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바흐와의 만남
집 안으로 들어온 태오가 하녀에게 물었다.
“바흐 선생님은 어디 계시죠?”
“작업실에 계십니다.”
“그럼, 일 보세요. 우리가 직접 가면 되니까.”
“네, 샌더슨 경.”
태오는 패트릭과 함께 작업실로 향했다.
2층에 위치한 작업실에 도착하니 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문 사이로 중년의 한 신사가 보였다.
책상에 앉아 악보에 집중하고 있는 남자는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그는 G선상의 아리아를 작곡한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막내아들로, 독일에서 태어나 밀라노를 거쳐 런던에 정착한 음악가였다.
사실 태오가 현대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런던의 바흐’는 생각보다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서 명성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그 유명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를 가르쳐 그의 초기 작품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일설에 의하면 베토벤이 대 음악가로 칭송한 ‘바흐’가 사실은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아닌 런던에 와 있는 지금의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를 가리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태오는 치료차 왕실과 귀족 집안을 오가다 바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연배가 태오보다는 한참 위였지만, 우연히 윈저궁에서 만난 이후로 금세 친해져 서로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이렇게 된 데에는 태오의 심리적 치료가 크게 한몫했다.
당시 샬럿 왕비를 비롯해 귀족 자제들의 음악 교사 노릇을 하고 있던 바흐는 재능 없고 실력 없는 이들을 가르치느라 말 못 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작곡 실력이 예전만 못하게 되자 명성이 떨어지고, 인기도 시들해졌다.
재정적으로도 여러 어려움에 부치면서 심적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이런 시기에 만나게 된 것이 태오였다.
바흐는 태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되는 경험을 여러 차례 가졌고, 스트레스나 마음의 상처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까지 전수받으면서 한결 나은 정신으로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똑.똑.
“바흐 선생님? 오늘 수업 없는 날 맞으시죠?”
악보 작업에 심취해 있던 바흐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아니? 샌더스 경 아니세요! 언제 오셨습니까? 허허.”
바흐가 한걸음에 달려와 태오의 손을 꼭 붙잡고 반가워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그런데 중간중간 기침을 하고 숨차하는 것이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태오가 걱정스레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 안색이 안 좋아 보이시는데, 어디 아프십니까?”
“내가 요즘 샌더슨 경을 자주 못 뵈니 마음에 평온이 안 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려. 허허허.”
“네, 네. 일이 많아서 소원했습니다. 이제 자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그제야 뒤에 서 있던 패트릭 보가트를 발견한 바흐가 태오에게 물었다.
“그런데, 저 젊은이는···?”
태오는 패트릭을 불러 인사를 시켰다.
“안녕하십니까? 패트릭 보가트라고 합니다.”
순간 바흐의 눈이 살짝 치켜 떠졌다. 특이한 음색에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금세 본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 젊은 친구는 무슨 일로?”
“혹시 시간이 되시면 보가트 경에게 음악을 조금 지도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한 달 뒤에 오페라 아리아 곡 하나 정도를 불러야 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무척 바쁘신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무례를 범하게 됐습니다.”
“······.”
바흐의 표정이 썩 밝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재능 없는 귀족들이 막무가내로 찾아와 실력을 올려달라고 조르는 일이 그에게 한 두번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젠 그런 부탁이라면 신물이 날 정도로 진절머리가 나는 바흐였다.
태오도 고민 상담을 통해 바흐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패트릭의 노래 실력을 올리려면 바흐 만한 선생이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샌더슨 경이 처음으로 부탁하는 일이라 꼭 들어드리고는 싶지만···.”
“많이 바쁘신가요?”
“그게··· 오랜만에 오페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요즘 골치 아픈 일들이 많아서요.”
“아, 그러셨군요.”
바흐는 요즘 새로운 오페라 공연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더구나 이번 오페라는 그에게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바로 아버지 바흐를 위한 오페라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많은 분야에서 훌륭한 곡들을 작곡했지만, 살아생전 오페라는 단 한 곡도 쓰지 않았다.
이것은 같은 해에 독일에서 태어났던 헨델과는 정반대의 모습.
헨델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대중들의 심리를 쥐고 흔드는 인기 많은 오페라 곡을 많이 작곡한 덕에 유럽 전체에서 큰 명성을 얻었다.
반면, 독실한 프로테스탄트였던 바흐는 대중적인 오페라 곡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대신 신을 섬기는 마음으로 교회음악을 사명으로 삼고, 밤낮으로 작곡과 개인지도, 지휘 업무에만 매진했다.
먼 미래에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며 헨델의 인기를 한참 뛰어넘게 되고, 모차르트나 차이콥스키 등과 비견될 정도의 명성을 얻게 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하지만 이 당시에는 대중적인 오페라 공연 곡이 없다는 이유로 대중들 사이에서는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였다.
