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공작 가문의 친손자 (4)
“……저는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북아메리카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옥수수 농장에서 부모님과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태오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청년이 작고한 벤틀리 에드워즈 공작의 친손자임을 확신했다.
‘혹시나 싶어 제프리 경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던 지명을 리오는 정확하게 알고 있어.’
게다가 누군가에게 듣고서 꾸며내는 말이 아니라 진심을 담은 본인의 얘기라는 걸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은 정말 행복했어요. 영국에서의 기억은 너무 어릴 때라 남아 있는 게 없지만, 작은 옥수수 농장을 운영했던 북아메리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의 삶은 평화롭고 소소한 기쁨을 주는 그런 곳이었지요.”
당시 옥수수는 주로 북아메리카 식민지 내에서 내수시장을 위해 소규모로 재배되었다.
그래서 흑인 노예도 몇 명 되지 않는 아주 영세한 규모의 옥수수 농장이 많았다.
리오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농장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농장 구성원 모두가 한 가족처럼 위해주면서 살았고, 그 따뜻함 덕분에 어린 시절의 기억은 무척이나 행복했었던 모양이었다.
“언제나 자상한 아버지였지만, 늘 공작 가문의 핏줄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당부하셨어요. 그래서 식사할 때도 예의를 차리게 했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 하나에도 신경 쓰도록 가르치셨죠.
어머니는 글을 모르셨지만, 제가 소리 내 책 읽는 걸 좋아하셨어요. 촛불 아래서 어머니는 뜨개질을 하시고, 저는 큰 소리로 책을 읽는 것이 하루 일과의 마지막이었죠.”
입가에 지어지는 희미한 미소가 당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대신해주고 있었다.
태오는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웠던 것 같은데, 왜 갑자기 자메이카로 가시게 된 거죠?”
리오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뭔가 감정을 추스르는 듯 힘들어했다.
그러다 침울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뗐다.
“우선… 어린 시절의 기억이고, 제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던 일이라 뚜렷이 남아 있는 기억만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말하기 힘드시면 중단하셔도 됩니다.”
차를 두어 모금 마신 리오가 그날의 끔찍했던 일을 입에 올렸다.
“8살이 되던 가을로 기억해요. 그날 저는 아버지가 새로 사 오신 동화책에 온 정신이 팔린 나머지,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바로 방으로 들어가 책을 읽고 있었죠.”
리오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길 30분 정도 지났을 때였어요. 부엌에서 아버지와 얘기를 나누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지신 거예요. 아버지의 고함에 놀라서 뛰어나갔는데… 얼마 가지 않아… 아버지마저 함께 쓰러지셨죠….”
입에 거품을 물고 호흡곤란과 경련을 일으키던 부모님들은 이내 숨이 멎었고, 리오도 얼마 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며칠간 사투를 벌이다 겨우 깨어났을 때 부모님은 이미 장례까지 마친 상태였고, 어린 리오는 근처 농장의 백인 부부 집에 들어가 얹혀살았다.
하지만 그들은 리오를 돌봐준다는 명목으로 리오의 부모가 남긴 재산을 모두 독식하고, 1년 뒤 리오를 백인 노예로 팔아 넘겨버렸다.
“토미라는 이름으로 9살에 자메이카로 팔려서 떠날 때,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웃 농장의 아저씨는 늘 저를 때리고 욕을 하며 못살게 굴었거든요.”
“토미? 이웃 농장 아저씨가 다른 가명을 써서 팔아넘긴 건가요?”
“그런 것 같아요. 그냥 앞으로 토미라고 해야 한다고 겁을 주고 윽박질렀어요. 하지만, 저는 자메이카에 도착해서는 제 이름과 성을 그대로 썼어요. 뭐, 내 이름이 뭐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흑인 노예의 경우 주인으로부터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고 성 없이 이름만 붙이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주어진 이름을 거부하는 경우 심한 매질을 당하곤 했다.
하지만 리오는 백인에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토미가 아닌 자기의 본래 이름과 성을 쓰는 데 큰 제약이 없었다.
그렇게 자메이카로 건너온 리오는 온갖 궂은일을 하면서 간신히 돈을 벌어 7년 후 해방 노예가 되었고, 23살이 될 때까지 자메이카 농장 여러 곳을 전전하며 힘들게 지냈다고 한다.
“제가 지금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의문점 때문이었어요. 점점 시간이 지나고 어른이 될수록 어떡하든 부모님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음식을 먹고 사람이 갑자기 죽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더구나 같은 음식을 먹고 가족 모두가 동시에 사경을 헤맸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부모님이 독살당한 것이라고 리오는 확신했다.
당시 가사 일을 돕던 흑인 하녀가 강력한 의심을 받았지만, 결국 증거를 못 찾고 수사는 몇 주 만에 흐지부지 끝이 났다.
