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넬슨의 비상(飛上) >
◈ 1789년 9월 중순.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 인근 저택.
나폴리 왕국의 왕세자인 카를로 드 부르봉은 허버트 남작과 함께 보름이 넘는 항해 끝에 런던에 도착했다.
런던에서는 허버트 남작과 오랜 친분이 있는 에녹 힐 백작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에녹 백작은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영국 의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영국 정계에서 은퇴한 정치인이었다.
런던에 올 때마다 도움을 주었던 에녹 백작은 이제 허버트 남작에게는 친인척이나 다를 바 없었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에녹 백작은 따뜻하게 허버트 남작과 카를로 왕세자를 맡아주었다.
묵을 방을 안내받은 후, 왕세자와 남작은 백작과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 도중 허버트 남작은 카를로 왕세자의 신분을 밝혔다. 그리고 나폴리 왕국의 왕세자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도움을 구했다.
“그러니까, 공주님과 일을 벌인 테오 샌더슨 자작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달라?”
에녹 백작이 허버트 남작에게 되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허- 그럼 지금 마리아 공주님께서는 샌더슨 자작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계신다는 건가?”
“받은 편지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일로 지금 나폴리 왕실이 발칵 뒤집혔나 봅니다.”
에녹 백작의 놀란 표정에 카를로 왕세자가 어눌한 영어로 말문을 열었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국왕 폐하께서도 지금 이 일로 얼마나 상심이 크신지 모릅니다. 어찌 그런 장사치에 아첨꾼인 형편없는 사람과··· 저도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카를로 왕세자는 무척 창피해했다. 동생 때문에 이 무슨 망신인가 싶었다.
신분을 중시하는 영국 귀족 사회에서 미천한 장사꾼과 결혼하겠다는 공주 얘기에 얼마나 기가 차겠는가.
그런데 에녹 백작은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그것참 이상하군. 왕세자님이 누구에게 무슨 얘기를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테오 샌더슨 경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네?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허버트 남작도 런던을 떠나온 지가 15년이 훌쩍 넘어 태오를 잘 알지 못했다.
“지금까지 얘기를 죽 들어보니, 나폴리 왕실에서는 샌더슨 경을 집안도 형편없고, 높은 사람에게 아부나 해서 자작의 지위까지 오른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은데··· 아닌가?”
“네, 맞습니다. 샌더슨 이란 자가 그런 사람 아닙니까?”
에녹 백작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 사실, 뭐 나도 샌더슨 자작과 친분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왕자님께 확실한 말씀을 드리지는 못하겠지만, 교류하는 공작님들이나 다른 귀족들에게 들은 바로는··· 쿨럭, 쿨럭-”
부쩍 쇠약해진 에녹 백작은 최근 폐가 안 좋아졌는지 기침을 심하게 했다.
“괜찮으십니까? 백작님?”
“아이고, 미안하네. 쿨럭- 어쨌든 나폴리 왕국에서 영국의 귀족 중 사윗감으로 샌더슨 경을 맞이한다면, 내 관점에서 볼 때는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닌 것으로 보이네.
절대 그렇게 낮춰서 볼 인물이 아니야. 지금 우리 영국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사람으로서 추앙받는 분위기일세.”
“네?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니요? 샌더슨 경이 관직에 있는 사람이었나요?”
“아니야. 관료는 아닐세. 그냥 사업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 그 사람을 제대로 설명하자면 참 복잡해. 정치인도, 군인도, 의사도 뭣도 아닌데··· 그 어떤 정치인이나 군인, 의사보다 뛰어난 사람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말로 설명해봐야 이해가 안 갈 걸세. 하여간 왕세자님도 시간이 되면 그분을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눠보시면··· 쿨럭-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실 거라고 전해주게.”
“아··· 네.”
*
에녹 백작이 내어 준 방에서 허버트 남작이 카를로 왕세자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에녹 백작님도 이제 나이가 드신 게 아닌가 합니다. 총기도 예전만 못하시고, 정계에서 떠나신 지 오래돼 돌아가는 상황에도 둔감하신 것 같네요.
