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243
대경은 도시 규모가 급속도로 커졌으나, 중심 지역은 기존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마치 조선의 수도, 한양에 육조거리가 있는 것처럼 대경에도 각종 관공서가 밀집한 거리가 있었던 것이다.
흔히 붉은 광장 거리라고 불렀는데, 대경에서 가장 땅값이 높았다.
그리고 붉은 광장의 남쪽 거리에는 영주각이란 이름의 요정이 있었다.
바로 근처에 내무부와 국방부 등의 건물이 밀집해 있었기에 이른바 ‘높으신 분들’이 자주 찾는 요정이었다.
오늘도 이 영주각에 대단히 높은 직급을 가진 사내가 방문해 있었다.
“달구나. 술이 아주 달아.”
“무슨 좋은 일이 있으세요, 대감님?”
대감이란 호칭은 대두국에서 쓰이지 않았다.
보통 직급에다 ‘님’ 자를 붙여서 부르고는 하였다.
아리따운 여인에게 ‘대감’ 소리를 들은 사내 역시도 원래는 ‘장관님’이라 불러야 맞았다.
하지만 사내는 대감이란 호칭이 듣기 좋은지 싱긋 웃었다.
그의 과거를 생각하면 절대 들을 수 없는 호칭이었기에 더욱 듣기 좋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하하. 그럼. 아주 좋은 일이 있었네. 내 그 일이 있고서 미소가 떠나지 않더군.”
“그렇사옵니까?”
“한 잔 더 따라보아라. 오늘은 몇 잔이든 마실 수 있을 거 같으니.”
사내, 조규원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죽현! 기다리지 않고 혼자 마시다니. 참을성이 너무 없지 않은가.”
“하하하, 옥연. 이제 오면 어떡하나. 자네와 술을 마시려고 하루 종일 굶느라 참을 수가 없었네.”
조규원이 옥연이라 부른 사내는 신정호였다.
그리고 신정호는 조규원과 같은 장관급 인사였는데, 무려 내무부 장관이었다.
참고로 조규원은 법무부 장관이었다.
“기분이 아주 좋아 보이는군.”
“그럴 수밖에. 우리 조선계 관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생겼지 않은가.”
“새로운 기회라.”
신정호는 픽 웃었다.
꽤 거창하게 말하는 조규원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그저 11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가 복경으로 떠난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어린아이가 요한의 첫째 아들이라면 확실히 무시할 일이 아니기는 했다.
털썩.
신정호는 조규원의 맞은편으로 가 양반다리를 하며 앉고는 아리따운 여인에게 턱짓하였다.
“소녀는 이만 물러나겠사옵니다.”
눈치가 빠른 여인이 조용히 물러나자, 신정호가 술잔을 들며 말하였다.
“이번 기회를 잘만 살리면 우리의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걸세.”
“그렇지. 어떤 아이를 상석에 앉히느냐에 따라 우리들의 가문이 청문사족으로 남을지, 그저 그런 양반으로 남을 지 결정될 테니까.”
두 사람은 이미 대두국에서 부와 명예, 권력까지 모든 걸 쥐었다.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장관급 인사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였다.
그들 개인이야 모든 걸 가졌다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들의 후손이었다.
대두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교육에 진심인 나라였다.
초등학교는 사실상 의무교육이나 다를 게 없었고, 중등학교 진학자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났다.
지금은 고작 세 개의 도시밖에 없는 대학교도 계속해서 늘어나게 될 터.
국가 차원에서야 인재가 많아지니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겐 이 같은 현실이 마냥 긍정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신정호와 조규원처럼 특별한 재능을 갖추지 못한 자식을 둔 아버지들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조선 사람답게 가문을 지극히 중요시하는 두 사람은 자식에게 자신의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고 싶어 하였다.
요한의 나이가 젊은데도 왕세자를 간택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차기 국왕을 그들의 편으로 만들어야 범재인 자식들도 권력자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남은 어떨 거 같은가?”
“공부에 크게 흥미가 없어 보이더군. 또래보다 형편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야.”
