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77
77화 행운
태오는 노아 넬슨의 도움을 받아 커피 농장에 필요한 남녀 노예 십여 명을 모았다.
노아는 사람 보는 안목이 생각 이상이었다.
그가 추천하는 노예들의 감정 상태는 대부분 양호했고 영어도 곧잘 했다.
이 당시 사탕수수농장에서는 나이 든 노예들을 헐값으로 내놓는 경우가 많았는데, 고된 일이 많은 사탕수수농장의 특성상 서른 살만 넘겨도 확연히 떨어지는 노동력 때문이었다.
덕분에 태오는 싼값에 경험 많고 노련한 노예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준비를 마친 태오는 노아 넬슨과 쥬바를 비롯해 노예 십여 명과 함께 블루마운틴에 있는 커피 농장으로 향했다.
◈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테오 샌더슨 커피 농장.
농장에는 기본적인 거주지나 시설 등이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었다.
거기다 팔머 농장의 총관리인인 마틴 씨가 보강 작업까지 해놓은 터라 머무르는 데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비록 태오가 묵을 독립적인 공간은 없었지만, 어차피 런던으로 떠날 것이라 큰 상관은 없었다.
필요할 때 관리인 건물을 이용하면 되고, 보통 때는 그레이 경의 집에서 머무르면 충분했다.
관리인 숙소를 확인한 노아 넬슨이 깜짝 놀라 했다.
“와, 농장에 딸린 관리인 숙소가 이렇게 좋은 곳은 처음 보네요.”
앞으로 거주할 관리인 건물을 둘러보며 노아는 무척 만족스러워했다.
나무로 정교하게 지어진 건물은 새 건물인데다 거실을 포함하여 방도 두 개나 더 있어서 그동안 작은 단칸방에서 생활하던 노아에게는 널찍하고 충분한 공간이었다.
탕- 타당-
관리인 건물 바로 맞은편에 있는 흑인 노예 거주지에서는 이삿짐과 물건들을 들여놓고, 필요한 부분을 손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노예들의 표정에서 굉장히 밝은 기운이 넘쳐흘렀다.
태오가 즐겁게 이사하는 노예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옆으로 다가온 노아가 말을 건넸다.
“이제 짐들은 얼추 다 들여놓은 것 같습니다.”
“고생했어. 그나저나 노예들의 표정이 밝아서 다행이야.”
“네. 그럴 수밖에요. 다른 노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저기 보이는 샘슨이나 피터는 줄곧 존 디포 씨의 농장에서만 일했기 때문에 아마 이곳이 천국처럼 느껴질 겁니다.”
태오가 의아한 눈으로 노아를 쳐다봤다.
“여기가 천국? 왜 그렇지?”
“사탕수수의 경우, 재배해서 24시간 안에 사탕수수즙으로 만들지 못하면 변질하여 모조리 쓸모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빨리 설탕으로 만들기 위해서 노예들을 쥐어짜듯 일을 시키기 마련이죠. 거의 온종일 혹사당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른 사탕수수농장도 대부분 사정이 그렇긴 하지만, 특히 샘슨이랑 피터가 일했던 존 디포 씨의 농장 일이 혹독하기로 악명 높았습니다.”
태오는 한쪽 다리를 절고 있는 샘슨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면 샘슨의 다리가 저렇게 된 것도 그 사탕수수를 베다가 저렇게 된 건가?”
노아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탕수수를 베다가 저렇게 된 게 아닙니다. 사탕수수즙을 만드는 과정 중에 벌어진 일이죠.”
“무슨 소리야?”
“사탕수수를 설탕으로 만들려면 일단 사탕수수를 베어 가져와서 압축 기계에 넣고 짓이겨서 즙을 짜내야 합니다. 그 질긴 사탕수수 대를 눌러서 즙을 만들 정도니 당연히 압축기의 힘도 굉장하거든요.
그런데 깜빡하고 실수로 그곳에 손이나 발이 끼어들면···.”
사탕수수 공장에는 수 시간 내에 작업을 마쳐야 할 사탕수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 보통이라, 압축기는 18시간 넘게 쉴새 없이 돌아갔다.
만약 이때 작업을 하던 노예가 잠시 부주의하거나 피곤한 나머지 졸기라도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손이나 발이 압축기 안으로 빨려 들어가 으스러지곤 했다.
이런 경우 압축기에 낀 손이나 발을 꺼내기 위해서는 압축기를 망가뜨려야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농장 관리인들은 압축기를 망가뜨리는 대신 딸려 들어간 흑인 노예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시간이 늦어질수록 손해가 막심한 사탕수수 공장의 성격상 흑인 노예의 팔다리를 절단해 버리고 압축기를 계속 돌리는 편이 훨씬 더 큰 이득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샘슨의 한쪽 발도 그러한 과정에서 잘려 나간 것이었다.
