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65
65화 그 간의 사연 2
일주일 만에 나타난 알렉 파커는 술에 잔뜩 취한 채였다.
그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쇠몽둥이를 휘두르며, 혹시 숨겨놓은 돈이나 금고가 없는지 집안 여기저기를 마구 뒤지고 다녔다.
심지어 벽이나 천장, 지하실 바닥까지 파헤쳤다고 한다.
“그래서 벽이며 바닥이 다 이 모양이었구만?”
“그렇습니다.”
분노한 캐서린이 그를 막아서며 가져간 12만 파운드는 어디에 쓴 거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알렉 파커는 캐서린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다 집 밖으로 나가버렸다고 한다.
“물론 아가씨는 넘겨짚어 물어본 것이었습니다. 아직 금고를 열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알렉 파커는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그때 파커 경이 12만 파운드를 몽땅 가져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고요.”
“허···.”
“그리고 며칠 가지 않아 확신할 증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인구가 많지 않은 지역이라 큰돈을 쓰고 다니면 금세 소문이 나는 법.
일주일간 알렉 파커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다녔던 블레이크 집사에게서 드디어 그의 행적이 포착됐다.
알렉 파커는 가져간 12만 파운드로 거액의 채무와 도박 자금, 내연 관계 여자의 주택 구매 등에 사용했다는 믿을 만한 정보를 얻은 것이다.
“그제야 확신하고서 곧바로 아가씨에게 모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증거를 모아 치안판사를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해 드렸죠.”
캐서린은 블레이크 집사와 함께 지역 치안판사에게 찾아가 이러한 사정을 소상히 밝히고 고소를 진행했다.
하지만 파커 경의 아버지 파커 백작과 치안판사는 서로 친분이 있는 사이 같았다.
치안판사는 파커 경을 감싸기에 바빴고, 아직 증거가 불명확하다며 차일피일 사건을 미루면서 제대로 조사조차 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며칠 전, 또 만취한 알렉 파커가 다시 집으로 찾아와 난장판을 피운 것이다.
거기다 캐서린의 방에 침입해 그녀를 겁탈하려는 추악한 짓까지 벌이려 했다.
다행히 비명을 듣고 달려온 블레이크 집사와 마리 아줌마가 온몸을 던져 막았다고 한다.
“존··· 자네 그때 얼굴이 다친 거구만?”
집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그러진 표정의 리카도 경이 험한 말을 내뱉었다.
“이런, 쳐죽일 놈!”
“술에 취한 파커 경은 계속해서 오스본 씨가 자기를 속였다고 고함을 지르면서 입에 담지 못할 심한 욕을 했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결혼을 핑계로 자기를 옭아매려 했다며 분노했죠.”
파커 경은 애초에 10만 파운드의 지참금은 그저 푼돈이라고 여긴듯했다.
그보다 훨씬 많을 오스본 씨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것이다.
그런데 막상 오스본 씨의 집에는 아무런 돈도 없었고 은행에는 주식도 없이 채무만 남은 상태였다.
결국 알렉 파커는 집안에 남아있던 12만 파운드가 사실상 오스본 씨의 전 재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파커 경은 금고 속의 10만 파운드가 자기의 지참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참금 이외에는 빈털터리라고 소리를 질러댔고, 감히 푼돈으로 백작 가문에 딸을 시집보내려 했다면서 오스본 씨를 험한 말로 모욕했지요.”
마리 부인이 몸서리치며 말했다.
“파커가 계속 주인어른을 욕보이자, 아가씨가 당장 집에서 나가라면서 무섭게 달려들며 소리쳤어요. 그 여린 아가씨가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난생처음이었습니다. 그때 집사나 다른 남자 하인들이 없었으면 큰일 치를 뻔했답니다. 정말 흉측한 파커의 행동은 지금 생각해도 온몸이 떨려요. ”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마리 부인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며칠 전의 악몽 같았던 밤이 다시 떠오른 듯했다.
형제자매도 없는 캐서린에게 블레이크 집사나 마리 부인이 함께 있다는 것이 그나마 천운이었다.
“그 버러지만도 못한 놈이···. 내가 조금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자네는 왜 이렇게 늦게서야 내게 편지를 보낸 건가?”
리카도 경의 아래쪽 눈꺼풀이 당겨지면서 강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딸 같은 캐서린이 겪었을 고초를 생각하니 분통이 터지는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캐서린은 아직 스무 살도 안 된 어린 나이다.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대처하기가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묵묵히 듣고 있던 태오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공장에 쓸 돈을 알렉 파커가 다 가져가 써 버렸다면, 지금 공장 운영은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현재 직원 대부분이 나간 상태라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남은 사람들도 밀린 주급을 제대로 못 주고 있어 언제 나갈지 모른다고 하고요.”
