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공작 가문의 친손자 (3)
◈ 인텔리젼스(Intelligence) 클럽
인텔리젼스 클럽에 태오가 들어서자 눈도장을 찍으려는 회원들로 북적거렸다.
-샌더슨 경, 잘 지내셨습니까?
-하하- 샌더슨 경? 이분은 이번에 우리 클럽에 가입한 남작님입니다. 인사 나누시죠?
-샌더슨 경, 차 한잔하시겠습니까?
-TS 커피를 못 구해 프랑스에서 아주 난리라면서요?
-왕비님께 제 아내와 딸들이 처음으로 초청을 받았는데, 뭘 사 가면 좋을까요?
반란군 진압에서 보인 대활약으로 조지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된 태오의 위세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조지 왕에게 조만간 백작 작위를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면서 귀족들 사이에서 태오와의 친분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떠올랐다.
여러 회원과 인사를 나눈 태오는 심슨 백작과 합석해 차를 마셨다.
백작에게 에드워즈 집안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였다.
심슨 백작은 에드워즈 공작 집안과는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백작님, 혹시 에드워즈 공작가의 제프리 에드워즈 경에 대해서 아십니까?”
심슨 백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네, 제프리 녀석이야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지요.”
“그럼 혹시 어떤 사유로 개럿 공작님과 사이가 벌어졌는지도 알고 계시나요?”
“그건 왜 물으시는 건지…?”
“백작님께서도 소문을 들어 아시겠지만, 에드워즈 가문의 적통 손자라고 주장하는 분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개럿 공작님의 부탁으로 그 손자를 저희 회원으로 받기로 했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데, 조사하다 보니 그 손자를 자메이카에서 데리고 온 제프리 경에 대해서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잠시 고민하던 심슨 백작이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열었다.
“뭐… 친한 친구들 사이에선 다 아는 이야기니 제가 굳이 감출 필요는 없겠네요.”
태오는 심슨 백작으로부터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개럿과 제프리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백작의 말에 따르면, 십여 년 전 제프리 에드워즈가 도박에 빠졌다가 큰 빚을 지고 돈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닌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형인 개럿 공작은 그동안 여러 번 거짓말했다는 이유로 동생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제프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지방을 전전하며 지인들에게 돈을 꾸러 다녀야 했다.
그런데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둘째 아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크게 앓았는데, 의사와 약을 구할 돈이 없던 제프리의 아내가 개럿 공작을 찾아갔다.
하지만 개럿 공작은 냉정했다.
지난번 동생이 빌린 돈을 갚기 전까지는 한 푼도 빌려줄 수 없다고 말하면서 야멸차게 내쫓았고, 결국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둘째 아들은 며칠 가지 않아 죽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온 제프리는 둘째 아들의 죽음은 모두 형의 무정함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분노하면서 큰 앙심을 품었다고 한다.
“개럿 공작님이 처음부터 그렇게 비정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제프리가 자식들이 아프다는 핑계로 그동안 여러 차례 돈을 빌려 간 전적이 있었거든요.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거짓말을 하면서 돈을 요구하니 아무리 여유가 되는 공작님이라도 돈을 빌려주고 싶으셨겠어요?
결국, 둘째 아들이 진짜 아프다는 말도 믿지 못하고 빌려주시지 않은 것이지요. 분명 제프리가 아내를 시켜 거짓으로 돈을 받아내려는 수작이라고 여긴 겁니다.”
그일 이후로 개럿 공작을 흠집 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던 제프리 에드워즈였다.
* * *
따각- 따각-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심슨 백작의 말과 지금까지 조사한 내용을 토대로 태오는 퍼즐을 하나씩 맞춰보았다.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로 여기고 있던 제프리에게 최고의 복수는 공작 작위를 얻은 형의 추락이었겠지.’
때마침 여기에 딱 맞는 공격 무기가 나타났다. 바로 진짜 친손자라고 주장하는 리오 에드워즈의 등장이었다.
자메이카를 오가는 상인들 사이에서 떠도는 그 이야기가 보통 사람 같으면 비웃고 넘어갈 이야기였겠지만, 개럿 공작을 저주하고 있던 제프리에게는 솔깃한 얘기가 아닐 수 없었다.
‘형을 몰락시키기 위해 리오의 존재가 절실했던 제프리는 설사 조금 이상한 점이 있더라도 그를 진짜라고 믿고 싶었던 거겠지.’
