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7th century, he became the king of Taiwan RAW novel - Chapter 84
084화
가바야마 스케노리는 적의 공격이 시작된 순간 패배를 직감하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양군의 전력 차이는 너무도 압도적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패배를 확신한 상황에서도 다른 함선들을 향해 이렇게 명령하였다.
“싸워라! 사쓰마의 병사들에게 후퇴란 없다!”
그의 말에 사쓰마 번의 함선들은 용맹하게 돌진하였다.
콰콰콰쾅!
사쓰마 번의 함선들은 대두국 함대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였다.
대두국의 함선들은 단순히 크기만 큰 것이 아니었다.
화력부터 비교되지 않았다.
각 함선에 달린 수십 포의 함문이 발사되자, 안택선(아타케부네)이든, 관선(세키부네)든 가리지 않고 침몰하였다.
그렇게 사쓰마 번의 함선들이 하나둘 침몰하기 시작할 때, 정작 그들에게 돌격을 명한 가바야마 스케노리는 뱃머리를 돌려 다시 나하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명예도 없는 놈들 같으니! 이렇게 다짜고짜 기습하는 경우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산시타(양아치) 같은 놈들!”
“······.”
가바야마 스케노리의 수하들은 그런 그를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쓰마 번이 유구를 공격할 때도 그들은 아무런 예고를 하지 않고 공격하였다.
그리고 그때 사쓰마 번의 원정군을 지휘하였던 것이 가바야마 스케노리의 조부, 가바야마 히사타카였다.
스케노리는 사실상 자신의 조부를 욕하고 있는 셈이었다.
“봉행, 지금이라도 항복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한 무장이 심각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였다.
항구로 퇴각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희망은 없었다.
수군이 전멸한 상황에서 겨우 수백의 병사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가바야마 스케노리는 그런 무장의 말에 분기탱천한 얼굴로 말하였다.
“감히 내게 항복을 논하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송구합니다.”
“항복은 없다! 쇼켄을 인질로 삼아서라도 끝까지 항거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절망스러운 상황이지만, 육지로 도망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였다.
유구의 가치를 생각하면 사쓰마 번이 유구를 버릴 일은 절대 없었다.
즉, 반드시 응원군이 온다는 뜻이었다.
‘류큐 토인 놈들은, 비록 미개한 놈들이지만 성 하나는 기가 막히게 지었지. 슈리 성이라면 수개월 버티는 건 일도 아닐 거다.’
물론 적의 육상 병력이 몇 명이냐에 따라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가바야마 스케노리는 아무리 못해도 한두 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 그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냉혹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비보였다.
“보, 봉행! 항구를 보십시오. 뭔가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저기서 왜 연기가 나는 것이냐?”
“일단 확실한 것은 단순한 화재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이 항구를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하항은 여느 때와 다를 게 없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멀쩡하던 나하항이 불에 타고 있었던 것.
“아무래도 쇼켄이 반란을 일으킨 거 같습니다!”
“뭐, 뭣이?”
가바야마 스케노리는 눈을 부릅떴다.
실로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구의 왕이 반란을 일으키다니?
이렇게 되면 슈리 성에서 항거하겠다는 계획을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말도 안 된다. 겁 많은 류큐 토인들 따위가 감히 사쓰마 번에 대항한다고?”
그는 부정하고 또 부정했지만, 그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질 일은 없었다.
***
“이자가 재번봉행이란 자라고?”
“그렇습니다.”
요한은 무표정한 눈으로 포로로 잡힌 적의 수괴를 바라보았다.
가바야마 스케노리란 인물이었는데, 요한과 눈이 마주친 그는 겁에 질린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병사들은 용맹했는데 정작 우두머리는 형편없군.’
부하를 돌격시키고 자기는 혼자 나하항으로 도망치려던 모습만 봐도 가바야마 스케노리란 인물의 수준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무능한 놈은 구태여 죽일 필요는 없지.”
“그렇다면 잘 가둬놓겠습니다.”
그렇게 하라고 대답한 요한은 어느덧 가까워진 나하항을 바라보았다.
