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41
41화 조지 왕과의 만남
◈ 며칠 뒤, 윈저성(Windsor Castle).
궁정에서의 모임이 약속된 날 아침, 태오는 서둘러 마차를 타고 윈저성으로 향했다.
중세 유럽의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윈저성은 템스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서 보았던 그런 위용은 아니었다.
윈저성은 원래 서쪽 지역의 방어를 위해 목조건물로 지은 요새였다가 이후 재정비되면서 확장되었고, 조지 4세가 집권을 하면서 현대의 모습으로 새롭게 건축된 것이다.
워, 워-
“도착했습니다.”
“네.”
마차에서 내린 태오가 머리에 뒤집어쓴 우스꽝스러운 하얀 가발을 연신 만지작거렸다.
‘정말, 이 괴상한 가발은 언제 써도 불편하고 도무지 적응이 안 돼.’
그때 들어오는 마차를 보고 내려온 경비병이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초대장을 건네자 꼼꼼히 확인한 경비병이 궁정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안내인에게 태오를 데려다주었다.
안내인을 따라 들어간 성 내부는 웅장하고 화려했다.
넓은 복도와 끝을 모를 높은 천장은 이곳이 영국 국왕이 거주하는 성이라는 걸 실감케 했다.
다각, 다각.
뚜벅, 뚜벅.
기나긴 복도에 태오와 안내인의 발걸음 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태오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안내인의 뒤만 졸졸 따라 걸었다.
그런데 복도의 한쪽 벽면이 특이했다. 벽면 전체가 장식장 형태의 책장으로 꾸며져 수많은 책이 꽂혀있었다.
‘저 많은 책을 읽으려고 비치한 것은 아닐 테고, 책 자체가 귀한 시대다 보니 지적 장식품 역할인가 보군.’
그렇게 다양한 서적들을 살피며 걷다가, 두 사람의 시종이 지키고 서 있는 문 앞에 안내인이 멈춰 섰다. 태오도 걸음을 멈췄다.
안내인이 눈짓을 보내자 시종들이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었다.
덜컹-
“이곳입니다. 들어가십시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니, 넓고 큰 접대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접대실에는 5~60여 명은 될 법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방이 얼마나 넓은지 태오가 들어온 것을 눈치챈 사람이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커다란 방 한가운데에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가죽 의자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그 옆으로 20여 명 정도의 연주자들이 악기를 조율하며 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작은 연회를 생각했던 태오로서는 다소 생소한 모습이었다.
‘의자도 달랑 두 개만 있고, 배고픈데 먹을 것도 하나도 없네.’
꼬로록.
만찬이 준비되어 있을 줄 알고 아침도 거른 터라 배에서 자꾸만 신호가 왔다.
“테오 샌더슨 씨 아닙니까?”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태오가 고개를 돌려보니, 데이비드 매너스 공작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아, 매너스 공작님.”
예의를 표하려는 태오의 손을 공작이 덥석 붙잡았다.
“그때 식사 대접 이후로 이게 얼마 만입니까? 왜 안 오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잘 오셨어. 허허.”
그의 뺨이 상승하면서 눈둘레근이 올라갔고, 눈썹은 당겨져 내려왔다.
자연스러운 기쁨의 미세 표정이 한꺼번에 나타나면서 가식이 아닌 진정으로 반가운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매너스 공작의 환대에 귀족들이 태오 주변으로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인텔리젼스 클럽 멤버들의 얼굴도 더러 보였다.
“아니, 샌더슨 씨 아니십니까?”
“하하하~ 폐하의 초대를 받고 오셨나 보네요?”
낯선 장소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무척 반가운 일이다.
매너스 공작과 인텔리젼스 클럽 회원들이 태오를 반기자 다른 귀족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얼굴은 몰라도 ‘테오 샌더슨’이라는 이름은 다들 들어봤다는 표정이었다.
특히 부채를 편 채 소곤거리는 귀부인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엽기 살인 사건의 진범을 잡아, 영국 최고 백작 가문의 명예를 지킨 일화뿐만 아니라, 결혼 중개인으로서 보인 특별한 성과는 결혼 적령기의 자식을 둔 부인들로선 무척이나 관심 가는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태오에 대한 환대가 끝나자 초대된 사람들은 다시 하던 얘기들을 이어갔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로 보아, 예상대로 북아메리카 식민지와의 전쟁이 대화의 주를 이루고 있었다.
