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정부군의 반격
◈ 런던 램버스(Lambeth) 궁, 임시 지휘통제실 앞마당.
새벽 3시.
램버스 궁 앞으로 약 3백여 명의 군인들이 집결해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검은 천을 몸에 두르고 탄가루를 얼굴에 까맣게 바른 상태였다.
간단한 장비 점검을 마친 후 태오가 모두가 잘 보이는 높은 곳으로 훌쩍 올라섰다.
군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오에게로 향했다.
잠시 후, 소란했던 주변이 조용해지자 태오가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우리는 운명의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역사의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들어와 있습니다!”
태오는 퇴역 장군의 조언을 받아 18세기 맞춤형 출정 연설을 준비해 두었다.
“……깃발을 높이 들고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 끝까지 싸워 이겨냅시다!
국왕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그리고 조국을 위하여!”
국왕을 위해 싸우자니. 21세기였다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겠지만, 이 시대의 병사들에게는 가슴을 끓게 하는 단골 메뉴였다.
위험에 빠진 왕을 구한다는 것은 곧 조국을 구하러 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연설을 듣는 병사들의 눈빛에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됐어. 뜨거운 감정의 동요가 올라오고 있어. 이제 마무리를 짓자.’
태오는 눈을 감고 기도하듯 부르짖었다.
“신이시여! 부디 이 용감한 이들을 지켜주소서! 제 보잘것없는 생명을 거두셔서 이들의 소중한 목숨을 구할 수만 있다면 백번이라도 기쁘게 죽겠나이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이들의 자랑스러운 군복이 뚫을 수 없는 방패가 되는 은혜를 베푸소서!
그리고 전투가 끝난 후 모두가 자랑스럽게 휘날리는 승리의 깃발을 볼 수 있게 하소서!”
태오의 기도가 새벽녘 안개를 헤치고 신성한 울림을 만들어 냈다.
임시 연대장 보직을 맡은 태오는 제대로 된 훈련도 전투 경험도 전혀 없는 다른 지휘관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최고 책임자라고 으스대는 모습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고, 말단 병사들에게조차 깍듯하게 예우했다.
특히, 듣지도 보지도 못한 위장법과 신출귀몰한 작전 계획은 많은 반란군을 상대해야 하는 병사들에게 한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했다.
무엇보다, 명예를 지키는 총알받이 전투 형태를 과감히 버리고, 어떡하든 살아남아 적에게 타격을 주는 형태의 게릴라 작전은 병사들의 큰 관심과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램버스 궁 2층 창가에서 출정식을 내려다보고 있던 퇴역 장군이 관료들에게 나직이 입을 열었다.
“샌더슨 경이 대단하긴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뭐가 말입니까?”
“사실 겁나지 않겠나? 2만이 넘는 하우 장군 휘하의 정예병들을 상대해야 하는 일이야. 그들이 장군에게 갖는 충성심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그럼에도 폐하를 구하기 위해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들 생각을 하고, 병사들까지 저렇게 싸울 수 있는 사기를 북돋고 있으니 정말 대단한 거지.”
한 관료가 모여있는 병사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병사들의 눈빛이 좀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단 며칠 사이에 자발적으로 적진에 뛰어 들어가겠다고 한 것도 신기하고요. 평소 같으면 작은 일에도 몸을 사리고 귀찮아했잖습니까?”
“까칠한 국왕 폐하도 샌더슨 경의 말에 홀딱 넘어갔다고 하지 않았던가? 확실히 저 사람의 말속에는 사람의 마음을 끄는 묘한 힘이 있긴 한 것 같아.”
“아마도 병사들에게 이번 반란군을 제압하면 많은 포상을 받는다는 걸 강조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지금은 너무 무리수야. 상대가 하우 장군이라고. 샌더슨 경의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이기기는 힘들어.”
“하지만 샌더슨 경 말대로 지원군이 도착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퇴역 장군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후- 이봐, 하우 장군이 바보도 아닌데 그걸 모르고 있을까? 아마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폐하를 잡아 요구를 관철하려 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바로 죽이려 들 걸세.
