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52
52화 거액의 지참금
◈ 런던, 인텔리젼스(Intelligence) 클럽.
“지참금이··· 10만··· 파운드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월터 리카도 경의 말에 태오의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10만 파운드를 21세기 기준으로 환산하자면 대략 150억 원이 훨씬 넘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리카도 경의 말에 따르면 랭커셔(Lancashire)지방의 맨체스터(Manchester)에 큰 방직 공장을 운영하는 ‘폴 오스본’이라는 사업가가 딸의 지참금으로 10만 파운드라는 거액을 걸었다고 한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영국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무역업이나 공장 운영 등을 통한 신흥 자본가가 대거 등장했다.
그리고 이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기존의 귀족들이나 지주들이 벌어들이는 수준을 능가하기 시작하면서 귀족이 아닌 계층의 딸도 이런 큰 지참금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게나 많은 지참금을 거는 이유라도 있습니까?”
리카도 경은 폴 오스본이라는 사업가와 오랜 친분이 있어 보였다.
“그분에게는 자식이 딸 하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60대이신지라 더 늦기 전에 좋은 귀족 청년을 사위로 맞고 싶어 하셨어요.”
상공업 분야로 많은 돈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반대로 토지의 수익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귀족층에서의 수입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살았던 기존의 귀족들은 줄어가는 수익에 생활의 규모를 줄여야 할 판국이었다.
이러한 때에 10만 파운드라는 지참금은 젊은 귀족들의 귀가 번쩍 뜨이게 할 정도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1년에 연 수입이 1만 파운드(약 15억)의 수익을 올리는 사람은 이 당시 영국에서 300~400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10만 파운드라면 매년 1만 파운드를 10년간 받는 셈이니 누구라도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으로 따지면 15억짜리 로또에 10번이나 당첨된다는 꿈같은 소리였다.
“그렇게 거액의 지참금을 걸었으니 정말 많은 젊은 귀족들이 달려들었겠는데요?”
리카도 경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샌더슨 씨, 말도 마십시오. 맨체스터는 물론이고 그 주변 지역까지 들썩일 정도였습니다. 거기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매파들이 나서서 서로 연결해보려고 장사진을 치면서 난리가 났었죠.”
하지만 이렇게 많은 지참금이 걸리고 매파가 들끓을 때는 언제나 사기꾼들이 꼬이는 것은 불문율.
만남을 신청한 자 중에는 이미 결혼했음에도 매파를 매수해 총각행세를 하는 자도 있었고, 결혼을 목전에 두고 파혼까지 감행하면서 달려든 이도 있었다고 한다.
태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돈이 많은 거야 어쩔 수 없는 사실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고액의 지참금을 걸고서 신랑감을 찾으면 결국 돈만 보고 달려드는 사람투성이일 텐데요. 오스본 씨는 왜 그런 무리수를 뒀을까요?”
리카도 경이 쓴웃음을 지었다.
“맞습니다. 오스본 씨도 그것 때문에 나중에 많이 후회하더군요. 오스본 씨는 순진하게도 고귀한 귀족들은 자신들과 조금은 다를 거로 생각했었나 봅니다. 귀족들에게는 최소한의 고결함과 자존심이 있어서 돈만 보고 그렇게 달려드리라 생각하지 못했나 보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동안 살아오면서 귀족들과의 경험이 있었을 텐데요.”
“평생 오로지 일만 하느라 주로 상인들과의 좁은 인간관계를 맺은 데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그동안 만난 귀족들에게서 하나같이 좋은 느낌을 받았었나 봅니다.”
하긴, 월터 리카도 경 같은 사람과 친한 사이인 걸 보면 주변에 심성이 깨끗한 귀족들만 본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
“아무튼, 여러 방법을 총동원해 신분 검증을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그렇게 최종적으로 세 사람을 선정하게 되었지요.”
“하지만 과연 그 세 사람도 제대로 된 신랑감인지 상당히 의심이 가네요.”
“맞습니다. 저도 그렇게 얘기했고, 그 점을 오스본 씨도 잘 알고 걱정하더군요. 그런데 그때 오스본 씨가 샌더슨 씨를 묻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를요?”
“네. 저보고 런던에 계신 테오 샌더슨 씨를 아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잘 아는 사이라고 했더니, 크게 기뻐하면서 꼭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분도 샌더슨 씨가 중매업으로 유명하다는 걸 잘 아는 눈치였습니다.”
방송이나 언론, 인터넷이 없는 세상임에도 런던 곳곳에서 오는 편지에 매번 신기했지만, 최소 일주일은 마차를 타고 가야 겨우 도착할 수 있는 먼 곳의 사업가까지 자신을 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신기한 기분이 드는 태오였다.
