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70
70화 행복의 조건
◈ 사흘 후, 오스본 제3공장.
드르륵- 촤악- 드륵- 탁-
워커 공장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면사에서 능숙하게 직물을 짜내는 켄트 가문 수공업자들의 현란한 손놀림에 넋이 나간 것이다.
워커 씨가 감탄을 연발하며 태오에게 말했다.
“허- 참. 피터슨 경의 말을 들어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요. 인도인이 켄트 가문의 기술자로 있을 거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럼 앞으로 작업량 문제는 없겠군요?”
“그럼요. 문제없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 정도 속도와 품질이면 예상했던 것보다 몇 주는 더 빨리 물품을 완성할 수 있겠는데요?”
휘릭-
워커 씨가 완성된 천 한 장을 들어 올려 이리저리 비벼 보며 감촉을 느꼈다.
“와- 이것 보세요. 작업 속도도 속도지만, 품질이 진짜 죽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촘촘하고 부드러울 수 있을까요? 이러니 얇아도 보온성이 좋고, 세탁도 편할 수밖에요.
맨날 뻣뻣한 모직이나 마직 종류의 옷만 입다가 이런 걸 입으면 날개라도 단 기분이 들겠어요. 다음 주에 러시아 상인들을 만날 때, 이걸 시제품으로 들고 나가면 아주 그냥 끝장나겠는데요?”
오스본 공장에 있었던 숙련공들의 솜씨도 인근 공장에 비하면 월등했지만, 켄트 가문의 기술자들은 차원이 다른 실력을 뽐냈다.
어떻게 이런 기술자들을 양성할 수 있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태오였다.
‘저들의 훌륭한 기술도 산업혁명을 통해 기계가 발전하면서 곧 큰 쓸모가 없어지게 되겠지···. 뭐 그래도 아직 최소 10년은 막강한 역할을 하게 될 거야. 지금 당장 오스본 공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태오는 고마운 눈으로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 일주일 후, 맨체스터 항구 근처.
러시아 상인을 만나 협상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
피터슨 경과, 워커 공장장 그리고 태오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러시아 상인들을 만나 협상안 확인부터 계약서 수정까지 전 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오늘 협상에서 보여준 피터슨 경의 능력은 태오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러시아의 상류층 사이에서 영국 섬유 제품에 관심이 많다는 걸 파악하고 있던 피터슨 경은, 가지고 나온 품질 좋은 시제품을 보여주며 먼저 기선을 제압했다.
러시아 상인들은 시제품에 굉장히 만족해하며 피터슨 경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적극적인 반응을 읽은 피터슨 경은 오스본 씨가 체결했던 계약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수정을 요구했다.
러시아 상인들은 난색을 보였고, 그로 인해 작은 신경전이 벌어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태오가 나섰다.
러시아 상인들의 바짝 달아오른 마음을 간파한 태오는 불합리한 계약조항을 수정해주지 않으면, 모든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계약을 없던 것으로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다른 러시아 상인과 당장이라도 계약할 것 같은 태도를 취했다.
태오의 단호함에 러시아 상인들은 곧바로 꼬리를 내렸고, 피터슨 경이 지적한 부분을 수정하기로 합의를 보면서 협상은 잘 마무리됐다.
“피터슨 경. 내가 오늘 경을 다시 봤습니다, 허허.”
공장장 워커 씨의 칭찬에 피터슨 경이 쑥스러워했다.
“저야 뭐 계약조항의 부당함을 얘기한 것에 불과했죠. 사실상 계약을 체결한 건 샌더슨 경이지 않습니까? 거기서 샌더슨 경이 그렇게 세게 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상인들이 계약을 파기하고 나갈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하던지요. 하하.”
흐뭇한 얼굴의 워커 씨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맞아. 오늘 샌더슨 경의 무모할 정도로 대담한 행동을 보면서 오금이 저려 죽을 뻔했습니다, 허허. 저는 정말 열심히 물건이나 만들어야지, 두 분을 보니 이런 계약은 앞으로 절대 못 할 것 같네요. 허허허.”
태오가 웃으며 워커 씨에게 말했다.
“공장장님? 협상이 이렇게 훌륭히 마무리됐는데, 집에 가서 같이 식사나 하시죠? 캐서린 양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네, 맞습니다. 그러시죠 공장장님?”
