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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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곤의 제안.
“형님, 소식은 들었습니다.”
“후, 골치 아파졌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자신의 동생, 정지봉의 물음에 정지룡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일단 다시 서신을 보내봐야지. 청나라가 오해하지 않게끔 말이야.”
그는 청나라에 충성을 다짐하는 서신을 다시 적었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해야 청나라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지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100척이나 되는 정씨 가문의 함선이 장강으로 갔고 아마 그들은 황도주를 돕기 위해 청나라를 공격할 것이다.
청나라로서는 당연히 정지룡이 배신한 것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 터.
그들이 정지룡을 배신하고 제 뜻대로 움직였다고 변명하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변명하면 청나라가 정지룡을 어떻게 보겠는가.
자신의 가문도 제대로 단속 못 하는 무능한 이로 보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게 맞기도 했지만 말이다.
하여 정지룡의 고민은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저는 삼이(정성공)를 어떻게 할지를 물었던 것인데···.”
“죽이진 않을 거다. 하지만 내 후계자가 될 일도 없을 거야. 어설픈 대의로 가문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놈은 정씨 가문을 이을 수 없어.”
정지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내심 정성공을 응원하고 있었다.
물론 이번일까지 정성공을 변호할 생각은 없었다.
가문의 수장인 정지룡을 배반한 것은 사실이었으니.
“형님, 그런데 청나라로 사신을 보내는 건 조금 상황을 파악한 뒤에 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정성공을 변호하는 대신, 정지봉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정지룡은 인상을 찡그렸다.
“여기서 상황을 지켜보자고? 그러다 섭정왕(도르곤)이 나를, 그리고 우리 가문을 배제하기로 결정을 내린다면 어쩌란 말이냐?”
“장강으로 간 요한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 모르는 일입니다.”
“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면, 청나라가 평가하는 우리 가문의 가치가 이전보다 높아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요한이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말입니다.”
사실 그 생각을 정지룡이라고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아직 그는 청나라에 귀순한다고 확답한 적은 없었다.
그저 청나라에 맞서는 그 어떤 행위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고 다들 지레짐작할 뿐이었다.
“고작 100척이다. 100척으로 청의 대계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거 같으냐?”
정지룡이라고 요한의 능력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능력은 어디까지나 육지에서의 지휘 능력이었다.
아직 수군 제독이 지녀야 할 자질은 보여준 적이 없다는 뜻.
설령 수전에 능하다고 해도 요한이 할 수 있는 건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100척이라고 하면 엄청난 규모처럼 느껴지지만, 병력으로 따지면 몇천에 불과하였다.
장강에서 활동하는 선박의 수를 생각하면 더 적게 느껴졌고 말이다.
‘근데 이상하게 김요한, 그놈이 또 일을 벌일 거 같기는 하단 말이지.’
사실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200명이 안 되는 병력으로 네덜란드를 쫓아내고 기어코 대만을 장악했을 때, 그는 매우 놀랐다.
네덜란드는 어찌 보면 정지룡 일생에서 평생의 숙적이나 다를 게 없는 세력이었다.
심지어 네덜란드는 그와 명나라 조정의 관계를 이간질하여 그를 죽을 위기에 처하게 한 적도 있었다.
이때 그의 형제 몇 명이 죽기도 했었고.
하지만 네덜란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었고 그래서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된 이후로도 불편한 동거를 이어갔다.
그리고 요한은 바로 그 네덜란드의 전진기지를 단숨에 박살 냈다.
정지룡으로선 놀라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였다.
‘그래도 이번은 다르다. 상대는 그 청나라이지 않은가.’
강대한 청나라를 상대로 요한이 혼자 뭘 할 수 있을까.
또 한 번의 기적을 바라느니, 청나라에게 무슨 말로 변명할지 궁리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리라.
***
정지룡은 마침내 서신 작성을 끝마쳤다.
