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피카딜리 테오 무도회장
◈ 한 달 뒤, 1788년 12월 중순.
테오 결혼정보회사 3층 매칭 매니저실.
“아가씨가 오늘 참석 못 하신다니요? 그걸 이렇게 늦게 얘기해 주면 어떻게 해요?”
멜라니 웰치 매니저의 표정이 거의 울 것 같았다.
오늘은 피카딜리(Piccadilly)에 새롭게 개장한 테오 결혼정보회사 무도회장에서 무도회가 열리는 첫날.
태오의 계획으로 일 년 내내 주말마다 개최하는 소규모 무도회장이 시범적으로 두 군데 만들어졌다.
하나는 켄싱턴의 테오 스트리트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런던 피카딜리 인근.
일단 임시로 두 곳에서 1년간 운영해 보다 반응이 좋으면 미비점을 보완해 더 늘려나갈 계획이었다.
무도회는 남녀 각각 20명씩 짝을 맞추어 행사를 준비해 두었다.
규모가 작은 무도회인 만큼 참석자에 맞춘 각종 프로그램을 알차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인원이 맞지 않으면 큰 낭패였다.
만약 불참 통보를 받게 되면 예비명단에서 올려 무도회를 차질 없이 치른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빠른 통신 수단이 없던 시절이라 행사 몇 시간 전에 불참을 알려오게 되면 해결 방법이 없었다.
멜라니 매니저가 안절부절못하자, 하녀로 보이는 여성이 연신 허리를 굽히며 미안해했다.
“우리 아가씨가 어제까지 멀쩡했는데, 아침에 크게 복통을 일으킨 겁니다. 이유야 어찌 됐든 너무 죄송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급한 사정을 전달한 하녀가 매니저실을 나가자, 옆에 있던 루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거, 큰일이네. 몇 시간 만에 무도회장에 갈 만한 숙녀분을 어떻게 구하지?”
초조한 얼굴로 매니저실을 서성이던 멜라니가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소리쳤다.
“맞다! 아까 보니까 1층 카페에 마리아 아가씨가 오늘도 계시던데?”
루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봤어. 그런데 마리아 아가씨는 왜?”
“외국인이지만, 영어도 너무 잘하고, 굉장한 미인이신 데다 성격도 좋으신 것 같던데? 딱 맞지 않을까? 아직 연결된 신사분도 없으시잖아?”
멜라니의 말에 루시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건! 어떻게 그렇게 해? 마리아 아가씨는 대표님께서 직접 관리하고 계시는 특별회원이잖아? 성사만 되면 무려 50만 파운드짜리 결혼 건이라고. 모르긴 몰라도 나폴리 왕국에서도 굉장한 집안의 아가씨 같던데?”
멜라니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부탁드려 봐야지. 보니까 마리아 아가씨가 요즘 무척 따분해하시는 것 같더라고. 이럴 때 기분 전환도 할 겸 무도회장에 가서 춤도 추고 얘기도 하시면 좋잖아?
일단 물어보기만이라도 해 줘! 너는 마리아 아가씨하고 제법 친하잖아? 루시!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손까지 싹싹 비는 멜라니를 루시가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이번 피카딜리 무도회장의 실무 책임은 전적으로 멜라니가 지고 있었다.
그런데 첫날부터 인원이 맞지 않으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그녀가 져야 한다.
“아니, 그러다가 대표님이 아시면? 엄청 뭐라 하실 텐데? 이따가 피카딜리 무도회장에 대표님도 직접 가실 거 아니야?”
멜라니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야! 내가 어제 들었어! 대표님이 오늘 오후에 번즈 백작님 만찬에 들른다고 하셨어. 아마 새벽까지 번즈 백작님 집에 계시다가 아침에서야 집으로 들어가실 거야.”
“…그래?”
루시의 마음이 흔들렸다.
