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루시? 오늘 1시에 만나기로 한 거 잊지 않고 있지?”
태오가 결재 서류에 사인하면서 확인하듯 물었다.
“…네.”
“그럼 옷에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오지 그래? 평소 그대로 입고 출근했잖아.”
“아니에요. 평소에 입지 않았던 옷이에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의상실로 가서 제일 마음에 드는 옷으로 바꿔 입어. 내가 사주는 걸로 말해놓고.”
“아닙니다. 그럴 필요 없으세요.”
“정말 괜찮겠어?”
“겉치장을 중시하는 남자라면 솔직히 저도 마음이 내키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래? 뭐, 할 수 없지. 루시 말이 틀린 말도 아니고.”
“…네.”
슥-슥-
서명을 마친 태오가 서류를 건네며 다시 한번 당부했다.
“자, 그럼 이따가 1시에 VVIP 상담실로 내려와. 같이 만나 보자고. 내 생각에는 오늘 루시의 영원한 반쪽을 만날 것 같은데… 너무 관심 없어 하니, 참.”
농담 섞인 태오의 말에도 쓴웃음만 짓는 루시였다.
* * *
점심 식사를 마친 태오가 카페로 내려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로저스 대위와 루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
카페 한편에서는 소규모 악단이 클래식 연주를 들려주고 있었다.
덕분에 카페 안은 커피 향만큼이나 향기로운 음악으로 가득했다.
몇 달 전부터 점심시간에 맞춰 2시간 정도 미니 공연을 했는데, 손님들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앞으로 저녁 타임에도 공연을 진행할 생각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태오가 카페 입구를 살폈다.
‘이제 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루시는 왜 안 내려오는 거야?’
그때였다.
제복을 입은 남자 하나가 카페로 성큼성큼 들어와 이곳저곳을 살폈다.
카페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주드 로저스 대위였다.
그가 걸치고 있는 푸른색의 군복 코트는 영국군에서 가장 뛰어난 기병연대인 왕립 근위대(Royal Horse Guards) 소속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었고,
은색의 끈과 단추로 장식된 넓은 옷깃은 제복의 조끼 안으로 보이는 금빛 레이스와 조화를 이루어 군 장교로서의 기품을 한껏 뽐냈다.
아마도 교대 시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달려온 듯했다.
“로저스 대위! 여기야!”
“아- 연대장님!”
로저스 대위를 반갑게 맞은 태오는 VVIP 상담실로 그를 안내했다.
“여기에 앉게.”
“네, 연대장님.”
자리에 앉으며 로저스 대위가 부끄러워했다.
“연대장님께서 제게 꼭 소개해 줄 아가씨가 있다고 하셔서 오긴 왔는데, 교대가 늦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왔습니다.”
“아니야. 군인에게는 제복이 최고의 옷이지. 아주 멋져.”
“그런데, 어떤 아가씨길래 이렇게 신경 쓰시면서 소개해 주시려는 건지…?”
“응. 조금 사연이 있어. 사실 우리 집에서 일하던 친구인데, 가세가 기울어진 귀족 집안의 셋째 딸이야.
워낙 싹싹하고 눈치가 빨라서 지금은 우리 회사에서 매니저 팀장으로 일하고 있지. 보기보다 일을 잘해서 주급이 제법 세네. 하하- 미안한 말이지만, 자네 주급보다 최소 두세 배는 될 걸세.”
이 시대에서는 귀족 명부에 오른 가문의 여식일지라도 제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면, 다른 집의 가정교사나 하녀로 가는 경우가 흔했다.
먹고 살기 위해 매춘을 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루시처럼 몰락한 귀족 집안의 딸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태오의 말에 오히려 안도하는 로저스 대위였다.
“그렇군요. 저는 혹시 좋은 집안일까 봐 은근히 걱정했습니다.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성격상 부담스러운 건 딱 질색이라서요.”
