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맞불 작전
◈ 런던 피카딜리(Piccadilly) 인근, 알맥스 클럽.
아직 이른 시간임에도 클럽 안에는 많은 귀족 부인과 숙녀들로 북적였다.
초대를 받고 온 신사들도 서로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성 전용 클럽이긴 하지만 오늘처럼 종종 명사를 초청하여 강연회를 하는 경우 남성들의 입장이 허용됐다.
‘오늘 올리비아 양도 있으면 좋을 텐데….’
태오가 클럽 안을 살피며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그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어머, 테오 샌더스 남작님!”
“샌더스 경! 안녕하셨어요?”
“오랜만에 들리셨네요?”
여러 차례의 강연으로 알맥스 클럽 회원들 사이에 얼굴이 알려진 데다, 몇 년 사이 위상이 크게 올라간 까닭에 태오를 더욱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한참을 인사를 주고받던 태오의 시선이 클럽 한편의 테이블에 멈췄다.
태오는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젊은 여성 중에 한 아가씨를 유심히 살폈다.
기억이 맞는다면 올리비아 페리 양이 확실했다.
‘올리비아 양이 맞는 것 같은데?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있었구나.’
그런데 그녀의 외모가 못 본 사이에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앳된 티를 벗고 성숙하고 아름다운 숙녀로 변신해 있었다.
‘후후, 패트릭이 안달이 날 만하군.’
태오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페리 양, 잘 지내셨어요?”
친구들과 부채질하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올리비아 페리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태오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는 표정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머! 테오 샌더슨 경!”
올리비아가 태오의 이름을 외치자,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어리둥절해했다.
그리고는 곧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갑자기 나타난 유명 인사에 그녀들 역시 많이 놀란 눈치였다.
아마도 오늘 초대를 받아 처음 클럽에 온 아가씨들 같았다.
태오가 올리비아에게 잠시 합석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올리비아와 친구들은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고, 태오는 그들과 같이 자리를 해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 * *
“늦었지만, 남작 작위 받으신 거 축하드려요.”
“네, 감사합니다.”
태오는 그동안의 안부와 여러 가지 사소한 대화를 이어가다 슬쩍 올리비아의 현 상황을 체크해 보았다.
“제가 회원 목록을 정리하고 있는데, 우연히 올리비아 페리 양이 최근에 어느 신사분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좋은 짝이 있으면 소개해 드리고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게 된 건가 싶어서 많이 아쉽더군요.”
약간은 당황한 표정의 올리비아였지만, 표정에 드러난 감정으로 보아 사실인 듯했다.
여기에 올리비아의 마음마저 넘어가 있는 상태라면, 패트릭 보가트는 기회를 잡기 어려워진다.
올리비아가 쑥스러운 미소로 답했다.
“맞긴 하지만, 아직 부모님이나 제가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니에요.”
“아, 그러시군요.”
올리비아의 표정과 몸짓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작은 호감 정도. 프러포즈했다는 남자에 대한 구체적인 애정은 드러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패트릭에게 아직 기회가 있겠어.’
그래도 적을 알아야 적에게 발목을 잡히지 않는 법.
아직은 올리비아의 연인이 아니라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위험한 상대다.
거기다 프러포즈를 받았는데 일단은 생각해 보겠다는 것은 그래도 마음이 조금은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 마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친근해지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자연스럽게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신사분이 페리 양에게 만남을 신청할 정도로 많이 빠져있나 보네요?”
대답을 못 하는 올리비아를 대신해 친한 친구가 거들었다.
“말도 마세요, 남작님! 스미스 경이 올리비아에게 정말 푹 빠져있어요. 올리비아 얼굴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더라고요, 호호.”
“무슨… 얘는 빠지긴….”
친구의 말에 민망해하며 손사래를 치는 올리비아였다.
“그냥 지금은 서로 알아가는 정도예요. 그래도 제 취향이랑 비슷해서 다행이긴 해요.”