“그런데 저한테 무슨 말을 전해달라고 하신 거죠?”
“그러니까 오스본 씨는 후보자 세 사람을 다음 주쯤에 만날 예정인데, 자기는 무식한 상인인지라 세 귀족 중에 누구를 결정할지 선택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동안 귀족들의 혼사를 훌륭히 성사해 낸 샌더슨 씨가 오셔서, 그들 중 한 사람을 함께 결정해 볼 수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
“물론 관련 비용과 한동안 런던을 벗어나 사업을 하지 못해서 드는 손해 일체를 다 보상해 드린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일이 잘 성사되면 특별 수당도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
리카도 경은 중매업 일로 한창 바쁜 태오에게 괜한 부담을 준 것이 아닌가 하고 굉장히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태오로서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이번 달은 상담만 몇 건 잡혀있었고, 특별한 스케줄도 없었다.
‘상담이야 조금 당겨서 하면 되는 일이고··· 빠른 시일 내로 런던에 결혼정보회사를 제대로 설립하려면 최대한 많은 돈을 모아야 해.’
거리가 좀 있기는 하지만, 한 번에 큰돈이 들어오는 건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태오는 진행 중인 런던의 중매 일을 마치는 대로 바로 맨체스터로 가서 폴 오스본 씨를 만나보겠다고 하자, 리카도 경은 자기 일처럼 크게 기뻐했다.
◈ 10일 뒤, 맨체스터(Manchester).
따그닥. 따그닥.
런던 햄프스테드에서 랭커셔(Lancashire)지방의 맨체스터까지는 마차로 여유 있게 가면 중간에 숙박하는 것까지 포함해 일주일가량이 걸릴 정도로 상당히 먼 거리였다.
버밍엄까지 가본 터라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2~3일 더 걸린다는 것이 생각 이상으로 큰 피로감을 안겼다.
‘후, 어서 빨리 증기 열차가 생겨야 이동할 때도 빠르고 쉬울 텐데···. 그래도 어쨌든 잘 도착했군. 흐아암-’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바라보니 제임스 와트를 보러 갔던 버밍엄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산업도시가 눈앞에 펼쳐졌다.
특히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의 모습에서 차이가 있었다.
버밍엄에서의 운하는 폭이 좁고 얕아서 큰 배들이 오가기에는 힘들어 보였지만, 맨체스터의 운하는 훨씬 크고 넓어 큰 짐을 옮기는 배들이 쉽게 오갈 수 있어 보였다.
아마도 석탄과 면화와 같은 크고 많은 양의 원자재를 각 제분소와 공장으로 운송해야 하는 맨체스터 상업의 특성으로 인해, 운하의 크기도 크고 깊게 건설된 것 같았다.
그렇게 활발한 상업 도시 맨체스터의 모습에 취하다 보니 어느새 마차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
맨체스터, 폴 오스본의 저택.
워- 워-
마침내 도착한 폴 오스본 씨의 저택은 한눈에 보기에도 상당한 규모였다.
비록 런던 인근에 커다란 영지를 소유한 백작 가문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상속받은 것도 없는 사업가가 이 정도 규모의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건 정말 크게 성공한 경우가 아닐 수 없었다.
저택 입구에서 문을 두드리자 하얀 가발을 쓴 중년의 사내가 문을 열고 나왔다.
집안의 집사로 보였다.
예의 바른 태도와 총명해 보이는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테오 샌더슨 씨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 따라오시죠.”
리카도 경을 통해 태오가 올 것이란 걸 이미 알고 준비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다란 복도를 따라 걷던 집사는 가운데 방문 앞에 멈춰서더니 노크를 했다.
똑똑똑.
“테오 샌더슨 씨가 오셨습니다.”
“어서 모시게.”
덜컹-
문을 열고 들어가자 널찍하고 잘 꾸며진 거실이 나타났다.
무역상 일을 하는 사업가답게 방안 여기저기에는 다양한 지역의 진기한 골동품이나 물건들이 보기 좋게 진열되어 있었다.
“반갑습니다. 먼 길까지 오시느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저는 폴 오스본이라고 합니다.”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테오 샌더슨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나누면서 살펴본 60대의 폴 오스본의 첫인상은 태오가 상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성공한 사업가라는 말에 살집이 있고 호탕한 성격의 노인일 것이라고 여겼지만, 직접 만나본 그는 찰스 디킨스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 나오는 스크루지 영감 같은 느낌이었다.
강건해 보이긴 했으나 다소 마른 체격이었고, 뾰족한 코에 눈은 작고 예리했다. 입술은 얇고 안색이 창백했는데 이 때문에 다소 신경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여기 앉으시죠.”
