 금융업에 통달한 이들을 말입니다.”
중앙 은행을 설립하는데, 사람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그리고 톰 코펜의 말대로 유대인은 금융업의 전문가였다.
‘나쁘지 않은데? 중국 상인을 견제하려면 유대인 정도는 데리고 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