“취향이요?”
“네, 스미스 경이 오페라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잘 부르신다고 하더군요. 짧게 몇 소절 들었는데, 일반인치고 꽤 근사하게 부르시는 것 같았고요.”
그녀의 말에 옆의 친구가 놀리듯이 말했다.
“일반인이라니? 당장 공연하셔도 될 정도였잖아? 호호.”
“에이, 그 정도는 아니시지.”
부인하는 올리비아였지만, 조금은 뿌듯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체크하던 태오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버님이신 페리 후작님께서 오페라에 굉장한 팬이시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어머- 그걸 다 기억하고 계시네요.”
“페리 양도 오페라를 좋아하시나요?”
“그럼요! 오페라는 제 삶의 가장 큰 활력소인걸요?”
태오의 기억 덕분에 한층 더 친근한 감정이 들었는지, 올리비아는 사적인 일까지 태오에게 털어놓았다.
“사실 한 달 뒤에 있을 아버지의 생신 파티 때 스미스 경이 오페라 아리아 곡을 부른다고 지금 열심히 연습 중이시거든요.
제이크 마틴이라는 유명한 작곡가 선생께 직접 개인지도도 받으면서 맹연습을 하신다고 해요.
아버지도 그 얘기를 듣고 정말 기뻐하셨거든요. 물론 저도 너무 기대되고요.”
옆의 친구들도 신나 했다.
“어머, 정말? 잘됐다. 아버님 생신 때 우리도 좋은 구경 생기겠네.”
“그러게, 나도 오페라 너무 좋아하는데, 호호.”
17~18세기 영국 음악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음악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이 당시 사교계에서는 왕족이나 귀족 외에 금융업자나 부유한 상인, 법률가 등의 신흥 부르주아들도 여기저기 생긴 극장에서 오페라를 즐기면서 고급문화를 누렸다.
현대와 같은 TV나 영화관이 없는 시대에 오페라는 감동적인 스토리와 음악이 가미된 최고의 볼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소프라노나 카스트라토 같은 뛰어난 기교와 예술성이 넘치는 이탈리아식 오페라는 대단한 관심과 인기를 얻고 있었다.
그래서 좋은 이탈리아 오페라나 뛰어난 가수가 등장하면 그 공연이나 가수를 유치하기 위해 극장들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곤 했다.
이렇게 영국이 산업발전과 더불어 음악 활동과 투자를 크게 늘리자, 독일의 ‘헨델’이나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 이탈리아의 ‘제미니아니’ 등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 영국으로 몰려와 큰 활약을 펼쳤다.
“아버님이 오페라 극장에도 많은 후원을 하신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태오의 말에 올리비아가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어머, 그것까지 알고 계세요? 맞아요. 정말 아버지는 오페라라고 하면 주무시다가도 벌떡 일어나세요.”
18세기 초, 이탈리아의 오페라는 서민적인 음악과 풍자가 강한 발라드 오페라로 변형돼 영국에서 크게 유행했었다.
특히 발라드 오페라는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 텍스트로 공연이 되었고, 덕분에 서민들에게까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 발라드 오페라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다시 이탈리아식 오페라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올리비아의 아버지 아서 페리 후작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광팬으로 좋은 작곡가나 훌륭한 소프라노, 테너가 이탈리아에서 온다면 돈을 아끼지 않고 후원할 정도로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얘기를 듣다 보니 올리비아 역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아버지 페리 후작에 못지않았다.
태오가 오페라에 관심을 보이자, 풍부한 감정과 높은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음악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이거 낭패인데. 패트릭은 음악에 큰 흥미가 없어 보였어. 아니, 오히려 음악을 싫어하는 모습이었지.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취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는 건데….’
내성적인 그와 외향적인 올리비아는 일단 성격에서부터 차이가 있었고, 음악에 관한 관심도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매우 잘 어울린다는 태오만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상반된 성향임에도 서로 잘 들어맞을 것 같은 판단이 설 때가 있다.