중매업자가 나쁜 선택이 아니라니··· 게다가 그런 장사꾼이 영국을 이끌고 추앙받고 있다는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을 하시고. 왕세자님도 조금 황당하셨겠습니다.”
카를로 왕세자는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네. 솔직히 그랬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공주에게 그런 작자가 어울린다는 말을 그리 쉽게 하시다니.”
“백작님이 절대 그런 분이 아니신데, 병 때문인지 정신이 많이 흐려지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왕세자님? 공주님께서 거처를 어디로 옮기셨을까요?”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마리아 공주가 머물렀던 숙소로 가보았지만, 이미 짐을 정리하고 나간 상태였다.
왕실에서 가지고 있던 주소는 그곳이 유일했기에 수소문해 찾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카를로 왕세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
“공주가 어디로 갔겠습니까? 뻔하죠.”
“?”
“테오 샌더슨이라는 그 작자의 집에 있을 겁니다. 도미니치 백작이 건네준 그자의 결혼회사 주소가 있으니, 내일 그 회사를 찾아가서 동생을 당장 내놓으라고 해야겠습니다.”
“아, 네. 그러면 되겠군요.”
◈ 런던 세인트제임스 궁(St. James’s Palace), 접견실.
“흠··· 그러니까, 자네의 말은 해상 방비가 가장 최우선으로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외국 사신의 접대 문제로 세인트제임스 궁에 들른 조지 3세는 태오와 대신들 그리고 귀족 의원들을 불러놓고, 앞으로의 현안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와 관련한 태오의 발언에 질문을 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이제 프랑스의 민중 봉기로 생긴 혼란이 어떤 식으로든 수습이 되고 나면,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유럽은 한바탕 전쟁의 광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큽니다.”
옆에 있던 하원의원이 태오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쎄요. 과연 프랑스가 전쟁을 치를만한 여유가 있을까 싶소. 군대에 있는 장교들도 대부분 죽거나 도망가고 제대로 된 지휘관도 없는 마당에 다른 나라와 전쟁이라니··· 절대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태오가 답했다.
“제가 운영하는 상업교육 연구소에서는 프랑스와 교역하는 무역상들을 통해 매일 매일 내밀한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그 정보 중에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이 있었습니다.”
조지 왕이 궁금한 얼굴로 재촉했다.
“주목할 만한 정보? 어떤 정보가 있었다는 겐가?”
“민중들의 봉기로 군 고위 장교들의 이탈이 심했고, 이로 인해 프랑스군의 운용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오히려 젊은 지휘관들이 군을 꿰차고 나서기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젊고 능력도 있지만, 그동안 적체되어 있던 귀족 상관들 때문에 빛을 못 보던 장교들이 민중 봉기를 계기로 나설 수 있게 된 것이죠.
젊은 지휘관 중에는 하급 귀족이나 평민 출신의 돈 없는 사람들이 많아서 민중들의 처결 대상에서 자연스레 제외된 점도 있었습니다.
만약 그 젊은 지휘관들이 하나의 세력으로 전면에 등장한다면, 봉기에 뒤따른 혼란에 지친 정치인들이나 무질서에 불안해하는 국민도 그들을 구심점 삼아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또 연구에 따르면, 그렇게 결성된 군부 세력이 현 프랑스의 문제를 풀기 위해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키게 될 가능성을 매우 크게 점치고 있습니다.”
태오는 나폴레옹의 등장을 알리고 있었다.
나폴레옹은 불과 24세의 어린 나이에 프랑스군의 장군이 되어 포병 지휘를 맡게 된다.
포를 정확히 쏘려면 수학적 머리와 빠른 계산이 요구됐는데, 수학에 뛰어났던 나폴레옹은 포병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혁명으로 구멍 난 지휘관 자리를 꿰차고 승승장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실력과 프랑스 혁명이라는 운이 들어맞으면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인물로 성장한다.
