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요한은 1여단과 함께 천주로 향하였다.
“그 이야기 들었어?”
“어떤 이야기?”
“왕이 천주에 왔다던데?”
“왕? 무슨 왕을 말하는 거야?”
“무슨 왕이기는. 우리 왕이지, 양왕이자 대두 왕.”
천주의 시민들은 그의 등장에 그리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몇몇 시민들은 아예 그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굴었다.
“어째 시민들이 나를 반기지 않는 거 같군.”
요한은 천주에 도착하자마자, 차갑게까지 느껴지는 공기를 맡고 조금 당황하였다.
사실 천주는 이번이 첫 방문이었다.
마카오나 샤먼은 두 번 정도 방문하였으나, 천주만 유독 한 번도 오지 않았던 것.
이러니 천주의 시민들로선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의 신민들이 그러했듯, 이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하를 지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명으로부터 확실하게 도시를 지켜내야겠지.”
당연히 요한도 복주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복주에 깔린 게 대두국의 첩자였기 때문이다.
사실 첩자를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남명의 장수들이 알아서 요한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얻은 정보 중에는 좌도독, 정성공이 10만 대군을 집결하였다는 정보도 있었다.
물론 그 10만 대군의 목표가 요한이 보유한 세 개의 도시라는 것도 말이다.
‘설마 나부터 노릴 줄이야.’
확실히 요한도 예상치 못한 수였다.
원래 후방부터 정리하는 건 기본 전략이긴 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후방의 세력이 적일 때 통용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대두국은 남명의 조공국이었고, 겉으로만 보면 동맹이나 다름없는 세력이었다.
그런 세력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려는 시도는 파격 그 자체였다.
‘제아무리 기상천외한 전략이라 해도, 나를 상대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요한은 픽 웃었다.
처음에는 소식을 듣고 조금 놀랐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계획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기감 같은 건 전혀 느끼지 않았다.
“적의 수가 많다는데, 이곳은 제장들에게 맡기고 전하께서는 대경으로 환궁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어찌 대답할지 뻔히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군.”
“하오나 전하. 10만 대군의 적을 상대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권혁이 간곡한 목소리로 그와 같이 설득하였다.
요한은 조금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았으나, 그의 휘하 장교들은 달랐다.
근위대의 경우는 특히 요한의 안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였기에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천주에서 걷는 세수가 얼마인지 아나?”
“예? 세수 말씀입니까?”
요한이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자 권혁은 물론이고 다른 장교들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은자로 대략 250만 냥 정도 되네. 조선의 한 해 예산과 엇비슷한 정도지.”
천주는 세 개의 도시 중에서 가장 작은 곳인데도 이만한 세수가 걷어졌다.
한 나라의 1년 예산에 버금갈 정도로 말이다.
물론 요한이 상업에 크게 투자한 결과이기도 했다.
명나라 시절만 해도 중앙 예산으로만 썼지, 따로 투자하는 것이 없었으니까.
“나는 이곳의 세수를 극히 일부만 취하고 대부분 천주에 재투자했다. 상업 쪽에 절반, 그리고 치안 및 국경 수비에 절반을 투자하였지.”
“그, 그렇습니까?”
몇 년간 수백만 냥을 투자하여 국경에 강력한 요새를 설치하였다.
해안에도 해안포를 마구 깔아두긴 했지만, 주로 육로를 방어하는 것에 힘을 썼다.
어차피 해군력을 압도하는 상황에서 육로에서의 공격만 대비하면 됐기 때문이다.
“흑기군 병력만 1개 여단에 2개의 독립 대대가 주둔하고 있지. 여기에 강력한 요새까지 있는데 무엇이 두렵겠어?”
요한이 그렇게 확신을 담아 말하자, 권혁도 더는 환궁을 주장하지 못하였다.
사실 권혁도 내심 남명의 10만 대군을 그리 경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병력은 압도적 열세였으나, 어차피 바다는 대두국의 것이었다.
