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80
080화
“오늘은 수확이 나쁘지 않은데?”
“후우,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와, 이놈 크기 보게! 내 팔뚝보다 큰 거 같지 않은가?”
“그래 봤자 나의 것보다는 작군! 으하하.”
유구 왕국의 어민들이 즐거운 얼굴로 그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은 유독 물고기를 많이 잡았기에 모두의 얼굴에는 기쁨으로 가득하였다.
아니, 단 한 사람은 예외였다.
고집스러운 얼굴의 중년 사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이 잡아봤자, 어차피 일본 놈들이 다 가져가는 거 아닌가.”
기분 좋은 상황에서 초를 치는 중년 사내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한숨이 튀어나왔다.
“어쩌겠어. 우리는 패배했는데. 그나마 배를 압수당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삼아야지.”
“지다니! 놈들이 비겁했던 거야! 아니, 협상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인질로 삼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나?”
유구는 너무도 허무하게 패배하였다.
사쓰마 번이 동원한 병력은 고작 3,000명.
인구가 15만이 넘는 유구였다.
만약 일본에서 징집하는 방식으로 병력을 징집했다면 5,000명 이상의 병력을 동원할 역량을 가진 나라였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도 갑작스럽게 기습을 당하였고 심지어 평화 협정 하러 갔던 주요 인사들이 대거 인질이 되기까지 하였다.
왕까지 그들의 인질이 되자, 유구는 더 저항할 수 없었다.
오랜 시간 평화를 누려왔던 유구는 그렇게 전쟁 기계나 다를 게 없는 사쓰마 번에 제대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패배한 것이다.
“그리고 놈들을 봐! 책봉을 받지 못한 것이 우리 탓도 아닌데 우리에게 책임을 전가해서 공납 품목을 늘리지 않았나!”
실컷 열변을 토하던 중년 사내는 아무도 자신의 말에 호응하지 않자,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에도 그만 유독 열을 올리기는 했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어느 정도 호응을 해줬었는데 이번에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누구 하나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중년 사내가 불쾌함을 느끼고 한마디 하려던 때, 동료 어민이 서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 저기를 보게!”
사내가 가리킨 곳을 보니, 무언가 거대한 것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탄 어선과는 비교도 안 되게 커다란 그것은 바로 배였다.
마치 하나의 성채와도 같은 거대한 배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뭐야, 저건? 설마 홍모인들이 또 쳐들어온 건가?”
“홍모인들이라니! 사쓰마 번에서 놈들과 무슨 협상을 맺었다고 하지 않았어?”
“제, 제기랄! 도망쳐!”
유구는 대만과 인접하였다.
그래서 네덜란드가 어떤 나라인지 잘 알았다.
사실 모를 수가 없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유구는 대만에 주둔한 네덜란드 해적의 약탈에 시달렸었다.
그나마 다행히 일본과 네덜란드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고 사쓰마 번 역시 네덜란드와 협상을 맺을 수 있었다.
안전 보장이 되는 깃발과 통행증을 얻어낸 것.
하지만 유구인들의 네덜란드를 향한 공포는 여전하였고 당연히 그들의 배처럼 보이는 거대한 범선을 보자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어민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동쪽으로 도망쳤다.
그들이 향하는 방향엔 유구 왕국의 수도가 있었다.
***
유구 왕국의 왕궁은 슈리 성이었다.
언제나 차분한 분위기의 슈리 성은 지금 혼란에 빠져있었다.
몇 년 전부터 유구 왕국은 왕국 곳곳에 봉화를 만들었다.
사쓰마 번의 기습 공격으로 허무하게 패배한 것을 치욕으로 느끼고 이를 만회하고자 봉화 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든 봉화가 처음으로 적의 침략을 알려주었다.
“봉군이 또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으면 좋겠는데···. 아니겠지요?”
21살의 젊은 왕, 쇼켄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지금까지 연기가 이어진 것을 보면 적의 침략이 확실한 거 같습니다.”
“침략이라니. 도대체 누가···?”
쇼켄이 적의 정체를 물었으나,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봉화로는 침략 소식만 전할 뿐, 그 이상 전할 수 있는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백성들의 혼란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사쓰마 번에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거 같습니다.”
