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75
175화. 넬슨과의 만남
◈ 1789년 5월 중순, 런던 T&S 카페 4호점.
라틴어 수업을 마치고 학교 근처 T&S 카페에 들른 마리아 공주는 태오와 함께 시럽이 가미된 커피를 마셨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서 마시는 이 커피 한잔이 정말 최고네요.”
T&S 카페에서 새롭게 출시한 달콤한 커피가 큰 인기를 끌었다.
여기에는 설탕과 물, 과일 액기스 등을 이용해 만든 시럽이 큰 몫을 했다.
태오의 아이디어와 쌍둥이 남매의 연구를 거쳐 만들어진 시럽은 쌉싸름한 커피의 맛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면서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옆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던 하녀들도 이탈리어의 방언인 나폴리타노(Napoletano)어로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백작님은 오늘도 집에 계시나 봅니다?”
“네, 후후- 절 따라다니시는 게 많이 피곤하셨나 봐요.”
늘 함께하던 도미니치 백작이었지만, 마리아 공주의 수업이 있는 날에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자주 집에서 쉬었다.
덕분에 두 사람은 눈치를 보지 않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힘들지는 않으세요?”
태오의 물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공주였다.
“힘들다니요! 얼마나 재밌고, 보람된 일인데요. 샌더슨 경도 아이들의 그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앞에서 보시면 제 기분을 바로 이해하실걸요?”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에 태오의 마음도 덩달아 따뜻해졌다.
하지만, 하루하루 서로의 사랑이 깊어지면서 불안감도 커져갔다.
도미니치 백작은 얼마 전부터 왜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게 해주지 않느냐면서 노골적으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음을 볼 때마다 강조했다.
오로지 공주의 결혼을 위해서 중책을 맡고 온 백작이었기에, 그의 답답한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백작이 그럴수록, 공주의 마음은 더욱더 불안해졌다.
“또… 안 좋은 생각 하고 있었죠?”
골똘히 생각하는 마리아 공주의 모습에 태오가 눈치를 채고 물었다.
“…네, 뭐.”
태오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5월까지만이라도 아무 생각하지 말아요. 지금은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느껴 봐요. 그리고 6월이 되면, 그때 어떤 결정이든 내리자고요.”
6월이라….
신기하게도 태오의 그 말이 지금 마시고 있는 커피처럼 달콤하게 다가왔다.
고통스러운 이별이 다가올까 두려웠던 마음이, 결정 기한을 미루자는 태오의 말 한마디에 씻은 듯이 사라졌다.
“…네, 그래요. 우리 그렇게 해요.”
“이따가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할래요? 새로 모신 요리사의 솜씨가 그렇게 좋다던데요.”
“네, 좋아요!”
최소한 보름간은 모든 걸 잊고, 어쩌면 다시 오지 못할 이 아름다운 순간을 즐기고 싶은 마리아 공주였다.
◈ 1789년 6월 초, 런던 그로스베너 스퀘어(Grosvenor Square)인근.
늦은 저녁.
태오는 매슈 벤담 제독과 함께 존 저비스 제독 집으로 향했다.
오늘 그로스베너 스퀘어에 위치한 저비스 제독의 저택에서 진급 축하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다.
그는 얼마 전 해군 서열 5위인 ‘백색 제독(Vice Admiral of the White)’으로 올라섰다.
저비스 제독이 살고 있는 그로스베너 스퀘어(Grosvenor Square)는 태오가 사는 메이페어 지역 안에 있는 큰 광장이었는데, 18세기에 들어와 주거지로 개발하면서 많은 고급 주택이 들어서고 있었다.
‘바로 근처에 살고 있었구나….’
태오는 저비스 제독의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넬슨 대위가 영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스피키오 교장으로부터 전해 들었다.
멀리 나가 있던 그가 한걸음에 달려온 것만 봐도, 넬슨이 존 저비스 제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넬슨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태오는 마침 런던에 있던 매슈 벤담 제독에게 부탁해 저비스 제독의 진급 축하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다.
