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휴즈 가의 결혼식
◈ 테오 결혼정보회사, 대표실.
주말이 지난 월요일 오전.
대표실을 찾은 사이먼 휴즈 자작은 크게 흥분해 있었다.
찰리가 그린 초상화 때문이었다.
“대표님께서 우리 어머니의 표정을 직접 보셔야 했는데. 그날 찰리에게 그림을 받아서 가져갔는데 말이죠….”
퇴근 후 사이먼은 곧장 백작 부인에게 달려가 초상화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멍한 눈으로 자신의 얼굴을 보던 백작 부인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고 한다.
마치 가슴 속 깊이 꼭꼭 억눌려 있던 응어리를 덜어내기라도 하듯, 그렇게 한참을 흐느꼈다.
휴즈 백작과 자식들 또한 그림 속의 건강한 어머니를 보면서 예전의 향수에 젖어 다 함께 눈물지었다.
그날 밤.
아편을 처방받아도 늘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던 백작 부인이 실로 몇 년 만에 단잠에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아침 식사를 가족과 함께했다.
“주말 동안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는 어깨와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기분이라고 기뻐하시더군요. 신기해요. 그저 그림 하나일 뿐인데 어떻게 그렇게 달라지실 수 있는 건지.”
얘기하는 내내 사이먼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좋은 음악으로 마음의 치유를 받는 사람이 있듯이, 미술적 감수성과 예술적 창작욕이 남달랐던 백작 부인은 그림을 통해 그런 치유를 받고 자란 것 같았다.
병적으로 많은 그림을 사들였던 것도 창작 욕구를 채우기 위해 생겨난 불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좋은 그림을 봐도 창작욕이 채워지지 않았고, 까닭 모를 불안과 스트레스만이 몰려왔다.
아마도 그것이 의식과 무의식 간의 균형을 서서히 무너뜨렸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다 찰리의 그림을 보면서, 그간 결핍됐던 욕구가 충족되는 동시에, 신경계, 내분비계, 면역계로부터 나온 신경전달물질이 마음의 안정을 되찾게 해주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았다.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제 결혼식 날 온 가족이 모여서 그림을 그리자고요. 그리고 그 가족 그림은 당연히 찰리에게 부탁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환하게 웃는 사이먼의 표정에 태오의 마음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가족이 아프다는 것은 다른 가족에게도 큰 아픔인 동시에 우울한 마음을 싹트게 한다.
어머니의 병으로 수년째 함께 고통을 겪고 있던 사이먼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호전에 커다란 희망에 들떠 있었다.
물론 3년을 넘게 끌어온 백작 부인의 병세가 하루아침에 나아지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병이 예술적 감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상, 앞으로 미술 치료를 병행하면 상당히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찰리의 일이 많아지겠는 걸, 후후.’
◈ 한 달 뒤. 왓포드 지역, 휴즈 백작의 개인 예배당.
1778년 6월 말.
사이먼 휴즈 자작과 크리스티나 미첼 양의 결혼식이 왓포드에 있는 휴즈 백작의 개인 예배당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런던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은 물론, 테오 결혼정보회사와 무역회사 직원들까지도 초대되었다.
야외에서 진행된 결혼식이라 몰려오는 먹구름에 잠시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막상 식이 시작되자 축복처럼 날씨가 맑아졌다.
결혼식장을 둘러보던 태오는 몰라보게 달라진 휴즈 백작 부인의 모습에 깜짝 놀라 했다.
‘오- 정말 좋아지셨구나.’
한 달 사이에 살이 많이 오르고,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아직 건강을 완전히 되찾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 달 전과 비교해보면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즐거웠던 결혼식과 피로연이 모두 끝나고, 휴즈 집안 식구와 크리스티나가 찰리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태오의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가족 그림을 그리는 건가 보군.’
다들 행복한 미소를 띠고서 쳐다보고 있었고, 그 모습을 찰리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스케치해 나갔다.
‘찰리로서도 이런 대형 그림은 처음일 텐데 잘해낼까…?’
주로 작은 초상화 위주로 작업을 해 온 찰리였다.