리오가 진짜 친손자여야 한다는 강한 열망에 사로잡혀 있던 제프리로서는 틀린 내용조차 모두 사실로 받아들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 모레 리오 에드워즈를 만나보면 보다 확실해질 거야.’
태오는 제프리의 협조를 받아 회사에서 리오와 직접 만나기로 약속했다.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지금, 그와의 만남이 엉킨 실타래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 이틀 후.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똑. 똑. 똑.
“대표님, VVIP실에 리오 에드워즈란 분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드디어 리오 에드워즈와 만나는 날.
태오는 하던 일을 급하게 정리하고서, 곧바로 1층으로 향했다.
똑. 똑.
덜컹-
VVIP 실의 문을 열자 런던을 떠들썩하게 만든 장본인이 등을 지고 앉아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하고 있던 일이 있어서요.”
정리되지 않는 덥수룩한 금발의 키 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섰다.
“아닙니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는걸요.”
그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조심스럽지만 당당한 자세로 태오를 맞았다.
리오 에드워즈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듣고 상상했던 모습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18세기에 살면서 역사적 지식이 있던 태오가 가장 중시했던 것 중의 하나가 ‘매너’였다.
아무리 돈이 많고, 권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귀족과 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매너가 무척이나 중요한 시대.
특히나 무역을 통한 상인이나 젠트리 계층에서 갑자기 큰 부를 이룩한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제는 돈으로 귀족과 일반인을 구별하기 힘든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기존의 귀족들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족으로서의 행동거지를 중시하면서 이들과 차별을 두었다.
이 때문에 예의 없고 격식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돈 많은 졸부로 취급하며 무시하곤 했다
태오가 사업을 통해 큰돈을 만지기도 전에 다른 귀족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그동안 관찰하며 갈고 닦아온 매너 덕분이었다.
학교 교육을 통해 ‘매너’가 평준화된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겠지만, 교육이라는 것이 특별한 계층에게서만 존재했던 이 시대에서 ‘매너’는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확실한 차이점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자메이카에서 살면서 평생 농장 관리인으로 살아왔다던 리오 에드워즈에게서 상류층 귀족 특유의 ‘매너’가 뚜렷이 나타났다.
물론 숙달되고 능숙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분명 아주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게 주의를 듣고 가르침을 받아온 태도가 몸에 배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수많은 귀족을 보면서 그들의 매너를 스스로 익혔던 태오의 눈에는 작은 손짓 하나에 담겨 있는 의미까지 읽혔다.
리오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매너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아주 지체 높은 가문의 귀족들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특유의 거만함까지 숨어 있었다.
평범한 자메이카 농장 관리인으로서는 절대 가질 수 없는 분위기였다.
‘허- 그렇다면, 이 젊은이가 진짜 공작의 핏줄일 수도 있다는 얘기인 건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스러운 태오였다.
* * *
가벼운 인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는 내내, 태오는 리오 에드워즈의 행동거지와 표정 하나하나까지 면밀히 살폈다.
재밌는 사실은 그의 태도뿐만 아니라, 영어 발음에서도 지체 높은 가문의 억양이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아마도 아버지의 억양을 어린 시절 자기도 모르게 습득한 것이 아닌가 했다.
‘…….’
그런데 외모는 개럿 에드워즈 공작이 말했듯이 정말 많이 달랐다.
에드워즈 가문의 사람들은 대체로 키가 작은 편이었고, 숱이 적은 짙은 갈색의 머리카락이었다.
하지만 리오는 큰 키에 밝은 금발의 머리색을 가지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으로만 본다면, 누가 봐도 에드워즈 가문의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 청년이 진짜라면 외모적인 부분은 어머니의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했다.
“런던에 처음 오신 거로 알고 있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리오가 살짝 미소를 머금고서 답했다.
“모든 게 놀라웠습니다. 정말 다른 세상이더군요. 자메이카에서 가끔 얘기는 들었지만, 런던이 이렇게 크고 발전한 곳인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어제도 로라와 함께…….”
리오는 결혼을 약속한 로라라는 여성과 함께 며칠간 런던을 돌아봤다고 했다.
얘기로만 듣고 신문과 잡지 속에서나 읽었던 런던.
부모님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도시에 온 것이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모양이었다.
‘…….’
관찰하는 내내 그의 표정과 눈동자에서는 어떠한 거짓도 나타나고 있지 않았다.
리오는 진심으로 자기의 뿌리를 알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했고, 우여곡절 끝에 런던에 오게 된 것에 마냥 들떠 있었다.