* * *
“축하하오, 저비스 제독.”
집사의 안내를 받아 벤담 제독과 태오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존 저비스 제독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달려 나왔다.
백발의 머리카락에 강인한 턱선, 검게 그을린 피부와 진지한 눈매에서 해군 제독으로서의 경험과 지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아이고, 제독님! 보잘것없는 축하연에 이렇게 참석해 주시다니….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벤담 제독의 등장에 해군 장교들이 여기저기 일어나 인사하기에 바빴다.
인사를 받던 벤담 제독은 존 저비스와 다른 군인들에게 태오를 가리키며 소개했다.
“다들 주목하게! 여기 계신 이분은 테오 샌더슨 자작님일세. 자네들도 자작님의 존함은 한 번씩은 들어봤지?”
왕궁을 출입하는 군인 중에는 이미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해군의 경우 배를 타고 몇 년씩 해외로 돌아다녀서인지 태오의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태오의 명성이야 다들 들어 잘 아는 눈치였다.
저비스 제독이 태오의 손을 덥석 붙잡으며 고마워했다.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방문해 주시다니…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샌더슨 자작님!”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독님. 진급을 축하드리고요.”
“아이고- 네, 네! 감사합니다. 하하하-”
저비스 제독은 자신의 축하 파티에 그 유명한 테오 샌더슨이 참석한 것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예상치도 못한 유명인의 등장이었는지 주위의 젊은 장교들과 귀족들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태오를 힐끔거렸다.
‘이 중에 호레이쇼 넬슨도 있을까?’
태오가 역사책에서 기억하고 있는 넬슨 제독은 명예욕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평민 신분의 집에서 태어났지만, 해군 고위직에 있던 먼 외가 친척의 도움으로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빠르게 승진도 할 수 있었다.
신분과 돈, 그리고 후원자가 없으면 진급에 철저히 배제되었던 이 당시의 군 분위기에서, 고위직에 있던 친척의 도움은 넬슨에게 절대적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쯤 분명 성장의 한계를 느끼고 힘들어할 시기.
가진 능력이 아무리 출중해도, 수많은 귀족 가문 출신들에 의해 모든 공로가 가려지는 것이 18세기 영국 군대의 엄연한 현실이었다.
게다가 평민 출신인 넬슨이 특별한 인맥도 없이, 먼 외가 쪽의 도움을 받는 것만으로는 진급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보다 능력 있고, 또 그만큼 성취와 명예욕이 강했던 넬슨.
어느 역사가에 따르면 넬슨은 줄을 잘 서고, 왕족이나 높은 직위의 사람에게 아첨을 잘했다고까지 기록하고 있다.
어쩌면 평민 신분으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배경을 거기서 찾은 역사가의 개인적 견해일 수 있지만, 낮은 신분에서 오는 열등감과 출세에 대한 욕망이 남달랐던 인물이란 점은 분명해 보였다.
태오는 넬슨의 그러한 타고난 기질을 미끼로 유인해 보려고 마음먹었다.
해군 제독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넬슨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 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즉, 자신의 인사권에 직접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해군 고위직이 잔뜩 모여 있고, 조지 왕의 총애가 두터운 태오까지 함께 자리하고 있다면, 넬슨이 그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는 판단이었다.
여기서 하나 더해,
심리학 관점에서 볼 때 넬슨을 직접 찾아가 손을 내밀면, 아무래도 그만큼 태오의 가치를 낮추어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필요에 의해 찾아오게 만들면, 그는 더 소중한 기회로 여기고 태오를 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움직임을 예측해 보면 우리 영국 해군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이 점은 폐하께서도 통감하셨고요.”
어느새 태오와 벤담 제독, 그리고 존 저비스 제독 주위로 고위급 해군 장성 대여섯이 모여 있었다.
“오- 그러셨습니까? 역시 듣던 대로 샌더슨 경은 정세를 아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시는군요.”