이제 이 서신을 풍제중이란 청나라의 간첩에게 넘겨주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그가 서신을 넘기고자 풍제중을 부르려고 할 때,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요한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 것인데,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남경을 지키는 청나라의 진강 수군 함대를 궤멸시키고 그대로 남경을 봉쇄하여 장강 이남의 청나라군을 말라 죽이게 하였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활약 덕에 황도주가 간신히 살아남았다는 소식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전해졌다.
‘도대체 그 정도 규모의 함대로 어떻게 이 정도의 전과를 세울 수 있는 거지?’
요한이 끌고 간 함선은 100척이 조금 넘는 규모였다.
그 중 전투력을 기대할 수 있는 복선은 10척이 조금 넘는 정도.
나머지는 소형 크기의 복선이거나 그보다 작은 호선이었다.
사실 이 정도 규모의 함대로 장강을 치는 건 전성기의 정지룡도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요한은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다.
단순히 전투 몇 번에서 승리한 것으로 끝이 아니라, 아예 장강의 요충지인 진강 수군까지 궤멸시킨 것.
진강 수군을 궤멸시킨 후, 남경까지 봉쇄하였으니 실로 엄청난 공이었다.
‘어쨌든 이것은 내게, 우리 정씨 가문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요한도 우리 정씨 가문의 일원이니 말이야.’
정은봉이 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요한이 활약하면 활약할수록 청나라가 평가하는 정씨 가문의 가치는 더 올라갈 것이라고.
그리고 정지룡도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오삼계가 청나라에서 왕으로 봉해진 이유는 그만큼 오삼계가 청나라에 위협적인 존재여서 그랬다.
무려 산해관을 지키던 장수였으니, 청나라가 그의 귀순을 반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반면 정지룡은 청나라에 투항할 경우, 오삼계와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치지는 대우를 약속받았다.
동남 지역에서 사실상 제왕과 같은 권력을 누릴 수 있게 광주 도독 자리와 복건 도독 자리를 약속하였으나, 진짜 왕의 자리를 봉하기로 약속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정지룡을 그만큼 낮게 평가한 것인데, 정지룡이 워낙 반청활동에 소극적이었으니 이미 다 잡은 물고기처럼 여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한의 활약으로 더는 우리 정씨 가문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지. 이젠 왕의 자리를 욕심내도 되겠는데?’
번왕의 자리를 탐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상인 출신으로서 그는 자신이 키운 남명의 가치가 낮은 평가를 받는 건 인정할 수 없었다.
남명을 바치기로 약속한다면 적어도 항장 중에선 가장 높은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역시 태사십니다.”
“이 나라의 진정한 충신!”
“청나라가 방심한 틈에 저들의 허를 찌르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조정에서는 이미 그를 떠받들기 시작하였다.
만약 요한이 나서지 않았다면 융무제의 활약으로 조정이 단번에 근황파로 뒤덮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요한의 활약으로 오히려 융무제의 공이 묻혔다.
정지룡은 여러모로 요한의 덕을 본 셈이었다.
‘마신, 그놈이 필요 이상으로 요한의 원한을 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상황이 이리되자, 정지룡은 문뜩 후회되었다.
대만으로 그의 측근, 마신을 보내 마투스를 설득하여 흑기군 장악을 명령하였는데, 지금 와서 보니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던 듯 보였다.
괜히 이 일로 요한과 감정이 상하면 정지룡으로서도 좋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
영국 상인, 트와이닝은 대만의 시장에서 다양한 상품을 둘러보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품이 많은데?’
이 시대, 메이드 인 차이나는 명품 보증 수표였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것이 예술품으로 취급받을 정도였다.
트와이닝은 대만 역시 그런 중국의 일부로 생각하였으나, 무역지로는 그렇게 매력적으로 느끼지 않았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네덜란드가 장악한 섬이기도 했고, 중국에서도 변방 취급받는 곳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대만의 시장을 둘러보니, 중국 본토의 마카오나 샤먼보다는 못 해도 대단히 매력적인 무역지임을 알게 되었다.
“오오! 아름답구나!”