“저야 뭐··· 대접해 주시면 감사할 뿐이죠. 허허.”
* *
오스본 씨 저택.
마차가 오스본 씨 집으로 들어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캐서린에게 빨리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었던 피터슨 경이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왜 캐서린이 나와 있지 않을까요?”
오늘 공장의 존폐가 걸린 중요한 협상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행여나 아버지의 공장이 잘 못 될까, 하루종일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것이다.
그런데 마차가 들어오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피터슨 경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불안한 얼굴로 서둘러 마차에서 내렸다.
그런데,
「으흐흐흑··· 으흐흑···」
마차에서 내려 현관 쪽으로 걸어가는데, 캐서린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또렷이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태오와 피터슨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다시피 현관으로 향했다.
혹시 알렉 파커가 쳐들어온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였다.
쿵쿵쿵-
도어 노커를 세차게 두드리며 피터슨 경이 외쳤다.
“캐서린! 캐서린! 문 열어요!”
그런데 현관문이 스르륵 힘없이 밀렸다.
“어? 문이 왜 열려 있는 거지?”
“캐서린! 무슨 일입니까!”
급박하게 거실로 뛰어 들어간 피터슨 경의 발걸음이 순간 우뚝 멈춰 섰다.
뒤따라 들어간 태오가 피터슨에게 물었다.
“피터슨 경? 왜 그러세요?”
그리고 천천히 그의 시선을 따라 거실로 고개를 돌렸다.
‘···!’
도저히 보고도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폴 오스본 씨였다.
지금까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오스본 씨가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으흐흑··· 아버지가··· 아버지가 살아서 돌아오셨어요. 살아서! 으흐흑.”
캐서린은 오스본 씨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올라 있었고, 옆에 서 있던 마리 부인과 블레이크 집사의 눈도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충격적인 그의 생환에 태오도 피터슨 경도 말을 잇지 못했다.
“오스본 씨··· 대체, 이게 무슨···?”
“아···아버님···.”
뒤늦게 따라 들어온 공장장 워커 씨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으악! 형···형님!”
지팡이를 짚고 자리에서 힘들게 일어선 오스본 씨가 천천히 태오에게로 다가갔다.
“샌더슨 경···.”
“···오스본 씨.”
많이 야윈 오스본 씨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블레이크 집사와 딸아이에게 모든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의 인연이 그다지 깊지 않은데··· 제 딸을 측은히 여겨 돌봐주시고, 공장까지 지켜주신 점··· 도대체 뭐라고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오스본 씨···.”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는 피터슨 경에게 다가간 오스본 씨가 두 손을 감싸듯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피터슨 경.”
“아버님···.”
“내··· 자네한테 무슨 낯짝으로 고맙다고 말할 수 있겠나? 그저··· 미안하고 부끄러울 뿐이네. 나를 용서하게나··· 그리고 힘들어하는 캐서린을 옆에서 지켜줘서··· 정말··· 정말 고맙구먼.”
귀신을 본 듯한 표정의 피터슨 경의 눈가가 어느새 촉촉해졌다.
“아···아닙니다, 아버님. 정말, 정말 이렇게 다시 살아오시다니··· 너무 꿈만 같고··· 다행입니다. 흐흑.”
끝내 눈물을 쏟는 피터슨 경의 등을 오스본 씨가 부드럽게 두드렸다.
“형님! 으흑··· 제가 이럴 줄 알았습니다! 형님이 누구신데, 그까짓 바다에 빠져 죽겠습니까? 우리가 그 험난한 바다를 얼마나 이겨냈었는데··· 내 이럴 줄 알았다고요! 으흐흑···.”
눈물을 뚝뚝 흘리는 워커 씨에게도 오스본이 고마워했다.
“자네한테도 너무 고마우이. 자네가 끝까지 남아있지 않았더라면, 공장을 지켜내지 못했을 거야. 역시 자네 의리는 알아줘야 해.”
“으흐흑··· 형님! 잘 돌아오셨어요! 잘 오셨다고요!”
워커 씨가 오스본 씨를 와락 껴안았다.
*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듣게 된 오스본 씨의 이야기는 정말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리버풀 항구에서 면직물과 향신료, 귀금속 등을 싣고 배가 나갈 때만 해도 좋은 날씨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항구를 벗어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큰 풍랑이 일어나면서 거대한 파도가 배를 그대로 덮쳤다.
