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태오의 처지
◈ 켄싱턴,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회원 명부를 뒤적이며 마리아 공주의 신랑감을 물색하던 태오가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 내가 뭐 하는 거야?’
신랑감을 찾는 내내 질투심에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태오였다.
공주에게 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으려고 될 수 있는 한 거리를 두려 했다.
최대한 형식적으로 대했고, 그녀의 감정도 읽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이렇게 태오가 감정을 차단하려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마리아 양이 한 왕국의 공주라는 높은 신분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누구도 사랑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 때문이었다.
18세기 전생으로 들어온 지도 벌써 15년이 다 돼가지만, 어떤 연유로 이곳으로 온 것인지 여전히 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지금도 21세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아무리 이곳에서 돈을 많이 벌고, 좋은 대접을 받으며 칭송받는 삶을 살아간다고 한들, 연극무대에 서 있는 가짜 인생 같은 공허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느닷없이 18세기로 들어왔듯, 아무 이유 없이 다시 21세기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몰라.’
이런 기대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태오로서는 이곳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더구나 지금 살고 있는 18세기에 깊은 정을 두었다가 21세기로 돌아간다면, 감당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일 것 같아 두려웠다.
만약, 아내와 아이들을 21세기에 둔 채로 여기로 왔더라면, 그 답답함과 그리움을 과연 견뎌낼 수 있었을지 의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결혼하지 않고 18세기로 떨어졌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몰랐다.
‘그래… 이런 상황에 사랑이라니… 내가 주제넘었지. 정신 차리자. 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허깨비 같은 존재야. 누구를 마음에 둘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리아 공주에 대한 감정이 조금은 정리되고,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대신 그녀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최고의 신랑감을 구해주자는 의지가 솟았다.
태오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열심히 회원 명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 1788년 11월 초. 테오 결혼정보회사, 5층 대표실.
마리아 공주의 배우자감으로 적합한 다섯 명을 새롭게 선택한 태오는 루시에게 필요한 준비를 지시했다.
“여기 내가 체크한 신사분들, 정보조사관에게 부탁해서 다시 한번 면밀히 살펴보라고 해.
그리고 문제가 없다고 하면, 루시가 한 사람씩 일정을 맞춰서 마리아 양과 만날 장소와 시간을 정해놓고.”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그런데….”
“……?”
“아까 보니까 아침 일찍부터 마리아 아가씨가 카페에 나와 있더라고요.”
“…그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태오였지만, 실은 공주가 1층 카페에 있다는 말에 몹시 신경이 쓰였다.
“마리아 아가씨가 정말 우리 카페나 이 거리가 맘에 드나 봐요. 아침은 물론 퇴근할 때도 거리에서 자주 뵙거든요.”
“다행이네. 그래도 우리 거리를 좋아해 주니 고맙지.”
“네, 그런데 저번에 보니까 도미니치 백작님이…”
루시가 신나게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태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끊었다.
“루시, 미안한데, 내가 지금 윈저성으로 바로 가봐야 하거든? 국왕 폐하와 긴히 할 얘기가 있어. 그러니 내가 말한 일정 준비 좀 신경 써서 잘해줘.”
아쉽다는 표정으로 루시가 대답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래, 수고!”
* * *
1층 계단까지 내려온 태오는 카페 입구 쪽을 살폈다.
다행히 공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을 피해 다니는 행동에 자신도 어처구니없었지만, 이제는 공주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될 수 있는 대로 피하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여겨졌다.
◈ 윈저성, 국왕 접견실(King’s Presence Chamber).
“……그렇게 국왕의 항복을 받아내 국민의회가 해산되는 걸 막아내고, 귀족과 성직자의 특권이 모조리 폐지되었다고 하옵니다.”
절대 왕정국가인 프랑스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중 봉기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 왕정국가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민중들이 그렇게 흥분해서 국왕에게까지 대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불편한 기색이 역력한 조지 왕이었다.
영국은 명예혁명 이후로 프랑스와 달리 헌법이 우선인 입헌군주제라, 국왕의 권력은 의회와 정당에 의해 크게 제한되었다.
하지만 18세기 영국 국왕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했고, 실질적인 지도자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 조지 왕으로서는 프랑스 혁명이 염려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옆에 있던 재무대신이 답했다.
“재정이 열악해지니 프랑스의 국왕이 새로운 세금부과를 논의하기 위해 전국에서 신분별 대표를 소집하면서 일이 터진 것 같습니다.”
