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소년의 사연
태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년의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어서였다.
반면, 소년은 몸을 움츠리며 태오를 경계했다.
경험상 잘 차려입은 신사는 결코 너그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두려운 대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 아무 짓도 안 했어요. 그냥 여기 앉아만 있었어요.”
“아니, 얘야. 그게 아니고….”
겁을 먹은 소년은 주섬주섬 물건을 챙겨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태오에 머릿속에 잠자고 있던 기억 하나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태오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사람처럼 소리쳤다.
“아! 잠깐! 이제 생각이 났다!”
“……?”
“너, 찰리 아니니? 찰리 맞지?”
소년은 놀란 표정으로 두 눈만 끔뻑였다.
“2년 전인가? 버밍엄의 탄광에서 우리 만났었잖아? 아버지가 탄광에 갇히는 사고가 있었지?”
“…….”
잠시 후, 소년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이도 그제야 기억이 난 듯했다.
“아- 네! 생각나요! 그때 저희 아버지를 위해 새로 들인 증기 펌프를 돌려주셨던… 그분이시죠?”
“하하하. 그래, 맞다. 맞아.”
경계심을 푼 소년은 진심으로 반가운 얼굴로 꾸벅 머리를 숙였다.
2년 전, 제임스 와트와 버밍엄 탄광에 갔다가 갱도에 수몰된 광부를 구해낸 적이 있었다.
그때 구해낸 광부의 10살 된 아들이 고맙다며 태오를 끌어안고 울었는데, 바로 그 아이가 ‘찰리’였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제대로 못 먹고 자란 탓에 사고 당시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이 없어 알아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어떻게 런던에 있는 거야? 버밍엄에서 이사 온 거니?”
“네.”
“아버님은? 그 사건 이후로 건강히 잘 지내시고?”
찰리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표정으로 미루어 보건대, 여전히 어려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참, 찰리야. 아저씨가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
태오가 찰리의 손에 들린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
“혹시 말이다… 네가 그 그림을 그린 거니?”
찰리는 부끄러운 듯 그림을 뒤로 숨겼다.
“그건 왜 물으시는 건지….”
“뭐라고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야. 너무 잘 그려서 그래. 네가 그린 그림 맞니?”
찰리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정말 네가 직접 그 초상화를 그렸단 말이야?”
“네. 제가 그렸어요.”
“허-”
12살 소년이 그런 수준의 그림을 그렸다니. 본인에게 확인받고도 믿기 힘든 말이었다.
찰리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아저씨께서는 제 그림을 어떻게 보셨어요? 다리 밑에 깔고 앉아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을 텐데….”
“아, 그게 말이다. 내가 이번 왕립예술원 초상화 대회에 초대받게 됐단다. 거기서 우연히 심사 중인 네 그림을 봤어.”
“아, 네.”
“혹시, 이 초상화의 모델이 아버지시니?”
“…네.”
궁금증이 풀린 태오가 찰리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봤다.
옆에 매고 있는 말린 솔이나 행색을 보아하니 굴뚝 청소일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태오는 버밍엄에서 어떻게 런던까지 오게 된 것인지 그간의 사연이 궁금했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아이의 모습에 우선 저녁부터 먹여야 할 것 같았다.
“찰리, 너 배고프지?”
“…….”
“이렇게 다시 만나게 돼서 아저씨가 너무 반갑구나. 우리 이것도 큰 인연인데, 아저씨 집에 가서 저녁이라도 먹고 가지 않을래? 아저씨 집이 이 근처에 있거든. 나중에 내가 집까지 데려다주마. 아저씨 마차 있는 데로 가자.”
저녁을 먹고 가라는 말에 찰리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자기 옷을 내려다보고는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다.
옷에 범벅된 잿가루와 흙먼지가 마차 안을 더럽힐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찰리야, 괜찮아. 마차 안이 모두 검은색이라 몇 번 털고 타면 아무 문제 없어. 그리고 좀 묻으면 어때?”
태오는 마부에게 굴뚝 청소용 장비를 짐칸에 싣도록 하고, 머뭇거리는 찰리의 손을 붙잡고서 억지로 마차에 밀어 넣었다.