가장 감탄했던 건 화려한 색상의 도자기를 봤을 때였다.
‘이렇게 매끄럽고 섬세할 수가 있나.’
트와이닝은 조심스럽게 컵을 들어 올렸다.
가벼운 무게, 매끄러운 표면, 따뜻한 촉감, 그리고 그 속에서 향긋한 커피 향기가 나는 것을 상상했다.
그는 이 커피잔 세트가 영국에서 얼마나 인기를 끌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반드시 영국으로 가져와야 해.”
그의 눈이 빛났다.
그는 이 커피잔 세트의 가치를 단숨에 알아차렸다.
커피잔은 전통적인 중국 도자기와는 확연히 다른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했다.
독특한 기하학적 모양들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영국으로 가져가면 수십 파운드에도 팔 수 있겠어.’
이미 영국에서는 중국 차가 대인기였다.
차가 유행함에 따라 도자기의 인기도 더욱 치솟았다.
그런데 안 그래도 비쌌던 도자기가 명나라의 멸망 이후, 구하기 더 힘들어졌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도자기를 구하기 위해 일본까지 갔을 정도였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이 화려한 커피잔 세트를 영국에 가져가면 엄청난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떙~! 땡~! 땡~!
그때였다.
갑자기 종소리가 들리더니, 여기저기서 비명이 들려왔다.
“꺄아아악!”
“헉! 저게 뭐야?”
“설마 타타르의 함대인가!”
트와이닝은 가게를 나와 다급히 시민들의 반응을 살폈다.
시민들은 모두 바다를 보고 있었다.
몇몇 이들은 바다에서 무엇을 봤는지, 겁에 질린 채 도망을 치기 시작하였다.
꿀꺽.
트와이닝도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바다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갔다.
그러곤 이내 경악하였다.
“차라리 크라켄이 튀어나온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어.”
크라켄이 갑자기 튀어나왔어도 이 정도로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안평 앞바다는 온통 함선으로 뒤덮여 있었다.
‘金’이라는, 정체불명의 깃발을 단 함선으로 말이다.
***
안평 앞바다를 가득 메운 함선은 요한의 함선들이었다.
‘드디어 왔구나. 김요한.’
요한의 함대가 항구로 진입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한 사내가 차갑게 웃었다.
그는 마신이란 이름을 가진 사내였다.
‘요란하군, 아주 요란해. 반역자 주제에 말이야.’
마신은 요한이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지룡의 측근들은 모두 그가 일개 상인이었던 시절부터 함께 한 이들이었다.
맨주먹에서 시작한 정지룡은 서양 세력과의 싸움에서, 또는 같은 명나라 해적과의 싸움에서 몇 번이고 죽을 뻔한 위기를 경험하였다.
당연히 그의 측근들 역시 그런 경험을 공유하였고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요한이란 존재가 나타났다.
요한은 위기를 겪기는커녕 정지룡이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데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았던 자였다.
그런 주제에 가장 큰 과실을 따 먹었다.
정지룡의 사위가 되는 동시에 대만이란 거대한 섬을 영지로 얻어낸 것이다.
이는 마신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요한이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않은 상태로 대만을 장악했다고 해도, 뜨내기에 불과한 그가 대만을 독차지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일까?
대만으로 가서 흑기군을 장악하라는 정지룡의 명령을 듣고 마신은 반색하였다.
드디어 저 재수 없는 조선 놈을 담글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가자, 요새로.”
“충!”
마신은 곧바로 안평의 임시 총독을 찾았다.
안평의 임시 총독은 정지룡의 사병 출신이었던 마투스였다.
“김요한이 하선하면 곧바로 병사를 동원해 김요한의 신병을 확보해라. 복주로 끌고 갈 것이다.”
요한이 거느린 병력도 상당해 보이긴 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흑기군을 자신의 군대라 생각하며 한껏 방심하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저 함대의 선원들은 어차피 정씨 가문의 사람들일 테니, 김요한이 인질로 잡히면 나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