사쓰마 번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말에 쇼켄은 이를 악물었다.
유구 국왕인 그는 유구가 아닌, 사쓰마에서 나고 자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쓰마에 대한 감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유구는 현재 사쓰마 번에 거의 1만 석에 가까운 공미를 매년 바치고 있었다.
조공 무역이 막힌 유구 왕국에는 실로 부담스러운 양이었다.
그 공미를 내기 위해 유구 왕국은 사쓰마 번에 돈을 빌려야 했다.
사쓰마 번에 공납할 공미를 사들이려고 사쓰마 번의 돈을 빌리는 것이었다.
심지어 유구는 공미뿐만이 아니라, 수천 필의 마포와 1만 필의 하포, 3,000필의 파초포까지 내고 있었다.
물론 이런 것들을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됐다.
사쓰마 번으로부터 유구 왕실이 겪은 굴욕만 떠올려도 사쓰마 번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으니.
“나하의 일본인들이 모두 배를 타고 달아났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일본인들이 모두 도망쳤다고요?”
하지만 사쓰마 번에 대한 감정이 어떻든, 정체 모를 적이 쳐들어오는 상황이었다.
왕실 경비대 소속의 병사 수백 명밖에 보유하지 못한 유구 왕국으로선 사쓰마 번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였다.
그런데 이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오가이야라는, 사쓰마 번이 설치한 류큐 왕국의 주재소에 상주하던 일본인들이 모두 본국으로 도망간 것이다.
쇼켄은 헛웃음을 짓더니 이내 머릿속에서 사쓰마 번의 존재를 지웠다.
사쓰마 번의 도움 없이 적의 침략을 막아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서쪽에서 오는 적이라. 만약 네덜란드라면 일본인들이 달아나지 않았을 터.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아직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있었다.
그 싸움 좋아하는 사쓰마 번의 병사들이 싸워보지도 않고 달아난 것을 보면 적군은 만만치 않은 이들일 게 분명하였다.
***
유구 왕국의 수도, 슈리에 도착한 원종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저들을 봐라. 이 장보고함을 보고 잔뜩 겁에 질린 모습을!”
처음에 사신으로 유구 왕국이란 곳을 가라는 지시를 들었을 때, 그는 이런 불안감에 시달렸다.
‘왜구 놈들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험한 꼴을 당할 텐데, 이거 괜찮은 거 맞나?’
사신으로 가는 처지니 당연히 유구 왕국에 대해 빠삭하게 공부한 그였다.
그리고 유구 왕국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가 느끼는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나 다를 게 없는 처지인 유구 왕국이었다.
유구 왕국을 식민지로 삼은 세력은 중국에서도 극악무도하다고 알려진 사쓰마 번이었고.
사쓰마 번 몰래 유구 왕실과 접선해야 하는 원종으로선 불안함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요한은 이런 원종의 불안감을 알고서 파격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800톤급 엔카르나시온 아니, 대두국에선 ‘장보고함’이라 불리는 스페인 함선을 지원해주었던 것.
아니나 다를까.
장보고함의 위용에 왜구들은 겁에 질린 채 달아나기만 하였다.
원종은 그가 걱정하던 일을 겪지 않고 무사히 유구 왕국의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격식을 갖추십시오. 우린 지금 두 개의 나라를 대표해서 이곳에 온 겁니다.”
“흠흠. 누구보다 잘 알고 있소.”
흑인 장교가 주의를 시키자 원종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배가 정박하자 그는 허리를 빳빳하게 세운 채 하선하였다.
턱을 치켜든 원종은 항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몸을 벌벌 떠는 유구 왕국의 관리들을 향해 말했다.
“본관은 명의 칙사, 원종이다. 유구 국왕은 나를 대접하지 않고 무엇하는 것이냐!”
오만하기 그지없는 그의 태도에도 유구 왕국의 관리들은 마치 자국의 고관을 대하듯, 공손한 태도를 보일 뿐이었다.
***
원종은 명의 칙사, 정확히는 남명의 칙사 신분으로 유구 왕국을 찾았다.