* * *
마차에 탄 찰리는 무척 신기해했다.
아마도 살면서 마차란 것을 처음 타본 것 같았다.
“찰리, 그러면 지금 런던 어디에 살고 있니?”
찰리는 머뭇거리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루커리에 살고 있어요.”
“응. 세인트 자일즈 루커리에 살고 있나 보구나?”
“…네.”
세인트 자일즈 루커리(St. Giles Rookery).
코번트 가든(Covent Garden) 위쪽에 위치한 이 지역은 18세기 말 런던에서 가장 악명 높은 빈민가로 손꼽혔다.
하수도 시설이나 화장실이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아 거리에는 분변과 오물이 넘쳐 났고, 그로 인한 지독한 악취는 물론 각종 질병이나 전염병이 시시때때로 창궐했다.
불결한 위생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좀도둑부터 흉악범까지 세인트 자일즈 루커리는 각종 범죄자의 집합소로, 폭행과 살인, 방화 등이 매일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매우 위험천만한 지역이기도 했다.
“와-!”
생각에 빠져있던 태오는 찰리가 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차가 태오가 사는 메이페어(Mayfair) 지역에 들어서자 찰리가 창밖을 내다보며 탄성을 내지른 것이다.
‘메이페어’는 런던에서도 가장 부유한 지역 중의 하나로, 넓고 탁 트인 공간에 대저택과 고급스러운 타운하우스 주택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평생 빈민촌에서만 살아왔던 찰리에게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아, 런던에 이런 곳이 있다는 말만 들었는데… 정말이었네요! 진짜 집들이 너무 멋져요!”
시각에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찰리는 계속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다 어떤 집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더욱 높였다.
“와- 아저씨! 저 집을 보세요! 정말 여기서 최고로 예쁜 집이에요. 뒤에 푸른 산과 앞의 넓은 들판, 세련된 정원이 어쩜 저렇게 조화로울 수가 있을까요? 저 집을 당장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을 정도예요. 집이 어떻게 저렇게 행복한 모습으로 지어졌을까요?”
행복한 모습으로 지어졌다는 말에 태오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찰리야. 행복한 모습으로 지어진 저 집으로 우리가 곧 들어갈 거야. 그러니 내릴 준비해.”
“네?”
“저 집이 아저씨가 사는 집이란다.”
“……!”
* * *
런던 메이페어(Mayfair), 태오의 저택.
마차에서 내린 찰리는 건물과 정원을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아이라 그런지 특별한 시각적 자극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태오가 사람의 감정을 읽고 그 마음을 꿰뚫어 심리를 치료하는 것처럼, 찰리는 사람이나 사물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재주가 있어 보였다.
“주인님! 왜 이리 늦으셨…?”
마차 소리에 마중을 나온 루시가 찰리를 보고서 하던 말을 멈췄다.
“누구…?”
“루시, 지금 바로 이 꼬마 손님을 위한 저녁 좀 준비해 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거로 말이야.”
“네? 아… 네, 곧 준비하겠습니다, 주인님.”
* * *
화장실에서 나온 찰리는 세안만 조금 했을 뿐인데,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말끔해 보였다.
명석해 보이는 큰 눈에 귀티가 흐르는 호감 가는 얼굴이 그동안 검은 잿가루에 가려져 있었다.
“찰리, 배고프지? 어서 먹어.”
루시와 하녀들이 차린 음식이 식탁에 한가득 차려졌다.
입을 떡 벌린 채 음식을 바라보던 찰리는 웬일인지 포크를 들지 못하고 주저했다.
“왜 그래, 찰리? 맘에 드는 음식이 없니?”
어두운 얼굴로 힘없이 고개를 젓는 찰리였다.
순간 태오는 찰리의 표정과 몸짓에서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고 있는 감정이 읽혔다.
잘 차려진 음식을 보자 집에서 배를 곯고 있을 부모님과 동생들이 생각난 듯했다.
“찰리, 걱정하지 마. 집에 갈 때 가족들이 먹을 것도 미리 준비해 두라고 할게. 더 맛있는 걸로 싸놓으라고 말이야.”
마음을 들킨 찰리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새빨개졌다.
