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세 명의 인재
◈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윈저성에서 일을 마치고 온 태오에게 루시가 서류를 내밀었다.
“루시? 이게 뭐지?”
태오가 의아한 얼굴로 루시를 바라보았다.
“지난달 새로 가입한… 회원들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건성으로 답하는 루시.
“그래, 그건 알겠는데, 아침에 책상 위에 놔둔 거잖아? 똑같은 거 같은데 왜 또 정리해서 가져온 거지? 바뀐 내용이라도 있는 거야?”
태오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순간 당황하는 눈빛의 루시였다.
“아… 그랬나요? …맞아요, 맞아! 아, 정말 죄송합니다. 아침에 가져다드린 것을 깜빡했네요.”
“……?”
평소답지 않은 루시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던 태오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참! 아침에 윈저성까지 쫓아오느라 고생했어. 그걸 놔두고 온 것을 어떻게 알았나 몰라. 아무튼 고마웠어.”
“…아니에요, 대표님. 그런데 저기….”
“응?”
뭔가 다른 할 말이 있어 보였던 루시가 이내 포기한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왜 말을 하려다 말아?”
“…….”
“루시? 오늘 진짜 좀 이상하네. 집에 무슨 일 있어?”
루시는 대꾸 없이 조용히 인사를 하고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무슨 일이 있었나? 감정 상태가 왜 저렇게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 같지?’
오랜 시간 루시를 보아온 태오였지만, 처음 느껴보는 낯선 감정 신호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 열흘 뒤. 윈저성(Windsor Castle), 접견 대기실.
조지 왕과의 만남을 앞두고 태오는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외국 사절단 영접이 예정보다 길어져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아침부터 대기하고 있던 터라 짜증이 날 법도 했지만, 태오에겐 오히려 요긴한 시간으로 다가왔다.
무역협정에 관한 자신의 입장 표명을 앞두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의 운명을 건 무역 협상이다.
역사와 달라진 조건의 협상을 잘 풀어가려면 조지 왕과 대신들을 설득하는 데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윌리엄 이든은 현재 병으로 요양을 가 있는 터라 이번 무역협정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 않아. 그렇다면, 이든이 빠진 ‘이든 조약’이다. 바뀐 역사에서 이든을 대신할 영국의 전문협상단이 꾸려져야 한다는 소리인데.’
하지만 현재 조지 왕 주변에 있는 관료들의 모습은 기대 이하였다.
외교관이나 전문협상가라는 사람 중에 특별히 눈에 띄는 인물이 없었다.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으로서 사활을 걸어야 할 사안임에도 구태의연한 사고로 일관하고 있는 관료들이 대부분이었다.
‘국가의 미래를 건 중차대한 협상이다. 머릿속에 중상주의와 보호무역주의로 꽉 들어찬 관료들로는 절대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가 없어. 프랑스에 특화된 전문협상단이 필요해.
윌리엄 이든이 자유무역협정에 참여할 수 없다면, 그에 버금가는 사람들로 협상단을 구성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흠….’
골똘히 고심하던 태오의 머리에 순간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었다.
‘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세 사람 다 프랑스어에 능하고, 프랑스 경제에 관해 다들 전문가들이잖아?’
맨체스터의 콜린 피터슨 경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사람으로, 프랑스어는 물론이고 무역 관련 법률과 절차에 능통했고, 실무 경제에서도 현지 무역상과 다를 바 없이 뛰어났다.
현재 테오 무역회사의 부대표로 있는 사이먼 휴즈 자작 역시 탁월한 경제 지식에 프랑스어에 능했으며, 국제정세를 읽는 눈이 무척이나 밝았다.
스키피오 마셜 박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스키피오 박사의 프랑스어 실력은 원어민과 다를 바 없고, 박사급의 경제 지식과 세계 경제 동향을 미리 읽어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안목은 가히 천재적인 수준이었다.
쓱-
태오는 양복 안쪽 호주머니에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그래, 아직 시간도 충분해. 지금 빨리 회사로 사람을 보내서 이들의 자료를 가지고 와서 폐하를 설득해 보자.’
켄싱턴의 회사에는 콜린 피터슨과 휴즈 자작, 스피키오 박사에 관한 여러 자료가 모여 있었다.
그 자료를 통해 조지 왕과 의원 및 관료들을 설득해 프랑스 협상단에 대응하는 팀을 만들 것을 제안해볼 생각이었다.
만에 하나 이 최초의 자유무역이 바뀐 역사로 인해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면, 결국 태오의 사업은 물론이고 장래 영국의 경제에도 짙은 먹구름이 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프랑스 혁명이나 나폴레옹의 등장과 맞물려 예기치 못한 큰 불운을 만들어 낼지도 모를 일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태오는 얼굴이 익은 시종에게 다가가 급히 쓴 메모지를 건넸다.
그리고 켄싱턴의 회사로 가서 루시 헤이즈라는 매니저에게 메모를 보여주고, 그녀가 챙겨주는 자료를 받아 오라고 부탁했다.
