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어머니의 초상화
◈ 런던 웨스트민스터, 휴즈 백작의 타운하우스.
덜컹-
태오가 백작 부인의 방에서 나왔다. 찰리와 함께였다.
백작 부인의 초상화 작업을 위해 찰리를 데리고 온 것이다.
“찰리, 정말 백작 부인의 건강한 모습을 그릴 수 있겠어?”
백작 부인은 오랜 병으로 수척하다 못해 광대뼈가 다 드러나 있었고, 탄력 잃고 주름진 피부는 할머니처럼 보이게 했다.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난 찰리라고 하더라도, 건강한 얼굴을 그려낸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찰리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네. 뭐,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네요.”
“정말? 단순히 건강한 모습이 아니라, 아프지 않았을 지금쯤의 행복한 모습을 그려야 하는 거야. 절대 쉽지 않을 텐데?”
“물론 머리를 많이 굴려야겠지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조금 오래됐지만 젊은 시절 초상화가 있는 데다, 저는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 뼈대를 먼저 보거든요. 살이야 그 위에 붙이면 되니까요. 그러고 나서 상상을 해보면 어떤 모습이 나올지 대충 감이 와요.”
결과야 어떻든 자신감 넘치는 찰리의 태도는 기분 좋은 기대감을 갖게 했다.
“좋아. 그럼 그릴 준비하고 있어. 내가 백작 부인께도 준비하라고 말씀드릴 테니.”
“네, 대표님.”
찰리가 거실에서 화구를 챙기는 동안, 태오는 백작 부인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 * *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어린 소년이네요.”
“네, 거기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잘 먹지 못해서 또래보다 체구가 많이 작습니다. 그래서 더 어려 보이는 것도 있을 거예요.”
“아이고, 저런.”
“아무튼 찰리가 자신 있다면서, 지금 기본적인 스케치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대략 십 분 정도 걸릴 거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십 분이라는 얘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백작 부인이었다.
“네? 십 분이요? 설마 그 시간 만에 초상화를 완성한다는 말은 아니겠죠?”
태오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십분 안에 그림을 전부 그린다는 건 아닙니다. 십 분만 스케치 시간을 내주시면, 나머지는 찰리가 알아서 완성한다는 뜻입니다.”
“아니, 겨우 그 정도 스케치만으로 초상화를 완성할 수 있다고요?”
일반적으로 화가가 채색까지 갖춘 초상화를 그리는 데는 최소 일주일이 넘게 걸린다. 정성을 들이면 몇 달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흔했다.
그런데 십분 만의 스케치로 초상화를 그릴 수 있다니 이상하게 생각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네, 찰리는 기본적인 외형을 잡고 난 뒤에 자신의 기억과 상상력을 그림에 쏟아 넣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결과물들을 보면 무척 자연스러워서 저도 여러 번 놀라고 있습니다.”
태오는 회원들의 초상화를 굉장히 빠른 속도로 그리는 찰리의 뛰어난 능력에 관해 알려주었다.
“하긴… 그때 보여주신 광부의 초상화도 찰리가 상상으로 그린 아버지의 모습이라고 하셨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알겠어요. 십 분 정도야 충분히 앉아 있을 수 있습니다. 몸이 아파서 모델을 한다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는데, 한편으로는 너무 고맙고 다행스럽네요.”
“네. 그럼, 찰리를 데리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세요.”
곧 찰리가 들어오고 정말 십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만에 부인의 스케치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 나흘 뒤. 켄싱턴, 테오 무역회사.
태오가 무역회사가 있는 4층 복도로 내려갔다.
그리고 부대표실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부대표? 결혼 준비는 잘돼 가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든 사이먼이 환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아, 대표님! 하하. 어서 들어오세요.”
사이먼과 크리스티나는 다음 달 6월 말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다.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을 올릴 장소랑 웨딩드레스를 구하는 게 생각보다 참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당분간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후후.”
“아쉽네요. 우리 회사 옆 건물에 결혼식장과 의상실 등이 완비되었더라면 좀 더 수월하게 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죠. 한창 준비 중이라….”
옷이 날개란 말이 있듯이, 뜻깊은 약혼이나 결혼식에서 좋은 옷은 그 사람의 신체적 단점을 가려주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태오는 21세기 결혼정보회사를 다니면서 그런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었다.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 가장 돋보이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그 바람을 완성해 주는 것이 바로 의상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현대와 같은 기성복이 체계적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귀족과 부유한 계층을 위한 맞춤형 양장점이나 재단사들은 상당히 많았지만, 빠르게 옷을 찾고 비교하면서 입어볼 수 있는 ‘기성복’의 개념은 아직 걸음마 단계였다.