“와아아아아!”
요한은 순간 이곳이 유구가 아닌 대만이라고 착각하였다.
대만에서 받는 환대가 생각이 날 정도로 유구 시민들이 그를 열렬히 반겼기 때문이었다.
“저분이 제 형님이신 쇼켄 전하십니다.”
“그래?”
옆에서 쇼시쓰가 어딘가를 가리키더니 그리 말하였다.
사실 그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요한은 누가 유구의 왕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백여 명의 병사가 한 곳에 밀집한 채 누군가를 호위하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병사들이 호위하는 대상은 유구의 왕이지 않겠는가.
‘젊긴 하네.’
요한이 할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쇼켄의 얼굴은 젊다 못해 어려 보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그의 나이와 동갑이라고 들었는데, 10대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왕이면 나이가 많은 게 더 좋은 데 말이야.’
아슬라미에처럼 평화롭게 왕위를 양위 받는 것보다 좋은 결말은 없었다.
그런데 유구의 왕이 저리 젊으니 아마 평화롭게 양위 받는 건 어렵지 않을까 싶었다.
***
저벅저벅.
요한은 당당하게 쇼켄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갑자기 오른손을 내밀었다.
“대두국의 국왕, 김요한입니다.”
쇼켄은 이런 요한의 행동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에게는 모든 게 파격적으로만 느껴졌다.
왕이 제 입으로 직접 자신을 소개한 것부터 파격적이었다.
게다가 악수라니?
악수라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미리 귀띔을 듣지 않았다면 그는 엄청난 오해를 했을지도 몰랐다.
“···유구국의 국왕인 쇼켄이라 합니다. 이렇게 김요한 전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워낙 체격 차이가 컸기 때문일까?
둘이 악수하는 장면은 마치 삼촌과 조카가 서로 장난치는 것처럼 보였다.
요한이 어느 정도 의도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우월한 체격을 전쟁에서만 써먹는, 실용성 없는 사내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명어를 잘 쓰시는군요. 명나라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아무래도 명의 조공국이니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쇼켄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그리 말하였다.
명에 조공을 바치는 나라였단 사실이 그에게는 자부심을 느낄 만큼 대단한 일인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김요한 전하께서는 조선 출신이라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조선에서 나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제 출신은 조선이 맞습니다. 아, 유구와 조선의 관계도 썩 나쁘지 않다고 들었는데 혹시 조선어도 할 줄 아십니까?”
사실 조선과 유구의 관계에 대해서는 요한도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생각하기로 두 나라는 사이가 나쁠 이유가 없어 보였다.
일본처럼 영토를 두고 다툰 사이도 아니고, 무역과 관련해서 서로 경쟁하는 일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런 요한의 생각은 틀렸던 모양이다.
“아국과 조선의 관계가 나쁘지 않다고 하셨습니까?”
쇼켄이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선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쉽게도 조선어는 익히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까?”
사실 일본어, 명나라어, 유구어 이렇게 세 가지 언어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었다.
하여 요한은 쇼켄이 조선어를 익히지 않았다는 사실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솔직히 그가 조선을 적대하는 이유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요한은 어디까지나 조선을 이용하는 것일 뿐, 조선을 향한 애국심 따위는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유구의 명물, 슈리 성을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아, 이쪽으로 오십시오.”
화제를 바꾸고 싶었던 쇼켄은 반색한 표정을 짓고는 요한을 한쪽으로 안내해주었다.
***
슈리 성 구경이 끝나자 두 사람은 더욱 긴밀한 대화를 나누었다.
“김요한 전하께 무기 지원을 요청하고 싶습니다.”
“무기라. 조선 소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엄청난 위력을 가진 총기라고 들었습니다.”
일국의 왕 답지 않게 쇼켄은 저자세로 그와 같은 부탁을 하였다.
“몇 정이 필요하십니까?”
“유구 제도의 모든 섬을 탈환하고 사쓰마 번의 반격으로부터 단단히 지키려면 최소 이천의 병력이 필요합니다.”
이천 정을 달라는 말이었다.