감탄하던 해군 장성이 말을 거들었다.
“제가 외국을 돌다 보니 자작님의 말씀대로 프랑스에서의 기류가 심상치 않은 건 확실한 듯합니다. 앞으로 해군이 전력을 강화해서 해상에서의 방비를 그 어느 때보다 단단히 해야 할 겁니다.”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프랑스의 해군이 우리 영국 해군보다 한 수 아래라는 건 확실하지만, 현재 영국 해군이 전 세계에 분산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모여 있는 프랑스 해군의 힘을 절대 무시할 수만은 없지요.”
벤담 제독과 존 저비스 제독, 그 외 쟁쟁한 해군 고위급 장교들이 모여 있었고, 여기에 실세 중에서 실세인 테오 샌더슨 자작이 함께였다.
고위급 지휘관이 아닌 젊은 장교들은 이들을 그저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만 볼 뿐, 함부로 다가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축하드립니다, 존 저비스 제독님!”
고개를 돌린 저비스 제독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하고는 환한 미소로 응답했다.
“오- 그래, 넬슨 대위! 고맙네. 하하- 자네, 언제 왔는가? 오래간만이구만!”
넬슨이라는 소리에 내심 놀란 태오였지만, 태연하게 그를 살폈다.
드디어, 그렇게 보고 싶었던 세계 해전사의 위대한 제독, 호레이쇼 넬슨을 직접 영접하는 순간이었다.
‘…….’
중간 정도의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 날카로운 턱의 라인, 밝은 갈색 머리를 뒤로 묶은 넬슨은 푸른 눈을 반짝이며 천천히 다가왔다.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직접 마주한 넬슨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예술가의 얼굴에 가까워 보였다.
솔직히 현대에서 막연히 가졌던 영국 해군 영웅으로서의 카리스마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번뜩이는 그의 날카로운 눈매에서 시대를 풍미할 야심이 느껴졌다.
저비스 제독이 넬슨의 어깨를 두드리며 태오에게 소개했다.
“샌더슨 자작님. 이 친구가 이래봬도 겨우 스물에 함장이 된 친구입니다.”
“호- 대단하네요. 스무 살에 함장으로 배를 지휘했다니….”
태오의 감탄에 넬슨은 쑥스럽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외삼촌께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
호레이쇼 넬슨은 스무 살에 영국 프리깃함 함장에 기용되어 당시 영국 해군 사상 최연소 함장 기록을 세웠다.
아마도 당시 고위직에 있던 외삼촌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때 한 고위 장교가 날이 선 목소리로 넬슨에게 물었다.
“그래, 한동안 쉬어 보니 어떤가? 이제는 상관들 명령에 좀 충실해지고 싶어졌나?
자네가 일을 벌여놓으면 늘 수습하느라 고생하신 서크릴 경도 이젠 돌아가시고 안 계시니, 아무래도 좀 고분고분해졌을 것 같은데… 안 그런가? 후후.”
얘기를 들어보니 넬슨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해군의 고위층이던 외삼촌이 돌아가신 것 같았다.
고위 장교를 돌아본 넬슨은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받아쳤다.
“참 신기했습니다. 현직에서 나와 잠시 쉬어보니 제가 했던 당시의 행동들에 어떠한 잘못도 찾을 수 없더군요. 함선이 아닌 법정을 드나들면서 행여나 어떤 잘못이 내게 있었던 건 아닌가 하고 세심하게 따져봤지만, 정말이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 당시 제 상관이던 사람이 얼마나 멍청했는지만 더 확실해지더군요.”
여기저기서 숨죽인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뭐… 뭐야…?”
얼굴이 벌게진 고위 장교를 보니 당시 멍청했다는 상관이 바로 그인 것 같았다.
저비스 제독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둘의 신경전을 가로막았다.