이럴 때는 시간을 들여 그 접점을 찾으면 의외로 좋은 결과가 생기곤 했다.
현대 사회에 있을 때도 매칭 점수상으로는 호감도가 낮게 나왔지만, 태오의 느낌을 믿고 실제 만남을 주선해 보면 예상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보여준 경우가 많았다.
태오는 이번에도 자신의 느낌을 믿고서 적극적으로 추진해 볼 생각이었다.
* * *
집으로 향하는 마차 안.
‘패트릭과 처음 만났을 때 냉정한 인상으로 인해 외향적인 성격의 올리비아 양은 분명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 못했을 거야. 하지만 두 사람의 무의식에 내재하고 있는 감정적인 성향은 아주 잘 맞아. 결국 호감도를 확 끌어 올리면 될 것 같은데….’
오늘 올리비아와의 만남에서 들었던 정보를 곰곰이 떠올려 보는 태오였다.
‘오페라를 무척 좋아하고, 생일파티 때 스미스 경이 오페라 아리아를 부른다는 것에 정말 큰 기대를 하고 있었어.
그 기대감이 제대로 충족되면 호감도는 당연히 크게 올라갈 수밖에 없겠지?’
생일잔치에 부르는 일반인의 오페라는 아마추어 수준일 수밖에 없다.
전문 오페라 가수가 아닌 이상, 그런 분위기에서 조금만 차별되는 실력을 보여줘도 생각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직접 만난 올리비아는 음악적 감수성과 흥미가 굉장히 높은 아가씨였어. 오페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어릴 적부터 음악에 익숙했고, 덕분에 타고난 예술적 감수성이 더욱 발전할 수 있었던 거지.’
맨체스터의 오스본 씨의 딸인 캐서린 오스본 양이 미술적 감수성이 풍부하였는데, 그것이 콜린 피터슨의 성향과 맞아떨어져 호감이 크게 올라간 것처럼 그런 전략이 필요해 보였다.
현재 상황에서 한 달 내로 패트릭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올리비아 페리의 아버지인 아서 페리 후작의 생일파티 때 오페라를 멋지게 불러 호감도를 올려주는 것뿐이다.
하지만 너무 강적이 등장했다.
올리비아 페리에게 프러포즈를 신청했다는 아놀드 스미스는 오랫동안 노래 부르기를 즐겨왔고, 실제로도 꽤 수준 있는 솜씨인 것 같았다.
게다가 유명 전문가에게 특별 교육까지 받으면서, 올리비아 아버지의 생일을 대비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흠… 패트릭도 음색 하나는 정말 특별한 것 같았는데… 자신감이 너무 없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주위의 놀림을 받으면서 패트릭 보가트는 자기 목소리에 깊은 열등감을 가진 듯했다.
자신감도 떨어진 데다, 노래를 피하고 살면서 입 밖에 제대로 내뱉어 본 적도 없을 테니 음치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일 가능성이 컸다.
‘어차피 상대도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아마추어 수준일 뿐이야.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다. 아직 한 달이란 시간이 주어졌으니, 되든 안 되든 부딪혀 봐야 해.’
* * *
다음 날 태오는 바로 패트릭 보가트의 집을 찾아가 그를 만났다.
그리고 아직 올리비아가 마음을 정한 것이 아님을 알렸다.
태오의 말에 패트릭은 크게 기뻐했다.
“하하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어쨌든 정말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하하-”
태오와 만난 후,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올리비아 양을 만났을 때 저렇게 밝게 웃으면서 대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연애 고수도 진심으로 좋아하는 상대가 나타나면 숙맥이 되어버리는 모습을 수없이 보아 온 태오였다.
자기 마음에 꼭 드는 매력적인 여자를 만났으니 크게 움츠러들었을 테고, 목소리의 열등감 때문에 더 경직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감 없고 차가운 얼굴로 비치게 했을 것이고.
