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돌아온 로빈슨
◈ 1780년 7월.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태오는 T&S 커피의 무서운 성장세에 발맞춰 자메이카 인근에 있는 중소형의 커피 농장을 대거 사들였다.
또한 품질 향상을 위해 커피 전문가를 생도맹그에서 데려와 재배 전문화에도 신경을 썼다.
그렇게 스펜서 씨가 중심이 된 기존의 고급 커피 시장과 가성비가 좋은 일반 커피 시장을 분리해 차별화하였고, 그에 걸맞은 원두커피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싸지만 가격에 비해 품질이 월등해진 자메이카 테오 농장의 원두는, 비싼 블루마운틴 원두커피를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 좋은 대체품이 되면서 기대 이상의 큰 호응을 얻었다.
여기에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의 대규모 노예 반란으로 커피 재배가 중단되면서,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의 공급 요구가 대폭 늘어났고, 미국 시장까지 활짝 열리면서 태오의 커피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특히 T&S 커피의 대표인 테오 샌더슨이 미국 독립의 1등 공신이었다는 뒷얘기가 퍼지면서, 미국 커피 시장에서 T&S 커피는 압도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커피가 음료 시장을 지배한 것은 영국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18세기 영국은 커피보다는 차가 절대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이 때문에 많은 은이 청나라로 유출되는 것을 국가 차원에서 걱정할 정도였지만, 커피의 급부상은 이러한 찻값 지급에 따른 국부 유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줌으로써 역사에 없던 새로운 무역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맨체스터의 방직공장 확장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본격적으로 그 성능이 발전하면서 태오는 방직공장을 확장하고 면직산업에도 대규모 투자를 감행했다.
서류철을 펼쳐 내용을 확인한 휴즈 부대표가 물음에 답했다.
“네, 지난번 대표님의 지시대로 인근 방직공장을 사들여 새로운 와트 증기기관으로 바꾸어서 가동 중인데요, 총생산량이 몇 배는 늘어나고 있는…….”
태오가 처음에 투자했던 석탄산업과 증기기관, 그리고 이후의 면직과 커피 산업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나갔다.
소모적인 상황으로 치달을 뻔한 전쟁이 조기에 끝나면서, 불확실한 경제적 방해 요소가 사라졌고, 이것이 경제발전으로 옮겨가 큰 이득을 창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본격적인 산업혁명 시기로 들어간 영국에서 태오의 사업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면서, 영국 전체의 경제 순환에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이렇게 피부로 느낄 정도의 경제적 호황이 지속되자, 결혼정보회사의 결혼 상담 건수도 몇 배로 늘어났다.
경제발전이 가지고 온 서민 생활의 안정이 결혼의 붐과도 직접 연결되었던 것이다.
태오가 운영하는 무도회장이나 결혼식장 등의 이용도 급격하게 늘었는데, 특히 서민층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는 무도회장 등을 소규모로 이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특히 성향이 맞는 남녀들을 뽑아 초대하는 형식의 무도회가 입소문을 타면서 젊은 남녀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결혼정보회사의 수익성이 눈에 띄게 좋아졌고, 이에 따라 관련 부대시설의 매출도 덩달아 대폭 오르고 있습니다.
거기다 이 일대 거리가 전부 대표님의 사업장으로 가꾸어지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 ‘테오 스트리트’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최고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결혼회사나 무도회를 찾는 수요의 증가는 테오 스트리트에 있는 기성복 매장이나 음식점, 카페 등의 사업 성장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또한 태오 회사의 주변 거리가 유명세를 치르면서, 전국의 많은 관광객이 켄싱턴으로 몰렸다.
이 때문에 가성비 좋은 숙박시설의 수요도 대폭 늘어나게 되었는데, 태오는 켄싱턴에 있던 기존의 호텔과 여관을 사들여 내부를 개조해 현대적 개념의 호텔로 재탄생시키는 일도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런던의 금융업자들 사이에서는 영국에 들어오는 수익의 절반은 태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 섞인 말이 나돌 정도였다.
당연히 은행이나 보험회사들은 이런 태오에게 어떡하든 줄을 대보려고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말씀하신 무역회사 업무에 인원이 보충되었나요?”
태오의 물음에 휴즈 부대표가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업무가 늘어나면서 그동안 채용했던 인원들도 업무 파악에 매우 낯설어하는 것 같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새로운 인원을 채용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업무에 투입되기까지는 과정이 너무 길어지고 오히려 일의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큰 걱정입니다.”
테오 무역회사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다섯 명의 직원이 전부였지만, 각종 사업을 운영하는 데 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사업 규모가 급속하게 커지면서 인원을 대폭 보강하고, 틈틈이 필요한 직원을 채용해 보고 있지만, 단순한 인력 보충만으로는 업무 수행에 한계가 있었다.
하다못해 켄싱턴에 늘어난 호텔 영업만 해도, 그곳에 일할 직원을 고용하고 교육을 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휴즈 부대표가 나간 뒤에 태오는 앞으로의 상황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교육이 정말 너무 부족한 사회다. 현대의 초등교육 정도만 확실히 받았어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그런데, 앞으로 업무는 더 많아지고 세분되면서 복잡해지게 될 거야. 그때마다 새롭게 인원을 채워서 일을 진행하는 건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게 될 거고.
