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노래 대결 (2)
짝짝- 와-
오-
휘이익~
최고다! 최고!
아놀드 스미스의 아리아가 끝나자 박수 소리와 함성으로 파티장이 떠나갈 듯했다.
부라보~ 부라보~
짝짝짝-
휘익~ 짝짝- 훌륭해요!
오페라 전문 가수도 아닌 일반 귀족 가문의 청년이 부르는 아리아는 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물론, 그를 알던 사람들까지 환호하게 했다.
비록 고음 부분에서 몇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일반인이라는 걸 고려하면 얼마든지 너그러이 넘어갈 수 있는 멋진 공연이었다.
“와- 정말 놀랐습니다.”
“아놀드 경의 노래 실력이 수준급인 것이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로 잘하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그러게요. 절대 일반인 실력이 아닙니다. 이건 뭐 수준이 거의 전문 오페라 가수 같네요.”
주변 사람들이 크게 감탄하며 소곤거렸다.
그동안 강한 자신감을 보여줬던 이유를 태오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저 정도 실력이면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단연 두각을 드러냈을 것이고, 그동안 제 잘난 맛에 살았을 테지. 하지만… 상대는 숨겨진 천재성을 발견한 패트릭이다.’
바흐가 누구던가. 지금은 나이를 먹고 뒤로 밀려나 있다지만, 그의 음악적 깊이와 식견은 그 누구와도 비견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런 그가 신의 목소리라고 찬사를 보내고, 아버지를 위해 심혈을 기울인 새로운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낙점한 패트릭이었다.
다만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없는 패트릭이었기에, 떨지 않고 실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을지가 걱정이었다.
옆에 앉아 있던 페리 후작이 무대를 향해 손뼉을 치며 태오에게 말했다,
“샌더슨 남작님? 아놀드 경, 정말 잘 부르지 않았나요? 대단합니다. 저 정도 실력일 줄은 몰랐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네, 정말 잘하네요.”
미소를 머금고 무대를 내려오는 아놀드를 보며 친구들이 올리비아에게 속닥거렸다.
“오늘 보니, 아놀드 경 다시 보인다, 얘.”
“그러게. 그냥 부를 때도 좋았지만, 저렇게 훌륭한 연주와 함께 들으니 더 감동적이야.”
“좋겠다, 올리비아! 노래하는 내내 아놀드 경이 너만 바라보더라, 호호.”
“얘는 무슨….”
올리비아도 아놀드의 공연이 마음에 들었는지 싫지 않은 눈빛이었다.
무대 옆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패트릭 보가트의 모습이 태오의 눈에 보였다.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었지만, 초조한 그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스트레스와 긴장 때문인지 그의 어깨에는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저런 상태에서는 몸 안의 소리가 제대로 울리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다행히 경험 많은 바흐가 옆에서 그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여러 가지 조언을 건네며 다독이고 있었다.
그가 이 압박을 스스로 잘 견뎌내고 극복하길 바랄 뿐이었다.
바흐 선생이 체임버 오케스트라 앞에 서고, 패트릭이 무대로 올라서려 대기하고 있었지만, 파티장은 여전히 어수선하고 소란스러웠다.
아놀드의 공연이 워낙에 인상 깊어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데다, 대부분 패트릭이 누군지 모르는 눈빛이었다.
패트릭을 아는 청년 중에는 황당하다는 듯 입을 틀어막고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도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하필이면 아놀드 다음에 노래한다면서, 안쓰러운 눈길로 패트릭을 바라보기도 했다.
패트릭이 드디어 무대 위로 올라섰다.
‘…….’
작든 크든 무대 위에 서게 되면 관객들의 시선이 쏠리는 느낌을 받게 된다.
긴장으로 힘이 들어갔던 패트릭의 어깨가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더 경직되고 움츠러들었다.
‘저 상태에서 노래를 부르면 절대 좋은 소리가 나올 수 없을 텐데….’
태오가 안타깝게 패트릭을 바라보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아놀드 스미스 경이 관객석으로 내려와 올리비아 양의 친구들과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다.
“정말 놀랐어요, 아놀드 경. 그렇게 잘하는지 몰랐네요!”
“맞아요! 오페라 가수 못지않았어요!”
“아닙니다. 몇 번이나 실수가 있었는지 몰라요.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해 부끄럽습니다.”
오늘의 스타 아놀드의 등장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와 칭찬을 쏟아냈다.
이 때문에 공연장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한층 더 심해졌다.
이를 의식한 올리비아가 패트릭을 향해 일부러 크게 손뼉을 치며 용기를 북돋웠다.
「♪~♬♬~ ♪~ ♫~」
이윽고 패트릭이 부를 아리아 곡의 긴 전주가 바흐의 지휘와 함께 시작되었다.