“들었습니까? 식민지인들이 국왕 폐하를 ‘사악한 짐승과 같은 폭군’이나 ‘도살자’ 등으로 함부로 부르고 있다는 걸?”
“네, 들었지요. 그렇게 폐하를 칭송하며 떠받들 때는 언제고. 정말 간사한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게요. 아주 근본도 없는 폭도들이죠. 그런 배은망덕한 놈들은 당장 뜨거운 맛을 보여 줘야 합니다.”
매너스 공작 옆에 있던 고위 관료 하나가 주변을 슬쩍 둘러본 후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온통 북아메리카 식민지와의 전쟁 얘기뿐이네요. 그런데 국왕 폐하가 그 일 때문에 점점 더 신경질적으로 변하시는 것 같아서 아주 걱정입니다.”
고위 관리의 말에 매너스 공작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제가 요양을 한다고 그동안 폐하를 통 뵙질 못해서 모르겠지만, 들리는 소리로는 작년 식민지와의 전쟁 발발 이후로 마음이 굉장히 불편하신 듯하더군요.”
고개를 끄덕인 관리가 목소리를 더욱 낮춰 소곤거렸다.
“공작님, 소식 들으셨어요? 얼마 전에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정부가 모여 회의를 열었는데, 앞으로는 국왕 폐하로부터 나오는 말이나 서신은 모조리 다 거부하겠다고 선언했다더군요.”
“···뭐라고요? 그게 사실입니까?”
몇 주 전인 1776년 5월 15일.
북아메리카의 식민지 13개 지방정부에서는 긴급히 ‘대륙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그 회의를 통해 앞으로 영국 국왕 명으로 된 그 어떤 지시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어허 참. 그 사실을 국왕 폐하도 아십니까?”
매너스 공작의 물음에 정부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제 그 얘길 전해 들으시고는 그렇게 노발대발하셨다고 하더군요.”
“그럼, 오늘 모임에서도 결국 그 얘기를 꺼내시겠네요.”
“아마도 그렇겠지요. 어휴, 뾰족한 수도 없는 마당에 또 우리만 한 소리 들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귀족이나 관리들은 전쟁 자체에 대한 걱정보다는 조지 3세의 잔소리를 더 걱정하는 모습들이었다.
‘확실히 아직은 조지 3세의 권력이 살아있나 보네. 다들 국왕의 눈치만 살피고 있어. 하긴 내가 책에서 읽었던 조지 3세의 약한 모습은 미국이 독립하고 프랑스 혁명기 이후의 시기였으니, 지금은 아주 짱짱할 때지.’
조지 3세는 집권 말기에 정신병으로 심한 고생을 하였고, 그 때문에 마지막에는 조지 4세가 대신 정권을 맡아 섭정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앞으로 프랑스 혁명이 오기까지의 10여 년.
조지 3세의 권력은 전쟁에 휘둘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꽤 튼튼히 유지될 것이다.
덜컹-
갑자기 문이 열리면서, 붉은색 대위 복장의 국왕 시종무관이 큰소리로 외쳤다.
“국왕 폐하께서 들어오십니다!”
그러자 방 가운데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모여있던 귀족들과 관리들이 홍해 가르듯 옆으로 붙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굽혔다.
뚜벅. 뚜벅.
또각. 또각.
곧 접대실로 영국 국왕 조지 3세와 그의 아내 샬럿 왕비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뚜벅. 뚜벅.
귀족들 사이를 거침없이 걸어 들어오는 사내는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국왕이자 아일랜드 국왕인 조지 윌리엄 프레더릭, 조지 3세 영국 국왕이었다.
조지 왕은 인사를 하는 다른 귀족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데이비드 매너스 공작에게로 곧장 다가갔다.
“국왕 폐하.”
매너스 공작이 극진한 예를 표하며 고개를 숙이자 조지 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미소 지었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인가, 경? 자네 소식을 듣고 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네. 요양 간다고 내 곁을 떠났다가 그런 흉측한 놈 때문에 우리 다시는 못 봤을 수도 있지 않았는가?”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옵니다, 폐하.”
또 한 번 역사적 인물을 코앞에서 직접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는 영국 국왕이었다.
‘··· 이분이 그 유명한 조지 3세 시구나.’
