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대결 전야
태오가 추천한 곡을 바흐가 연신 중얼거렸다.
“행복의 그늘 아래… 행복의 그늘 아래라….”
영화 ‘파리넬리’에서 형 리카르도의 지휘 아래 파리넬리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주인공의 환상적인 고음에 관객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데, 여기서 나온 노래가 바로 ‘행복의 그늘 아래(Ombra fedele anch’io)’라는 곡이었다.
잠시 고민에 잠겼던 바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흠… 이다스페(Idaspe)에서 행복의 그늘 아래(Ombra fedele anch’io)는… 그 유명한 카스트라토 가수, 파리넬리가 불러 유명해졌던 곡 아닙니까?”
“네, 맞습니다. 제 생각에 고음을 내는 패트릭 경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말이죠.”
파리넬리는 40여 년 전 런던에서 3년 정도 머무르며 공연을 했었다.
그리고 1737년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극장에서 더는 그를 볼 수 없었다.
태오가 활동하고 있는 1781년에도 파리넬리는 여전히 살아 있었지만, 이제 70대 후반에 접어든 그를 기억하고 있는 일반 대중은 거의 없었다.
녹음 시설이 없던 시절이라, 파리넬리가 젊은 시절 런던에서 불렀다던 오페라는 이젠 입에서 입으로 간간이 전해지는 전설로만 남아 있었다.
바흐 선생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그래요, 그래. 왜 내가 그 곡을 생각 못 했을까? 패트릭 경에게 그 아리아가 딱 맞겠네요! 후후.
파리넬리가 1옥타브 ‘도’음에서 4옥타브 ‘도’음 (C3에서 C6)까지의 음역을 흔들림 없이 똑같은 음색과 음량으로 냈다고 알려져 있죠.
따라서 그 곡을 잘 소화하기 위해서는 후렴 부에서 일정하고 안정적인 고음의 오르내림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비록 패트릭 경은 파리넬리 정도의 고음은 안 나온다고 하더라도, 상당히 높은 음에서 안정적으로 소리를 유지하고 조절할 수 있으니 얼추 비슷하게 소리를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비슷하게만 노래를 불러도 공연은 대성공이겠죠.”
“패트릭 경은 어디까지 올라가죠?”
“글쎄요. 지금까지 보면 최소한 2옥타브는 무난하고, 3옥타브도 조금 더 연습해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웬만한 카스트라토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수준이죠.
뭐, 물론 파리넬리만큼의 자연스러운 고음을 내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일반 남성이 그 소리를 비슷하게라도 내면 파티장은 아마 발칵 뒤집힐 겁니다, 허허.”
이 당시 프로 가수들이 2옥타브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정도였고, 소프라노들이 3옥타브 ‘라’음(A5)을 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된 일반인 남성이 2옥타브를 넘어 3옥타브의 자연스러운 소리에 접근했다고 하니 대단한 자질이 아닐 수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한 달 만에 오페라 가수 수준이라니… 굉장하네요.”
“네, 정말 대단한 재능인 거죠. 그래서 제가 이번에 지은 오페라 곡의 고음역 부분도 4개월 정도만 연습하면 큰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아직 전부 불러본 적은 없지만, 고음에 어려운 파트만 시험 삼아 불러봤는데, 크게 힘들어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아마추어다 보니 전체 곡을 부르기 위해 힘을 잘 배분해야 하고 고음도 여전히 조금 불안정하지만, 요령을 좀 더 익히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고요.”
“다행이네요.”
“허허, 아니, 그나저나, 샌더슨 남작님께서는 음악을 잘 모르신다더니 어떻게 파리넬리를 다 알고 계십니까? 남작님이 태어나기도 전의 전설적인 얘기일 텐데?”
“예전에 우연히 파리넬리의 생애와 음악 활동에 대해 감동스럽게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얘기가 머릿속에 남아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이 곡을 패트릭 경이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요.”
“그러셨군요. 그런데, 이거… 왠지 그냥 생일 파티장에서 듣기에는 너무 아까울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하지만 패트릭 경에게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도 할 테니 제가 잘 도와드려야겠죠.