천주에서의 병력은 한정적이어도, 언제든 재보급을 받을 수 있으니 사실 7천의 병력이 아닌, 수만 대군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
“적들이 왔습니다!”
천주 시와 복경(복주)의 거리는 대략 150km가 조금 안 됐다.
복주에 10만 대군이 집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략 5일 정도가 지났을 때, 정성공이 이끄는 군대가 천주 인근에 도착하였다.
‘확실히 대군이긴 대군이야. 심지어 정병으로 보이는데?’
요한은 성벽 위에 서서 다가오는 남명군을 바라보았다.
천주로 들어오는 길목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기에 10만 대군 전체가 집결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 집결한 병력만으로도 까마득하게 많아 보였다.
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요한도 저만한 병력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대포의 수는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군.’
요한의 눈은 몽골인보다 몇 배는 더 좋았고, 그 좋은 눈 덕에 남명군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순식간에 파악할 수 있었다.
총병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사기 수준은 어떻고, 정병은 또 얼마나 있는지 등등.
당연히 대포의 개수를 파악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물론 대포가 많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마닐라 공성전 때도 그랬지만, 제아무리 대포라 해도 성벽을 부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야전에 끌고 다니는 대포라면 구경이 더 작을 수밖에 없었기에 더더욱 화력이 제한적이었다.
“백기를 든 기병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항복을 권하는 전령인가 보군.”
요한은 백기를 든 기병이 다가오자, 우렁찬 목소리로 용건을 물었다.
“남명에서 대군을 이끌고 천주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진 요한의 목소리는 기병뿐만이 아니라, 남명군의 본진에까지 닿았다.
그러자 남명군의 본진은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다른 병사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오직 요한의 눈에만 보이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야, 양왕 전하십니까?”
“그렇다. 내가 양왕이자 대두국의 국왕이며, 유구국의 국왕이다.”
전령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설마 요한이 이 자리에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는 전령답게 금세 평정을 되찾고는 자신의 용건을 말하였다.
전령인 그가 밝힐 용건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왔으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는 내용이었다.
“너희는 어찌하여 황제 폐하께서 내게 하사한 도시를 공격하려는 것이냐?”
“양왕 전하께서 달단의 손을 잡는 역적 행위를 했다는 의심을 받고 계십니다. 황제 폐하의 신임을 잃고 싶지 않으시다면 부디 저희의 요구에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일개 병사인 네놈이 감히 대명의 친왕인 나를 협박하다니. 네놈이야말로 역적이구나.”
요한은 대로한 표정을 지은 채 그리 외쳤다.
명분이란 대단히 중요하였다.
설령 남명의 선제공격으로 전투가 시작된다고 해도 전후를 위해서 명분을 추가로 만들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요한이 정한 명분은 ‘역적’인 정성공이 융무제의 눈을 흐리고 판단을 어지럽혔다는 명분이었다.
이 같은 명분이라면 황제인 융무제와 싸운 것이 아닌, 남명의 간신인 정성공과 정쟁을 치른 셈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뒤, 남명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기에 요한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네놈이, 그리고 네놈의 수장인 정성공이 역적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다면 내게 황제 폐하의 친서를 가져와라. 그럼 내가 직접 성문을 열어줄 테니.”
진짜 칙서가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발뺌할 생각을 하면서도 요한은 당당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였다.
그러자 전령은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이내 읍하고는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요한은 남명군의 모습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장이라도 공격할 것처럼 기세를 끌어올리던 남명군이 어느 순간부터 맥이 빠진 모습을 보였다.
전령을 보내는 것도 멈추는가 하면, 심지어 일부 부대는 철수할 거 같은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요한이 의문을 느끼는 상황에서 갑자기 남명군의 본진 쪽에서 열 명 정도 되는 기병이 성벽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정성공이군.’
요한은 다가오는 기병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봤다.
선두에 선 이는 바로 남명군의 수장인 정성공이었다.
나머지 기병이야 그의 부관과 호위병으로 보였고 말이다.