현대에서도 독살 사건은 범인을 잡기 어려운 사건이기에, 이 당시 과학 지식으로 독살범을 잡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던 부모님이셨어요.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남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셨고요. 그런 착한 부모님에게 도대체 누가 그런 잔혹한 짓을 저질렀는지….”
그에게는 끔찍한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이라, 누구에게도 그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입을 여는 순간 과거의 행복과 그리고 이후의 지옥 같은 사건이 겹치면서 자신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랬던 자신이 처음 만난 태오 앞에서 이렇게 쉽게 과거의 기억을 털어놓는 것이 무척 신기한 눈치였다.
마음이 열린 리오는 꼭꼭 숨겨놓았던 과거의 일을 하나씩 풀어냈다.
“……아버지는 제가 성인이 되면 고국인 영국으로 꼭 같이 가보자고 했어요. 어머니는 싫다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죽기 전에 고향인 런던을 가보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죠.”
하지만 아버지는 끝내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성인이 된 리오는 틈만 나면 자메이카 항구로 달려갔다.
그리고 런던으로 가는 상선이나 여객선에 에드워즈 가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루려고 노력했다.
“정말 막막했습니다. 런던에 꼭 가고 싶었지만, 돈도 방법도 없었으니까요.”
18세기 후반, 자메이카에서 런던까지 가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부유한 농장주 정도는 돼야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가장 저렴한 티켓조차도 농장관리인이 수년을 모아야 가능할까 말까 한 거금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배 티켓값이 전부가 아니었다.
항해 중에 필요한 음식, 음료 또는 편의 시설 이용료 외에 통행료도 지급해야 했기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버지에게 들었던 우리 가문에 관한 이야기를 해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방법뿐이었어요.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찮은 백인 노예 출신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기꾼이라고 손가락질받을 뿐이라는 걸요. 그래도 단 한 사람이라도 제 얘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것이 사촌인 제프리 에드워즈 경이었다.
“그러면 함께 왔다는 그 아가씨와는 어떤 관계인 거죠?”
로라 로빈슨 양의 얘기를 꺼내자 리오의 얼굴이 상기됐다.
“로라는 제가 3년 전부터 일하게 된 농장의 주인집 딸입니다.”
리오는 3년 전부터 휴고 로빈슨 씨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게 되었다.
평소 다른 농장에서 일하던 리오를 눈여겨본 로빈슨 씨는 자기 농장의 관리인이 그만두자마자 리오를 웃돈을 주고 데리고 왔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데다, 계산도 빨라서 농장 운영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로빈슨 씨의 예상대로 리오는 농장에 큰 보탬이 되었다.
사탕수수와 럼주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데 남다른 자질을 보였고, 무역상들과의 거래에서는 어려운 계약 부분까지 깔끔하게 처리했다.
덕분에 큰 신임을 얻어 농장에서 좋은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로빈슨 씨의 큰딸인 로라 양과 사랑이 싹트면서 문제가 생겼다.
“처음으로 설렘을 통해 외로움을 이겨내게 해준 여자였어요. 저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생각도 깊고, 누구보다 제 아픔을 이해해 주는 착하고 아름다운 주인집 아가씨였죠.
작년 초에 제가 감기에 걸려 심하게 앓아누운 적이 있었는데, 밤마다 몰래 와서 헌신적으로 간호하는 모습에 전 로라와 평생을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고백했는데, 너무나 기쁘게 받아주었고요.”
하지만 농장주의 딸과 노예 출신 관리인의 사랑은 순탄할 수가 없었다.
평민 출신인 로빈슨 씨는 다른 농장주들이 그러하듯 뼈대 있는 귀족 가문에 로라를 시집보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이런 와중에 해방 노예 출신인 자신이 결혼하겠다고 나서면 맞아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사이, 로라는 자메이카의 한 귀족 집안과 혼사 얘기가 오갔고, 결국 결혼 날짜까지 조율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리오와 로라는 매일 밤 부둥켜안고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지만 뾰족이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이별의 시간이 정해진 운명처럼 시시각각 다가올 뿐이었다.
그러던 중 제프리 에드워즈가 자메이카에 나타났고, 뜻밖에 영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리오는 로라에게 청혼하며 자신과 함께 런던으로 가자고 애원했다.
너무나 무모한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리오가 없는 자메이카는 로라에게도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결국, 로라는 부모님께 눈물 어린 용서의 편지를 남겨둔 채, 리오와 함께 런던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얘기를 들어 보니, 정말 감당하기 힘드셨겠군요. 그동안 많이 고생스러웠을 텐데, 잘 참고 견디셨습니다.”
태오의 위로에 리오는 조용히 미소로 화답했다.