“처음으로 겪는 지옥 같은 일이었지요.”
무역선을 타고 멀리 인도까지 갈 때도 그런 풍랑을 만난 적이 없었는데, 브리스톨까지 가면서 잠깐 사이에 벌어진 사고는 너무나 참혹했다고 한다.
강한 바람에 돛이 찢기고, 돛대가 완전히 부러져 꺾여 버렸다.
그리고 곧 엄청난 파도의 힘에 밀린 배는 암초에 부딪히면서 선체에 구멍이 나더니 몇 분 만에 물이 급격히 차오르기 시작했다.
면직물과 각종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끈을 묶었지만, 상황이 심각해진 것을 알게 된 오스본 씨는 물건과 배를 버리고 탈출을 명령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어떤 선원이 뒤에서 제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피하라고 했어요. 경황이 없던 저는 순간 뒤를 돌아봤고 정신을 잃었죠.”
꺾여진 돛대의 커다란 나무 기둥이 그대로 오스본 씨의 머리를 강타하고 기절해 버렸다.
“저는 바닷속으로 고꾸라져 들어갔고, 그 모습을 지켜본 선원들은 제가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다시 듣는 얘기였음에도 캐서린의 눈에는 또다시 눈물이 가득했다.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작은 항구 도시에까지 밀려 들어왔고, 그곳에 사는 한 어부에 의해 구조되었음을 알았다.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고 정신이 돌아오는 데만 석 달이 넘게 걸렸다고 했다.
하지만 어부 가족들의 정성 어린 간호 덕에 생사를 몇 번이나 넘기고 넉 달이 다 돼서야 겨우 회복을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나를 돌봐주고 살펴봐 주신 고마운 분들이었죠. 그리고 그 아드님이 내 말을 믿고서 여기까지 데려다줬고요.”
오스본 씨와 함께 온 어부의 아들은 ‘제롬’이라고 불린 젊은 사내였는데,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고 했다.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었고, 모두가 함께 오스본 씨의 기적적인 생환을 기뻐하며 감격해했다.
*
오스본 씨의 서재.
식사를 마친 후, 오스본 씨는 따로 태오를 불러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캐서린과 집사로부터 그동안 공장 문제와 숙련공, 그리고 러시아 계약 등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들었습니다.”
“···네.”
거실에서 처음 얘기를 나눌 때부터 느꼈지만, 가까이서 살펴본 오스본 씨의 감정은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그의 표정과 감정에서, 제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불안감과 걱정, 그리고 돈에 대한 집착으로 번뜩이던 인색한 눈매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 같은 편안한 감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제가 정말 어리석었습니다. 제가 그때 샌더슨 경의 말을 듣지 않고 알렉 파커 놈을 캐서린의 짝으로 다시 고르다니··· 알량한 백작 작위에 눈이 멀어 제 손으로 딸 아이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몰아세운 셈이었죠.”
분노에 차 있는 모습이었지만, 그의 달라진 감정 속에는 이전처럼 후회에 관해 안달하고 집착하는 느낌은 없었다.
“그나마 제가 샌더슨 경과 인연을 맺고, 처음 피터슨 경을 짝으로 정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태오가 조심스럽게 공장 얘기를 꺼냈다.
“솔직히 저는 면직업에 투자하려고 했지, 공장을 매입해 운영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스본 공장이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공장 매수를 결심했지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오스본 씨가 원하신다면 공장을 돌려드리고···”
오스본 씨는 태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허, 아닙니다. 저는 이제 공장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 욕심이 조금도 없습니다.”
“네?”
“제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뭔지 아십니까? 가지고 있는 돈을 버리자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했던 그 돈을 제대로 쓰면서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람들은 흔히 행복에 ‘조건’이 있다고 여기고, 그 ‘조건’을 충족해야지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막상 그 조건이 달성되고 나면, 행복이 아니라 알 수 없는 허탈감과 불안감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지고, 앞으로 더 갖지 못할까 봐 두려워지는 것이다.
오스본 씨가 바로 그랬다.
그는 맨체스터에서 크게 성공해서 아주 부유한 상인이 되었지만, 태오가 처음 보았을 때 그의 감정은 행복에 충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캐서린과 함께 있을 때만 따뜻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였을 뿐, 전체적으로 그의 마음은 춥고 불안했다.
