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3
3화 클럽에서의 존재감
따각. 따각.
“워- 워-”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나서야 마차가 멈춰 섰고, 인텔리젼스 클럽에 도착했음을 마부가 알렸다.
“도착했습니다요, 나리.”
시간을 보니 오후 7시 20분.
다소 늦었지만, 클럽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보기에는 다 모여있을 이 시간이 차라리 더 나을 듯싶었다.
마차에 내려 입구 앞으로 가니 듬직한 체격의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실례지만,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경계하는 눈빛이었지만, 태오의 고급스러운 옷차림에 예의를 갖추고 정중하게 물었다.
태오는 말없이 추천장을 내밀었다.
추천장을 받아든 남자는 매슈 밴담 제독의 서명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아, 밴담 제독님의 추천을 받아서 오셨군요. 그럼 일단 입장하시면 되겠습니다. 구체적인 승인은 다른 회원분들과의 상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될 겁니다.”
“아, 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태오는 그의 안내를 받아 클럽 안으로 입장했다.
클럽 안은 차분한 인테리어만큼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를 풍겼다.
회원들은 여기저기 자유롭게 앉아 차를 마시면서 누군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 말씀대로 식민지 주민들은 각종 세금 부과에 대해 여전히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보스턴에선 시민들의 습격으로 수백 개의 차(tea) 상자가 바다로 버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격한 행동이 곧 영국에 대한 배신으로까지는 연결되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어찌 조국을 향해 총을 겨누겠습니까?”
“그렇지요, 어떻든 간에 그들도 영국 국민의 일부이니까요.”
그때 누군가가 물었다.
“스미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의 물음에 클럽 안의 시선이 일제히 한 남자에게로 쏠렸다.
그 남자는 짙은 회색 정장에 작은 체구, 동글동글한 얼굴과 뾰족한 턱을 가지고 있었고, 시선은 한 방향으로 고정한 채로 두 손끝을 모아 붙여 첨탑 모양을 유지했다.
사람은 무의식중에 손으로 많은 것을 표현하게 되는데, 그가 보여주는 손 모양은 그룹의 리더들이 흔히 갖는 ‘스티플’이라는 손 모양새였다.
‘이 클럽의 리더고··· 성이 스미스라면··· 애덤 스미스?’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본 태오는 그가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라는 걸 직감했다.
“저도 그 의견에 동감합니다. 분명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의 감정이 격해진 건 사실이겠지만, 그것이 곧 다른 특별한 상황으로 전개되리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대답에 걱정스러워하는 목소리가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제가 받은 편지에서 북아메리카의 분위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악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벤저민 프랭클린 의원을 비롯한 상당수가 자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결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고 하네요.”
그의 말에 한 신사가 불만 섞인 목소리를 냈다.
“거- 아까부터 듣기가 참 거북하네요. 아니 그렇다면 북아메리카 주민들이 영국군을 상대로 총이라도 쏘며 전쟁이라도 할 것 같다는 소리입니까?”
“물론, 그런 건 아닙니다만, 보스턴 차 사건 때도 그렇고··· 몇몇 과격분자들로 인해 일이 어떻게 번질지 모르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태오는 지금의 이 열띤 토론이 미국 독립전쟁과 관련된 것임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벤저민 프랭클린? 게다가 보스턴 차 사건이라면, 지금 이들이 설전을 벌이는 건, 현재 영국의 식민지인 북아메리카가 영국과 전쟁을 벌이겠느냐는 거잖아?’
태오는 머릿속에 들어있는 역사적 사건을 떠올려봤다.
‘1776년 7월 4일에 미국이 독립선언문을 발표한단 말이지. 그렇다면 바로 그 전해인 1775년에 미국 독립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가만··· 올해가 1775년이잖아? 그럼, 바로 올해 미국이 영국을 상대로 한 독립전쟁을 시작한다는 건데?’
태오도 미국독립전쟁이 정확히 몇 월 달부터 시작되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1776년 7월 4일에 미국이 독립선언문을 공표했다는 건 확실했고, 바로 그 전해에 독립전쟁이 발발됐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다.
사실 미국 독립전쟁은 다음 달인 1775년 4월 19일에 시작하게 된다.
태오가 클럽에 도착한 오늘이 1775년 3월 28일이니 불과 20여 일 남은 셈이었다.
‘토론을 들어보면, 아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데. 하여간 올해 확실히 벌어지는 사건이야.’
태오가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키 큰 신사 하나가 일어나 분위기를 바꿔보려 노력했다.