물론 정식으로 남명 조정의 인가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대두국의 칙사라고 소개하는 것보다 남명의 칙사라고 소개하는 것이 협상에 유리할 거 같아 그리 소개하였던 것뿐.
이는 요한의 지시였기에 원종은 남명 칙사를 사칭한 일로 생길 후폭풍 따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남명의 칙사라니. 믿을 수 없구려.”
쇼켄은 직접 원종을 찾아왔다.
외교권을 상실한 유구 왕국에서 왕이 직접 외국의 사신을 만나는 건 사쓰마 번의 보복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행동이었다.
하지만 원종은 어쨌든 남명의 칙사를 자처하는 이였다.
사쓰마 번에서 유구 왕국을 합병하지 않고 왕국으로 남겨둔 이유도 중국과 조공 무역을 하기 위함이었으니, 남명의 칙사를 만나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명의 칙사이자, 대두국의 칙사입니다.”
“대두국이라. 네덜란드를 무찌르고 대만이란 섬을 장악한 세력이라 들었소.”
“맞습니다.”
원종은 자신의 정체를 순순히 인정하였다.
왕을 대면한 이상,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명의 칙사라는 건 거짓이 맞구려.”
“마냥 거짓이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대두국을 다스리는 김요한 폐하께서는 남명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태사의 사위입니다. 그리고 황제 폐하의 총애를 받는 무장이기도 합니다.”
“···그렇소?”
“그러니 혹시 남명과 무언가 교섭할 것이 있다면 외신에게 말씀하십시오. 상현왕(쇼켄)의 요구사항을 남명 조정에 전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쇼켄은 눈을 빛냈다.
조공 무역이 막히고 유구 왕국의 재정은 심각하게 악화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남명과의 조공 무역을 재개할 가능성을 얻었으니 그로선 반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두국에서 우리한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동맹입니다.”
“동맹? 그대는 우리의 사정을 모르는 거 같소.”
“압니다. 사쓰마 번으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데도 우리와 동맹을 하려는 것이오? 왜? 무엇을 위한 동맹이오?”
“사쓰마 번을 무찌르고 싶지 않습니까?”
“갑자기 사쓰마 번을 거론하는 걸 보면 동맹의 목적은 사쓰마 번에 대항하는 것이구려.”
“어떻습니까?”
쇼켄은 눈을 감았다.
‘이것은 기회인가, 아니면 덫인가.’
마음 같아서는 바로 대두국과 동맹을 맺어 사쓰마 번에 맞서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대두국의 무엇을 믿고 동맹을 맺는단 말인가.
대두국과 사쓰마 번의 관계가 어떤지, 그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대두국이 사쓰마 번에 맞설 힘이 있는지도 알지 못하였다.
‘하지만 만약 대두국에 충분한 힘이 있고, 저들이 얻는 이익도 확실하다면···. 이들과 동맹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
1646년 9월 하순.
마침내 흑기군 1대대와 2대대가 출정할 날이 되었다.
“와아아아아!”
“달단 놈들을 무찌르고 와라!”
“흑기군 만세! 김요한 국왕 폐하 만세!”
안평의 시민들은 그런 이천 명의 장병을 열렬히 배웅해주었다.
아직 ‘대두국’ 백성이라는 소속감을 가지지 못한 그들이었다.
하지만 대만의 모든 이에게는 네덜란드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네덜란드의 박해와 억압으로부터 그들을 구제해준 것이 바로 흑기군이었다.
대두국을 향한 애국심은 없어도 흑기군을 향한 자부심만큼은 분명히 존재하였다.
“어떤 적과의 싸움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바로 나 김요한이 조련한 무적의 흑기군이다.”
“와아아아아아!”
물론 바로 그 흑기군을 창설하고 지금껏 대만을 성공적으로 통치해온 요한을 향한 충성심도 가지고 있었다.
요한이 연단 위에서 몇 마디 연설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진 것만 봐도 안평 시민들이 요한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알 수 있었다.
‘형님과 똑같은 나이의 사내가 만백성에게 이 정도의 지지를 받다니···.’
그런 요한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유구 왕국의 왕제, 쇼시쓰(尙質)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