“부끄러워할 거 없어. 아저씨도 너만 할 때 먹을 게 없어서 많이 힘들었단다. 그래서 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해.”
“네? 아저씨가요? 아저씨는 부자 귀족이시잖아요?”
“아니야. 나도 사실은 너처럼 가난한 사람이었단다. 귀족도 아니었고. 귀족 작위는 얼마 전에 하사받은 거야.”
찰리는 놀라면서도 같은 처지였다는 태오의 말에 위안을 받는 눈빛이었다.
“이런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지금은 먼저 식사부터 해. 오늘 굴뚝 청소일에, 미술대회 발표 기다린다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움직였을 거 아니야?”
“…네.”
찰리는 그제야 앞에 놓인 빵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빵을 한 입 베어 먹은 찰리가 깜짝 놀라 했다.
“아… 너무 맛있어요, 아저씨! 세상에 이렇게 부드러운 빵은 생전 처음 먹어봐요.”
그러고는 허겁지겁 삼키듯 빵을 먹어 치웠다.
급하게 차리느라, 풍성한 식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찰리에게는 태어나 처음 맛본 진수성찬이었다.
옆에서 모자란 음식을 나르며 지켜보던 루시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찰리는 20여 분을 말도 없이 정신없이 먹기만 했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이 들어오기 전, 태오가 그간의 사연을 물었다.
“버밍엄에서 언제 런던으로 온 거니?”
“1년 전쯤에 왔어요.”
“버밍엄에서 하던 일은 그만둔 거야?”
“네. 부모님 두 분 모두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셨어요. 아버지는 그때 탄광 사고 이후로 많이 아프셨고요. 그래서 침대에서 계속 누워 지내야 했는데, 그 때문에 우리 가족의 생계였던 탄광 일자리도 잃게 됐어요.”
“저런.”
“저랑 동생이 근처 공장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면서 살아야 했죠. 하지만 공장 벌이만으로는 다섯 식구가 먹고살기에 너무 빠듯했어요.”
“…….”
“더구나 숨쉬기 힘들어하는 아버지에게 약도 사드려야 하는데, 버밍엄에서는 약을 구하기가 너무 어려웠거든요. 런던에 가야 약이 있다고….”
광산에서 아버지가 기적적으로 살아났을 때까지만 해도, 찰리 가족에게 조금은 행복한 미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역시 잔인했다.
태오가 다시 물었다.
“아는 사람도 없이 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해 가족을 부양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을 텐데?”
“마침 런던에 아버지의 친구분이 굴뚝 청소업체에서 용역 담당을 하고 계셨어요. 그분이 구빈원 등에서 아이들을 데려다 견습생으로 굴뚝 일을 시킨다면서, 벌이도 버밍엄 공장보다 훨씬 나을 거라면서 저희보고 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저랑 동생이 들어가 일하면 괜찮을 것 같아서 온 가족이 런던으로 이사 오게 된 거죠.”
석탄 채굴이 활발해지면서, 영국의 대도시에서는 나무 대신 석탄으로 난방을 하거나 공장을 돌리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었다.
그만큼 건물에는 석탄 연기를 내뿜는 높은 굴뚝이 많아졌고, 그 굴뚝 안에 낀 그을음과 잔해물을 제거하기 위해 굴뚝 청소부가 많이 필요했다.
하지만 50㎝ 정도밖에 안 되는 좁은 굴뚝 안을 몸집이 큰 성인 남성이 들어가 청소할 수가 없었기에, 몸집이 작은 5세에서 10세 사이의 소년들이 선호되었다.
찰리는 12살이라서 보통의 굴뚝 청소부 소년들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체구가 작은 덕에 일을 맡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굴뚝 청소일은 할 만하니?”
“네…. 탄광에서는 온 가족이 달려들어야 했지만, 굴뚝 청소는 저와 동생만 일하면 되니까요.”
런던으로 이사와 동생과 열심히 일한 덕분에 벌이는 조금 나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굴뚝 청소일은 건강에 무척 해로운 데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라, 계속 그 일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만약에 저나 동생이 다치거나, 아니면 일하다 사고로 죽기라도 한다면… 병든 아버지도, 어머니도, 불쌍한 동생들도 모두 거리로 쫓겨나게 되고 말 거예요.”