“알고 있네. 자네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지. 하여간 루시는 예의도 있고, 똑똑하고… 어쩌면 얼굴을 보면 자네도 알지 몰라.”
“네? 제가요? 제가 알고 있는 아가씨인가요?”
“하여간 직접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내가 얼른 데리고 올게.”
“네.”
덜컹-
태오가 문을 열고 VVIP 상담실을 나오는데 들어오고 있던 루시와 마주쳤다.
“아, 루시! 마침 잘 내려왔네. 소개해 줄 친구가 이제 막 도착했거든.”
어두운 얼굴의 루시가 무거운 입을 뗐다.
“대표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뭔데?”
“딱 10분만 얘기를 나누고, 저는 급한 회사 일이 있어서 먼저 올라가야 한다고 대표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왜 이래? 30분은 만나기로 나하고 약속했었잖아?”
루시가 인상을 찌푸리며 아픈 척을 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말씀드려서 정말 죄송하지만, 기분 때문인지 속도 너무 울렁거리고, 머리도 무척 아프거든요. 오늘 조퇴를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예요.”
꾀병으로 보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 10분? 알겠어. 뭐 본인이 그렇게 빨리 가고 싶다고 하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해 줄게, 대신 10분은 꼭 지켜야 해?”
“…네.”
“그럼, 들어가서 인사를 나누자고.”
덜컹-
태오가 문을 열고 들어가 웃으며 말했다.
“로저스 대위! 우리 결혼정보회사의 자랑 루시 헤이즈 팀장님을 모시고 왔네. 하하-”
로저스 대위가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루시의 시선이 로저스 대위의 얼굴에 머무는 순간.
심드렁한 표정으로 상담실로 들어오던 루시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그녀는 놀란 토끼 눈이 되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루시, 뭐 하는 거야? 어서 안 들어오고?”
“…….”
어색한 상황이 길어지자 로저스 대위가 정중하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주드 로저스라고 합니다.”
“어… 저… 저….”
슬금슬금 뒷걸음치던 루시가 후다닥 상담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로저스 대위가 영문을 몰라 했다.
“연대장님? 왜 저러시는 거죠? 제가 뭘 잘못했나요?”
태오가 빙그레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 예상이 맞는 것 같네.”
“네?”
“아, 아닐세, 로저스 대위.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해. 루시가 저러는 게 자네 때문이 아니니까. 사연이 조금 있는데, 아마도 갑작스러운 만남에 당황한 것 같아. 내 잘못도 조금 있으니까 너그러이 용서해 주게.
나중에 사연을 말해주면, 자네도 이해할 거야. 아무튼 내가 다시 데리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게.”
“아, 네….”
루시는 상담실 밖에서 멍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있었다.
“루시? 왜 그래?”
“…대표님?”
“사람을 보고 그렇게 무안하게 도망쳐 나오면 어떻게?”
정신을 차린 루시가 따지듯 물었다.
“대표님? 대표님은 제가 저 중위님을 좋아하는 걸 알고 계셨죠?”
태오가 반색하며 되물었다.
“그렇지? 로저스 대위를 마음에 두고 있었던 것 맞지? 하하- 역시 내 눈썰미가 틀린 게 아니었군.”
“어떻게 아신 거예요?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고, 제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었던 아무도 모르는 비밀인데….”
“우연히 윈저성에서 루시를 보고 대략 눈치를 채고는 있었지. 뭐, 그 일이 아니더라도 전부터 루시하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고 소개해 주려고도 했고.”
“아… 그럼, 조금만 미리 알려주시지….”
원망 섞인 그녀의 투정에 태오가 억울해했다.
“무슨 소리야? 소개해 주려는 사람이 누군지 말했더니, 루시가 한사코 알고 싶지 않다고 바득바득 성질을 부렸잖아? 내가 로저스 대위 이름까지 말해준 거 기억 안 나?
그랬더니, 자기 마음을 착각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말도 못 붙이게 한 사람이 누군데?”