샌더슨 경이 무리하게 지금 적진으로 들어가는 것도 알고 보면 결국 국왕 폐하를 살리기 위함인데, 하우 장관이 먼저 국왕을 처결해 버리면 더는 명분도 힘도 잃을 수밖에 없을 거고 말이지.”
역사에 없던 하우 장군의 반란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인근, 반란군 지휘통제실.
오전 7시.
“…성문의 왼쪽은 제2포병연대가 맡는다. 그리고…”
반란군 지휘통제실 안에서는 하우 장군을 비롯한 각 연대의 지휘관들이 모여 세인트제임스 궁에 대한 포격 작전을 최종적으로 조율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덜컹-
문이 벌컥 열어젖히더니, 하우 장군의 전속부관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무슨 짓이야! 지금 지휘관 회의 중인 거 안 보이나!”
티모시 젠킨스 대령이 역정을 부렸다.
하지만 전속부관은 무작정 하우 장군에게 다가가 외쳤다.
“장군님! 큰일 났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정부군이 기습적으로 점거했다고 합니다!”
“뭐야?”
놀란 하우 장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게 무슨 소리야? 템스강의 방어가 뚫리기라도 했다는 말이야? 그런 얘기 없었잖아?”
“네! 아닙니다. 템스강에서는 아무런 침입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헛소리야? 그럼 그놈들이 어떻게 사원을 점거했단 말이야? 하늘에서 내려오기라도 했다는 거야?”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첩보에 따르면… 지하를 통해서 침입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지하? 지하를 통했다니? 설마 런던 하수관을 말하는 거야?”
“그렇습니다, 장군님. 하수관이나 밀수업자 등이 뚫어 놓은 지하 통로 등을 이용한 듯합니다.”
황당한 표정의 하우 장군이었다.
런던 아래로 수많은 하수관이나 다양한 지하 통로가 있다는 것은 오래전에 들어 알고 있었지만, 미로처럼 복잡한 데다 악취와 각종 오물로 범벅인 그 통로를 이동 수단으로 이용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해가 안 가는구만. 그 지하 공간은 계획 없이 마구잡이로 만들어진 통로라 연결된 길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곳을 통해서 런던 중심부로 침투했다는 거지?”
“아무래도 정부군 측에 런던 시내의 지하 통로를 잘 아는 자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쪽에는 없어? 우리도 빨리 런던 지하시설을 잘 아는 사람을 찾아내 투입해야 할 거 아니야?”
“열심히 찾아보고는 있지만, 지하 통로의 존재 자체를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우 장군이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지금 그곳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데?”
“그게….”
불과 몇 시간도 되지 않아 태오가 이끄는 정부군은 빠르게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점거했다.
갑자기 벌어진 긴급 사태에 인근 템스강과 다리를 감시하던 군사들까지 몰려들었지만, 이미 사원의 높은 곳을 접수한 정부군들이 교대로 총을 쏘며 접근을 막았고, 알 수 없는 통로로 여기저기 신출귀몰 튀어나오는 바람에 멀찌감치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머리를 감싼 채, 하우 장군이 물었다.
“정부군의 수는? 몇 명이나 된다고 해?”
전속부관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
“올라오는 보고가 여기저기 다 달라 지금으로서는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습니다. 오백여 명 정도 된다는 보고도 있고, 천여 명이 훨씬 넘어 보인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한참 고민하던 하우 장군이 지휘관들 향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일단, 세인트제임스 궁의 포격 작전은 잠시 뒤로 미룬다. 사원으로 침입한 미꾸라지 같은 놈들부터 먼저 잡아야 해.
자칫하다가 그놈들 때문에 템스강과 런던 입구에 대한 방어가 느슨해지면, 조지 왕의 지원군들이 손쉽게 밀고 들어올 빌미만 만들 수 있어.
최소한의 경비병을 제외하고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을 최대한 결집해서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로 달려가도록 해! 이놈들을 오늘 내로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네! 알겠습니다!”
* * *
각 연대에 긴급 임무를 하달한 하우 장군은 즉시 최고 지휘관 회의를 주재했다.