지난번 첫 번째 소규모 무도회장을 켄싱턴 거리에서 열었을 때, 책임자는 루시였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멜라니가 얼마나 큰 부담을 안고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다른 건 몰라도 미숙한 일 처리에는 불호령이 떨어지는 대표님이었다.
늘 만약을 대비한 다른 플랜을 항상 준비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확실한 거지? 대표님이 번즈 백작님 만찬에 가신다는 게?”
로저스 대위와의 결혼으로 태오 집에서 나온 루시는 멜라니보다 정보가 더 어두웠다.
멜라니가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럼! 확실해! 내가 어제 분명히 들었다고!”
* * *
“소규모 무도회라고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마리아 공주가 루시에게 되물었다.
“네, 아가씨. 우리 회사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하는 곳인데요. 두 시간 뒤면 열리는데, 글쎄 한 아가씨가 배탈이 심하게 나셔서 못 오신 데요. 당장 사람을 구하기도 어렵고 해서… 혹시 가능하실지….”
루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분주히 물건을 챙기는 마리아 공주였다.
“소규모 무도회라니. 무료했는데 너무 재밌겠는데요? 말씀하신 시간에 피카딜리의 무도회장으로 가면 되는 거죠?”
루시 뒤에 조마조마한 얼굴로 서 있던 멜라니가 앞으로 불쑥 나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가씨!”
“제가 더 감사하네요.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너무 쓸쓸했거든요.”
마리아 공주가 갑자기 짐을 챙기려 하자, 옆에 있던 수행 하녀가 영문을 몰라 했다.
하녀는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
“공주님, 어디 가시게요?”
“응, 무도회가 있다고 해서.”
“무도회요? 설마 공주님이 거기에 가시려고요?”
“응. 그러니까 너도 어서 준비해. 2시간 뒤야.”
“그러다 백작님이 아시면… 뭐라고 하실 텐데요?”
“걱정하지 마. 리틀턴 의원인가 하는 분하고 친해져서 초대받아 가셨으니까.”
“…그래도.”
“자꾸 잔소리 그만하고 얼른 따라나 와.”
* * *
테오 결혼정보회사 3층 매칭 매니저실.
매니저실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마리아 공주가 생각보다 쉽게 승낙해 주는 바람에 저녁에 있을 피카딜리(Piccadilly) 무도회는 무리 없이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시! 이 은혜 정말 잊지 않을게. 호호.”
“뭘, 내가 한 게 있나. 하지만 대표님 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 알지?”
“그럼, 당연하지! 아까 마리아 아가씨에게도 신신당부해 드렸는데, 조금도 염려하지 말라며 윙크까지 하셨다니까? 성격이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보기보다 엄청 귀여우신 분이더라고. 호호.”
딸랑~♬
그때 3층 매니저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이내 루시와 멜라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 아니… 대표님?”
귀신을 쳐다보는 듯한 얼굴에 태오가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두 사람 표정이 왜 그래?”
멜라니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대… 표님, 오늘 오후에… 켄트 가문 만찬회에… 가신다고…?”
태오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 그거? 아침에 백작님께서 급한 일이 있으시다고 연락이 와서 다음 주로 미뤘어.”
“네?”
루시와 멜라니가 서로 눈치를 주고받았다.
태오가 대표실로 올라가려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따가 피카딜리 무도회장에 갈 거니까, 멜라니도 준비하고 있어. 같이 가자고.”
“네? 대표님께서요?”
태오가 다시 돌아섰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내가 가봐야지?”
“아니… 지난번에도 가셨는데, 또 가실 필요가….”
“그때는 우리 켄싱턴에서 열린 무도회였고, 오늘은 런던 시내잖아? 거기다 지난번 소피아라는 회원이 오늘 무도회에 참석한다며? 올해가 가기 전에 상대를 구해줘야지. 안 그러면 소피아 어머님이 대표실로 달려오실 거라고.”
“네? 아, 네… 네… 그렇죠.”