혁명이 터지기 전, 프랑스에서는 세금을 내려는 사람은 없고 어떡하든 돈을 받으려는 사람들 천지였다.
잦은 전쟁과 상류층의 무분별한 향락과 사치, 그리고 영국과 맺은 ‘샌더슨 조약’은 좋지 않았던 프랑스의 국가 재정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결국, 국가 경제가 파산에 이를 지경이 되자 루이 16세는 면세 특권을 누리고 있던 귀족과 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신분별 대표를 모은 삼부회를 소집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삼부회의 결과가 좋지 못했고, 루이 16세가 군대를 동원해 국민의회를 해산시키려 하자, 제3신분의 분노를 촉발하게 했다.
그리고 곧 그 유명한 유럽대륙 최초의 인권 선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 등장하게 된다.
인구의 2%에 불과했던 제1, 2신분인 프랑스의 성직자와 귀족 상당수는 기존에 가졌던 부와 권력을 내던지고 살기 위해 해외로 도망가기에 바빴다.
‘민중이 자신이 가진 힘을 최초로 깨달은 사건.’
프랑스 혁명에 관한 어느 역사학자의 말대로, 새로운 권리를 자각한 제3신분인 다수의 민중은 소수 귀족 지배 계급 체제를 한순간에 무너뜨려 놓았다.
기존에 그들을 짓누르던 ‘계급 질서’가 하루아침에 파괴돼 버린 것이다.
하지만 민중을 억압하고 통제하던 ‘보이지 않는 질서’가 사라지자, 프랑스 사회는 이전보다 더 혼란스러운 세상으로 변해갔다.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란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듯이,
프랑스 혁명 시기는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고,
지혜의 시대이자 동시에 어리석음의 시대였으며,
믿음의 시기이자 의심의 시기였다.
그들 앞에 모든 것이 있어 보였지만, 또 한편으로 아무것도 없는 심각한 모순의 시대를 겪고 있었다.
이렇게 절대다수의 새로운 권력의 등장은 모순에 가득 찬 혼란과 고통스러운 통과의례를 겪게 했다.
한 고위 관리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바로 바다 건너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저 무지몽매한 프랑스 민중의 행동이 우리 영국에게까지 전염된다면, 우리도 결코 안전을 장담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최근 영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귀족이 많아지자, 영국 귀족들 사이에서도 불안감이 팽배해졌다.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던 조지 왕이 고개를 들어 태오를 찾았다.
“샌더슨 경! 샌더슨 경 어딨나?”
“네, 폐하!”
“어서, 어서 나와보게!”
귀족들 사이에 있던 태오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래,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앞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 같나? 혹시 우리도 프랑스와 같은 폭동을 겪게 될 위험이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처 방안으로 최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조지 왕의 질문 세례에 다른 대신들과 귀족들의 시선이 일제히 태오에게로 쏠렸다.
‘샌더슨 조약’은 태오의 협상단이 예측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프랑스는 흉년이 들어 큰 손해를 보았고, 영국의 고부가가치 산업제품에 완전히 압도되어 영국이 커다란 이득을 보고 있는 형태로 굳어져 갔다.
이제는 그 누구도 태오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평소 근본이 비천하다고 깔보던 귀족들도 막상 세상에 큰 혼란이 닥치자 자기도 모르게 태오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
세계의 역사를 흔들었던 가장 큰 사건 중의 하나인 프랑스 혁명.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태오는 그 혁명의 과정을 세세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개입으로 인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역사였다.
작은 날갯짓이 어떤 식으로 역사를 변화시킬지 이제는 예단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직 등장하지 않는 영국 해군의 영웅 호레이쇼 넬슨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벤담 제독의 말에 따르면 그는 현재 30살로 아직 젊은 군인이기에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생각해 보면 넬슨 제독이 활약해서 크게 이름을 떨친 것은 역사적으로 1790년대 후반과 1800년대 초반에 있었던 빈센트 곶 해전이나 나일 해전, 그리고 장렬히 죽은 트라팔가르 해전이다.
비록 역사가 조금씩 당겨지고 있다고 해도, 지금이 1788년이니 거의 10년 가까이 남은 셈.
영국에서 그의 이름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일 수 있었다.
폭동이 발발할까 걱정 가득한 조지 왕과 대신들, 그리고 귀족들을 한 번 둘러본 태오가 입을 열었다.