긴급연락을 받고 각 부서 장군들이 반란군 지휘통제실로 달려왔다.
“도대체 누구일까요? 지금 런던 인근의 정부군 중에 이런 과감한 계획을 짜고 덤빌만한 군지휘관이 전혀 없을 텐데요…?”
하우 장군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나 말일세. 지금 램버스 궁에 모인 군 출신 작자 중에 이런 기습 작전을 세울 장군이나 지휘관급은 없을 텐데.”
“네, 그렇습니다. 받은 정보에 따르면 램버스 궁에 모인 대다수가 자기 몸만 사리지 군사적 능력은 별로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나마 몇몇 퇴역 장군들이 있지만, 이번 작전을 수행할 만한 자질은 없는 양반들입니다.”
램버스 궁에 임시 지휘통제실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반란군 지휘부였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조금 신경 쓸만한 내용이라고는 반란군 편에 서지 않은 몇몇 부대원들이 템스강 다리를 통해 침투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별거 아니었다. 템스강 부두나 다리 등에는 이미 수많은 포병이 대포를 고정하고 강력한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반란군에게 별다른 위협이 될 수 없었다.
게다가 템스강을 통해 들어올 만한 런던 인근의 해군이라고는 배반자로 이름이 올라간 벤담 제독의 부대 정도였지만, 강둑을 따라 배치된 강력한 포병의 대포가 있는 한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지상에 설치된 포병은 군함의 함포보다 더 크고 강력했을 뿐만 아니라, 탄약과 기타 보급품의 탑재에 한계가 있는 함선보다 강둑 위의 포병 부대가 훨씬 유리했다.
“지금 기습 작전을 펼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제 수일 내로 지방에 있는 상비군과 민병대가 조지 왕을 구하기 위해 올라올 거라고. 그전에 빨리 조지 왕 제거 작전을 종결시켜야 해.
최대한 전력을 사원으로 집중시키라고 일선 지휘관들에게 지시 내려. 놈들을 오늘 내로 박살 내 작은 틈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네, 알겠습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가는 최고 지휘관들을 바라보면서 하우 장군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정말 누굴까… 남아있는 런던 인근의 정부군 지휘자급에서 이렇게 과감하게 결정을 내리고 덤벼들 만한 사람은 절대 없는데… 누가 이런 대담한 작전을 펼쳤단 말인가?
거기다, 일반적인 형태의 작전이 아니다. 우리가 식민지 군에게 그렇게 애를 먹었던 소규모 전 형태야….’
북아메리카에서의 악몽이 다시금 떠오르는 하우 장군이었다.
‘큰일이다. 너무 불길해. 만약 진짜 소규모 전으로 나온다면 우리가 결코 유리하다고 장담할 수가 없어. 그렇다고 갑자기 익숙하지도 않은 전투 형태로 바꿔 상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당시 영국군은 명예를 목숨처럼 여겼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이들의 치명적인 단점이 숨어 있었다.
런던 거리는 급격한 도시화로 넓은 도로와 좁은 골목길이 복잡하게 얽혀 미로가 돼버린 상태.
이런 곳은 넓은 지형에서 일렬로 서서 총을 장전해 가며 싸워나가는 라인 배틀(Line Battle)이 통하지 않는 지역이었다.
반대로 이곳 지리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게릴라 전투에 최적화된 곳이기도 했다.
하우 장군이 이끄는 반란군은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전투에서도 전통적인 라인 배틀 방식으로 싸우다가 큰 피해를 보았다. 미국 워싱턴 장군의 게릴라 작전에 휘말려든 것이다.
그럼에도 반란군의 전투방식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있었다.
몰래 숨어서 적을 공격하는 모습은 매우 비겁하고 명예롭지 못한 짓이라고 여기는 고귀한 귀족 신분의 장교들 때문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던 태오는 게릴라 전투방식을 이용해 런던 시가지를 제집 안방처럼 휘젓고 다녔다.
그리고 이런 태오의 움직임을 눈치챈 하우 장군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