“그럼 사남은?”
“사남은 이미 친구들이 많지 않은가. 우리 아이와는 친해지기 어려울 걸세.”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법.
왕실의 눈과 귀가 세상 곳곳에 있다는 걸 알았으니 이런 비밀스러운 장소에서도 최대한 조심해서 행동하였다.
하여 그들은 왕자들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다.
다른 가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꾸미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말일세. 새로운 방향을 고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신정호가 몸을 앞으로 내밀더니 속삭이는 목소리로 그리 말하였다.
그러자 조규원은 흥미가 동한 표정을 지었다.
“새로운 방향이라니? 어떤 걸 말하는 건가.’
“처를 새로 들이는 걸세. 조선인 아이를 낳아줄 조선 출신의 처를 말이야.”
“호오.”
요한의 아내는 무려 여섯 명이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출신은 전부 달랐는데, 조선계 관료들에게는 안타깝게도 조선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그동안 요한은 점령지의 주요 세력과 혼인 동맹을 맺고는 하였다.
번족 출신의 왕후인 타히라도 바로 그런 이유로 혼인을 맺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에 결혼한 다른 왕후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조선의 경우,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구태여 조선인 출신의 왕후를 두지 않았었다.
“방법이 있나? 여색에는 그리 관심이 없어 보이는데 말이야.”
여섯 명의 아내를 둔 요한 보고 여색에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을 수 있으나, 요한의 신분을 생각하면 그리 틀린 말도 아니었다.
요한이 여색에 관심이 많다면 여섯 명이 아니라, 스무 명의 아내도 둘 수 있었다.
그의 권력이라면 겨우 그 정도로 누가 뭐라 할 일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요한은 정략결혼으로 맺은 여인들 외에는 그 어떤 여인도 새로 아내로 들이지 않았다.
이것만 봐도 요한이 여색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왕자와 공주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걸 보면 마냥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씨 가문의 가주가 건강이 많이 안 좋아 보이더군. 언제 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그 양반이라면 이씨 가문의 자산이 탐나지 않겠는가? 기존보다 몇 배는 큰 토지도 새로 얻었다던데.”
신정호가 언급한 이씨 가문이란 조선 왕실을 뜻하였다.
새로 얻었다는 토지야 만주를 의미하였고 말이다.
“명분으로 나쁘지 않겠어.”
“자네가 생각하기에도 그렇지?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아직 어린아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매력적이네.”
조규원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듣기에도 욕심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안 그래도 요한은 조선에 수천만 원의 돈을 빌려준 적이 있었다.
국고가 아닌 왕실 자금으로 그만한 돈을 빌려준 것인데, 이는 그만큼 요한이 조선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의미하였다.
이렇게 조선에 관심이 많은 요한이, 조선 국정에 더 깊게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포기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였어도 포기 못 하는데, 전하처럼 욕심이 많은 분이시라면 더더욱 그러겠지.’
***
복경의 한 상인인 강홍은 요한이 남명의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또래 상인과는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제기랄! 하필 도이 놈이 섭정이라니!”
다른 상인들은 누가 권력을 쥐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생업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이 섭정왕에 올랐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도 그의 저택에 기웃거리며 뇌물을 줄 기회만 노릴 뿐, 다른 반응을 보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홍은 달랐다.
그는 요한에 의해, 정확히는 대두국 상인에 의해 이미 큰 손해를 본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보니, 요한이 권력을 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품었다.
물론 그가 불만을 가진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도이든 뭐든 우리랑 상관없는 일이야.”
“그놈들이 우리의 영역까지 넘볼 거라니까!”
“바다 건너에 있는 그자들이 어떻게 우리 영역을 넘본다는 건가?”
동료 상인들에게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였으나, 돌아온 반응은 싱겁기 그지없었다.
도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적대감을 자극하여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겨우 권력자가 바뀐 정도로 남명의 상계가 바뀔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실제로 6개월 정도는 정말 크게 변한 것이 없었다.