“어허- 지금 내 잔치에 와서 뭣들 하는 건가? 거기다 특별히 방문해 주신 샌더슨 자작님도 계신 마당에? 우리 해군이 이렇게 단합이 안 되는 모습을 보여서야 쓰겠느냐는 말일세?”
“죄송합니다, 제독님.”
곧바로 사과하는 넬슨과 달리 화가 잔뜩 난 고위 장교는 억지로 예의를 표하더니 일이 생겼다면서 자리를 급히 떠났다.
‘지휘권이 없을 때도 상관의 명령을 어기면서까지 자기 지략을 펼쳤다더니, 상당히 저돌적이고 정말 한가락 하는 성격인가 보구나. 하긴, 이 정도는 돼야 천하의 나폴레옹을 그렇게 괴롭힐 수 있지, 후후.’
영국 해전사의 불멸의 영웅 넬슨 제독의 설익은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태오였다.
◈ 며칠 뒤. 런던 세인트제임스(St. James) 거리, 마리아 공주의 숙소.
똑- 똑-
늦은 저녁.
도미니치 백작이 마리아 공주의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렸다.
“공주님, 도미니치 백작입니다. 아까 깜박 잊고 전하지 못한 말씀이 있어서 이렇게 들렸습니다.”
그러나 웬일인지 방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나지 않았다.
백작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침실에 들어간 지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잠들었을 리는 없을 테고.’
도미니치 백작이 다시 문을 노크하더니, 이번에는 공주의 시중을 드는 하녀를 조용히 불렀다.
똑- 똑-
“스테파니아? 공주님 주무시니? 스테파니아? 네가 문 좀 열어 봐.”
똑- 똑-
“스테파니아? 문 좀 열어 보라니까? 뭐 하고 있는 게냐?”
도미니치 백작이 문을 두드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문이 열렸다.
덜컹-
하녀를 보자마자 도미니치 백작이 역정을 부렸다.
“어허- 네가 정녕 목이 달아나고 싶은 게냐? 어찌 공주님 옆을 지키면서 그렇게 깊이 잠들 수가 있단 말이더냐!”
“백작님, 그게… 그게 아니옵고….”
당황해하는 하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백작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공주님은… 공주님께선 지금 무얼 하고 계시느냐?”
“주… 주무시고 계십니다. 피곤하시다면서 깊이… 잠이 드셔서….”
“침실에 들어간 지 고작 10분도 되지 않았는데 깊이 잠이 드셨다고? 그러고 보니, 너 역시 얼굴이 생생한 것이 자고 있지 않았구나? 자고 있지도 않으면서 왜 이렇게 늦게 문을 연 것이지?”
“그… 그게….”
순간 백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공주님께서는 안에서 정말 주무시고 계신 것이 맞느냐?”
“네? 아… 네, 네. 물론입니다!”
안절부절못하는 하녀에게 백작이 엄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만약 안에 공주님이 계시지 않으신다면, 너를 왕국으로 당장 압송시켜 목을 매달게 할 것이다.”
“백… 백작님!”
“다시 한번 묻겠다. 정말 안에 계시느냐?”
이리저리 눈알만 굴리던 하녀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흐느끼듯 답했다.
“네… 네… 공주님께서는 안에서… 주무십니다… 주무시고…”
“비켜랏! 이 맹랑한 것이, 어디서 감히 거짓말을!”
팍-
“어머!”
덜컹-
하녀를 거칠게 밀고서 문을 활짝 열어젖힌 백작이 크게 소리치며 침대로 다가갔다.
“공주님? 공주님!”
그의 부름에도 아무런 미동이 없자 백작은 이불 끝을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덮여 있는 이불을 붙잡고 정중한 목소리로 용서를 구했다.
“공주님! 저의 무례를 용서하시옵….”
스윽-
백작이 이불을 내리자, 베개 여러 개가 사람 형태로 겹쳐 있었다.
“이… 이런…!”
공주가 없는 것을 확인한 도미니치 백작이 하녀를 향해 사납게 두 눈을 치켜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