그나저나 페리 후작님이 아주 좋아하시겠는데요? 예전에도 후작님이 파리넬리의 오페라를 직접 들어보지 못한 걸 늘 한이라고 하는 소리를 몇 번 하셨거든요. 허허, 이번 생신 공연 때 어느 정도는 소원 성취를 하시겠네요, 후후. 그날 샌더슨 남작님도 오실 거죠?”
“네, 물론입니다. 너무 궁금하네요. 과연 어떤 아리아 곡이 나올지.”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하하-”
태오는 기분이 묘했다.
파리넬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와서 오페라의 감동을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영화 속에서 보면 파리넬리의 노래를 듣고 격정에 휩싸인 관객들이 흥분하다 못해 실신하기까지 했는데, 과연 실제로도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게다가 현대 영화 속에서의 파리넬리의 목소리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소리.
즉, 일반 남성 테너보다 특별히 더 높은 음역을 내는 카운터테너와 여성 소프라노의 소리를 디지털로 합성해 만든 가짜 소리였다.
하지만 현대에는 카스트라토가 어떻게 노래했고, 그 훈련법이나 발성법이 어때했는지 제대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 없어 실제와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태오는 일반 카스트라토를 능가한다는 패트릭이 부르는 아리아가 무척 궁금했다.
‘과연… 패트릭이 어떤 소리를 들려줄까?’
◈ 며칠 뒤.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인근, T&S 커피 3호점.
내일이면 드디어 페리 후작의 생일날.
그동안 패트릭은 바흐 선생이 그의 목소리에 맞게 편곡한 ‘행복의 그늘 아래(Ombra fedele anch’io)’라는 곡을 열심히 연습했다.
태오는 연습실에 들러 노래를 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은 생각에 꾹 참았다.
대신 연습이 다 끝난 마지막 날, 런던 중심에 있는 자신의 3호점 노상 카페에 두 사람을 불러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다.
그윽한 T&S 오리지널 원두커피 향을 느끼면서 태오가 물었다.
“패트릭 경, 이제 연습은 다 마치신 거죠?”
패트릭 보가트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네. 열심히 한다고 하긴 했지만, 왜 이렇게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지…. 딱 일주일만 더 연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자신 없는 대답에 바흐 선생이 고개를 저었다.
“샌더슨 경,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조금 실수해도 아마 사람들은 크게 환호할걸요? 껄껄.”
바흐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패트릭 경? 선생님께서 이렇게 자신만만할 정도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요?”
“선생님께서는 아놀드 경의 실력을 몰라서 그러시는 겁니다. 아놀드 경은 정말… 가수급이거든요.”
그렇게 세 사람이 내일 있을 공연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이고, 이거 바흐 선생님 아니십니까?”
바흐가 고개를 돌려 누군가 확인하더니, 양미간 사이로 짜증의 미세표정이 뚜렷이 잡혔다.
“어, 그래. 흠… 제이크구만. 그간 잘 지냈나?”
‘제이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태오는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제이크 마틴.
태오의 기억이 맞는다면 그는 현재 런던 오페라 극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젊은 작곡가이자 공연기획자였다.
바흐가 이제 지고 있는 태양이라면 제이크 마틴은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서고 있는 젊은 스타 작곡가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내일 페리 후작님 생신 때, 선생님의 제자가 아리아 곡을 부른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의 거짓된 눈매와 입꼬리에서는 얄미운 비웃음이 가득했다.
그는 이미 사연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묻고 있었다.
하지만 바흐 선생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뭐, 그렇게 됐네. 보아하니 자네 공연 다음에 내가 하게 될 것 같더군.”
“하하- 혹시 순서를 먼저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괜히 제가 먼저 했다가 선생님 공연이 너무 묻히시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돼서요. 더구나 아리아 곡을 부른다는 사람에 관한 얘기를 조금 들어보니… 크큭.”
무슨 얘기를 들었는지 그는 말을 잇지 못한 채 키득거렸다.
아마도 패트릭 보가트 경에 관한 얘기를 누군가에게 들은 모양이었다.
‘…….’
그러고 보니 패트릭 경의 표정도 무척 좋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에 태오가 슬쩍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 야외 테이블에 건장한 젊은 남자 하나가 비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패트릭의 감정을 살피니 그가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갔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저 사람이 아놀드 경이겠군.’