“그게… 저하고는 절대 인연이 될 수 없는 분으로만 알았어요. 그리고 이름도 모르고, 중위님으로만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이름이… 주드 로저스 대위님이셨군요.”
루시는 3년 전 중위 계급만 생각하고 있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여겨졌다.
“그나저나 안 들어갈 거야? 로저스 대위가 얼마나 무안하겠어?”
태오의 말에 루시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아, 맞아요. 중위님, 아니, 대위님께 너무 죄송스럽네요.”
“그러니까 빨리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잖아?”
그런데 루시가 안절부절못했다.
“왜 그래? 안 들어가고? 또 무슨 문제 있어?”
“…대표님, 지금 제 꼴이…”
“꼴이 왜?”
“오늘 제가 제일 별로라고 생각하는 옷을 입고 와서요….”
“어이구, 어쩐지. 내가 해주는 소개를 걷어차려고 머리 쓴 거지?”
루시가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아까 의상실에 들르라니까 큰소리 뻥뻥 치더니.”
“어떡하죠?”
“걱정 마. 아까 루시 말처럼, 평소의 루시 모습을 보고 싫어한다면 만날 필요가 없는 남자지.”
“대표님! 그런 게 아니잖아요! 사실상 오늘이 첫 인상인데… 분명 절, 안 좋게 생각하실 거예요.”
태오는 울상이 된 루시를 다독이며 등을 떠밀었다.
“자, 자! 대위님께서 루시의 모습을 이미 다 봤다고! 갈아입고 가면 더 우스울 뿐이니 빨리 들어가자. 오늘 옷도 나름 나쁘지 않아. 신사를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잖아?”
* * *
향기 가득한 커피와 은은한 클래식 음악 속에서 루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로저스 대위도 루시가 마음에 들었는지 별 얘기가 아님에도 재밌어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하하- 그랬군요. 어쩐지 얼굴이 낯이 익는다고 했더니. 그날 윈저궁에 오셨던 분이셨어요.”
“네, 그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며칠간 우울함이 가득했던 루시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피어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성향이나 감정이 너무 잘 맞네. 천생연분이야. 둘이 함께 인생을 가꿔나가면 뿌리 깊은 하나의 큰 나무가 될 수 있겠어.’
두 사람은 마치 오래전부터 사랑했던 연인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대화를 이어갔다.
◈ 1782년 7월, 프랑스 재정 총독부 관저.
샤를 드 칼론(Charles de Calonne) 재정 총독이 커피를 마시면서 앙리 디드로 비서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렇게 해서 현재 영국 협상단은 테오 샌더슨이란 자가 이끄는 다섯 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탁-
잔을 내려놓으면서 재정 총독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테오 샌더슨? 앤드류 홀 장관이 아니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다시 한번 물었다.
“영국의 고위 관료 중에 그런 자가 있었나? 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비서관이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지금 총독님이 들고 계시는 커피가… 바로 테오 샌더슨이라는 자의 회사에서 나온 커피입니다.”
“뭐? 아니, 그럼 그자가 T&S 커피의 대표란 말이야?”
“그렇습니다, 총독님. 커피뿐만 아니라, 결혼중개업, 방직이나 기계 등에도 투자해서 지금 영국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사업가로 조사됐습니다.”
“흐음- 실물 사업가 출신이 협상단장으로 온다는 소리군.”
“그리고 말입니다….”
뜸을 들이는 비서관의 모습에 샤를 드 칼론 재정 총독이 답답해했다.
“뭔가? 미적거리지 말고 빨리 말해봐!”
“샌더슨이라는 자에 대한 영국 국왕의 신뢰가 지나칠 정도로 높은 것이 조금 이상해서, 그자에 대해 뒷조사를 하다 보니 놀라운 사실들이 여럿 발견됐습니다.”
“놀라운 사실들이라니? 어떤 사실들?”
“북아메리카 식민지의 독립승인을 촉구해서 영국 국왕의 결단을 끌어낸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그자였습니다.”