“자, 자. 모두 흥분을 가라앉히세요. 여러 의견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다들 근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는 영국령인 북아메리카에서 그런 비극적인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합니다.
우리 영국군의 무시무시한 군사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북아메리카 주민들이 섣불리 전쟁하려고 덤벼들겠습니까? 허허.”
그런데 그때였다.
“아닙니다, 전쟁은 곧 일어납니다!”
모든 클럽 멤버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태오였다.
“북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의 반발은 더욱 심화되고 악화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달래지 않으면, 곧 영국군과 교전을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전쟁을 선포하게 될 겁니다.”
태오의 거침없는 발언에 가라앉으려 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여기저기서 회원들의 고성이 터져 나왔다.
“아니, 그게 무슨 소리요? 전쟁을 벌일 거라니! 영국에 속해있는 식민지국에서 감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요?”
“당신 누구요? 누구길래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그리 쉽게 내뱉는단 말이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미래의 역사를 정확히 알고 있는 태오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각종 조세저항과 보스턴 차 사건 이후로 영국이 항구를 폐쇄하고 보복 법률을 잇달아 제정하면서 아메리카 13개 식민지의 주민들은 강한 저항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메리카 민병대를 중심으로 영국 주둔군과 대치하게 된 것이고요.
그러면 영국군은 당연히 민병대를 해산시키려고 노력하겠지요? 특히 무기고의 무기들이 민병대 손으로 넘어가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고 들 겁니다.
그런 분위기라면 영국군과 민병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전투가 벌어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일이 될 겁니다. 특히 매사추세츠 민병대가···”
태오의 입에서 구체적이고도 자세한 분석이 줄줄 이어지자, 다들 입을 다물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 그리고 일단 큰 전투가 벌어진다면, 우리 생각과는 달리 영국군은 생각보다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거죠?”
“현재 북아메리카 13개의 식민지는 지난 십여 년 전의 긴 시간의 전쟁을 통해 나름대로 조직력이 탄탄해진 상태입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이전보다 훨씬 치밀한 계획과 협력을 이룰 수 있다는 경험과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우리 영국군도 상당히 고전을 면치 못할 겁니다.”
그때 누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언성을 높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십 년 전에 우리 영국군이 프랑스 놈들을 몰아내서 지금의 북아메리카 국가가 건재하고 있는 것 아니오? 자기들을 지켜준 군대를 향해 총을 겨눈다는 것이 대체 말이나 된다는 것이오?”
태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글쎄요. 지금 북아메리카 주민들의 생각은 전혀 다를 겁니다. 7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자신들을 무시하면서 군사 지휘권조차 빼앗아 버린 영국군을 그들은 ‘레드코트’니 ‘악마’라니 하며 아주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영국은 적국이나 마찬가지로 여겨진다는 뜻이죠.”
“영국을 적국으로 여긴다니? 아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때 누군가가 태오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누구죠? 혹시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온 사람입니까?”
애덤 스미스였다.
“아닙니다. 저는 영국 사람입니다. 북아메리카에는 가본 적도 없고요.”
“그런데 어찌 그곳의 상황을 그렇게 상세히 잘 알고 있는 것이요?”
“그게··· 제게는 정보가 있습니다.”
“어디서 얻은 정보죠?”
역사책에서 정보를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건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제 나름의 정보 루트를 통해 분석해 내린 결론입니다.”
유심히 태오를 훑어보던 애덤 스미스가 다시 물었다.
“그러면 한 가지만 더 물어봅시다. 식민지 주민들이 작은 희망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강한 해상력을 가진 영국군이 곧 도착할 텐데, 과연 북아메리카의 병력만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요?”
“네, 물론 힘들겠지요. 하지만 다른 국가가 참전한다면 얘기가 전혀 달라질 겁니다.”
“다른···국가라니요?”
클럽이 술렁였다.
“전쟁이 시작된다면, 처음에는 서로 이기고 지는 상황이 반복되다가 프랑스 등이 아메리카 식민지를 도와 영국군에 연합군 형식으로 대항하게 될 것으로 추측됩니다.”
프랑스의 참전이란 얘기에 클럽 안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다.
“아니, 프랑스와 손을 잡는다니? 적국인 프랑스와 협력한다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주장하는 것이오?”
“고작 문서에 세금을 조금 매긴 것 가지고, 식민지 주민들이 프랑스 적국까지 끌어들여 모국인 영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추측이 과연 합리적인 예측이라고 생각하시오?”