그런 아버지의 삶이 안타까웠던 아들 바흐는 몇 달 전부터 밤낮을 새워 작곡에 매달렸고, 결국 아버지를 위한 생애 최고의 오페라 곡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완성된 곡에 문제가 발생했다.
만들고 보니, 고음역대를 연속해서 불러야 하는 부분이 많아 굉장히 난도가 높은 작품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기존의 오페라와 달리 여성 소프라노가 아닌 남성 테너가 곡을 이끌어야 하는데, 이 곡의 아리아를 제대로 소화해 낼 만한 남자 가수가 없었다.
진성의 목소리로 극도로 높은 음역을 소화해야 하는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 데다가, 높은음을 부를 때 올바른 발음과 음색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고, 더욱이 그 속에 감정까지 싣는다는 것이 남성 테너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실력 있는 테너와 카스트라토 여러 명을 불러 시도해 봤지만, 높은 음역대에서 발음이 왜곡되면서 바흐의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그렇다고, 오페라의 내용상 여성 소프라노가 극을 이끌 수도 없었다.
결국 전체적으로 곡을 수정하기로 결심한 바흐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수정 작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샌더슨 경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기도 미안했다.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자기가 힘들 때 힘을 주고 도움을 줬던 그였기 때문이다.
‘일단은 얘기를 조금 들어주고, 상황을 봐서 오페라 공연을 핑계로 거절을 해야겠어.’
바흐가 패트릭에게 물었다.
“평소 노래를 조금 부르는 편인가요? 혹시 따로 배워 본적은?”
“아니요. 노래는 전혀 못 합니다. 배워 본 적도 없고요.”
바흐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흠, 글쎄요. 생초보자가 고작 한 달 연습한다고, 아리아를 부를 실력이 나올지는···.”
말끝을 흐리며 개인교습을 피하려는 바흐에게 태오가 솔직하게 말했다.
“사실, 음악을 전혀 모르는 보가트 경을 바흐 선생님께 먼저 데리고 온 이유가 있습니다.”
“이유라니요?”
“저는 보가트 경의 목소리가 특별해 오페라에 잘 맞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제가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제대로 구별할 안목이 없어서 이렇게 선생님께 부탁드리러 온 겁니다.”
바흐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보가트 경의 음색이 조금 특이하다는 것은 인사 나눌 때부터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음색이 특별하다고 노래를 잘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샌더슨 경은 이쪽 분야를 잘 모르시니 보가트 경의 음색이 대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깜짝 놀랄 정도의 음색을 가진 프로들이 이 세계에는 아주 즐비하지요.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몇 년 동안 피나는 노력을 해도 무대 한번 밟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목소리를 위해 거세를 단행한 카스트라토 100명 중, 제대로 된 무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은 한 명이 될까 말까였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바흐로서는 카스트라토도 아닌 일반인이 조금 특이한 목소리를 가졌다고 해서 대단한 노래 실력을 보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생님, 보가트 경이 그런 프로 가수가 되겠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음색이 조금 특별하니까 그냥 일반인들 앞에서 잘하는 정도로만 보일 수 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바쁘신 선생님께 이런 사소한 부탁으로 달려온 것이 정말 큰 실례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조금이라도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선생님의 지적사항을 잘 새겨듣고 다른 음악 선생을 찾아 그 부분을 보완해 지도받도록 해보겠습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한발 물러선 태오의 부탁에 바흐도 더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뭐··· 그 정도는 봐 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옆에서 침묵하고 있던 보가트 경도 꾸벅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표시했다.
*
테스트를 위해 피아노 앞에 앉은 바흐가 물었다.
“보가트 경, 혹시 아는 곡 있나요?”
패트릭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나 있긴 한데··· 정확하게 음도 잘 모르고 가사도···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흠, 그럼 반주 자체가 별 의미가 없겠는데···.”
피아노 앞에서 잠시 고민하던 바흐가 천천히 일어나 패트릭 앞으로 다가갔다.
“한 번 해보세요.”
“···네?”
“그냥 반주 없이 불러보시라고요. 가사 같은 건 틀려도 아무 상관 없으니까요. 나는 대충만 들어도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지 알 수 있으니, 그냥 맨 목소리로 마음 내키는 대로 불러보세요.”
“······.”
당황한 표정의 패트릭이 태오를 쳐다보았다.
태오가 어서 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줄 몰라 하던 패트릭은 할 수 없다는 듯 눈을 감고 최대한 기억을 살려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Che fa – ro ~ senza- Eu – ri – di – ce ~”
패트릭이 부르는 노래는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3막(Gluck : Orfeo Ed Euridice, Act III) 중 한 부분이었다.
이 곡은 오르페오가 아내 에우리디체를 죽음의 세계에서 구하려는 시도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신화를 바탕으로 한 내용이었는데, 1762년에 처음으로 공연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곡이었다.