재정 총독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 왜 갑자기 그 고집불통 영국 국왕이 그런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나 하고 의아했는데, 그 샌더슨 이란 자가 이끈 것이었구만?”
“네. 그렇습니다. 거기다 하우 장군의 반란을 진압할 때, 연대장 신분으로 정부군을 이끌어 지원군이 올라오기 전까지의 시간을 벌었다고 합니다. 고작 천여 명을 이끌고 수만 명의 반란군과 목숨을 걸고 맞선 거지요.
만약 그때 샌더슨이란 자가 하우 장군을 저지하지 못했더라면, 영국 국왕의 목은 이미 달아났을 거라고 합니다.”
“무슨 소리야? 커피 대표라며? 연대장? 그럼, 그자가 군인 출신이었어?”
“아닙니다. 정보에 따르면 군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총독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참으로 엉뚱한 인간이구먼. 요즘 영국이 이상하게 잘 굴러간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자가 한몫하고 있는 것 같군.”
“제가 이번 영국과의 무역협정과 관련해서 가장 걱정되는 인물이 하나 더 있습니다.”
“……?”
“현재 테오 상업교육연구소 (Theo Institute for Mercantile Studies and Education)라는 곳에 원장으로 있는 ‘스키피오 마셜’ 원장이라는 자를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테오 상업교육연구소? 그건 또 뭐야? 혹시 그것도 테오 샌더슨과 연관이 있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샌더슨이란 자가 세운 특수한 목적의 경제연구소입니다.”
“나- 참, 도대체 테오 샌더슨이라는 작자가 안 낀 데가 없구만. 그런데 그곳 원장이 왜?”
“그 원장이라는 자가… 해방 흑인 노예 출신입니다.”
재정 총독이 혀를 찼다.
“뭐? 흑인 노예 출신? 허- 그런데 왜 조심해야 한다는 거야?”
“그게 5년 전, 불온 비밀 신문에서 ‘피오’라는 가명으로 프랑스 경제와 사회 문제를 속속들이 비판해서 난리가 났던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 기억하고말고. 당시 국왕께서도 당장 색출해서 혼을 내주라고 한동안 역정을 내셨으니까.”
“그때 그 ‘피오’라는 인물이 아까 말한 테오 연구소의 원장으로 있는 ‘스키피오 마셜’이라는 흑인입니다.”
“…뭐?”
당황한 눈빛의 샤를 드 칼론 재정 총독이었다.
5년 전 비밀 신문 한 면을 다 차지한 그의 비판은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몰고 왔다.
마치 여러 명의 학자가 머리를 싸매고 수년간 연구한 자료처럼 프랑스 사회의 썩은 부위를 정확하게 꼬집었을 뿐만 아니라, 문제점과 해결책까지 제시했었다.
하지만 언제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
그의 비판은 너무나 쓰라리게 다가왔고, 대부분의 정부 관리들이나 고위 귀족들은 그의 조언을 삼키기보다는 뱉어내기에 급급했다.
그저 기사가 퍼지지 않도록 막는 데만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당시 샤를 드 칼론은 프랑스 내에 이 정도의 학식과 실용성을 겸비한 지식인이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었다.
하지만 이후에 이 글을 쓴 ‘피오’라는 자가 사실은 영국인이었고, 프랑스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던 자인 데다, 스스로 프랑스어를 깨우치고 각종 서적과 신문, 경제 자료 등을 이용해 프랑스의 경제문제를 파악한 것이라는 걸 알고서 대단히 놀랐었던 기억이 있었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드는 재정 총독이었다.
“피오가 해방된 흑인 노예 출신이었고, 그런 자가 지금 테오 샌더슨이 이끄는 영국 협상단에 끼어있다?”
“그렇습니다.”
“흠, 이거… 이번에 우리가 단단히 대비하고 있어야겠는걸?”
“네, 총독님.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