격분한 회원들의 물음에 태오가 조목조목 답했다.
“북아메리카 식민지는 세상 어느 국가보다 ‘자유와 독립’의 상징성이 큰 나라입니다. 세금의 액수가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숨 쉬고 생활하는 시민들의 자유와 독립이 영국 의회의 독단적인 법에 의해 제약당하고 무참히 짓밟혀 버렸다는 점에 지금 크게 분노하고 있는 겁니다.”
클럽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는 결국 민병대와 영국군 간의 충돌이 시초가 되어 독립전쟁으로까지 연결될 것이라고 저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따지듯 소리쳤다.
“독립전쟁? 당신 대체 누구요? 난 저런 사람을 우리 클럽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맞아요. 저도 처음 보는 사람인데, 어디 함부로 회원제 클럽에 들어와서 이런 소란을 피운단 말이오?”
“당신 정체부터 제대로 밝히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니요? 정말 본토 영국인 맞소? 아무리 봐도 북아메리카 식민지로 이주한 사람 같은데?”
태오가 모자를 벗고 사람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인사가 많이 늦었네요. 저는 매슈 벤담 제독의 소개로 오늘 처음 클럽에 들른 ‘테오 샌더슨’이라고 합니다. 우선 다른 멤버분들의 승인을 받고 참여해야 했는데, 열띤 토론에 저도 모르게 끼어들었네요. 주제넘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 벤담 제독이요?”
태오의 입에서 매슈 벤담이란 이름이 나오자 적대적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정말 벤담 제독님의 추천을 받고 오셨습니까?”
“네, 여기 제독님의 추천장이 있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그러자 작고 육중한 체격에, 두꺼운 눈썹과 커다란 콧구멍을 가진 노년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추천장을 받아들었다.
추천장을 확인한 노년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벤담 제독님의 서명이 확실하네요. 그렇다면 뭐, 특별한 승인 절차는 필요 없을 듯합니다. 저 정도 식견을 가지고 있고 벤담 제독의 추천장까지 있다면 말이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남자는 ‘새뮤얼 존슨’이었다.
태오의 승인 절차가 싱겁게 끝나자, 회원 하나가 쑥스럽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아까는 소리쳐서 죄송했습니다. 감정이 조금 격해졌었네요. 저는 윌리엄 롤랜드라고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죠. 귀족은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요먼(하급 지주 계층)에 속합니다.”
“네, 테오 샌더슨입니다. 저는 이제 막 설탕 무역으로 조금 돈을 번 정도의 그냥 사업가입니다.”
어수선했던 주변이 정리되고 다시 북아메리카와 관련된 얘기가 오갔다.
그러나 여전히 의견이 분분했다.
그때 새뮤얼 존슨이 나서더니, 한 가지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
“그럼 이건 어떨까요? 지금 싸우는 내용을 내기 장부에 적어서 베팅해보는 겁니다.”
그의 제안에 여기저기서 호응했다.
“아, 그거 좋네요.”
“그래요, 누가 맞으니 틀리니 이렇게 다투지 말고, 올해 전쟁이 날지 안 날지를 내기로 걸어 혜안을 따져봅시다, 허허.”
18세기 영국의 클럽에서는 각종 사회문제나 현황을 두고 내기를 걸어 결과를 확인하는 일이 아주 흔했다.
“그럼, 내기 장부를 가져와서 베팅할 테니, 멤버분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쪽에 베팅할 금액을 함께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내기 장부란 걸 처음 보는 태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태오 역시 내기 장부에 이름을 적고, 최대한 많은 돈을 걸었다.
그런데 전쟁이 올해 내로 발생하리라는 것에 베팅한 사람은 태오 뿐이었다.
나머지는 올해 전쟁이 나지 않는다는 것에 모두 베팅을 걸었다.
애덤 스미스나 새뮤얼 존슨씨도 역시 전쟁이 나지 않는다는 것에 베팅했다.
‘내 의견에 동조하던 사람이 그래도 몇 명은 있었던 것 같았는데, 정작 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에는 모두 회의적인가 보군.’
상류층 귀족이나 돈이 많은 사업가 지식인층이라 그런지 얼추 적어놓은 액수만 해도 수천 파운드는 돼 보였다.
태오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피어났다.
‘후후. 이 정도 액수면 마차에 들인 값을 만회하고도 남겠군.’
곧 발생할 미국 독립전쟁을 알고 있는 태오로서는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운 내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 내심 기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