이러한 점을 눈여겨 본 태오는 결혼식 웨딩드레스부터 각종 행사나 무도회장을 위한 드레스나 의상 등을 팔거나 대여해 주는 의상 전문점을 테오 스트리트에 오픈해 운영해 볼 계획이었다.
그래서 현대와 같이 다양하고 질 좋은 기성복을 상점에서 직접 골라 입어보고 비교해 바로 구매하거나 대여할 수 있도록 할 작정이었다.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이를 위해 결혼정보회사 바로 옆 건물을 매수해 빠르게 의상실로 리모델링을 작업에 들어갔고, 이제는 제법 그럴싸한 기성복 상점으로의 외형이 갖춰지고 있었다.
총 3층의 건물로 된 의상실은 층마다 다른 분야의 기성복을 파는 형태로, 영국 어디에도 없는 초대형 규모로 운영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의상실에서 가장 중요한 전문 재단사를 구하지 못해 개업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하, 그러게나 말입니다. 뭐, 어쩔 수 없죠. 그래도 빨리 훌륭한 재단사를 구해 이 거리에 멋진 의상실이 생겼으면 합니다. 그럼 저도 자주 이용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 옷을 입고 무도회장에서 크리스티나랑 춤도 출 거고요.”
“네,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의상실이 생기면 직원 할인가로 모시겠습니다. 하하.”
도박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이먼은 이제 무역회사에서 전문경영인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몇 달 사이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굵직한 계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고, 런던 곳곳에 커피 원두 판매처가 될 최적의 상점을 물색하는 등 트와이닝사와의 대결 준비에도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었다.
“참, 부대표? 북아메리카 독립과 관련해서 시장분석은 해봤나요?”
사이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표님. 분석과 전망을 나름대로 내려봤습니다. 자세한 보고서는 내일쯤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대략 어때 보여요?”
“뭐, 식민지의 독립이 우리 영국 상인들에게는 오히려 좋은 기회라는 건 다들 인정하는 사실이죠. 전쟁이 완전히 종료되고 무역 재개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 우리 커피 무역도 아마 날개를 달 것 같습니다.”
“날개를 단다?”
“네, 북아메리카 식민지 쪽은 몇 년 전부터 이미 차보다는 커피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 국왕 폐하의 인기가 그 어느 때보다 치솟고 있어서, 폐하가 마신다는 T&S 커피에 대한 문의가 현지 커피 무역상들에게 빗발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앞으로 커피 무역은 국내는 물론 국외에도 큰 수익을 노려볼 만할 겁니다. 그러니 올해 수확이 되는 9월 이후로는 프랑스 쪽 물량을 대폭 줄이고 북아메리카 쪽으로 수출 계획을 세워야겠네요.”
“네, 그렇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 스펜서 씨로부터 받은 편지에서는 새롭게 사들인 농장들을 합하면 앞으로 3~4년 뒤부터 최소 5배 이상의 생두가 나올 것 같다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영국 내의 소비는 물론 유럽과 미국 등에서 폭발하는 수요에도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 어찌 됐든 나로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열리고 있는 셈이야.’
똑똑-
부대표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사무실 안으로 누군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안녕… 하세요?”
찰리였다.
“찰리? 여긴 웬일이야?”
태오를 발견한 찰리가 웃으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대표님도 여기 계셨군요?”
“그래. 무슨 일이지?”
“그게….”
찰리가 수줍어하며 둘둘 말린 종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게 뭐지?”
“휴즈 백작 부인의 초상화를 다 완성해서요. 부대표님께 전해드리려고요. 저녁에 가지고 가셔서 전달해 주십사하고 들렀습니다.”
“아! 그래?”
옆에 있던 사이먼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어머니 그림을 벌써 다 완성했다고?”
“네, 이번에는 조금 정성을 쏟느라 시간이 조금 더 지체됐어요. 그래도 주말을 넘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오가 그림을 조심스럽게 펼쳐 들었다.
휘리릭-
‘……!’
채색까지 끝난 완성작이었다.
“하-”
태오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머니의 초상화라는 말에, 사이먼 휴즈 자작도 얼른 다가왔다.
“어…어… 이게…?”
그림을 본 사이먼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정신없이 눈을 굴렸다.