사전에 이들을 확실히 교육해서 현장에 투입할 수만 있다면, 큰 무리 없이 원활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서 정말 좋을 텐데 말이야….’
현대적인 전문 교육기관의 설립이 절실해 보였다.
하지만 18세기 말에 ‘경제학’은 아직 초기 단계에 불과했고, 당연히 현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문 경제 교육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아동에 대한 초등학교 의무교육도 100년 정도 지나야 시행이 되니 전문교육기관의 부재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대학과 같은 고등교육 기관에서는 오래전부터 수학이나 철학, 과학 등과 같은 경제학 연구의 기초가 될 과목을 가르치긴 했지만, 대부분 학문으로서의 가치가 있었을 뿐, 실전에서 사용할 만한 전문화된 학과나 강좌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초등교육을 기본으로 최소한 1~2년 과정의 전문화된 교육기관을 설립할 필요가 있겠어. 처음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느 정도 교육이 되면 양질의 직원이 들어와서 훨씬 잠재력도 향상될 것이고.’
교육은 미래를 위한 가장 확실한 투자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많은 돈이 생기면 교육기관을 세워볼 생각이 있던 태오였다.
‘흠… 교육기관을 운영하려면 현대적인 전문 경제교육을 잘 이끌 만한 전문가가 필요한데…. 적당한 사람을 알아봐야겠군.’
그때 문득 맨체스터 오스본 씨의 사위이자 공장 전체 책임자인 콜린 피터슨 경이 생각났다.
그는 경제학에 탁월한 안목이 있고 프랑스로 유학까지 다녀온 데다가, 영국 내의 꽤 많은 경제학자나 교수 등과도 친분이 있어 보였다.
‘그래, 시간이 날 때 가서 만나보고, 의견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태오의 기억으로 당시 피터슨 경은 분명 천재적인 경제 교수를 얘기하면서 그의 사정을 무척 안타까워했었다.
그때는 오스본 씨 공장을 살리느라 정신이 없어서 흘려들었는데, 교육을 위한 경제전문가가 꼭 필요한 지금으로서는 다시 들어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똑. 똑. 똑.
덜컹-
루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지금 윌슨 변호사께서 1층 카페에서 급히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아, 그래? 알겠어, 곧 내려가지.”
윌슨 법정변호사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을 보니, 아무래도 리오 에드워즈 경과 관련된 이야기 때문인 것 같았다.
* * *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던 윌슨 변호사는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본론부터 꺼냈다.
“북아메리카에 있는 로빈슨 씨로부터 새 소식이 도착했습니다.”
로빈슨 씨는 윌슨 변호사에게 주기적으로 미국에서의 상황을 보내고 있었다.
런던에서 미국까지 배를 타고 가는 시간은 보통 6~8주 정도 걸리는 데 반해, 미국에서 런던까지는 빠르면 3~4주 정도면 가능했다.
북대서양의 서풍과 멕시코만의 해류 덕분이었는데, 그만큼 미국에서 받는 소식도 더 빨랐다.
“이번엔 어떤 소식이죠?”
“일단 편지를 읽어 보시죠.”
태오는 윌슨 변호사가 건넨 편지를 읽어 보았다.
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태오의 눈이 동그래졌다.
“토마스 페인 작가가 로건 작가의 소설을 보고 극찬을 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미국독립운동 초기, 미국 시민들에게 독립에 관한 인식을 들끓게 하고 고취하게 했던 인물이 바로 토머스 페인 작가.
그는 ‘상식(Common Sense)’이란 책을 써서 독립에 관한 열망을 미국인들에게 심어준 인물로 후세에 평가된다.
그런데, 미국 독립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그가 로건의 소설을 보고서, 이번에는 ‘양심(conscience)’이란 글을 써서 미국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그는 그 글을 통해, 미국인의 양심이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지를 모두가 단합하여 보여줘야만 한다고 주장하였고, 그렇게 또다시 미국 시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 사이, 로건 작가의 소설과 더불어 토머스 페인의 글은 커다란 호응을 불러일으키며 강력한 여론을 몰고 왔다.
그리고 이에 응답해 십수 년 전 딜런 농장과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자발적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편지에 적혀 있었다.
“그런데 로빈슨 씨가 주 정부에 수사를 촉구하다 답답한 나머지 탐정을 고용했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지금 미국 시민들 사이에서는 주 정부가 직접 수사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아주 뜨겁지만, 주 정부는 아직 전쟁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 이제 막 미합중국 헌법이 발포되고 연방정부를 수립하니 마니로 아주 시끄러워 수사 여건이 전혀 안 된다고 합니다.
특히 사우스캐롤라이나주는 이번 전쟁에서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참혹한 피해를 본 곳이거든요. 그래서 제대로 된 수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로빈슨 씨가 직접 실력 좋은 탐정을 고용해서 추적하고 있는 것 같고요.