평소와 다른 불안정한 감정을 감지한 태오가 멜라니를 추궁했다.
“멜라니?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내가 거기 가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사람처럼?”
“…그, 그게….”
멜라니가 말을 못 하고 주저하자, 루시가 나서서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그렇게 해서, 제가 마리아 아가씨에게 부탁했더니, 흔쾌히 허락하셔서….”
“그렇다고, 거기로 보내면 어떡해?”
“마리아 아가씨도 굉장히 심심해하셨어요. 얼마나 좋아하셨는데요.”
“그래도 그렇지….”
이미 마리아 공주가 가버린 이상 더 따져봐야 별수가 없었다.
“뭐, 사실 오늘 같은 일은 대비한다고 대비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멜라니 잘못은 아니야.”
멜라니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생겨도 해결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 놓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일단 무도회장으로 갈 준비를 하자고.”
“네, 대표님.”
◈ 런던 피카딜리(Piccadilly) 인근, 테오 무도회장.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12월 중순의 날씨는 상당히 쌀쌀했다.
멜라니 웰치 매니저와 마차에서 내린 태오는 새롭게 꾸며진 무도회장 입구로 향했다.
층계에는 레드 카펫이 깔려 있었고, 테오 결혼정보회사의 대표 문양이 고급스럽게 벽면에 새겨져 있었다.
“올라가는 입구가 다소 어두워. 제이크 씨한테 얘기해서 이 방향으로 큰 등을 몇 개 더 설치하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층계를 밟고 입구로 올라서자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달려 나와 정중하게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덜컹-
무도회장의 안은 차가운 밖의 날씨 때문인지, 더 따뜻하고 아늑하게 느껴졌다.
♪♪♫♫~♬~♩~♪~
그윽한 커피 향과 새롭게 조직한 브라스 밴드의 감미로운 음악은 추운 날씨에 얼었던 몸과 마음을 사르르 녹이는 기분이었다.
♪♫~♬♪~
무도회장 벽에는 큰 거울이 많이 달려 있었다.
조명이 부족한 18세기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금박의 촛대 위에서 빛나는 수많은 촛불이 거울에 반사되어 무도회장을 환상적이고 특별한 느낌이 나도록 연출했다.
공식적인 참석자는 40명이었지만, 진행요원과 서비스를 담당하는 하녀와 하인들의 밝은 웃음으로 인해 무도회장은 북적거리고 활기차 보였다.
철저히 교육한 보람이 있었다.
“아- 대표님, 분위기가 너무 좋은데요? 얼마 전 켄싱턴에서보다 더 괜찮은 것 같지 않아요?”
흥겨운 분위기에 멜라니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녀의 말대로 켄싱턴에서의 문제점을 대폭 보완하고, 밴드의 음악도 다채롭게 구성하니 작은 차이가 분위기를 확실히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때 아름다운 드레스를 차려입은 마리아 공주가 태오의 눈에 들어왔다.
‘……!’
연한 분홍색의 고급스러운 실크 드레스는 공주의 가는 허리를 타고 부드럽게 흘러내려 바닥에 살짝 닿아 있었고, 곱게 땋아 올린 머리에 놓인 장식들은 그녀의 우아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이마에 걸려있는 작은 보석은 움직일 때마다 촛불에 반짝이며 공주를 더욱 특별해 보이게 만들었다.
“대표님!”
넋을 잃고 공주를 훔쳐보던 태오는 멜라니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어, 어?”
“저기 있는 분이 바로 문제의 소피아 아가씨입니다.”
무도회장 한편에 모여 있는 여자들을 쳐다보며 태오가 되물었다.
“저 아가씨들 중에 정확히 누가 소피아 양이라고?”
멜라니는 발목을 덮지 않은 평범한 회색빛의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가리켰다.
“그림이 있는 벽 바로 앞에 회색빛의 드레스를 입은 숙녀분 보이시죠?”