요한은 자신에게 대적하는 이만 조용히 숙청하였을 뿐, 대단한 변혁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었으니, 남명의 상계도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자 모든 것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저, 저자들은 뭔가?”
“검계라고 불리는 자들인데, 무시무시할 정도로 잔혹하다더군.”
처음 변화는 검계라는 왈패 조직의 출현이었다.
천주에서 활동했다던 암흑가의 조직이었는데, 기존 왈패들과는 사뭇 다른 이들이었다.
기율이 엄정하였고, 한 명, 한 명이 마치 검술의 달인처럼 검을 곧잘 썼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의 출신이었다.
조선인은 물론이고, 일본인과 청나라인, 심지어 아예 인종이 다른 이들도 꽤 많이 섞여 있었다.
물론 강홍에게 이런 정보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사실은 오직 하나.
이 검계라는 자들이 자신에게, 정확히는 대두국 상인과 친하지 않은 상인들에게 대단히 적대적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달에 은 30냥만 내.”
“으, 은 30냥이라니요. 소인에게 그 정도의 돈은 없습니다요.”
갑자기 나타난 검계는 순식간에 복경 거리를 장악하더니, 기존 왈패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호비를 거두기 시작하였다.
강홍에게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가 내야 할 보호비는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많았다.
한 달에 무려 30냥의 은자를 보호비로 내게 강요하였던 것이다.
보호비로 30냥을 뜯기면 그에게 남는 돈은 단 몇 푼뿐이었다.
그는 안간힘을 쓰며 주지 못하겠다고 발악하였으나, 그 대가로 실컷 얻어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
“그러게, 왜 우리 대두국 상인들을 못살게 굴었어?”
“쿨럭!”
“다음에도 이딴 식으로 굴면 그땐 진짜 죽을 줄 알아라.”
검계의 무리가 사라지자 강홍은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는 보잘것없는 평범한 상인이었다.
하지만 그는 마치 조선의 경상처럼 복주 상인의 연합체인 일명 ‘복상’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리고 강홍은 그동안 이 복상의 힘을 적극 활용하였었다.
대두국 상인들이 복경에 진출하지 못하게 막은 것도 바로 그였다.
복상과 연관되어 있는 왈패들을 동원하여 물리적으로 대두국 상인을 공격하였던 것이다.
그 덕에 강홍은 자신의 가게를 잘 지켜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는 복상의 힘을 빌려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였다.
검계가 두렵다 한들, 복상의 뒤에는 관(官)이 있었다.
관의 힘을 빌린다면 그깟 왈패 무리쯤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강홍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가 믿는 관부부터 이미 검계의 편이 되었다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대두국의 편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얼마 전, 포쾌(포졸)들의 우두머리인 포두가 새로 부임하였는데, 그는 대두국 출신이었다.
새로운 포두는 복상의 뇌물을 받으면서도 정작 복상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이놈이 감히 아무 죄 없는 이들을 모함하는구나!”
강홍은 오히려 죄 없는 이를 모함했다는 이유로 포쾌들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하였다.
검계의 왈패들에게 얻어맞고, 포쾌들에게 얻어맞자 그는 보름 넘게 병석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병석에 누워있는 동안 복상의 영향력은 더욱더 줄어들었다.
강홍이 몸을 간신히 회복했을 때는 이미 수십 명의 상인이 가게를 접은 이후였다.
‘빌어먹을. 이래서 내가 도이 놈을 마음에 안 들어 했던 건데.’
동료들이 장사를 접고 고향으로 떠난 것처럼, 그 역시 가게를 포기해야 할 상황에 부닥쳤다.
검계에게 뜯기는 보호비에 포쾌들에게 뇌물까지 줘야 하는 상황.
더군다나 세금까지 올랐다.
자릿세부터 시작해서 매출이 발생할 때 내는 세금까지.
그가 내야 할 모든 세금이 전부 올랐던 것이다.
심지어 대두국 상인들의 등장으로 경쟁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으니 그로선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끝났다. 이 나라의 상계는 저 오랑캐들의 것이 되고 말았어.”
결국, 상인의 길을 포기하기로 한 강홍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리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