◈ 테오 결혼정보회사
왕실 시종의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태오가 쓴 메모지를 확인한 루시는 즉시 5층 대표실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몇 분 만에 필요한 정보가 담긴 서류를 챙겨서 내려왔다.
“아이고, 정말 빠르시네요. 감사합니다.”
시종이 고마워하면서 가져온 자료를 건네받으려 하자, 루시가 자료를 품에 꼭 안고서 말했다.
“이건 제가 직접 대표님께 드려야 하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그래서 저도 함께 윈저성으로 가야 할 것 같네요.”
“…네?”
의아한 표정의 시종이었지만, 샌더슨 경에게 분명 중요한 자료로 보였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서 함께 마차에 타시죠.”
“네! 감사합니다!”
* * *
접견 대기실 창가에서 기다리던 태오의 눈에 마차를 타고 들어오는 시종이 보였다.
‘아- 다행이다. 폐하를 뵙기 전에 딱 맞춰서 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차를 내려다보던 태오의 눈이 동그래졌다.
시종 옆에 루시도 함께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루시잖아? 루시가 왜… 같이 타고 온 거지?’
그리고 잠시 뒤, 루시에게서 자료를 전달받은 시종이 윈저성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태오는 의아한 생각에 루시의 거동을 유심히 살폈다.
‘……?’
자료를 건네준 루시는 회사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두리번거리고만 있었다.
‘뭐 하는 거지? 누굴 찾는 건가? 나는 아닐 테고… 여기서 찾을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때 루시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하염없이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한 마음에 루시의 눈길이 머무는 방향을 따라가던 태오의 입에서 나지막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허- 뭐야? 루시가 왜… 로저스 대위를?’
루시의 눈이 말을 타고 홀로 궁 주변을 순찰하고 있는 주드 로저스 대위를 따라가고 있었다.
‘설마… 로저스 대위를 보려고 여기까지 왔다는 건가? 왜? 무슨 일로? 그나저나… 저 두 사람이 아는 사이였던가?’
그러고 보니, 어제 서류를 전달해 준 사람이 바로 로저스 대위였다.
‘그렇다면, 어제 루시가 로저스 대위한테 서류를 전달해 줬다는 것은 분명하고… 그때 서로 처음 봤을 텐데?’
곰곰이 둘의 관계를 유추해 보던 태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아니다! 반란 사건으로 내가 사경을 헤맬 때, 그때 로저스가 나를 데리고 우리 집에 며칠간 있었지. 그러면 그때 루시가…?’
어느새 시종이 태오 곁으로 다가왔다.
“샌더슨 남작님? 여기 부탁하신 서류를 가지고 왔습니다.”
서류를 받아 든 태오가 물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 회사 직원도 같이 온 거죠?”
“아, 네. 그게 원래는 저 혼자 오려고 했는데, 저 아가씨가 너무 중요한 자료라서 꼭 자기가 대표님께 직접 전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그런가 보다 하고 왔는데, 또 여기 와서는 그냥 저보고 가지고 올라가면 된다고….”
“…….”
태오가 알겠다는 듯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별말씀을요.”
시종이 돌아가고, 태오는 다시 창밖을 살폈다.
여전히 루시의 시선이 로저스 대위에게 머물러 있었다.
몇 년을 본 루시에게서 저런 애틋한 표정은 처음이었다.
‘흠… 괜히 시종을 따라 윈저성으로 온 것만 봐도 내 짐작이 맞는 것 같은데. 그랬단 말이지.’
* * *
윈저성, 국왕 접견실(King’s Presence Chamber).
“……그래서 저는 이번 프랑스와의 무역협정을 위해서 그에 걸맞은 협상단을 꾸리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태오의 의견에 앤드류 홀 재무장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협상에서 총책임자 소임을 수행하면서 여러 이득을 챙길 꿈에 부풀어 있던 그로서는 태오의 개입이 못마땅하다 못해 불쾌했다.
‘하- 샌더슨… 저놈이 내 일에 완전히 초를 치네….’
하지만 몇 년 전의 그와는 위세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법정 귀족인 데다가 반란 사건을 계기로 조지 왕의 신임이 그 누구보다 두터웠기 때문에 무척 껄끄러운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 홀 재무장관 측의 한 관리가 볼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런 거야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닙니까? 국가 간의 무역협정인데, 당연히 훌륭한 인재를 투입해야지요. 그래서 장관님께서도 얼마 전에….”
그때 조지 왕이 손을 들어 정부 관리의 말을 막아 세웠다.
“샌더슨 경? 혹시… 경이 판단하기에 협상장에서 쓸 만한 인재들이 있는가?”
의중을 읽은 조지 왕의 물음에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프랑스와의 협상에 걸맞은 아주 뛰어난 인재들이 있사옵니다.”
조지 왕이 큰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옳지, 그래. 그게 누구인지 한번 말해보게.”
“그전에 우선 이 내용부터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태오는 가지고 온 자료 중에 신문을 발췌한 종이를 하나 꺼내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고?”