웃음기 없이 조용히 서 있는 소피아는 조금 무뚝뚝해 보였고, 눈에는 외로움이 묻어났다.
다른 아가씨들은 공들여 만진 가발에 온갖 장신구를 달고서 화려한 화장으로 한껏 꾸미고 있었지만, 그녀는 매우 단순한 형태의 머리에 소박한 치장을 하여 조금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
하지만 외모 자체가 매력 없는 아가씨는 절대 아니었다. 입고 있는 옷과 표정 때문에 주위의 여성들에게 묻혀 보일 뿐이었다.
아무래도 소피아 양과 그녀의 어머니는 꾸미는 재주나 감각이 없는 것 같았다.
드레스만 해도 참석자 대부분은 발목까지 감싸는 볼륨 있는 긴 드레스였지만, 소피아 양만 색도 어두웠고 볼륨이 약해 너무 평범해 보였다.
‘표정이나 몸짓을 보면 억지로 끌려 나온 것 같지는 않은데… 주위의 화려한 숙녀들 때문에 너무 주눅이 든 것 같네.’
그때 음악이 바뀌면서 바로크 시대에 유행하던 미뉴에트 풍의 연주곡이 흘러나왔다.
♩~ ♫♫~♬~♩~ ♬~♪♩♪♩~
‘……!’
순간 태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흘러나오는 우아한 곡에 소피아 양의 몸이 미세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잡혔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리듬을 타는 것을 보니 이 곡을 알고 있었고, 춤도 익숙한 게 틀림없었다.
‘…….’
18세기의 영국인으로 환생한 태오가 매너와 함께 가장 신경 썼던 것이 사교댄스.
사실 사교댄스는 태오가 미국 대학에 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취미생활이기도 했다.
클래식의 우아한 선율 위에서 몸을 맡기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웠었다.
사교댄스 대회에 나가 상을 탈 정도로 아마추어를 넘어선 실력을 갖춘 태오였다.
특히 18세기 중반까지 큰 유행을 했던 바로크 시대의 음악과 춤, 그리고 미뉴에트 곡에 맞춰 춤추는 것을 무척이나 즐겼었다.
그래서인지 18세기로 돌아와 무도회장에서 그렇게 좋아하던 사교댄스를 췄을 때, 처음에는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형식이나 움직임은 다소 달랐지만, 이미 준프로급의 테크닉을 가지고 있는 태오가 18세기 춤을 익히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18세기의 무도회장에서 그렇게 춤을 잘 추는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사교댄스에서 남자의 숙련된 리드가 정말 중요한데, 이 시대에 남성은 의외로 춤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 보니 춤의 동작과 리듬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단체로 추는 컨트리 댄스의 간단한 동작 정도를 익혀서 주위에서 잘 추는 남성의 모습을 곁눈질로 살피며 어설프게 흉내 내는 정도였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교양으로 댄스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다 보니, 남성들보다는 훈련이 잘되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움직임도 태오의 눈에는 어설퍼 보이기는 마찬가지.
춤이라는 건 상대방과의 교감과 움직임에서 오는 희열과 재미가 있어야 한다.
현대에 있을 때는 태오의 리드에 우아한 몸짓으로 잘 따라오는 숙련된 상대가 있어서 춤추는 재미가 컸지만, 정작 18세기에 오니 그런 상대가 없어서 그만큼 큰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도회장에서의 춤추는 즐거움도 점점 잃게 되었고, 이후로는 무도회의 사교댄스에 참여를 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미뉴에트 풍의 음악에 반응하며 리듬을 타는 소피아의 작은 몸짓에서 현대에서나 보던 숙련자의 향기가 느껴졌다.
‘흠… 소피아 양이 춤을 잘 출 것 같은데? 일단 이따 단체로 출 때 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기대가 돼. 그렇다면….’
그때 문득 태오에게 좋은 생각이 났다.
태오는 멜라니에게 다른 지시를 내리고서는 곧장 브라스 밴드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