“네, 감사합니다.”
입고 있는 코트의 재질은 좋아 보였지만 상당히 오래된 옷감이었고, 신발은 낡아 군데군데 헤어져 있었다.
고급스럽고 훌륭한 저택에 어울리지 않게 인색함이 느껴질 정도로 검소한 차림새였다.
‘흠···불안, 걱정, 집착···’
매서운 눈매를 번득이는 얼굴의 미세 표정과 몸짓에서는 현재 그의 감정 상태가 고스란히 묻어났다.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지금 온통 그 돈에 대한 걱정에 휩싸여 있어. 많은 돈을 가졌음에도 자기 돈이 사라질까 봐, 또 앞으로 더 벌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해 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그의 외모와 감정 상태를 느끼고 나니 태오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일을 맡게 될 외동딸에 대해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리카도 경에게 듣기론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고, 말 못 할 가정사도 좀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스본 씨의 외동딸은 심적으로 밝지 못하고 불안정하게 성장했을 가능성이 컸다.
‘신랑감을 선택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당장 오스본 씨 따님의 성격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는걸? 흠···.’
결혼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상대의 인생도 걸려 있는 중대사다.
어느 쪽이 되었든 성격상 큰 결함이 있어 상대에게 고통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경우라면, 매칭에 나서지 않는 것이 태오 나름의 철칙이었다.
‘아, 이거 실수한 거 아닌지 몰라.’
월터 리카도 경이 오스본 씨의 딸에 대해 얘기할 때, 굉장히 괜찮은 여자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내가 리카도 경의 말만 듣고 너무 경솔하게 지레짐작했나.’
은근한 걱정에 휩싸여 있는데, 오스본 씨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여기까지 오시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 네.”
순간 태오의 눈에 방금까지 판단했던 오스본 씨의 표정이나 감정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잡혔다.
‘어, 뭐지··· 이 따스함···?’
보일 듯 말 듯 한 그의 미세한 미소 속에 녹아있는 감정은 생각지도 못한 따뜻함을 수줍듯 전달하고 있었다.
‘음··· 전혀 상반된 감정을 깊이 숨기고 있었네.’
사람들은 타인과의 만남에서 가면을 쓰고 다른 감정을 지어내는 경우가 많다.
야비한 사람이 성인군자인 척 행동할 수도 있고,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이 차분한 척 연기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 만남만으로 그들의 진짜 감정이 뭔지 바로 구분해 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상대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태오는 가면을 쓰고 있는 상대의 진짜 감정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폴 오스본 씨는 두 가지 감정이 모두 진짜였다.
차가움과 따뜻함.
확실히 차가움의 비중이 월등히 컸지만, 그 속에 말할 수 없이 따뜻하고 애틋한 감정도 숨어 있었다.
“존!”
태오가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오스본 씨가 집사 존 블레이크를 불렀다.
“네, 주인님.”
“캐서린에게 그림 공부가 끝나면 이곳으로 바로 내려오라고 전해 주게.”
“네, 알겠습니다.”
집사가 방을 나가자 폴 오스본이 태오에게 말했다.
“지금 딸아이가 그림 수업 중이라 조금 시간이 걸릴 겁니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십시오. 어차피 여기 일주일 정도 머무를 예정이니까요.”
“네, 감사합니다.”
태오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오스본 씨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방직 공장을 운영하셨어요?”
“대략 15년 전쯤부터지요.”
“처음부터 이렇게 큰 규모로 시작하신 건가요?”
“아닙니다. 처음엔 작은 규모의 실만 뽑는 방적공장이었습니다.”
(** 방적: 섬유에서 실을 뽑는 일 / 직조: 뽑아낸 실로 천을 짜내는 일 / 방직: 방적과 직조를 통틀어 부르는 용어)
영국 남부의 어느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오스본 씨는 7살도 안 되어 부모를 잃었다.
그 후 공장과 항구 등지를 전전하며 안 해본 일이 없었던 그는, 20여 년 전에 혈혈단신으로 이곳 맨체스터에 정착해 작은 방적공장을 운영하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상하게 안 풀리던 삶이 우연히 얻은 천 만드는 공장을 인수하면서 풀리기 시작하더군요.”
사실 영국은 양털을 이용한 모직물의 나라였고 국가에서도 모직물 산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하지만 두껍고 무거운데다 세탁도 힘든 모직물은 이후에 인도에서 들어온 캘리코(Calico)라는 면직물의 인기에 밀리기 시작했다.