분개한 리카도 경이 또 소리쳤다.
“이게 다 그 파커 놈 때문이지! 알렉 파커 놈을 당장 잡아다 ‘채무자 감옥’에 처넣어야 해!”
채무자 감옥.
중세 유럽에서는 돈을 빌린 자가 돈을 갚지 않으면 그 추심의 수단으로 ‘채무노예’제도 같은 것이 있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를 노예로 삼고, 심지어 그의 아내나 자식까지도 노예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유럽에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같은 하나님의 형제를 노예로 삼을 수 없다고 보아 ‘채무 노예제도’는 사라지고, 대신 ‘채무자 감옥(debtor’s prison)’이라는 것이 등장했다.
대부분 유럽국가가 이런 형태의 채무자 감옥을 운영했지만, 가장 악명 높은 곳은 영국의 채무자 감옥이었다.
보통의 유럽국가에서는 채무자의 수용 기간을 1년 정도로 제한했지만, 영국은 30년 가까이 잡혀있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영국의 채무자 감옥이 국가가 아닌 민간이 운영하는 것에 그 원인이 있었다. 즉, 왕실에서 입찰하여 민간이 그 감옥의 운영권을 따내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힘들게 채무자 감옥 운영권을 취득한 민간 업자들은 ‘숙박비’나 ‘간수 수수료’, ‘식대’ 등의 명목으로 수감자들에게 악착같이 돈을 뜯어내려 했고, 돈을 전부 다 받아내기 전까지는 절대 풀어주지 않았다.
거기다 운영 경비를 최대한 줄여 이윤을 뽑아내려는 욕심으로 인해, 채무자 감옥의 환경은 일반 감옥보다도 더 열악했다.
덕분에 비좁은 감옥 안은 돈을 갚지 못한 귀족과 평민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차 있었고, 환기시설과 위생 시설이 최악이라 툭하면 전염병이나 질병이 창궐했다.
이 때문에 전염병에 옮아 죽거나, 간수나 죄수들의 폭행과 굶주림에 시달리다 죽는 경우가 허다해 사회에서는 어떡하든 채무자 감옥만큼은 피하려는 분위기였다.
“존! 그놈이 금고 외에 또 어디에 손을 댔는지 확실히 더 조사하고 알아보게. 보아하니 값나가는 골동품도 모조리 가져간 것 같은데. 채무자 감옥에 죽을 때까지 집어넣으려면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할 거야.”
“네, 리카도 경. 이미 증거는 다 모아 놨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철저히 체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정을 들어보니, 다른 것보다도 방직 공장의 운영이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태오가 블레이크 집사에게 물었다.
“지난번에 보니 공장장이 세 분 있던데, 모두 아직 계시나요?”
3개의 공장에는 각각의 공장장이 있었고, 가장 큰 공장의 공장장인 헤스터 워커 씨가 총책임을 맡고 있었다.
블레이크 집사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총책임자인 공장장 헤스터 워커 씨만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저번 달까지는 다른 한 분도 남아있었는데, 더 이상 주급이 나오지 않자 떠났습니다.”
헤스터 워커 씨는 30년 가까이 오스본 씨와 일했던 가장 믿을 만한 부하직원이자 공장책임자였다.
하지만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은 그로서도 공장의 운영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떠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시라고 하지만 오스본 씨에 대한 소문은 금방 퍼질 수밖에 없고, 주급도 주지 못할 정도의 부도 상황에 직면한 공장에 계속 남아있을 직원은 없었다.
쾅쾅쾅-
그때 누군가가 현관 도어 노커를 세차게 두드렸다.
소리에 놀란 마리 부인이 벌떡 일어섰다.
“에구머니나, 누구지?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혹시나 채권자인가 싶어 조마조마한 표정의 마리 부인이었다.
“어머나!”
문을 연 마리 부인의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곧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피터슨 경 아니세요!”
피터슨이라는 소리에 태오가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달려갔다.
“아니, 피터슨 경!”
정말 콜린 피터슨이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살이 너무 많이 빠진 모습에 누군지 몰라볼 정도로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
“샌더슨 씨!”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혹시 오스본 씨 소식을 들으셨어요?”
“네. 들었습니다···. 오스본 씨가 그렇게 되시다니··· 도대체 이게 전부 어떻게 된 일입니까?”