‘…….’
잔뜩 기대하면서 첫 소절을 주의 깊게 듣던 태오의 입에서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하-”
정말 생각한 것 이상의 음치였다.
음악을 잘 모르는 태오가 듣기에도 음정이나 박자가 불안정했고, 음 이탈도 심했다.
거기다 긴장을 해서인지 특유의 미성마저 떨리는 소리에 묻혀 그 매력을 잃어버렸다.
‘역시 목소리만 좋은 경우였구나···. 거기다 자신감도 없어서 더 어색하게 들리고. 이거 바흐 선생님 말씀처럼 한 달 배운다고 안 될 것 같은데?’
태오는 그의 특이한 목소리 하나에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D-ove an-dro~ senza – il mil ben~”
‘아무리 봐도 저건 가르친다고 금방 나아질 수준이 아니야. 만약 생일 파티 때 스미스 경이 정말 좋은 실력으로 아리아를 부른다면 기회는 완전히 날아가 버리겠는걸?
게다가 저런 실력으로 괜히 대결했다가, 오히려 더 비교되면서 올리비아 양의 마음만 뺏기게 돼. 최대한 빨리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
잘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면서 마지막까지 용을 쓰는 패트릭 보가트가 이젠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가사마저 기억이 안 나 머뭇거리는 모습이 더 바보 같고 안타깝게 보였다.
‘그깟 사랑이 뭐라고··· 음치를 데려다가 괜한 짓을 했어.’
가사가 기억나지 않는지 패트릭의 노래는 중간에 멈췄다.
바흐가 어이없는 눈으로 패트릭을 째려봤다.
태오는 민망한 얼굴로 얼른 변명했다.
“선생님! 패트릭 경이 사실 평소에 노래를 부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집안 내력이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데 태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바흐가 황급히 피아노로 달려가 앉았다.
‘?’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패트릭 경! 아까 맨 처음 불렀던 부분! 내가 치는 음에 따라서 다시 불러보세요! 자-”
“네?”
「♪♩~ ♫ ♬♪♪~」
피아노 반주 소리에 패트릭이 어리둥절해하자, 바흐가 버럭 소리쳤다.
“뭐합니까! 반주 음에 맞춰 처음에 불렀던 부분을 다시 불러보라니까요?”
“···네? 아, 네.”
「♪♩~ ♫ ♬♪♪~」
“Che fa – ro ~ senza- Eu – ri – di – ce ~”
패트릭이 시키는 대로 다시 노래를 부르자 바흐가 호통쳤다.
“아니지! 그게 아니지! 피아노 소리를 집중해 들어야죠! 음이 달라졌잖아요? 똑같이 부르면 어떡해요? 처음보다 음을 더 높여서 불러보라고요! 피아노 음을 잘 들어보래도?”
「♪♩~ ♫ ♬♪♪~」
패트릭이 가만히 귀를 기울이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Che fa – ro ~ senza- Eu – ri – di – ce ~”
“그렇지! 바로 그거지!”
바흐가 환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순간 태오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까와 달리 음정을 제법 정확하게 잡으면서 피아노 소리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흐가 신나게 건반을 두드리며 외쳤다.
“다시! 다시 똑같이 갑니다! 음을 잘 들어봐요!”
똑같은 부분이었지만, 아까보다 음이 몇 단계는 더 올라가 있었다.
「♪♩~ ♫ ♬♪♪~」
“자- 들었죠? 이번에 두 옥타브 더 올라갑니다! 집중해서 불러봅시다! 집중해요! 반주 음을 따라가서 하나, 둘 셋~”
「♪♩~ ♫ ♬♪♪~」
“Che fa – ro ~ senza- Eu – ri – di – ce ~”
“그렇지! 그렇지! 음을 잘 찾는구먼!”
태오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졌다.
훨씬 높아진 옥타브였음에도 패트릭의 맑고 높은음이 아주 쉽고 부드럽게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그냥 듣기에도 부담스러울 만큼 높은음이었는데, 패트릭은 정말 부드럽게 숨을 쉬듯 손쉽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낮은 음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였다.
「♪♩~ ♫ ♬♪♪~」
“Che fa – ro ~ senza- Eu – ri – di – ce ~”
바흐는 눈을 꼭 감고서 패트릭의 노래에 맞춰 연신 머리를 흔들며 피아노 건반을 쳐댔다.
늘 축 처져있던 바흐에게서 처음으로 보는 열광적이고 생기 넘치는 예술가의 모습이었다.
바흐가 이번에는 음을 몇 단계나 더 높였다.
「♪♩~ ♫ ♬♪♪~」
“들었죠? 이 소리를 맞춰 봐요. 한번 해봅시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한 번에 올려보는 겁니다. 아까보다 더, 더! 올려봅시다. 이 음 들리죠? 그대로 쭉- 밀고 올라가는 겁니다! 쭉- 올려봐요! 쭉-!”
