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아찔한 만남
◈ 인텔리젼스(Intelligence) 클럽
1788년 10월.
무식하고 하찮은 존재로 여겼던 민중의 봉기는 순식간에 프랑스 사회를 집어삼켜 버렸다.
들불처럼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거센 불길은 유럽 민중들의 가슴을 뛰게 했고, 어떤 기대감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귀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영국의 귀족 역시 다를 바 없었다.
프랑스 사회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이 영국 사회, 특히 귀족이 많은 클럽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영국 귀족계층의 불안하고 음울한 기운은 귀족 출신이 많은 인텔리젼스 클럽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두 달 전에 있었던 파리의 어느 감옥에서 봉기를 일으킨 시민들이 어떻게 했는지 얘기 들으셨습니까?”
태오가 앉아 있는 바로 옆 테이블.
목까지 오는 가발을 뒤집어쓴 남작이 커피를 마시며 떠들어댔다.
“뭐 특별히 들은 이야기가 있소?”
“들은 얘기 있으면 말해 주세요.”
회원들이 남작 주위로 몰려들자, 그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겁주듯 말했다.
“프랑스 바스티유 감옥이라는 곳에서 벌어진 폭동 이야기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안경 쓴 신사가 아는 척 끼어들었다.
“아, 알고 있습니다. 바스티유 감옥이라면 파리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이지 않소?”
남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명목만 정치범 수용소이지, 실상은 정치범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해요. 그저 잡범이나 정신이상자들 6~7명 정도만 감옥 안에 있었고요.
프랑스 정부에서도 바스티유 감옥을 별 쓸모가 없다고 보고 감옥으로 쓰지 않을 예정이었답니다. 당연히 방비도 허술하고, 배치된 군사도 적었고요.”
“그런데 왜 시민들은 왕이 있는 베르사유에 안 가고 엉뚱하게 쓸모없는 감옥에 가서 폭동을 일으킨 거죠?”
그때 안경 낀 신사가 다시 끼어들었다.
“제가 파리에서 머문 적이 있어서 좀 아는데요, 국왕이 있는 베르사유 궁전까지 파리에서 가려면 적어도 6시간 정도는 걸어가야 합니다. 거리상 너무 멀지요.”
남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프랑스 국왕이 서민 계급을 대표하는 국민 의회라는 걸 해산한다고 하자 화가 난 민중들이 화풀이 대상을 찾았다고 해요. 거기서 딱 걸린 게 과거에 정치인이나 문학가, 언론인 등을 구속했던 바스티유 감옥인 거죠.
어쨌든 정부 측의 상징적인 건물이고, 베르사유까지는 너무 멀기도 하니까 방비도 허술한 그 감옥을 제물로 삼은 듯합니다.
그래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 밖에서 죄수들의 석방과 감옥의 항복을 요구하고 나섰는데, 그곳의 지휘관이 바스티유 지역 총독의 아들이었답니다.
그가 성난 시민들을 달래는 협상을 시도했고, 시위대에게 절대 발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엄청난 군중 사이에 몇 명 되지도 않는 감옥의 병사들이 잔뜩 겁을 먹어 버린 거죠.
그만 협상 도중에 병사가 총을 발포하고 말았고, 시민들을 여기에 완전히 흥분해 이성을 잃었답니다.
시민들은 총독 아들이었던 지휘관을 잡아다 목을 잘라버리고, 자른 머리를 창에 꽂아 파리 주변을 행진했다고 하고요.”
“저런- 세상에!”
“그뿐만이 아닙니다. 행진하면서 그 일대에 이름 좀 있는 귀족의 집이 보이면 닥치는 대로 들어가 목을 자르고 강도질을 일삼고….”
계속해서 시위에 따른 끔찍한 이야기가 전해졌다.
이야기를 듣던 귀족들은 자기도 모르게 목을 매만졌다.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태오와 함께 앉아서 차를 마시던 노신사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 요즘 어딜 가나 온통 프랑스에서 일어난 민중봉기와 관련한 끔찍한 얘기들뿐이군요.”
“네, 그러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나누던 태오의 눈에 멀리서 클럽 안을 두리번거리며 들어오는 매슈 벤담 제독이 보였다.
그는 현재 해군 서열 3위인 백색 제독(Admiral of the White)이었다.
“여깁니다, 벤담 제독님!”
태오가 일어나서 손을 들자, 그를 발견한 제독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아이고, 제가 좀 늦었지요? 죄송합니다, 자작님.”
“아닙니다. 저도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노신사와도 인사를 나눈 벤담은 그동안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입에 올리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오늘의 만남은 태오가 몇 주 전 매슈 벤담 제독에게 연락을 취하면서 이루어졌다.
현재 프랑스의 급변 때문에 해군을 비롯한 전 군부대가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태오로서는 꼭 알아봐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제독에게 편지를 보내 만남을 청했다.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벤담 제독이 품에서 잘 접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저번에 자작님께서 편지로 문의하셨던 사람에 대한 정보인데요.”