기구한 그의 삶에 깊이 동화된 태오는 이야기를 마칠 즈음엔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 * *
태오는 리오가 돌아간 후, T&S 카페 옆 도서 대여점에서 개럿 공작이 쓴 ‘나의 사랑하는 에드워즈 가를 위하여’라는 책을 빌렸다.
그리고 저녁까지 대표실에 틀어박혀 그 책을 열심히 읽었다.
신문이나 잡지에서 발췌된 내용만 보다가, 오늘은 개럿 공작의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 전체 내용을 다 읽어본 것이다.
탁-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태오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자서전 속의 글은 공작이 직접 쓴 글이 아니었다. 아마도 전문 대필작가가 개럿 공작의 이야기를 듣고 그럴듯하게 꾸며준 것 같았다.
그럼에도 글 속에는 자꾸만 뭔가를 숨기고 덮으려는 감정이 읽혔다.
비록 전문가의 글솜씨로 교묘하게 독자들을 속일 수 있겠지만, 태오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전체 글을 읽어보니 이상하네. 가문의 장자인 딜런 에드워즈가 영국을 바로 빠져나가서 사라졌다는 걸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그렇고, 확실하지도 않은 딜런의 아내에 대한 사생활 얘기를 장황하게 서술하는 부분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 책이 쓰인 시점이, 리오가 자메이카에서 자기가 공작가의 핏줄이라고 말하고 다녔을 때와 엇비슷하단 말이야… 우연치곤 시기가 너무 딱 들어맞는데?’
또, 글 속에는 표현하기 힘든 불안감과 조급함이 묻어났다.
아마도 가문의 후계자가 나타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가문의 적통 후계자가 등장한다고 해도, 작위를 반드시 뺏기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 것인지 이상했다.
내일 당장 공작을 만나서 그의 진짜 마음을 떠봐야 할 것 같았다.
◈ 다음 날. 세인트제임스, 개럿 에드워즈 공작의 타운하우스.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니요?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입니까? 그렇다면 그 젊은이가 정말 우리 가문의 사람이라도 된다는 소리요?”
회사 출근도 미룬 채, 태오는 아침 일찍 개럿 공작의 집에 와 있었다.
“증거를 모두 모은 것은 아니라서 아직 확실히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리오 에드워즈와 만나 얘기를 나눠본 결과,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조사하면서 모았던 정보와도 모두 일치했고요.”
‘정보’라는 말에 개럿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리고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아니, 무슨 정보가 일치했다는 거죠?”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것에 능한 개럿 공작이었지만, 태오의 얘기가 시작되고 난 뒤부터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혹시 공작님께서는 딜런 에드워즈가 리버풀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습니까?”
준비할 틈도 없이 바로 질문을 던지자, 잠시 당황하는 눈빛을 보이던 공작이 이내 감정을 감추었다.
“험… 그래요? 글쎄요. 당시 저는 바로 영국을 떠났다는 정보만 얻은 터라 전혀 몰랐군요. 그런데 그런 정보를 어디서 찾으신 거요?”
“그럼, 이후에 북아메리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옥수수 농장을 했다는 사실도 모르시겠군요?”
“…흠, 네, 몰랐습니다.”
틈을 주지 않고 딜런의 행적들이 이어지자 감정을 능숙하게 숨기던 그의 자세가 일순간 흐트러졌다.
눈동자의 움직임이 저번과 확연히 달랐고, 감정과 몸짓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미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개럿 공작은 딜런 에드워즈가 리버풀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과 북아메리카에서 옥수수 농장을 운영했다는 것까지 모두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이쯤에서 한 번 더 날카로운 공격이 필요했다. 공작의 확실한 반응을 보기 위해서였다.
“리오 에드워즈가 그러더군요. 자기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잘 살다가 어느 날 누군가가 음식에 독약을 탔고, 결국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요.”
태오의 말에 슬쩍 눈을 피하는 개럿 공작.
‘그다지 놀라지 않고 있어. 내 눈치를 살피면서 애써 억지로 놀란 표정을 지을 뿐.’
개럿 공작이 괜한 헛기침을 내며 반응했다.
“흠- 흠- …사실이라면 정말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청년이군요. 하지만 왠지 저는 그 사연들이 전부 거짓말 같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같은 독약을 먹었지만, 자기는 많이 먹지 않아서 겨우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리고 리오 에드워즈는 1년 뒤에 자메이카의 노예로 팔려 간 것이었고요.”
“…네?”
개럿 공작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정확히 자메이카에 노예로 팔려 나갔다는 부분에서 보인 반응이었다.
분명 그전까지 애써 차분했던 그의 감정과 몸짓이, 북아메리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자메이카로 팔려 갔다는 얘기를 듣는 순간, 극렬한 감정의 변화를 노출했다.
‘어라? 정말 몰랐다는 반응인데? 그렇다면 개럿 공작은 리오가 북아메리카에서 아버지와 함께 죽었고, 지금 런던에 있는 리오는 정말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