아놀드 스미스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쳐흘렀다. 내일 공연에 대한 긴장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이크 마틴이 바흐 선생에게 걱정된다는 듯이 지껄였다.
“그런데 제가 얼마 전에 필립에게 들어보니 3옥타브에, 4옥타브투성이의 오페라 곡을 하나 지으셔서 그거 부를 가수를 애타게 찾고 계신다고 하던데… 하하. 찾으셨나 모르겠네요?”
“…….”
“그런데 아이고, 선생님. 왜 그런 무리한 작곡을 하셨어요? 가뜩이나 얼굴도 안 좋으신데, 이제는 그만 곡에 대한 욕심 좀 내려놓으시고 건강이나 챙기십시오. 인제 와서 무슨 오페라 곡입니까? 그런 곡을 누가 부를 것이며, 어느 극장에서 공연을 받아준다고… 정말 안타깝습니다.”
계속되는 그의 비아냥거림이 상당히 신경에 거슬렸다.
참다못한 태오가 한마디 했다.
“저기! 우리가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었잖소? 그럼 인사만 하고 가시는 게 최소한의 예의 아니오?”
“뭐요?”
“당신이 제이크 마틴이오?”
처음 보는 사내가 괜한 시비를 걸다 못해, 자기 이름과 성을 존칭도 없이 함부로 부르자 기분이 상한 마틴이었다.
“…그렇소만. 나를 아시오?”
“댁에 대해 서더크 맥스웰 백작님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소.”
맥스웰 경은 정신병에 시달리던 둘째 아들 크리스틴 맥스웰 경을 치료해주면서 친분을 쌓은 백작이었다.
그는 페리 후작만큼은 아니었지만, 음악에 꽤 많은 관심이 있어서 여러 명의 음악가를 후원하고 있었는데 제이크 마틴도 그중 하나였다.
자신을 후원해 주는 맥스웰 백작을 안다는 소리에 갑자기 표정이 달라진 제이크 마틴.
바흐 선생과 함께 있는 모습에 별 볼 일 없는 무명 가수 지망생쯤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아닌 것 같았다.
“아, 그러세요? 맥스웰 백작님과 친분이 있으신가 보죠?”
“그렇소.”
“실례지만… 성함이…?”
“테오 샌더슨이오.”
“네?!”
시종일관 시건방진 태도로 이죽거리던 마틴의 안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샌… 샌더슨 경… 이시라고요?”
태오가 말없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샌, 샌더슨 경.”
이제 곧 백작이 될 인물로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조지 왕을 구한 영웅으로까지 떠올랐고, 얼마 전 에드워즈 가문의 진짜 공작 후계자까지 만들어준 실세 중의 실세.
더구나 광증에 걸린 맥스웰 백작의 아들을 낫게 하고 결혼식까지 훌륭하게 치르게 해, 샌더슨 경을 평생의 은인으로 모시고 있다는 말을 백작 부부로부터 직접 듣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맥스웰 백작에게 한마디만 건네도 받고 있는 후원이 당장 끊길 수도 있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마틴은 바흐 선생에게 대했던 태도를 180도 바꿨다.
“선생님! 제가 고귀한 분과의 자리인 줄도 모르고 쓸데없는 말로 시간을 빼앗았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얼른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 후작님 생신 파티에서도 좋은 공연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그래, 자네도 좋은 공연하게. 내일 파티장에서 보기로 하지.”
“네, 네! 선생님!”
바흐와 태오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인 마틴은 황급히 도망치듯 자기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바흐가 쓴웃음을 지었다.
태오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의 패트릭을 바라보며 물었다.
“패트릭 경, 저기 제이크 마틴 씨 옆에 앉아 있는 청년이 아놀드 경이지요? 지난번에 말씀하신 어린 시절부터 은근히 괴롭혔다던?”
잠시 당황한 패트릭이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습니다. 역시 눈치가 빠르시네요.”
내일 공연을 맞아 다소간 불안해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적극적인 자세로 변해 있었다.
‘…….’
각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심적으로 지기 싫다는 강한 열망이 느껴졌다.
‘꼭 이기고 싶다는 이들의 마음이 지나쳐서 독이 될지, 아니면 약이 될지는 내일이 되면 모두 판명 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