파리넬리가 불러서 큰 화제가 되었던 오페라 이다스페(Idaspe) 중의 ‘행복의 그늘 아래(Ombra fedele anch’io)’란 아리아 곡이었다.
두 손을 가슴에 가지런히 모은 채 기대에 찬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올리비아.
순간 그녀와 패트릭의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잠시 그녀를 뚫어져라 내려다보던 패트릭이 긴 숨을 들이쉬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
「♪~♬♬~ ♪~ ♫~」
그리고 잠시 뒤,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그런데, 그의 눈빛이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눈빛만이 아니었다. 거짓말처럼 감정이 바뀌더니, 긴장으로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스르르 풀렸다.
이 미세한 변화를 모두 지켜보던 태오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감정이 제대로 잡혔어.’
인제야 패트릭에게서 두려움과 조바심이 아닌 여유가 느껴졌다.
「♩~♬♬~ ♪~ ♫~♯」
그리고,
도입부의 긴 전주가 끝나자, 드디어 패트릭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Om~bra fe-de – le~♬~ anch’io~♪~”
페리 후작의 파티장이 순식간에 조용해진 것은 패트릭 보가트가 아리아 곡의 첫 소절을 불렀을 때였다.
열심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던 신사도,
연신 부채질을 해대며 덥다고 짜증을 부리던 귀부인도,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를 치우고 음식을 나르던 하녀도,
자신의 무대에 크게 만족해서 한껏 들떠 떠들고 있던 아놀드 경까지,
패트릭이 내뱉는 첫 소절에 일제히 입을 닫고서 무대로 고개를 돌렸다.
팔짱을 끼고서 바흐과 패트릭의 공연을 여유 있게 지켜보고 있던 작곡가 마틴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Sul mar– gi-ne di le- te~♬~”
그리고 이어지는 믿기 힘든 음색의 아리아에 소란스럽던 파티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우아한 바흐의 지휘에 맞춘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패트릭의 목소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se – guir vo’ I’l – dol mi-o~ ♬~”
패트릭의 목소리가 파티장 곳곳으로 메아리 처지자, 그들이 숨 쉬는 공간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해 펼쳐졌다.
“che tan~ – ♬♬♪ ♩♪ ♩ – to a- do- ro~♬”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고음은 기교 섞인 가짜 소리가 아니었다.
가성이 아닌 진성으로 내고 있었지만, 고음은 너무나 여유롭고 자연스러웠으며, 부드러움과 편안함의 극치를 보여줬다.
패트릭은 새장 속을 탈출한 한 마리의 새처럼, 스스로 벅찬 감정에 빠져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몸짓으로 훨훨 날았다.
노래를 부르며
때론 하늘을 바라봤고,
때론 사람들을 응시하며,
때론 손을 길게 뻗었다.
그는 압도적인 성량으로 사람들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며, 황홀감에 젖어 들게 했다.
마이크도 스피커도 없이, 이 넓은 파티장을 목소리 하나만으로 가득 채운다는 사실이 태오는 믿기지 않았다.
“se – guir vo’ I’l – dol mi-o~ ♬~”
그가 눈길을 보내는 곳은 밝은 빛이 비치는 것 같았고, 그의 손길이 닿는 곳은 향기로움이 가득 묻어나는 것 같았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의 가락에 맞춰 사람들의 고개가 따라서 움직였으며, 오르내리는 고음의 향연에 감정이 복받쳐 눈물짓게 했다.
심지어 끝없는 고음 속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전율에 어지러움을 느끼고 주저앉는 사람까지도 나타났다.
더운 날씨의 한여름 밤은 사람들의 열기로 질식할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오롯이,
세상은 그의 아름다운 목소리로만 가득 채워진 것 같았다.
‘기분이… 이상해….’
어느 정도는 예상하였지만, 실제 현장에서 받는 느낌은 태오로서도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과장된 연출이라고만 생각했던 영화 ‘파리넬리’ 속의 한 장면이 태오의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 보니, 페리 후작은 넋이 나가 노래를 듣고 있었고, 올리비아 양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였다.
올리비아 양의 친구들은 하얗게 질려버린 아놀드 경을 옆에 버려두고, 입을 떡 벌린 채 패트릭의 아리아에 깊이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환희에 찬 바흐의 얼굴도 보였다.
그도 이 정도로 잘할 줄은 예상 못한 듯,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 지휘에 열중했다.
한 달 내내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했다던 바흐 부인의 얼굴은 온통 눈물범벅이었다.
10분가량 지속되던 아리아는 이제 절정으로 치달았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은 고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고, 사람들은 숨을 멈춘 채 패트릭의 한 음, 한 음에 집중했다.
그러다 갑자기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일제히 멈췄다.
그리고 오로지 패트릭의 목소리만이 파티장 안을 꽉 채우며 퍼졌다.