역사가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었지만, 프랑스의 돌아가는 판세로 보건대, 나폴레옹의 등장은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일이었다.
조지 왕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허허- 참. 난 샌더슨 경이 저렇게 진지하게 말할 때마다 아주 등골이 오싹해. 경이 그렇게 말하고 일어나지 않은 일이 없었으니 말이야.
그럼, 우리는 자네가 계속 말한 대로 해군을 키워 대비를 하면 된다는 건가?”
모두의 시선이 태오에게로 쏠렸다.
이미 ‘샌더슨 조약’을 통해 ‘테오 상업교육 연구소’의 놀라운 능력을 확인한 그들은 이번에도 확실한 대비책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만약 우리 영국이 해군을 강화하고 젊은 지휘관을 제대로 선발하여 대비한다면···.”
잠시 말을 끊자, 접견실 내에 사람들은 모두 숨죽인 채 이어지는 태오의 말을 기다렸다.
“프랑스는 우리 땅에 한 발자국도 들여놓지 못할 것입니다.
또 그렇게만 된다면, 유럽대륙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해도, 우리 영국의 산업은 더욱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되리라는 것이 우리 상업교육 연구소가 내린 결론이기도 합니다.”
태오의 확신에 찬 대답에 조지 왕은 몹시 든든해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좋아. 늘 겁을 주던 자네가 그렇게 긍정적인 장담을 하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구먼. 좋아. 그렇게 하자고! 그럼, 일단 경이 일전에 추천한 장교부터 현직에 복귀시키면 되겠는가? 그 이름이 뭐라 했더라?”
“호레이쇼 넬슨 대위이옵니다, 폐하.”
“아, 맞아! 넬슨!”
기분이 좋아진 조지 왕은 태오가 특별히 부탁했던 젊은 해군 장교인 넬슨의 이름을 거론했다.
조지 왕은 해군성 대신을 찾았다.
“해군성 국무위원(First Lord of the Admiralty)!”
“네, 폐하!”
“넬슨이라는 장교를 쓸만한 곳에 넣을 곳이 있는가? 함장급으로 말일세.”
잠시 고민하던 국무위원이 곧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드는 생각으로는, 프랑스 지역의 국경을 수비하는 함선을 맡기는 게 합당하다고 사료되옵니다.”
“그래, 좋아, 좋아. 그렇게 빨리 조치하도록!”
“네, 폐하.”
조지 왕이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참! 그리고 다음 달 초에 있을 작위 수여식에서 내 샌더슨 경에게 백작 작위를 수여할 예정이니 모두 그렇게 알아 두게.”
조지 왕의 느닷없는 공표에 접견실이 술렁거렸다.
누구보다 태오가 당황한 얼굴이었다. 갑작스럽게 백작이라니.
“아니, 폐하. 저는 아직 그럴만한 자격이···”
“거, 무슨 소리인 건가? 경이 그동안 교육 사업과 소작농들을 위해 커다란 배려를 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이 나라에 누가 있는가?
게다가 난 그저 그런 일을 지켜보고 승인해주었을 뿐인데도 국민이 나까지 칭송하고 있다고 하더군. 알고 보니 자네가 이 모든 것이 폐하의 적극적인 도움 덕분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하더라고, 껄껄-.
그동안 우리 영국의 경제발전과 반란군 진압으로 큰 공을 세운 경에게 백작 작위가 생각보다 너무 늦어서 오히려 미안한 마음일세. 허허-”
“폐하···.”
진심으로 감동한 얼굴의 태오였고, 주위에서는 벌써부터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 늦은 밤, 템스강 인근의 술집.
템스강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이 층 목조 건물의 한 술집.
중앙의 커다란 벽난로에서는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술과 음식이 잔뜩 올려진 수십 개의 테이블 주위로 사람들이 먹고 마시며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럼, 저 친구는 이제 가면 언제 오는 건가?”