“네, 폐하. 5년 전인 1777년, 프랑스의 어느 신문에 게재된 내용 일부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이것을 꼭 들어보셔야 합니다.”
난데없이 5년 전 프랑스 신문 기사를 읽는다는 소리에 대신들과 의원들이 웅성거렸다.
그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고 태오는 기사 내용을 큰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훌륭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프랑스는 지금 금융 문제로 국가 자체가 위협당하고 있다.
절대적인 군주제로 인한 피곤한 정치에 의한 실수들은 이제 국민에게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다. 화려한 베르사유 궁전의 겉모습 뒤에는 빚에 시달리는 어두운 프랑스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 영국과 지난 7년 전쟁은 프랑스의 금고를 텅텅 비게 했고, 이제는 북아메리카 식민지국에 은밀한 지원으로 이 나라는 더욱 큰 수렁에 빠지게 되고 말 것이다.
공공자금을 함부로 횡령하여 멋대로 쓰고 있는 것은 프랑스가 가진 어두움의 일부일 뿐이다.
…… 서민들에게만 가혹한 조세제도는 이들에게 억눌린 불만이 언젠가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터져 나와 도저히 막을 길이 없을 정도로 무척 위태로워 보인다.
불규칙한 날씨는 흉년이 들게 하고 있고, 이는 곧 향후 프랑스 내에서 식량부족과 물가의 폭등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 될 것이다.
민중은 굶주리고 있고, 이를 이용한 일부 곡물 투기꾼들이 판치면서 배고픈 서민의 돈을 갈취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
여기에 상인들의 길드 제한은 혁신과 기업의 성장을 막아버리고, 녹슬고 낡은 관행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형국이 지속되면서 경제 성장 동력을 좀먹게 할 것이다.
…… 이러한 모든 우울한 상황 속에서 프랑스가 이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행정과 경제의 개혁, 그리고 자유무역협정뿐이다.
공정한 과세 시스템이 우선 장착되어야 하고, 중복된 행정절차는 최대한 효율적으로 간소화해야 하며, 외국과의 자유로운 무역을 통한 이득을 위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실리를 찾아야만 한다.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외국에서 값싸게 만들 수 있지만, 프랑스 국내에서는 오히려 많은 돈이 들어가는 제품들에 대해 과감히 관세를 인하하여 자유로운 무역 거래를 하되, 상대국의 제품이 프랑스 시장을 지나치게 잠식하는 것을 고려하여 관세율을 세심히 따져 매겨야 할 것이다.
가령 제조업 강국인 영국과의 자유무역 체결 시 포도주의 경우 관세 비율을 다음과 같이 조정해야 한다…….』
5년 전 프랑스 신문 기사 속에는 자국이 처한 상황과 미래에 발생할 문제점들이 매우 정확하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었다.
현대에는 인터넷을 통해 이 정도 정보는 쉽게 찾아낼 수 있겠지만, 정보 하나를 얻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해야 했던 18세기에서는 깜짝 놀랄 정도의 치밀한 내용이었다.
게다가 무려 5년 전에 영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을 예측하며, 관세 비율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낸 부분에서는 모두가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활동했고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와도 매우 친했던 앨버멀 백작이 입을 열었다.
“프랑스에 저런 식견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까? 자국 내의 문제를 제대로 꼬집어보고 문제점과 해결책까지 훌륭하게 제시하고 있군요.
하지만 저런 불손한 내용을 함부로 입 밖에 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더구나 신문이라면….”
당시 프랑스 언론은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 엄격한 검열을 받았다.
국왕이나 정부를 비난하는 내용은 크나큰 범죄로 간주해, 조금만 거슬리는 내용이 나와도 감옥에 투옥되거나 처벌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프랑스에서 저런 비판적인 기사가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때 해외 무역 거래에 밝은 존슨 하원의원이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한때 프랑스 신문에 저런 기사가 돌아다녀 큰 난리가 났었다는 얘기를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5년 전에 실린 저 기사의 내용이 거의 다 실제로 이루어졌고,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이네요. 거기다 우리와의 무역협정까지 예상하고 있었다니….
저런 내용을 말한 사람이 프랑스 측에 있다면 우리로서는 무척 조심히 살피고 경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행여 저런 지식과 예측력을 가진 자가 프랑스 협상단에 들어온다면 무역 협상에서 말려들기 십상이니 말이죠.”
존슨 의원의 걱정에 태오도 맞장구쳤다.
“그렇습니다. 존슨 하원의원님이 말씀하셨듯 실제로 그가 예측한 일은 모두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거기다 우리 영국과의 자유무역협정에서 관세 부분까지 정확하게 꿰뚫고 대비책까지….
이런 사람이 협상단에 포함된다면, 우리 영국으로서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글은 프랑스인이 쓴 내용이 아닙니다.”
“……?”
“우리 영국인이 프랑스의 경제 상황을 파악하여 프랑스어로 쓴 기고문을 프랑스의 비밀 언론사에서 정부의 검열을 뚫고 프랑스 내부에 배포해 큰 화제가 됐던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