그림을 잘 모르는 태오였지만, 하나의 벽을 다 채울 정도의 커다란 작품은 많은 시간과 공이 들어간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태오는 이번 기회에 찰리만을 위한 미술 작업실을 따로 마련해 줄 작정이었다.
켄싱턴 건물 3층에 있는 창 넓은 모퉁이 방에 최고급 미술 도구들을 갖추어 놓고,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해 줄 생각이다.
‘그래, 찰리는 뭔가 다를 거야. 한번 기대해 보자.’
태오는 응원하는 심정으로 스케치에 몰두하고 있는 찰리를 바라보았다.
◈ 3개월 뒤, 1778년 9월 말.
따각. 따각.
태오가 탄 마차가 커다란 판을 실은 수레를 따라가고 있었다.
수레 마차에는 찰리가 그린 휴즈 백작 가족의 그림이 실려 있었다.
며칠 전, 휴즈 백작 부부는 왓포드 지역에 머물러 있다가 3개월 만에 런던으로 돌아왔다.
큰아들의 결혼식을 치르느라 긴장했던 마음을 풀고 요양도 할 겸, 3개월간 가문 영지에서 푹 쉬다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오늘 온 가족이 모인 곳에서 드디어 찰리의 그림이 공개될 예정이었다.
덜컹- 덜컹-
앞서가는 수레 마차에는 아직 태오도 보지 못한 대형 그림이 비단 천으로 단단히 싸매어 있었다.
출발 전에 완성된 그림을 보고 싶어 미리 작업실로 내려가 보았지만, 파손의 우려 때문에 운송하는 인부들이 액자를 겹겹이 싸놓은 상태였다.
‘작업에 방해될까 한 번도 못 내려가 봤는데. 어제 몰래 볼 걸 그랬나? 정말 궁금하네. 찰리의 가족 그림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21세기에 있을 때 큰돈을 주고 예술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했던 태오였지만, 이제는 그 심정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찰리가 정성을 들여 그렸던 두 점의 초상화에 이미 마음을 뺏긴 태오는 세 번째 작품은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게다가 석 달이라는 긴 시간의 노력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그 속에서는 과연 어떤 감정이 살아 숨 쉬고 있을지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차가 휴즈 백작의 타운하우스에 도착하자,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집사가 달려왔다.
인부들은 집사의 안내를 받아 그림을 조심스럽게 들고 거실로 옮겼다.
뒤따라 들어온 태오를 휴즈 백작이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하하. 샌더슨 경. 오래간만입니다.”
“반갑습니다, 백작님.”
얼굴이 환해진 휴즈 백작이었다.
도박에 빠져 살았던 큰아들은 반년 사이에 무역회사 부대표가 되어 영국 커피 산업의 부흥을 이끌고 있었고, 원인 모를 병에 시름시름 앓던 아내는 건강을 크게 회복해 백작을 기쁘게 했다.
“부인께서 얼마나 좋아지셨는지 궁금하네요. 결혼식장에서도 몰라보게 좋아지셨던데 말입니다.”
“하하, 아마 오늘 보시면 정말 깜짝 놀라실 겁니다.”
“오- 그 정도로 좋아지셨습니까?”
“네, 네. 하하하.”
탁. 탁.
그때 2층 층계에서 휴즈 백작 부인이 내려왔다.
‘아….’
태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휴즈 백작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사람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세상에… 찰리가 그렸던… 바로 그 얼굴이잖아?’
형편없이 마르고 병들었던 부인의 얼굴을 보고서 찰리는 건강한 귀부인의 모습을 초상화로 그려냈었다.
그리고 지금.
층계를 내려오는 놀랄 정도로 아름답고 기품 넘치는 부인의 모습은 찰리가 그렸던 그 초상화 속의 얼굴 그대로였다.
“오셨어요? 샌더슨 경.”
무릎을 굽히며 인사하는 백작 부인의 모습에 넋을 잃고 바라보자, 신이 난 휴즈 백작이 자랑스레 떠들었다.
“맨날 그림만 수집하던 사람이 찰리에게 한 달 동안 그림을 배우고 익히면서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3개월간 왓포드로 내려가 찰리의 가르침대로 그림을 그리니까,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면서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보시다시피 얼굴이 예전 젊었을 때보다 더 이뻐졌지 뭡니까? 허허허.”