“양왕 전하,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어 통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실없는 소리 마시고, 용건만 말하시오. 용건만.”
정성공이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이자 요한은 차갑게 대꾸하였다.
사실 요한 입장에서는 정성공이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요한은 그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었는데, 정작 정성공은 요한을 적대하였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아예 주도적으로 전쟁을 일으키려 들지 않았던가.
“소장은 양왕 전하와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적은 동북의 달단 아닙니까?”
“글쎄, 싸움을 원하는 쪽은 누가 봐도 좌도독 같소만.”
“아아, 절부구조(훔친 병부로 조나라를 구한다)라! 소장이 이렇게 군사를 일으킨 것은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함입니다.”
위선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대뜸 세 개의 도시를 강탈하려 해놓고 더 큰 전쟁을 막기 위함이라니.
“절부구조라 했는데, 과정도 옳지 않고 결과도 썩 옳아 보이지 않는구려.”
“전하. 끝끝내 대명과 적대하시려는 겁니까?”
“대뜸 군사를 끌고 와서 협박만 하는 주제에 마치 여가 잘못한 것처럼 몰아붙이는 게 우습기 짝이 없소.”
“무엇을 원하십니까? 무엇을 드려야 전하를 대명의 품에 안을 수 있습니까?”
협박이 안 통하자, 이번에는 회유책을 시도하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요한에게는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평소의 정성공답지 않은 조급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융무제가 회군을 명령하였구나!’
요한은 조급하게 느껴지는 정성공의 모습을 보고 그가 어떤 상황에 부닥쳤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물론 100%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요한은 이어지는 정성공의 반응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좌도독. 어찌 조급하게 보이는데, 폐하께서 다른 명령을 내리기라도 한 것이오? 만약 이것이 내 착각이라면 미리 사과하겠소.”
“…….”
마치 정곡을 찔린 듯 급히 입을 다무는 그의 모습을 보고 요한은 픽 웃었다.
‘어쩌면 전투를 피할 수도 있겠군.’
***
정성공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본영으로 되돌아갔다.
‘요한이 어찌 황상이 회군을 명령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단 말인가.’
융무제로부터 회군 지시를 받고 한 시진도 채 지나지 않아 요한을 마주하였던 정성공이다.
만약 요한이 정성공보다 먼저 융무제의 명령을 알아차린 것이라면, 사실상 군부 내의 대소사를 모두 알고 있다 봐도 무방하였다.
어쩌면 그가 군사를 일으키려는 것조차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공격이냐, 회군이냐.
오늘 안에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정성공은 아무리 고민해도 쉽게 답을 내릴 수 없었다.
만약 천주에 요한이 없더라면 조금 더 쉽게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공격 쪽으로 말이다.
그런데 천주에는 요한이 있었고, 요한을 상대로는 10배 차이의 병력으로도 많다고 할 수 없었다.
“왕만 잡으면 전쟁이 끝나는데 정작 그 왕이 궁, 차, 포, 마를 모두 합한 것보다 강하다니.”
장기에서야 당연히 그렇지만 현실에서도 보통 왕을 잡으면 전쟁이 끝나고는 하였다.
대두국처럼 군주의 카리스마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나라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 왕이 요한이라면 왕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단 왕이 직접 군을 지휘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요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정성공은 더욱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저들 흑선의 존재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성공은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주는 반도 모양이라, 바다로 돌출되어 있었다.
이 말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뜻이고, 쉽게 해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실제로 백여 척의 대두국 함선이 바다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함포가 아군을 겨루는 그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한 척당 최소 열 문의 함포를 적재하고 있을 테니, 그들의 공격이 시작되면 1,000문 이상의 포탄이 쏟아진다는 말과 같았다.
“…회군을 준비해라. 다시 복주로 돌아가겠다.”
기나긴 고민 끝에 정성공은 결정을 내렸다.
물론 그 결정은 회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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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대만의 왕이 되었다-20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