태오는 현실감 없는 이 상황이 얼떨떨하면서도 공작과 이야기 나누는 조지 왕의 모습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책이나 인터넷에서 보던 초상화와 얼추 비슷했지만, 실제로 보니 좀 더 활달해 보였고, 생각보다 수려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
조지 3세의 미세한 눈동자의 흔들림과 지나치게 빠른 말투가 태오에게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매너스 공작과 이야기를 나누는 조지 3세는 시종일관 쏘아붙이듯 매우 빠른 말투를 사용했고 눈동자도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내뱉는 말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나’라는 인칭대명사를 많이 쓰면서 계속 부정적인 내용을 연결하고 있었다.
특히, 과거에 자신이 내렸던 정책에 대한 후회를 여러 차례 입에 올리면서 자책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아마도 그때의 결정이 최선이었다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서인 것 같았지만, 그러기에는 자책의 정도가 심했다.
“그때 내가 왜 바보처럼 무역 상인들의 청원만 듣고, 식민지에 대한 강경 법안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노스 경의 말을 듣고 진즉에 제대로 된 조치를 내렸더라면 이런 일도 없지 않았을까? 후- 정말. 그 생각만 하면 내가 잠을 이룰 수가 없다네.”
“아닙니다, 폐하. 그로 인해 식민지인들의 마음을 달래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때의 결정은 지극히 올바른 판단이셨습니다.”
“아닐세, 아니야! 나의 약한 마음으로 인해 불운의 씨앗을 싹 틔운 거야.”
신하나 귀족들에게는 그저 과거 결정에 대한 한탄이나 아쉬움 정도로 들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심리분석 전문가이자 임상심리학자였던 태오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흠··· 범불안장애가 우울증까지 동반하려는 것 같은데?’
범불안장애에 우울증이 함께 오면 모든 관점이 ‘자신’에게로 모여지고, 생각의 폭이 자꾸만 좁아지게 된다.
즉, 조지 3세는 범불안장애로 인한 심한 우울감을 넘어 우울증 진입 상태로 진단됐다.
‘우울감’은 하나의 감정이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살면서 종종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우울감의 경우, 환경을 변화시킨다든지 기분전환 등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다.
하지만 우울감의 단계를 넘어서면 상황이 달라진다.
우울한 환경을 억지로 벗어난다고 해도, 심적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지 않는 우울증으로 번져 크게 고생할 수도 있고, 심한 경우 정신질환의 증상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게 될 수 있다.
‘조지 3세는 대략 10년쯤 뒤에 광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정신질환으로 고생하는 것으로 역사책에 나왔던 것 같은데, 벌써 이 정도의 증상이 왔다고?’
태오는 조지 3세의 미세 표정 변화와 말투를 통해 건강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정신상태가 위험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금세 알아챘다.
손에 박힌 가시도 성가시고 아픈 법인데, 불안 장애에 의한 스트레스는 심각한 우울증을 유발하면서 각종 신체적 질병의 발병과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저 정도라면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상태일 거야. 보통 소화불량과 복통, 수면장애 등을 동반했을 거고. 현재 그런 병으로 꽤나 고생하고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18세기 말의 의학 수준이었다.
이 당시 다른 병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나 정신병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된 바가 거의 없는 실정이었다.
사실 ‘정신의학’이 ‘의학’의 한 영역으로 들어간 것은 앞으로 200년이 더 지난 20세기 중후반이다.
그러니 당연히 명확한 치료법도 이 시대에서는 전무했다.
이 당시 정신질환으로 진단받게 되면, 초기 병증이라도 현대처럼 간단한 상담이나 약 복용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동물원과도 같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 돼 말도 안 되는 처우와 기괴한 처치법으로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다, 종국에는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한 이유로 근대사회에서 정신질환은 암보다 더 무서운 불치병으로 통했고, 행여나 자신이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계층을 가리지 않고 만연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조지 3세는 범불안장애가 심한 우울감과 함께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데다, 그 증상이 우울증 또는 타 정신질환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게다가 조지 왕의 안색이나 신체의 움직임을 보면 범불안장애로 발생한 신체적 질병을 치료한답시고 엉터리 약물을 사용하면서 각종 부작용까지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됐다.
‘흠···.’
태오는 자기도 모르게 21세기 임상심리학자의 눈이 되어 조지 왕의 상태를 세밀히 살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