“어머, 당신은 무슨 그런 말씀을….”
백작 부인이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때 세워둔 액자를 발견한 휴즈 백작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오! 저게 찰리가 그린 우리 가족 그림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백작 부인도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여보, 어서 빨리 보고 싶어요!”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눈빛의 부인에게 휴즈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그래도 우리 큰아들이 와서 함께 봐야지, 허허.”
“네, 그러시죠. 아까 정리하고 바로 온다고 했으니까, 곧 올 겁니다.”
“네, 네. 하하하.”
* * *
사이먼 휴즈 자작이 집에 도착하자, 휴즈 백작 가족 모두가 거실로 모였다.
찰리의 실력을 믿고는 있었지만, 백작 부인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었다.
과거 다른 화가들이 그린 그림 속에 안 좋았던 자기 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식 날 여전히 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다 함께한 그림을 또 망치는 건 아닌지 몰라….”
걱정스러워하는 부인의 말에 휴즈 백작이 위로했다.
“무슨 그런 걱정을 하시오. 지금 이렇게 건강해졌으니, 찰리 선생을 불러 다시 그리면 될 것 아니오? 허허.”
“맞아요, 어머니. 대신 다시 그릴 때는 제 드레스를 새로 맞춰주세요. 생각해 보니 결혼식 날 제 드레스가 젤 칙칙했던 것 같아요.”
막내딸의 철없는 투정에 다들 미소 지었다.
하지만 태오는 그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하인들이 조심스럽게 비단 천을 끄르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르륵-
마침내 마지막 비단 천이 풀리면서 거실 한 가운데에 가족 그림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
“어머! 세상에!”
“대단해… 정말 대단해!”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태오 역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림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쳐흘렀고, 그날의 기쁨과 행복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만 같아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허-”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흘러나오는 태오였다.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찰리의 실력이 아직 부족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웠다.
‘정말 천재의 탄생이야. 정말 미쳤어. 신이 그린 그림이 있다면 이런 그림이 아니고 뭐겠는가….’
사람은 물론 사물 하나하나에도 신이 생명을 불어넣듯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고, 그 속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마님, 정말 신기해요!”
그때 수십 년간 휴즈 백작 집에서 가정부로 있었던 헬렌 부인이 탄성을 내질렀다.
“마님의 지금 얼굴이 그림 속의 얼굴과 완전히 판박이에요. 결혼식 때도 정말 좋아지셨지만, 지금 정도는 아니었는데… 화가는 어떻게 알고 미리 그려냈을까요? 몇 달 전 초상화도 정말 지금과 닮았지만, 오늘 가족 그림은 채색까지 아름다워서인지 지금 마님의 모습 그대로를 옮겨 놓은 것만 같아요.”
조화롭고 아름다운 그림에 넋이 나가 모두가 잊고 있었다.
정말 헬렌 부인의 말대로 그림에 그려진 백작 부인의 모습은 현재 얼굴 그대로였다.
마치 건강해진 지금의 얼굴을 보고 막 그린 것처럼 석 달 전에 그리기 시작한 찰리의 그림 속에는 지금의 아름다운 백작 부인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허허, 이거 원- 찰리 선생은 정말이지… 허허허.”
아내의 얼굴과 그림을 번갈아 비교해 본 백작은 어이없는 웃음만 흘렸고, 사이먼 자작과 크리스티나, 그리고 나머지 아들딸들 역시 놀라운지 몇 번이고 그림을 확인했다.
태오는 빙긋이 웃었다.
‘찰리. 너의 상상력은 진짜였구나. 후후’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뼈만 앙상했던 휴즈 백작 부인을 보면서 살은 그저 뼈 위에 붙은 모습이라, 상상을 통해 얼마든지 건강한 모습으로 그릴 수 있다던 찰리의 말은 정말이었다.
‘…….’
그때 커다란 그림 오른쪽 아래에 하얀색 물감으로 작게 쓰인 글귀가 눈에 잡혔다.
『찰리 베일리, 1778』
반짝이는 찰리의 서명이 날이 갈수록 더 의미 있게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