인도산 캘리코 면직물은 가볍고 염색이 쉬울 뿐만 아니라 세탁도 훨씬 쉬웠기 때문에 영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제 몇 해만 지나면, 영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면직물이 유럽 전체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게 될 시점이야. 오스본 씨는 조금 이른 시기에 정말 제대로 된 사업을 선택한 셈이군.’
1700년대 초반만 해도 면직물 산업은 숙련된 기술자가 손으로 일일이 실을 짜고 돌려서 천을 만드는 고되고 지루한 수작업 방식이었다.
그만큼 생산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764년 하그리브스가 획기적으로 개량된 방적기인 제니방적기가 만들어지면서 면직 산업에 일대 전환이 이루어졌다.
이후 영국은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인도의 목화를 가져와 면직물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기 시작하는데, 오스본 씨는 마침 이런 흐름이 시작할 즈음에 이곳에 들어와 공장을 운영했던 것이다.
‘2~3년 뒤면 뮬 방적기가 나올 테고,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으로 방직 공장에도 대혁신이 일어나게 될 거야.’
이제 몇 년만 지나면 영국의 면직 산업이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인도산 면직물을 누른 영국의 면직물이 세계 선두에 우뚝 올라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이 바로 이곳 랭커셔지역의 맨체스터였다.
“가난한 시절을 딛고 열심히 일에 몰두하다 보니 40이 다 된 늦은 나이에 장가를 가게 되었지요. 하지만 번창하는 사업과 달리 가정에는 자꾸 불행한 일이 닥쳤습니다.”
그가 결혼 후 몇 년이 지나 방직 공장을 했을 즈음에 첫째 아들을 낳았지만 사산된 채였다.
둘째 아들은 살아서 출생했지만, 1년도 안 되어 열병을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한다.
다행히 막내딸이었던 캐서린은 건강하게 자랐다.
“아내마저 10년 전에 먼저 가고, 이젠 제 피붙이라고는 딸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래도 딸만이라도 이렇게 잘 커 준 게 전 정말 기특하고 고맙더라고요.”
“네.”
그런데, 딸 이야기를 할 때 그의 표정과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무뚝뚝하고 차가워 보이던 얼굴에서 미세하지만 따뜻한 감정이 흘러나왔다.
오스본 씨의 인색하고 차가운 모습 뒤에 느껴지는 따뜻한 감정은 바로 딸에 대한 애틋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이젠 그의 외동딸이 궁금해진 태오였다. 과연 어떤 성향과 성격으로 자란 아가씨일지 얼굴이 보고 싶어졌다.
식은 차를 깨끗이 비운 오스본 씨가 물었다.
“혹시 제가 직접 인도에서 원재료를 들여오는 것도 아시나요?”
“네, 리카도 경에게 조금 들었습니다. 그러면 면화 같은 것도 직접 가서 수입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질 좋은 목화를 인도 벵골지역에서 직접 보고 골라오고 있죠.”
“아, 그러시군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선 오스본 씨가 맞은편 벽 쪽으로 걸어가더니, 벽에 붙어있는 대형 지도와 그림을 가리켰다.
“지도에서 보이는 이곳이 인도의 목화 농장입니다. 그리고 여기 그림과 같은 방식으로 수확을 해서 싣고 오고 있지요.”
예전에는 자신이 직접 무역선을 타고 질 좋은 재료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주로 직원을 통해 대신한다고 했다.
이제 60대의 나이다 보니 장시간의 항해는 무리였기 때문이다.
“가끔은 나이가 든 게 안타깝습니다. 제 눈으로 직접 보고 만져서 좀 더 좋은 제품을 골라오고 싶거든요.”
“네, 그러시겠죠.”
향후 몇 년 내로 영국의 면직 산업이 엄청난 호황을 누리게 된다는 걸 잘 아는 태오는 문득 투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결혼정보회사를 세우려면 많은 돈이 필요해. 그렇다면 앞으로 면직 산업만큼 확실한 것도 없는데···.’
영국의 면직 산업뿐만 아니라 인도의 목화 농장 상황도 잘 아는 오스본 씨라면, 투자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태오가 용기를 내 오스본 씨에게 물었다.
“오스본 씨. 제가 사실 면직 산업에도 관심이 있어서 그러는데, 시간이 되신다면 현재 운영하고 계신다는 공장을 살펴볼 수 있을까요?”
폴 오스본 씨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입니다. 제 딸아이 일로 이번 주 내내 이곳에 계셔야 하니까 천천히 둘러보시죠. 제가 방직 공장과 창고, 제품의 운송 등도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덜컹-
“아버지!”
생기발랄한 목소리의 한 아가씨가 거실로 뛰어 들어오더니 오스본 씨의 목에 와락 매달렸다.
그림 수업을 마치고 온 캐서린 오스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