“아아 아~~~아아~~♬ 아아아아아아~~~~♬♪”
패트릭의 고음이 끝없이 올라가며 사람들을 열광케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길게 내뱉는 패트릭의 목소리를 배웅하듯 웅장한 현악기의 연주가 아리아의 대미를 장식했다.
「♬♪~♩- ♫~ ♬–」
모든 연주가 멈추고 10분간의 아리아 곡이 그렇게 끝이 났다.
‘…….’
파티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천상의 소리에서 받은 감동으로 벅차오른 사람들은 넋을 잃은 채 그저 패트릭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부… 부라보!- 부라보!- 부라보!”
후작의 열렬한 환호 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우레와 같은 박수와 찬사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 우와- 짝짝짝-
– 오, 세상에- 고음이 세상에-
– 와- 정말 미쳤네요! 하하. 미쳤어!
– 정말 천상의 목소리였어요! 와!
뜨거운 반응에 정신을 차린 패트릭이 숨을 고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10분 전만 해도 관심 없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무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벅차고 흥분한 감정이 고스란히 패트릭의 가슴으로 전해졌다.
단상으로 바흐가 천천히 올라왔다.
그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했고, 눈가에는 감동의 눈물이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바흐가 패트릭의 와락 감싸 안으며 속삭였다.
“예상은 했지만, 패트릭 경은 내 기대치를 보기 좋게 넘겨 버렸구먼, 허허. 정말… 훌륭했습니다. 너무 멋졌어요! 내 생애 최고의 아리아였소.”
바흐의 칭찬에 그제야 웃음을 보이는 패트릭이었다.
그리고 흙빛이 된 얼굴의 아놀드 스미스와 붉게 상기되어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자신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올리비아의 얼굴이 패트릭의 눈에 들어왔다.
* * *
따그닥- 따그닥-
“첫 무대의 긴장 속에서 저를 비웃듯 웃고 있는 아놀드를 보니 오히려 용기가 솟았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은 별 관심도 없이 떠들고 있는데, 올리비아 양이 진심을 가지고 응원하는 모습에 갑자기 울컥하기도 했고요.”
집으로 가는 마차 안에서 패트릭은 태오에게 공연에서의 일을 담담히 풀어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아까 샌더슨 경이 말씀하신 것을 떠올렸죠. 제가 큰 환호를 받고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인정받는 그 감정을요. 그랬더니 놀랍게도 마음이 안정되더군요.”
역시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변한 그의 감정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때 문득 궁금증이 든 태오가 물었다.
“근데 제가 이상한 게. 이 곡을 저도 아는데, 아까 노래하실 때 3옥타브는 물론, 4옥타브 ‘도’음까지도 자연스럽게 올라갔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바흐 선생에게 듣기론, 연습이 부족해서 3옥타브 정도는 아직 무리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부른 곡은 1옥타브 ‘도’음에서 4옥타브 ‘도’음 (C3에서 C6)까지 흔들림 없이 불렀다는 파리넬리와 다를 바 없이 안정적으로 들렸었다.
태오의 물음에 머리를 긁적이는 패트릭이었다.
“그게 저도 신기했어요. 바흐 선생님과 연습했을 때는 분명 아직 버거운 부분이 있었는데, 오늘 공연 때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거든요. 아마도 관객이 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더 많은 힘을 냈던 것 같아요.”
“그렇지요. 보는 사람이 있을 때 없던 에너지도 생기는 법이니까요.”
한 달 사이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패트릭을 보면서 태오는 생각에 잠겼다.
‘태어나서 오늘 같은 감동은 처음이었어. 파리넬리가 전성기였다고 해도 과연 이 정도였을까?’
◈ 6개월 뒤, 178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런던 중심에 있는 오페라 극장으로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바흐의 새로운 오페라 ‘순례자의 여정(The Pilgrim’s Journey)’을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페리 후작의 생일 파티에서 보인 패트릭 보가트의 놀라운 공연은 빠르게 입소문을 탔고, 패트릭이 테너로 서는 바흐의 오페라 공연까지 그 뜨거운 관심이 이어졌다.
그리고 드디어 공연의 막이 오르고.
카스트라토와 같은 고음을 내는 귀족이 테너를 맡는다는 소문에 공연을 관람한 관객들은 그야말로 깊은 충격에 빠졌다.
오페라 ‘순례자의 여정(The Pilgrim’s Journey)’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이고 장엄한 에너지를 폭발하듯 발산하며, 보는 이들에게 엄청난 희열을 선사했다.
찬사는 관객들뿐만이 아니었다.
‘순례자의 여정’은 각종 평론가와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이 시대 최고의 작품으로 우뚝 섰다.
덕분에 오페라는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동안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바흐를 단숨에 부자로 만들어 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패트릭 보가트는 전 유럽에서 수많은 러브콜을 받으며, 노래하는 귀족으로 명성을 날렸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패트릭의 연인 올리비아가 늘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