아마도 곧 리오 경의 신원을 확실하게 밝혀 줄 좋은 소식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이 편지가 한 달 전에 쓴 것이니, 어쩌면 그사이에 벌써 결정적인 증거를 모았을 수도 있겠네요.”
“네, 그러면 정말 향후 진행될 소송에서 아주 유리해지겠네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준비한 만큼 개럿 공작 측도 만반의 준비를 할 겁니다. 마지막까지 혹시 모를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럼요, 대표님. 다른 정보가 들어오는 대로 기존의 미비한 점을 보강해 놓을 계획입니다.”
리오 에드워즈의 아내인 로라의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에 맞춰 로빈슨 씨가 결정적인 증거나 증인들을 찾는다면, 리오 에드워즈 부부에게 이보다 더 값진 선물은 없을 것이다.
◈ 4개월 후, 1780년 11월.
메이페어(Mayfair), 태오의 저택.
“로빈슨 씨!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건강한 외손자를 얻으신 것도 축하드리고요.”
거실에서 손자를 안고 감격에 차 있는 로빈슨 씨에게 태오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얼마나 고생이 심했는지, 살이 쑥 빠지고 두 눈이 움푹 패어 있는 그였다.
“그런데, 수사 진행이 어려운 북아메리카에서 어떻게 용의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는지 참 궁금하군요.”
“네, 솔직히 너무 힘들었습니다, 허허. 북아메리카, 아니, 이제는 미합중국이라고 불리는 그곳이 얼마나 넓고 황량한 곳인지 정말 직접 보지 않고서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할 겁니다.
거기다 전쟁의 상처로 인해 관공서가 사실상 제구실을 못 하고 있고, 온 나라가 연방정부를 구성하고 대통령이라는 것을 뽑는다고 아주 소란스러웠죠. 리오가 살았다는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모든 것이 파괴되어서 수사 자체가 어려운 여건이었고요.
그래서 제가 일일이 발품을 팔며 조사하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도, 로건 작가님의 소설책 덕분에 이 정도라도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로빈슨 씨는 태오가 부탁했던 일을 충실히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딜런 가족을 독살한 것으로 의심되던 흑인 하녀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또한 리오를 노예로 팔아먹은 것으로 추정되는 농장 주인을 잡아들이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러한 성과의 배경에는 로건 작가의 소설이 있었다.
로건의 소설은 미국에서 엄청난 화제를 뿌리며 인기몰이를 했는데, 이는 책 자체가 주는 감동도 있었지만, 토머스 페인 작가의 찬양 글이 큰 화제가 되면서 미국에서 빅히트를 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로건 작가님의 소설은 대여점에 들어서기 무섭게 팔려나갈 정도로 인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토머스 페인 작가의 극찬까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미국에서 광풍이 불었지요.
그 덕분에 많은 제보를 받아 용의자들을 찾아낼 수 있었고, 또 그 용의자들을 영국에서 수사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된 것이고요.”
로건 작가의 인터뷰와 로빈슨 씨의 노력으로, 소설 내용이 자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임을 알게 된 미국 시민들은 빠른 수사를 촉구했다.
아직 연방정부가 수립되기 전이라, 이 일의 모든 권한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정부에 있었고, 주 정부는 시민들의 거센 성화에 적극적인 수사를 약속했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난 사우스캐롤라이나는 독립전쟁에서 가장 피해가 극심했던 지역으로 정상적인 수사 활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
치안유지 활동도 근근이 이어오던 주 정부라, 수사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제보를 바탕으로 탐정들을 고용해 정말 어렵게 두 용의자를 잡아 주 정부 수사기관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을 형식적인 수사에만 그치더군요.
이러다 다 무혐의로 풀어주겠다 싶어서 제가 바로 여기저기 신문사에 투고하게 된 겁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영국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정부의 사정을 신문을 통해 접한 영국인들은 영국의 명망 있는 가문의 비극을 영국에서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태오가 직접 조지 왕을 찾아가 이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결단을 촉구했다.
“샌더슨 경 덕분에 국왕 폐하께서 직접 나서주셨기 망정이지, 자칫했으면 미국에서 그냥 그렇게 묻혀버렸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정부는 용의자들을 영국으로 이송해 달라는 조지 왕의 공식적인 제안에 반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독립 승인으로 인해 조지 왕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존경심과 지지세가 대단했기 때문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정부는 부랴부랴 소설과 관련된 일들이 진짜로 벌어진 일인지 당시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약식 조사를 벌였고, 생각보다 많은 증언이 쏟아지자 고민 끝에 조지 왕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로빈슨 씨는 손자를 어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우여곡절 끝에 용의자들을 찾아내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사건이 일어난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제대로 해결 못 한 일을 과연 영국에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더구나 용의자들이 모두 완강히 책임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라….”
“로빈슨 씨가 확실한 용의자 두 사람을 영국으로 데리고 오셨고, 지금 사건의 당사자인 리오 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거기다 이 모든 일을 뒤에서 꾸민 주인공도 영국에 있을 것으로 보이고요. 반드시 해결될 수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로빈슨 씨는 이제 푹 쉬시면 됩니다.”
사건 해결에 큰 자신감을 보이는 태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