턱수염을 기른 해군 대위가 화장실에 간 호레이쇼 넬슨 얘기를 입에 올리고 있었다.
그러자 바로 옆에서 진(Gin)을 마시고 있던 좁은 이마의 대위가 잔을 내려놓으며 이죽거리며 말했다.
“내일이라도 배가 있으면 가려나 보더군. 그동안 잘난 것도 없는 놈이 지 외삼촌만 믿고 까불다가 꼴좋지, 뭐, 크큭.”
그때 가장 끝에 앉아 있던 둥근 얼굴의 대위가 입을 열었다.
“뭐, 그래도 우리 중에는 제일 나았잖아? 적군이나 해적선을 만나도 그렇게 용감하게 맞서고 직접 처리하겠다고 적군의 배로 뛰어들 수 있는 장교가 몇이나 되겠어?”
“후후, 그게 다 신분이 없는 놈이 윗선들 눈에 들려고 쇼를 부린 거지. 귀족 출신도 아닌 놈이니 장교랍시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지 몸뚱이 굴리는 수밖에 더 있겠나? 하하.”
좁은 이마의 대위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웃고 떠들어댔다.
해군 사관생 동기 중에 가장 먼저 함장 자리를 차지하고 늘 앞서 나가던 호레이쇼 넬슨이었다.
하지만 그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해군 고위 간부였던 외삼촌이 죽고,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터지면서 이제는 받던 봉급도 절반으로 삭감된 채 사실상 해군에서 퇴출당한 상태.
평민 출신임에도 당당하던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좁은 이마의 해군 대위는 오늘 기분이 무척 좋아 보였다.
“술이 입에 착착 달라붙는구먼. 자, 코가 비뚤어지게 마셔보자고. 오늘 술값은 내가 다 낼 테니, 하하하.”
술잔을 들며 유쾌하고 웃고 있을 때, 넬슨이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좁은 이마의 대위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면서 넬슨의 잔에 술이 넘치도록 따랐다.
“호레이쇼! 자- 이 술잔 받고, 해군에 대한 미련을 털게. 그리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행여나 다시 해군으로 복귀하면 지휘관들 명령에 그렇게 달려들거나 무시하지 말고, 말 좀 듣게나.
이제 자네의 그 응석을 처리해 줄 외삼촌도 없지 않은가? 안 그런가? 큭큭-”
비아냥거리는 그의 말에 넬슨은 피식거리며 받아쳤다.
“충고 고맙네. 그럼, 나도 한마디 해주겠네. 자네는 제발 좀, 그 말도 안 되는 판단력으로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넣지 말게.
예전 지중해에서의 작전 생각나는가? 눈앞에 뻔히 보이는 위험을 보고도 상관 명령이라고 부하들을 마구잡이로 앞세우다 많은 생명을 죽일 뻔했던 일 말이야.
바다 한가운데서 윗사람이 잘못된 명령을 내리면 그 명령을 따르는 수많은 부하를 생각해서 장교인 자네가 중간에서 제대로 조절하고 행동해야지. 판단력이 그렇게 없어서 위험천만한 바다에서 무슨 지휘를 한다고, 원. 쯧쯧-”
좁은 이마 해군 대위의 눈이 가늘어지고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뭐···뭐라고?”
테이블은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로 변했다.
“끈 떨어진 평민 새끼가, 그동안 동기라고 사람 대접해줬더니··· 네까짓 게 감히··· 고귀한 귀족인 나랑 맞먹어 들려 해?”
“뭐? 이 자식이-”
그때였다.
“아니, 넬슨 대위 아닌가?”
굵직한 목소리에 넬슨과 그의 동기들은 고개를 돌렸고, 일제히 자리에서 기립했다.
해군성의 그레고리 모건 중령이었다.
그는 백작 가문 출신의 상류층 인사로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해군 장성 1순위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모건 중령 뒤로는 해군 고위 간부들이 여럿 서 있었다.