찰리가 고개를 떨구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어떡하든 죽지 않으려고 조심은 하고 있지만, 얼마 전에도 같이 일하던 아이 하나가 굴뚝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질식사했거든요.”
고작 12살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참담했다.
아무리 18세기라지만, 자기 죽음 뒤에 거리에 나앉게 될 가족을 걱정하고 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에 태오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도 너무 심하구나. 한쪽에서는 놀고먹으며 사치스럽고 호화롭게 사는 것이 고귀한 것인 양 대우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어린아이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단 몇 푼을 받고 목숨을 걸고 일을 해야 하고….’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할 수 없는 문제라지만, 빈곤의 문제가 너무 심각하게 다가왔다.
21세기에서 이유도 모른 채 18세기로 떨어진 자신이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디까지 도울 수 있을지 당장 답을 찾을 길이 없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서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 당장 내 앞에 있는 찰리부터라도 돕고 보자. 그리고 점점 더 확장해 나가보는 거야.’
태오는 찬찬히 찰리를 뜯어보았다.
2년 전 버밍엄의 탄광에서 처음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높은 감수성과 관찰력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아이였다.
그림도 이런 자질에서 자연스럽게 키워나간 것으로 보였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던데? 언제부터 그린 거니? 혹시 누구에게 배우지는 않았고?”
찰리는 민망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잘 그리다니요. 잘 그리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냥 탄광에서 일하면서 쉴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 석탄 알갱이로 그려보곤 한 실력이라, 제대로 그림을 배운 사람들이 보면 욕할 거예요…. 이번 대회에서 괜히 떨어진 게 아니겠죠.”
특별히 배우지도 않았지만, 타고난 재능 덕에 스스로 관찰하면서 그림을 터득한 것 같았다.
게다가 단순히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에 감정까지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했다.
“출품했던 초상화는 아버지를 그린 거라고 했지?”
“네, 건강하실 때, 광산에서 막 나오시면서 저를 보면서 웃던 모습을 상상하면서 그려봤어요.”
“상상해서 그렸다고?”
“네…. 아버지가 요즘 몸이 너무 안 좋아지셔서, 건강하실 때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그 그림을 대회에 출품해서 혹시라도 당선되면, 그러면 기운을 조금이라도 차리지 않으실까 하는 마음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상금이 나오면, 아버지 약값을 벌 수 있으니까요.”
작년 겨울, 우연한 기회로 미술대회 공고문을 보게 된 찰리는 몇 주간 틈틈이 그림을 그려 힘겹게 출품까지 마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림이다 보니 채색하는 물감이나 도구들이 필요했을 텐데, 그것들이 제법 비싸잖니? 어떻게 구한 거야?”
찰리가 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네… 헤헤. 그게 사실 제일 어려운 문제였어요.”
채색 재료를 살 돈이 없었던 찰리는 어느 부유한 상인의 집안에서 쓰다 버린 물감과 붓을 구해다가 겨우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현대였다면 부모의 사랑을 받으면서 공부나 놀이에 정신이 팔려있을 나이일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그림을 배운 적도 없는 아이가 감정이 실린 초상화를 멋지게 그려낸 재능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탁-
찻잔을 내려놓은 태오가 장난스럽게 입을 열었다.
“잘 먹었니?”
“네. 정말 살면서 제일 맛있게 먹은 식사였어요.”
“그랬구나, 그럼, 잘 먹었으면 밥값을 내야겠지?”
농담 섞인 태오의 말이었지만, 순간 찰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난한 집의 서민들은 빵 한 조각을 훔쳐도 큰 벌을 받던 시대였기에, 찰리는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태오가 연필과 종이를 가져와 찰리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내가 원하는 그림을 한 장만 그려줘. 그러면 오늘 네가 먹은 거랑 가족에게 가져갈 음식값을 모두 치른 것으로 해줄 테니까.”
“네? 정말이세요? 그림 한 장만 그리면 음식값을 대신해 주신다고요?”
태오는 찰리의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단다. 잘 그릴 필요도 없고, 평가받는 그림도 아니야. 그냥 그림 한 장만 그려주면 되는 일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