기다리던 소식에 태오는 귀를 쫑긋 세웠다.
돋보기를 꺼내 들어 콧잔등에 올린 제독이 종이를 펼치면서 말했다.
“말씀하신… 호레이쇼 넬슨이라는 친구는 현재 해군 내에서 지휘권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네? 지휘권이 없다고요?”
태오가 벤담 제독에게 되물었다.
“해군 안에서 지휘권이 없다니, 그게 무슨 의미죠?”
“찾아달라는 넬슨이란 자는 분명 우리 영국 해군 소속 장교는 맞았습니다. 알고 보니 저도 알고 있는 해군 감사관(Comptroller) 모리스 서클링 함장이 외삼촌이었더군요.”
“…….”
“넬슨은 서클링 함장의 배에서 부관으로 동인도에 배치되었었고, 북아메리카군과의 전투에도 참여했었습니다. 그러다가 5년 전쯤에는 작은 함대의 지휘권을 받았다고 하고요.
그런데 4년 전에 안티구아(Antigua) 부근에서 항해조례(Navigation Act)에 관한 임부를 집행한다고 미국 선박 4척을 나포했다가 불법 나포 혐의로 고소를 당했더군요.
그래서 1년 가까이 법정에 오가느라 해군에서 손을 놓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지휘권을 회복 못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그 사람의 나이가 지금 어떻게 되죠?”
“현재… 30세쯤 됐을 겁니다.”
“30세라….”
호레이쇼 넬슨.
현대에 있을 때 너무나 익숙하게 들어본 영국 해군의 전설적인 명장이었다.
하지만 태오의 머릿속에 그의 일대기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 지금 나이가 얼마쯤인지도 몰랐다.
그저 귀신같은 해상전 능력으로 프랑스군을 벌벌 떨게 했고, 유럽을 호령하던 나폴레옹조차 넬슨을 두려워했다는 것, 그리고 유명한 해전 몇 개 정도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프랑스 혁명이 발발할 때쯤 자연스럽게 그의 이름이 들릴 줄 알았는데, 너무나 조용해. 나폴레옹도 등장하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지만, 나폴레옹은 역사대로 움직이고 넬슨 제독만 없다면, 이거 이순신 장군이 계시지 않은 임진왜란 꼴 아닌가? 그러면 골치 아파지는데….’
주위에 물어도 그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만약 역사가 조금씩 틀어져서 ‘윌리엄 이든’처럼 넬슨이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나폴레옹의 힘에 의해 전혀 다른 역사가 만들어질 위험성도 있었다.
태오는 불안한 마음에 벤담 제독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것이다.
‘실제 역사에도 넬슨에게 이렇게 지휘권이 없던 시절이 있었나? 아니면 바뀐 건가? 만약 역사가 틀어진 거라면, 이거 아주 큰일인데….’
프랑스 혁명과 뒤이어 등장하는 강력한 나폴레옹의 육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유럽.
하지만 바다 건너 있는 영국은 단 한 번도 나폴레옹의 군대가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그렇게 된 것에는 호레이쇼 넬슨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역사가 바뀌었든 아니든 간에 일단 넬슨을 어떻게든 만나서 확인을 해봐야겠어.’
달라진 역사에 태오의 고민도 자꾸만 깊어져 갔다.
◈ 며칠 뒤.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점심시간이 막 지난 시간.
루시가 들어와 예약 손님이 왔음을 알렸다.
“대표님! 얼마 전에 왔던 나폴리 왕국의 백작님, 그러니까 도미니치 백작님과 그 따님이 막 도착해서 1층 상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벌써 오셨어? 알겠어. 곧 내려갈게.”
옷을 챙겨 입고 내려가는데, 뒤따르던 루시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대표님? 그런데, 그 도미니치 백작 따님이라는 사람이 좀 많이 이상했어요.”
“뭐가?”
“아버지하고 외모가 전혀 닮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가 엄청나게 쩔쩔매는 느낌이었거든요.”
역시 눈치 빠른 루시였다.
태오는 대충 둘러댔다.
“흠, 외모야 어머니 쪽을 닮았겠지. 그리고… 뭐, 늦게 낳은 외동딸이라 너무 애지중지 키웠나 보네.”
루시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 딸한테 그렇게 굽실거릴 수가 있나? 제가 보기에 너무 불편하더라고요. 그래도 뭐… 예쁘긴 엄청 예쁘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아껴서 그러나?”
“…….”
1층으로 내려온 태오가 VVIP 상담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
덜컹-
문이 열리고 상담실로 들어서자 도미니치 백작이 태오를 반겼다.
“아, 샌더슨 경. 어서 오세요.”
“네, 백작님.”
도미니치 백작이 뒤돌아 앉아 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인사하세요. 나폴리 왕국의 마리아 공주님이십니다.”
여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서 태오와 시선을 마주쳤다.