“민중의 폭동보다는… 전쟁에 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참 프랑스 민중 봉기를 얘기하는데 ‘전쟁’이란 말에 접견실이 술렁였다.
조지 왕이 물었다.
“지금 자네 전쟁이라고 했나? 갑자기 전쟁?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 건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조지 왕과 대신들이 숨을 죽인 채 태오의 주장을 경청했다.
“첫째, 프랑스 내부의 커다란 문제 때문에, 프랑스는 결국 밖으로의 전쟁으로 내부 문제를 돌리려 들 것입니다.
둘째, 프랑스가 혁명에 성공하고 그 상태를 유지한다면, 주변의 다른 국가에서는 그 혁명이 전염될까 봐 전쟁을 통해 프랑스 혁명의 색깔을 지우려 들 것입니다.
결국, 프랑스에서 주위 국가와 전쟁을 하려 하든 주변 국가에서 프랑스와 전쟁을 하려 하든 어차피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산업 발전에 불을 지핀 영국이었다. 그런데 전쟁이라니.
조지 왕으로서는 곤혹스럽기 이를 데 없었다.
“아니, 막 경제가 일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 프랑스가 큰 전쟁을 일으킨다면 어쩌란 말이오? 허- 다른 사람도 아닌 샌더슨 경의 말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정말 그렇게 된다면 큰일이로다.”
7년 전쟁과 북아메리카 식민지와의 전쟁으로 막대한 손해를 경험한 조지 왕은 전쟁이라는 말에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 폐하,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 있사옵니다.”
“기회…?”
“그러하옵니다. 우리나라는 프랑스가 있는 대륙과 달리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전쟁이 벌어진다고 해도 우리나라에는 어느 나라 군대도 쉽게 침범할 수 없는 형태입니다. 방어에는 지리적으로 최고의 조건이지요.
따라서, 다른 대륙의 국가와는 다르게 산업을 더 크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조지 왕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프랑스에서 우리 영국까지 금방 도착할 수 있지 않은가? 유럽에서 전쟁 나면 프랑스군이 우리 영국을 제일 먼저 노리려 들 텐데?”
프랑스의 칼레(Calais)에서 영국의 도버(Dover)까지의 거리는 약 34㎞ 정도에 불과해서 배를 타고 하루도 안 되어 도착할 수 있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잘 보셨습니다. 프랑스는 분명 가깝고 거대한 시장인 영국을 가장 먼저 노리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민중 봉기로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그 혼란이 잠잠해지고 전쟁을 벌이기까지는 몇 년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해군 전력을 보강해 전쟁 대비만 잘해둔다면 저들은 한 발자국도 우리 땅에 발을 디딜 수 없을 것입니다.”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태오의 예측은 접견실 내의 분위기를 환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총리가 물었다.
“전쟁 문제는 둘째 치고, 프랑스 민중들이 저렇게 귀족과 성직자들을 공격하고, 국왕의 항복까지 받아낸 마당에, 우리 국민도 어떤 자극을 받고 그런 행동으로 옮길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태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프랑스에서 왜 민중 봉기가 발생했는지 생각하면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동안 홍수와 가뭄, 냉해로 프랑스의 서민들은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있었지요. 거기다 각종 불합리한 세금과 부역 문제까지 겹쳐 그들의 분노를 일깨우게 한 것입니다.
즉, 경제를 살려서 민중들이 체감할 정도로 의식주를 개선하고 행정 체제를 개선하여 세금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부과한다면 프랑스에서와 같은 봉기는 영국에서 일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거기다 프랑스 민중들은 이 불합리한 세상을 엎으면 전혀 다른 좋은 세상이 펼쳐질 거라 기대했는데, 막상 생각과는 달리 살육과 더 큰 혼란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예전의 평화를 찾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모든 것이 안정적인 우리 국민은 봉기의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되겠죠.”
“흠- 일리 있는 분석이구려.”
태오의 말에 조금은 안도하는 총리였다.
“다만, 그런 평화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외국의 공격에 대한 대비가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계속 강조하지만, 그 중심에는 강력한 해군이 있어야 하고요.”
“강력한 해군이라….”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기는 조지 왕이었다.
아직은 나타나고 있지 않은 호레이쇼 넬슨.
혹시나 당겨진 역사 때문에 넬슨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태오는 미리부터 판을 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