그들은 시끄러운 술집 분위기 때문에 젊은 장교들이 서로 싸우고 있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넬슨이 얼른 인사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모건 중령님.”
“그래, 그래. 외삼촌 장례식 이후로 처음 보는구먼.”
웃음을 띠며 악수를 하던 그가 뭔가 생각이 난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아, 참! 자네, 테오 샌더슨 경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나?”
의아한 표정으로 넬슨이 답했다.
“샌더슨 경을요? 아니요. 얼마 전에 저비스 제독님 축하연 때 처음으로 뵀었습니다.”
“그래? 그럼, 전에는 전혀 몰랐다는 얘기네?”
“저야 샌더슨 경을 이미 알고 있었지요. 하지만 샌더슨 경이 저를 알지는 못할 겁니다. 그런데 그걸 왜 물으시는지···?”
손으로 턱을 매만지던 모건 중령이 말을 이었다.
“그게 말이야, 오늘 국왕 폐하께서 자네를 프랑스 국경 해안 수비를 맡기면서 아가멤논(Agamemnon)호의 함장으로 발탁하라는 인사명령을 내리셨네.”
“···네?”
무척 놀라는 넬슨이었다.
바로 뒤에 서 있던 동기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입이 떡 벌어진 채 서로를 쳐다봤다.
특히 좁은 이마의 해군 대위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니··· 폐하께서 왜 저를···?”
사실상 퇴출당한 젊은 해군 장교를 상당한 규모의 함선의 함장에 올린다는 것은 굉장히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게 프랑스 민중 봉기와 관련해 요즘 위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거든.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샌더슨 경께서 해군의 업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면서, 젊은 지휘관의 발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셨어. 그리고 거기에 자네를 꼭 집어서 국왕 폐하께 부탁했다더군.”
“샌더슨 경께서··· 저를 특별히 지목하셨다고요? 아니 왜···?”
고개를 갸웃거리며 모건 중령이 말했다.
“나도 몰라서 이렇게 자네에게 묻는 걸세. 샌더슨 경이 다른 해군 장성 인사에 대해서는 일절 아무런 말을 안 했는데, 자네만 그렇게 지목하였다고 하길래 난 자네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나 했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돌아가신 외삼촌과도 샌더슨 경은 친분이 전혀 없으셨던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허허- 참. 뭐, 아무래도 프랑스 관련해서 협정도 훌륭하게 맺으신 분이라 여러 정보를 통해 자네를 알아봤을 수도 있겠지. 자네 능력이야 나도 인정하고 있고.
하여간 곧 자네에게 공문이 내려갈 것이니 준비하고 있게. 이번에는 꽤 큰 배의 함장이니 제발 사고 치지 말고 잘 지휘해보도록 하고. 그리고 행여나 샌더슨 경을 만나게 되면 고맙다고 인사하게.”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다른 자리로 향하는 모건 중령을, 넬슨과 친구들은 그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넬슨은 먹었던 술이 다 깨는 기분이었다.
해군 동기의 비아냥거림에 속에서 천불이 났고, 당장이라도 영국을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해군 복귀, 그것도 아가멤논(Agamemnon)호의 함장이라니.
더구나 이를 국왕 폐하에게까지 특별히 부탁을 드린 게 테오 샌더슨이란 사실에 무척 놀라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지난번 첫 만남 때, 유달리 프랑스 해군 관련 방비 대책을 많이 물으셨어.’
그때는 해군에 참 관심이 많다고만 여겼는데, 생각해보니 자신의 해군에서의 능력을 검증하려고 이것저것 물어본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호레이쇼 넬슨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도움의 손길이었다.
누구보다 해상전투에서 자신이 있었지만,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신분에서의 차별은 그의 마음을 늘 억누르고 있었다.
자존심이 무척 셌던 그로서는 더 많은 공을 세우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고 해군 생활을 포기하려던 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입지전적 인물인 테오 샌더슨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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