또, 천한 신분이라는 강박관념은 많은 돈을 벌어 자기 딸과 손주들을 고귀한 신분으로 변화시켜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목적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서 느낄 수 있는 모든 행복을 걱정과 불안으로 바꾸어 놓았다.
콜린 피터슨이라는 훌륭한 사윗감을 버리고 알렉 파커라는 최악의 상대를 고르게 한 원인도 바로 그 불안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스본 씨가 생각하는 ‘행복’하기 위한 ‘조건’이 ‘불행’하기 위한 ‘조건’이 돼버린 셈이었다.
그런 ‘조건’의 속박에서 벗어난 오스본 씨는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눈에 보이고 느껴지게 된 것이다.
“저를 바다에서 건져주고, 긴 시간 돌봐준 노부부는 참으로 다정하더군요. 가난했지만, 바다를 보면서 하루하루 욕심 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습니다.
한평생 악착같이 살아 큰돈을 벌었지만, 제 마음은 그들이 느끼는 행복의 1%도 못 느끼고 살았던 것 같더군요.”
오스본 씨의 눈에서 평온한 감정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많은 돈과 위험을 무릅쓰고 제 공장을 지켜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피터슨 경의 재능을 알아봐 주시고 총책임자로 맡겨주신 점도 고맙고요.
일단 저는 당분간 번즈 백작님 숙련공들의 도움을 받아 일을 처리하면서 기존에 다른 공장에 간 저의 직원들을 제 돈으로 모두 데리고 올 작정입니다.”
“저기··· 직원들의 위약금이 생각보다 큽니다. 이런 말씀드리기가 죄송스럽지만, 파커 경이 돈을 훔쳐 가는 바람에 현재 오스본 씨의 재산이 거의 없는 것으로 조사가 됐습니다. 그래서 공장도 넘어갈 뻔한 거고요.”
“···부끄럽습니다.”
뜬금없는 말에 태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부끄럽다니요?”
“저는 아마도 제 딸마저도 믿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실은··· 제가 가진 진짜 돈은 저만 알고 있는 다른 금고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다른 금고가 있었다니. 깜짝 놀랄만한 얘기였다.
“다른···금고라니요? 설마 이 집에 다른 금고가 있었던 것 아니죠?”
“이 집에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샌더슨 경께는 보여드리고 싶네요.”
“네?”
오스본 씨가 빙그레 웃으며 일어나더니, 바로 뒤에 있는 책장에 손을 뻗어 책 한 권을 꺼냈다.
그리고 책을 펼쳐 열쇠를 꺼내고서는, 서재 중간에 버티고 있는 두꺼운 기둥으로 향했다.
나무 기둥 한 부분에는 눈에 거의 띄지 않는 작은 홈이 있었는데, 오스본 씨가 그 홈 사이에 열쇠를 쑤셔 넣고 가볍게 돌렸다.
끼릭- 철컥-
끼이익-
건물의 안전 보강을 위해 서재 한가운데 세워둔 것이라고 여겼던 두꺼운 나무 기둥.
그런데 이 기둥이 실은 오스본 씨의 거대한 비밀금고였던 것이다.
텅-
비밀 금고의 문이 열리자, 셀 수도 없는 금화와 은화, 금괴 등이 보였다.
“솔직히 이게 전부 얼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략 120만 파운드까지 세어 본 후로 세지를 않았었죠. 주식과 국채를 처분하고 금괴로 바꾸어 놓은 것도 있고 해서, 약 150만 파운드 정도의 가치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허-. 150만 파운드요?”
150만 파운드라면 현대의 시세로 2,000억 원이 훨씬 넘는 금액이다.
그리고 그 많은 돈과 금괴가 쌓여있는 한 구석에는, 피터슨 경으로부터 선물 받은 코담배 유리병이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 * *
다음 날, 오스본 씨는 에녹 레드먼드 씨의 공장으로 직접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결국, 위약금을 모두 물고 옮겨간 숙련공 전부를 2~3주 안에 돌려받기로 했다.
한편, 자신을 구해준 어부의 아들 제롬에게는 금화를 잔뜩 쥐어졌다.
그러나, 제롬은 오스본 씨가 챙겨준 금화를 한사코 거부했다. 어머니가 좋아할 거라며 방직 공장의 천 몇 마를 떼어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떠나는 제롬의 뒷모습에 오스본 씨는 또 한 번 큰 감명을 받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