“그렇지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어쩌면 스미스 경이라는 분에게 페리 양이 마음을 뺏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얼마 남지 않았다니요?”
“제가 얘기를 들어보니 페리 후작님의 생신 파티 때, 스미스 경이 오페라 아리아를 한 곡 불러서 축하할 계획이라더군요. 그것에 대한 기대가 아주 큰 올리비아 페리 양이었고요. 페리 양은 노래 잘하는 신사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아….”
순간 얼굴에 절망이 가득한 패트릭이었다. 그도 페리 후작이 오페라의 광팬인 걸 잘 아는 눈치였다.
“아놀드 스미스… 그 친구… 정말 잘 부르죠. 어릴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선 노래 잘하기로 유명했으니까요.”
“그래서 말인데요….”
“……?”
“기왕 이렇게 된 거, 맞불 작전으로 나가보죠?”
태오의 말에 패트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불 작전이라니요?”
“보가트 경도 후작님에게 노래 선물을 준비하는 겁니다.”
“네? 제… 제가 노래를요?”
태오의 말에 멍한 표정을 짓던 패트릭이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아요. 우리 집안은 대대로 음치 집안입니다. 음악에 소질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 않고요.”
“아니요. 제가 듣기에 보가트 경의 목소리는 정말 특색 있고 훌륭합니다. 어차피 스미스 경도 아마추어입니다. 그러니 연습해서 그럴듯하게만 불러도….”
하지만 그는 고개를 푹 숙여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전 제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도 창피해하면서 평생을 살았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놀림을 받았고요. 그런데 오페라라니요! 살면서 한 번도 해본 적도 없는 것을 한 달 만에 연습해서 후작님 앞에서요? 절대 불가능합니다! 망신만 당하고 평생 놀림감이 될 게 뻔하다고요! 못 합니다! 절대 못 해요!”
태오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무리 18세기라지만 젊은 남자가 해보지도 않고 자신 없어 하는 모습이 너무 못나 보였다.
“그래요? 그럼 뭐, 어쩔 수 없군요. 그렇게 하세요. 한 달이 지나면 올리비아 양은 이제 아놀드 스미스 경의 여자가 되어 있겠네요. 나중에 두 사람 결혼식 때 참석하셔서 스미스 부인께 축하나 해주시면 딱 맞겠네요.”
스미스 부인이라는 말에 패트릭 보가트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스미스 부인이라니요! 그건 안 돼요! 절대… 절대!”
그의 눈이 질투심으로 이글거리듯 타올랐다.
태오는 어린 동생을 다독이듯 패트릭을 부추겼다.
“그러니까 용기를 한번 내보라니까요? 처음에도 이렇게 우물쭈물하다가 기회를 다 놓쳤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도 또 놓칠 건가요? 되든 안 되든 노력이라도 해봐야 후회를 하지 않을 것 아닙니까?”
태오의 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패트릭이 결심한 듯 소리쳤다.
“맞아요! 정말 이젠… 이렇게 소극적으로 보고만 있기 싫습니다! 아주 지긋지긋하다고요! 언제까지 짝사랑으로 마음만 앓고 싶지 않습니다!”
그에게서 처음으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좋습니다. 이왕 결심이 선 거, 빨리 진행하죠? 저와 함께 갑시다!”
“네? 가다니요? 어디로…?”
태오는 의아해하는 패트릭을 무작정 이끌고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10여 분을 달려 어느 집 앞에서 내렸다.
“자, 다 왔습니다. 내리세요.”
어리둥절한 표정의 패트릭이 마차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여기가 어디죠?”
태오가 대답 없이 현관 앞으로 가더니, 도어 노커를 힘차게 두드렸다.
쿵쿵쿵-
잠시 뒤 문이 열리고 하녀가 나오자 태오가 물었다.
“바흐 선생님, 안에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