하지만 벅찬 감정의 표현 속에서도 절제가 있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도 신중하게 선택하며 조심스러워했다.
그의 언어 선택만 들어보면 절대 자메이카의 농장 관리인 수준이 아니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고 스스로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는 티가 났다.
‘외모는 분명 개럿 공작의 말대로 완전히 다르지만, 말하는 태도나 행동을 보면 기품이 넘치는 공작 집안사람이야.
개럿 공작의 눈에도 그것이 분명히 보였을 텐데, 왜 그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기꾼이라고 비난만 했을까?’
그런데 리오가 진짜 딜런 에드워즈의 아들이라면, 어린 시절 북아메리카에서 생활했어야 한다.
일단 그 문제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다.
“리오 에드워즈 경. 이제부터 제가 개인 사정을 물어도 될까요?”
잠깐 주저하던 리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께서는 자메이카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맞나요?”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리오의 표정에 변화가 왔다.
여유로웠던 모습과 전혀 다른 감정이 미세표정과 함께 생겼다가 사라졌다.
“제프리 경에게 그 얘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북아메리카에서 살았다는 기록을 찾았다고요?”
“네, 조사하다 보니 그런 기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오는 즉답을 피하고 자꾸 다른 소리를 했다.
“어디서 그런 기록을 발견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에 제가 어디서 자랐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록이라는 것도 문제가 많고요. 실제로…”
리오는 어린 시절과 관련된 질문을 일부러 회피하면서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뭔가 숨기고 있어. 태어난 곳이 자메이카가 아닌 모양인데,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건가.’
어떤 이유에서인가 마음의 문을 닫고, 그 시절로 돌아가기 싫어했다.
아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이런 경우 최대한 그 사람의 감정을 읽어 가면서 마음이 스스로 열릴 때까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즉, 심리적 안정감을 주면서 대화를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태오는 21세기 임상심리학자로 돌아가 답을 유도하기 위한 감정 공유를 시도했다.
다행히 자메이카에서 1년간 있었던 태오의 경험은 리오의 감정을 끌어내는 데 많은 도움을 줬다.
“……그렇지요. 흑인을 관리한다고 채찍질을 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쉬우니까요.”
“샌더슨 경은 정말 좋은 주인이셨군요. 우리 농장 주인님은 그래도 다른 농장주들에 비해 나은 편이었지만, 그것도 저는 무척 불편했습니다.”
태오는 의도적으로 리오와 말의 빠르기, 높낮이 그리고 동작 등을 유사하게 취해 심리적 안정을 주면서 그의 감정에 좀 더 가까이 접근했다.
태오의 능숙한 리드가 이어지자, 다소 경계했던 그의 마음이 금세 오랜 친구를 대하듯 편안한 감정으로 변해 갔다.
게다가 자메이카에서 여기까지 온 리오의 현 상황과 문제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요약해 나가는 ‘환언 기법’을 통해 대화를 풀어나가자, 그의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결국, 경께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겠군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교육이 자라는 내내 영향을 미친 것이고요.
인간이라면 당연히 자기의 뿌리를 다시 찾고 싶은 것이니까요. 그래서 제프리 경이 다소 부족한 면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같이 온 것이겠지요.”
리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네, 정확히 보셨네요. 사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제프리 에드워즈 경을 사람들이 좋지 못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저를 자메이카에서 이곳 런던으로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 작은 농장의 관리인에 불과한 저를 누가 믿고서 데려오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저를 믿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제프리 경에게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마음속 깊은 얘기까지 드러내며 리오의 마음이 열린 것을 확인한 태오는 다시 한번 중요한 질문을 꺼냈다.
“이제 어린 시절 얘기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
“그래야 그렇게 찾고 싶은 뿌리를 제대로 찾을 수가 있지 않을까요?”
“제 어린 시절 조사를 했더니 어떤 내용이 나오던가요?”
“저희가 지금까지 확인한 바로는 딜런 에드워즈 경의 진짜 아들은 자메이카에서 나고 자란 것이 아니라, 영국에서 태어났고, 다시 북아메리카로 이주를 해 그곳에서 농장을 운영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쓴웃음을 짓는 리오의 표정이 잡히고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궁금했던 얘기에 대한 답을 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셨는지 대단하시네요. 네, 그 정보가 맞습니다. …저는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북아메리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옥수수 농장에서 부모님과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
제프리에게도 일부러 말하지 않았던 세밀한 정보가 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