‘……!’
검정에 가까운 짙은 갈색 머리에 강렬하고도 시원한 눈매.
도발적이고 호기심 가득한 머리색과 같은 눈동자.
점하나 없는 투명한 피부에 오뚝한 콧날과 도톰한 입술.
태오의 가슴 한편으로 서늘한 기운이 거침없이 타고 올라왔다.
‘…….’
현대에서도 18세기에서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찔한 감정이었다.
마리아 공주가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마리아 드 부르봉입니다.”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공주님. 테오 샌더슨입니다.”
도미니치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공주님께서 아마도 우리 왕국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실 겁니다. 대화를 나누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을 거예요.”
백작의 말대로 공주의 발음과 억양은 아주 훌륭했다.
“네, 발음만 들어봐도 정말 그런 것 같군요. 일단 자리에 앉으시죠.”
마리아 공주와 정면으로 마주 앉은 태오는 눈을 마주치기가 힘들었다.
‘내가 왜 이런 거지?’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언제나 냉철한 관찰자의 관점에서 남녀를 바라보던 태오.
그런 태오에게 첫눈에 반한 남자의 모습은 언제 봐도 우스꽝스럽고 바보스러움, 그 자체였다.
그런데 지금 자신이 그런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내 감정을 평가한다면… 첫눈에 반한 전형적인 행동 양상이잖아?
이성의 외모만으로 첫눈에 반하는 이런 얼빠진 행동을 내가 할 줄이야… 그저 호르몬 분비에 따른 착각일 뿐이야! 정신 차리자!’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상대를 만나게 되면 사랑에 빠지기까지 3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운명의 이상적 외모와 맞닥뜨리면, 순식간에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그 사람을 점령하게 되고,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뿜어져 나와 사랑에 눈이 멀게 한다.
도파민은 그 사람을 열정으로 가득 차게 하고, 옥시토신은 반하게 된 상대를 무한히 신뢰하도록 만들어 버린다.
사랑에 눈이 멀어 상대의 어떤 행동도 좋아 보이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
현대에 있을 때, 상담해 주면서 한숨 나오던 그런 얼빠진 사람들의 모습.
태오 자신이 지금 그러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한다. 여성은 자신에게 반한 이성을 남성보다 훨씬 더 빨리 알아채는 경향이 있다.
‘절대…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
태오는 이성을 소개해 주는 중개자의 역할에 충실해야 하는 입장.
경기장의 심판이나 다름없는 자신이 상대편 선수에게 반한 모습을 보이는 그런 우스운 꼴을 절대 보일 수는 없었다.
태오는 심리학적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 자신의 감정을 차단하려고 몸부림쳤다.
투둑- 툭-
발가락에 자극을 일으켜 보기도 하고, 잡고 있는 펜의 감촉을 느끼려 애를 쓰기도 했다.
어떡하든 정신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하려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렇다면 나폴리 왕국 수출품으로 들어오는 수입도 상당하겠군요?”
백작에게 나폴리 왕국의 경제와 관련된 얘기를 장황하게 묻기도 했다.
도미니치 백작은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샌더슨 경? 그런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빨리 공주님의 일과 관련된 것부터 진행했으면 합니다.”
“아, 네. 물론이죠. 지금 하려고 했습니다.”
태오가 허둥지둥 상담을 진행했다.
“우리 회사는 결혼 진행 시 성향을 조사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우선 그 작업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오는 옆에 놓여 있던 매칭 질문지를 펼쳐,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하나씩 점검해 나갔다.
“공주님께서는 평소 대화를 즐기시는 편이신가요? 그러니까…….”
성향 체크 중에도 태오는 계속해서 관찰자의 입장으로 자기 모습을 살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그녀에 대한 감정이 튀어나오려면 그것을 객관화하고 억제하려 안간힘을 썼다.
다행히 공주는 태오의 태도에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 *
1시간에 걸친 매칭 질문지 작성이 모두 끝나자 옆에서 지켜보던 도미니치 백작이 무척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허허- 역시 듣던 대로, 대단한 결혼정보회사군요. 이렇게 꼼꼼하게 공주님의 성격을 분석하는 걸 보니, 상대 역시 그렇게 검토한 것을 토대로 매칭을 한다는 것 아니오?
그럼 아무래도 생각이나 취향 이런 것이 서로 잘 맞아 결혼 생활이 평탄하게 유지된다는 논리고요.”
“그렇습니다.”
“허허, 아주 마음에 듭니다. 나도 30년 넘게 결혼 생활을 했지만, 우리 아내하고는 모든 것이 달라서 지금까지도 고생이지요. 반면 동생 부부는 어찌나 서로 죽이 잘 맞고 재미나게 사는지.
샌더슨 경, 아주 기대가 큽니다. 우리 공주님께도 최상의 상대를 찾아 주십시오.”
“네,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태오는 간신히 자신의 감정을 들키지 않고 무사히 첫 상담을 마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