피터슨 경의 눈썹은 팔자가 되고 눈에 힘이 빠지면서 진정으로 슬픈 감정을 드러냈다.
먼 친척 집으로 요양을 하러 갔던 피터슨 경은 맨체스터에 있는 친구의 편지로 참담한 소식을 접하자마자 바로 올라왔다고 했다.
거실로 들어와 주변을 둘러본 피터슨 경이 물었다.
“그런데··· 오스본 양은 왜··· 보이지 않는 건가요?”
캐서린에 대한 걱정으로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마리 부인이 캐서린의 상태를 얘기하자 더 걱정스러운 표정의 피터슨이었다.
“아가씨를 깨울까요? 피터슨 경이 오신 걸 알면 무척 기뻐하실 거예요. 정말 보고 싶어 하셨거든요.”
“아닙니다. 깨우지 말아 주십시오. 지금 얼마나 상심이 크고 힘들겠어요? 쉬게 해야죠. 인사야 나중에 하면 됩니다.”
이제 빈털터리가 된 캐서린은 알렉 파커에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상대에 불과했지만, 콜린 피터슨에겐 그 반대였다.
태오는 캐서린에 대한 그의 애절한 진심이 느껴졌다.
‘오스본 씨의 막대한 ‘재산’이 사라지자 진정한 사윗감이 누구인지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구나.’
알렉 파커는 오로지 돈이 결혼의 주목적이었기에 그 돈이 사라지자 미련 없이 캐서린을 떠나버렸다.
하지만 진심 어린 사랑을 품었던 콜린 피터슨은 오히려 돈이 없어진 캐서린을 찾아 한걸음에 달려왔다.
‘안타깝지만, 오스본 씨의 죽음이 진정한 남편감을 찾아준 셈이 되어 버렸어.’
오스본 씨는 자신이 살아 있을 때 어떡하든 돈으로 가장 적합한 사윗감을 고르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의 죽음과 사라진 재산이 가장 훌륭한 사윗감을 고르게 한 결과가 돼버렸다는 점에서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
태오는 피터슨 경과 함께 오스본 씨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이 현재 어떤 상황이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나이가 있는 리카도 경은 몸이 힘들어 집에 남아 쉬기로 했다. 일주일 가까이 마차를 타고 오느라 몸살이 난 것 같았다.
피터슨 경은 집에서 나오기 직전 캐서린을 잠시 만날 수 있었다.
거실에서 왁자하게 들리는 소리에 잠에서 깬 캐서린이 방에서 나와 본 것이다.
피터슨 경과 마주한 캐서린은 하염없이 눈물만 뚝뚝 흘렸다.
그런 그녀를 피터슨은 말없이 안고서 다독였다.
◈ 오스본 제1공장
“피터슨 경, 샌더슨 씨. 오랜만이네요.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공장장이자 전체 공장의 책임자인 헤스터 워커 씨가 반갑게 태오와 피터슨을 맞았다.
그는 동글동글한 얼굴과 넉넉한 뱃살을 가진 호탕한 사내였다.
하지만 다시 만난 그에게서 이전의 호탕한 웃음은 들을 수가 없었다.
“지금도 믿기지 않습니다. 형님이 그렇게 가실 줄이야···.”
30년을 같이 일하면서 그는 오스본 씨를 친형처럼 여기고 살아왔다.
그렇게 믿고 의지했던 만큼 오스본 씨의 죽음은 그에게도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저희는 오스본 양의 부탁을 받고 지금 공장 상황이 어떤지 파악하려고 이렇게 들렀습니다.”
“네, 그러셨군요. 하지만 뭐 파악하고 말고도 없습니다. 일단 직접 한번 살펴보시죠?”
워커 씨의 안내로 공장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몇 달 전에 처음 왔을 때는 많은 직공이 실을 짜내고 직물을 만드느라 정신없을 만큼 분주하고 시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시끌벅적한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십여 명이 몇 대의 기계에서 조용히 실을 빼고 있을 뿐이었다.
“공장에 일하는 직원들이 이게 다인 겁니까?”
태오의 물음에 워커 씨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네. 그래도 저번 달까지는 절반 가까이 나왔는데, 이제 두 달이 넘어가니 나오지 않는 사람이 부쩍 더 늘어났습니다.”
공장 직원들에게는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주급제로 생활하는 이들이라 일주일만 벌지 못해도 큰 곤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오스본 씨가 아무리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고 해도 이제 그들도 살길을 찾아야 했다.
“공장장님, 사무실로 들어가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얘기를 좀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제 사무실로 가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