당연하겠지만 이는 상당히 무리한 요구가 아닐 수 없었다.
아직 유구국은 대두국이 100척의 함대를 동원한 것에 대해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요한이 유구국을 도운 이유는 미래에 유구가 남명에 조공하기 시작하면 그때 받게 될 회사 품의 일부를 받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총기까지 지원하면 대두국의 손해는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유구가 남명의 책봉을 받는 건 불확실한 미래였으니, 대두국으로선 그 불확실한 미래에 이 이상 투자할 순 없는 일이었다.
“설마 아무런 대가 없이 이천 정을 달라 하시는 것은 아닐 거라 믿습니다.”
아무리 분업한다 해도 조선 소총을 한 정 생산하는 데 은자로 2냥 이상이 들었다.
이천 정을 지원하면 단순 계산으로 사천 냥 이상의 은자가 들어가는 셈.
하지만 총기의 가격을 원가로 추산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수출이라고 가정하면 한 정에 최소 3냥, 평균 4냥 정도는 받아야 했다.
그러면 이천 정의 총기는 8,000냥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것이다.
“남명에서 받게 될 회사 품으로 갈음하겠습니다.”
“누가 보면 이미 책봉을 받기라도 한 줄 알겠습니다.”
요한은 헛웃음을 지었다.
생긴 것만 보면 백면서생처럼 보이는 쇼켄이었다.
그런데 무슨 20세기 일제가 생각날 정도로 ‘따갚’ 정신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국가의 운명을 걸고 도박하는 셈이었다.
“구태여 무리하게 조선 소총을 구매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공격이든, 수비든 우리 대두국에 맡기시지요. 대두국은 유구의 동맹이지 않습니까?”
솔직히 8,000냥 정도야 요한에게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진심으로 유구를 동맹으로 생각한다면 그 정도는 그냥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원대한 계획을 생각하면 유구의 전력이 정도 이상으로 강해져서 좋을 게 없었다.
“···대두국에서 단독으로 사쓰마 번을 공격하겠단 말씀입니까?”
“힘을 키우기 전까지는 동맹국을 이용하란 의미입니다.”
말이 동맹을 이용하는 거지, 유구의 땅을 요한이 수복하게 되면 그 땅은 요한의 것이 되는 건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당연히 쇼켄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아 그는 안색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요한이 그를 배신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쓰마 번과의 전쟁이 이제 막 시작한 상황에서 야욕을 보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죄송하지만, 유구의 땅을 되찾는 전투에 유구의 군대도 반드시 참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는 귀국의 그 어떤 군사 행동도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쇼켄은 단호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였다.
자신의 영토를 노리는 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라 선언한 것이다.
요한은 그런 쇼켄을 향해 위압적인 눈빛을 보냈다.
산전수전을 겪은 흑기군의 장병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무슨 사람의 눈이···.’
그런 요한의 눈을 마주한 쇼켄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사쓰마에서 온갖 수모를 경험한 그였다.
언제는 사무라이들이 일본도를 들며 위협적인 행동을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그가 느끼는 공포는 그때 느꼈던 공포보다 훨씬 컸다.
하지만 쇼켄은 입술을 깨물며 애써 공포를 이겨냈다.
그러자 요한은 작게 감탄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좋습니다. 그것이 쇼켄 전하께서 생각하는 동맹이라면 저 역시 전하의 요구에 따르겠습니다.”
“그 말씀은 총기를 지원해주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쇼켄이 반색한 표정으로 물었다.
자칫하면 요한과 충돌이 벌어지려던 상황에서 오히려 무기 지원을 받게 되었으니 그로선 기쁠 수밖에 없었다.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최대한 대두국의 조건에 맞출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제가 동원한 흑기군 병력은 일천뿐입니다. 앞으로 작전을 펼치려면 일천의 숫자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그러니 유구에서 병력을 모집할 수 있게 허락해주십시오.”
“······!”
유구의 전력이 강해지는 걸 피할 수 없다면 대두국의 전력을 그 이상, 압도적으로 키우면 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