「♪♩~ ♫ ♬♪♪~」
“Che fa – ro ~ senza- Eu – ri – di – ce ~”
“브라보! 브라보! 으하하하-.”
바흐의 입에서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태오 역시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크게 내뱉었다.
“와-!”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분명 여성 소프라노의 소리보다 몇 단계 더 높은 것 같았다.
배에 힘을 주고 부드럽게 올리는 소리였지만, 그의 입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고음이 선명하고 깨끗하게 울려 퍼졌다.
게다가 그렇게 높은 음을 내고서도 아직 여유가 느껴질 정도로 편안하게 들렸다.
태오가 재빨리 바흐의 반응을 살폈다.
바흐는 황홀경에 취한 사람처럼 고음에 맞춰 목을 길게 빼고 온몸을 앞뒤로 들썩이며 소리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
간단한 테스트가 끝나고 셋이 모여 차를 마셨다.
오늘 패트릭이 찾아오게 된 자세한 사정을 전해 들은 바흐가 되물었다.
“그러니까 한 달간 아리아를 배우시려고 하는 이유가, 아서 페리 후작님의 생신 잔치에서 좋은 점수를 따서 그 따님의 마음을 사로잡고 싶다는 거란 말이죠?”
직설적인 물음에 패트릭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도와주신다면 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그의 대답에 빙긋 미소를 짓던 바흐가 이번에는 태오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가만히 보면 샌더슨 경은 늘 꼭 필요할 때 제게 큰 도움을 주시는 것 같군요.”
“네? 그게 무슨···?”
“사실, 오늘 저는 제가 심혈을 기울여 아버지를 위해 만들었던 오페라 곡을 대폭 수정하려 했습니다. 곡은 정말 맘에 들었지만, 정작 그 곡을 부를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었거든요.”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제가 지은 오페라 곡이 닿게 하고 싶었는지, 너무 지나치게 높은 테너 곡을 만들어 버린 겁니다. 그러다 보니 그 어떤 카스트라토가 와도 부르기 쉽지 않은 곡이 돼버린 것이죠.
하지만 곡의 음을 바꾸는 순간 원래 계획했던 감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동안 수많은 가수를 찾아봤지만, 사람이 부르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곡이란 소리까지 듣게 되었고, 결국 포기하게 되었죠.
그래서 오늘부터 곡을 대폭 수정하려고 했었습니다.”
“···네.”
“그런데 제가 이렇게 힘들 때, 예전에 그랬듯이 샌더슨 경이 다시 큰 도움을 주시네요, 허허. 이렇게 대단한 테너를 데리고 오셨으니.”
크게 당황하는 패트릭이었다.
“선생님? 테너라니요? 제가 이해를 잘 못 한 건지 모르겠지만··· 설마 선생님의 오페라 곡을 저보고 부르라는···?”
“네, 맞습니다. 그걸 꼭 부탁드리고 싶네요.”
“선···선생님? 농담이시죠? 저는··· 그냥 일반인입니다. 오페라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습니다. 악보조차 읽을 줄 모르고요. 지금 너무 저를 과대평가···”
바흐가 웃으며 말을 끊었다.
“진짜 천재는 자기가 천재인 줄 모르는 법이죠.”
“천···천재요?”
“악보를 읽지 못해도 천재는 감각을 가지고 쉽게 해내 버립니다. 그래서 천재라는 겁니다. 아까 반주에 맞춰 아주 정확하게 음을 찾아내고 따라오더군요. 음색도 음감도 천재라고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습니다.”
“말도··· 안 됩니다. 제가 음악에 자질이 있다니요···.”
“일단 후작님의 생일 파티에서 하는 애들 장기자랑 정도는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완수해드리겠습니다. 그날 오신 모든 분이 패트릭 경에게 푹 빠질 수 있도록 말이죠. 후작님의 따님은 말할 것도 없고요.”
“네? 그게 정말이세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6개월 뒤에 있을 제 공연에서 한 번만 이 오페라의 테너 역할을 맡아주십시오. 이번에는 제가 부탁드리는 겁니다. 단 한 번만요.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패트릭이 하얗게 질려 대답했다.
“말도 안 돼요. 제가 무슨 오페라를···”
“이 곡은!”
단호한 표정으로 바흐가 말을 이었다.
“패트릭 경이 아니면 이 세상 그 누구도 부를 수 없는 처음이자 마지막 오페라가 될 겁니다. 제 아버지를 위하여, 한 번만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고개를 숙여 정중히 부탁하는 바흐를 패트릭과 태오가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수많은 프로 성악가를 다루는 오페라의 대부가 노래를 불러달라고 이렇게 고개까지 숙이다니···.
그저 속성 과외를 받아볼 목적에 온 곳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