그리고 구석구석을 그림을 살피는 그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에메랄드 빛깔의 눈동자와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볼륨 있는 속눈썹이 백작 부인의 우아한 눈매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 위로 부드럽게 아치를 그리고 있는 눈썹은 지적인 눈매와 너무나 잘 어울렸고, 오뚝한 콧날은 그림의 전체적인 중심을 잡아주며 아름다운 균형미를 뽐냈다.
적당히 도톰하고 건강한 붉은 입술은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머금은 채 행복한 감정을 은은하고 우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정말 묘한 설렘과 따뜻함을 던져주는 아름다운 초상화였다.
한참 넋을 잃고 그림을 바라보던 사이먼이 더듬거리듯 입을 열었다.
“찰리… 건강했던 우리 어머니를… 본적이… 없었지? 당연히, 당연히 그럴 텐데….”
그의 떨리는 목소리에 찰리가 불안한 눈으로 대답했다.
“네. 저번 주에 스케치하러 갔을 때 처음 뵀어요. 그래도 젊은 시절 초상화를 참고해서 그려봤는데. 부대표님… 혹시 어머님의 모습이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른가요?”
아랫입술까지 꽉 깨문 사이먼은 뭔가 감정이 북받치는 것을 간신히 참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내 눈시울이 붉어졌다.
‘…….’
태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왜 그런 건지 알 것 같았다.
‘방금 백작 부인의 초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 나만의 느낌이 아니었어. 찰리의 그림 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정이 숨겨져 있고, 무엇보다 건강한 예전 어머니의 모습에 사이먼이 어떤 큰 감동을 받게 된 거야….’
간신히 눈물을 참은 사이먼이 그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꿇고 앉아 찰리를 꼭 안아주었다.
사이먼의 뜻밖의 행동에 찰리는 영문을 몰라 했다.
“고맙다… 찰리. 정말 고마워….”
“네? 아니 뭘…?”
“우리 어머니… 어머니가 만약 아프시지 않고 건강했다면, 딱 이런 모습이었을 거야. 행복한 어머니의 미소를 찾아줘서… 그걸 다시 느끼게 해줘서, 말할 수 없이 고마워.”
“아, 정말 다행이네요. 헤헤.”
“찰리. 진짜 이 모습을 정말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른단다…. 정말 다시는 보지 못할 거로 생각하고 잊고 있었던 모습이었거든. 창피하지만, 나 지금…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걸 겨우 참고 있는 거야. 후후후.”
사진이 없는 지금의 18세기 세상에서 기억을 담아내는 수단은 그림이 유일했다.
그런데 많은 경우, 과장된 그림 속에서 실제의 감정도 왜곡되어 그 감동도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찰리의 그림 속에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살아 숨 쉬고 있었고, 그 모습을 기억하는 아들에게 말하기 힘든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심지어, 그림의 주인공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행복한 감정을 자연스럽게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광부의 초상화는 특별한 감정이 있는 대상을 그린 거라 그런 깊은 감동이 담긴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백작 부인의 초상화를 보니 그게 아니었어.’
현대에 있을 때 박물관이나 전시회장에서 좋은 그림을 보고 감탄하며 놀란 적은 꽤 있었지만, 감정이 크게 움직여서 행복감에 젖어 든 적은 거의 없었다.
그림을 그린 화가의 배경과 그림의 사연을 들어야 겨우 그 감정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감탄한 정도였다.
하지만 찰리의 그림은 벌써 두 번째 그런 감정의 파도를 경험하게 하고 있었다.
광부의 초상화를 봤을 때 그랬고, 지금 휴즈 백작 부인의 초상화에서 그랬다.
더구나 그동안 제대로 채색된 찰리의 작품을 본 적이 없어서 색깔을 칠하는 데는 자신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마음껏 물감을 쓰게 하자 놀라운 정도로 자연스럽고 안정된 색을 보여주고 있었다.
‘색감 능력도 타고났구나….’
우리는 주위에 수많은 색깔 속에서 살아간다.
이 색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기분에 변화를 만들어내고, 감정을 다르게 하며, 더 나아가 마음으로부터 생긴 육체의 병을 치료하기까지 한다.
불안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초록색을 볼 때 마음을 안정을 느끼게 되거나, 노란색을 볼 때 좌뇌가 자극받아 생각을 정리하고 정신력이 강화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제 찰리의 그림에는 기존의 따뜻한 점과 선에서 보이던 감동 외에 조화로운 색에서 오는 감정의 자극과 치유력마저 느껴졌다.
‘찰리… 찰리 베일리….’
오늘따라 이 작고 영특해 보이는 찰리라는 소년의 이름이 새삼 새롭게 다가오는 태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