“어이, 피터! 선반을 그 위에 놓으라고!”
샘슨이 환하게 웃으며 다른 흑인들과 노예 거주지를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태오가 존 디포 농장에서 장애가 있는 샘슨을 데리고 온 것은 노아의 조언 때문이었다.
샘슨은 비록 한쪽 발이 불구였지만, 목수로서의 능력이 굉장했다.
노아는 그의 손에 망치 한 자루만 있으면 커다란 집을 지을 정도라고 치켜세웠다.
공장 운영에 솜씨 좋은 목수는 꼭 필요한 존재이기에 그를 뽑았는데, 절뚝거리면서도 노예 거주지를 정비하는 모습을 보니 역시 잘 뽑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다리가 잘리고 힘든 일을 하고 있었음에도, 타고난 낙천적인 성향은 태오의 마음을 끌기에 충분했다.
태오의 시선이 이번에는 피터에게로 옮겨갔다.
피터는 샘슨과 같은 농장에서 팔려고 내놓은 노예였는데, 처음에는 그를 뽑을 생각이 없었다.
지나치게 몸이 마르고 허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과 감정이 마음에 들어서 호기심에 몇 마디 나누어 본 후 태오는 바로 피터를 선택했다.
매우 명석한 머리를 가지고 있음을 단번에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커피 농장은 사탕수수농장과 달리 큰 노동력은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보다 섬세하고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대처하는 일꾼이 필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태오는 주저하지 않고 피터를 선택했다.
흐뭇한 표정으로 흑인들을 바라보고 있는 태오에게 노아가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샌더슨 경··· 그런데 스펜서 씨는 어떡하죠?”
태오는 커피 농장에 올라오기 전, 세 번이나 스펜서 씨의 집을 방문했다.
하지만 끝내 만날 수가 없었다.
노아의 말대로 스펜서 씨는 커피와 관련해서는 인연을 끊은 사람처럼 사는 것 같았다.
“일단은 마틴 씨가 오늘 오전에 찾아가 보기로 했어. 마틴 씨가 자메이카에서 워낙 발이 넓으니 기대를 해봐야지.”
“네. 잘 됐으면 좋겠네요.”
스펜서 씨와 연결이 닿지 않는다면, 최대한 빨리 다른 커피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아직은 스펜서 씨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래. 아무튼 노아는 내가 내려가 있는 며칠 사이에 고생을 좀 하고 있어야 할 거야.”
“네, 걱정하지 마시고 일 보십시오. 잘 준비해 두고 있겠습니다.”
커피 농장의 주거지가 대충 정리가 되는 모습을 확인한 태오는 그레이 경의 집으로 내려갈 채비를 했다.
산에서 내려가는 그를 노아를 비롯한 십여 명의 흑인 노예들이 전부 나와 배웅했다.
태오는 흑인 노예 하나하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어주었다.
역사책 속에서나 보았던 그들의 험난한 삶이 애처롭기도 했지만, 커피 농장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인간의 감정은 평범한 악수 하나에도 담기기 마련.
그저 태오의 손이 그들의 등이나 어깨를 부드럽게 토닥인 것에 불과했지만, 손끝을 통해 전해지는 진심은 그들의 마음에 인간적인 감흥을 주고 있었다.
일상적으로 받아왔던 욕설과 채찍질이 아니라, 포근하게 감싸주는 새로운 주인의 말과 행동은 노예들의 감정을 보듬는 힘이 있었다.
식민지의 흑인 노예들로서는 백인에게 처음 받아 보는 사람다운 대접이었다.
“노아,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틈틈이 적어 두도록 해. 그리고 다음에 내가 올 때 전해주고.”
“네, 샌더슨 경.”
손을 흔들며 농장을 내려가는 태오에게 노아와 노예들은 저마다의 방식대로 예의를 표하며 인사했다.
태오는 불과 며칠 사이, 그들에게서 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와 충성심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 흔한 채찍질 한번 하지 않고서 말이다.
◈ 케니스 그레이 경의 저택
태오는 오후 늦은 시간이 돼서야 그레이 경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집 안으로 들어오니 그레이 부인이 어떤 부인과 거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태오는 그녀들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목례만 하고 슬쩍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샌더슨 경! 잠시만요.”
“?”
그레이 부인이 황급히 소파에서 일어나 태오에게로 다가왔다.
“부인, 왜 그러시죠?”
“저기···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저기 부인이 샌더슨 경께 긴히 부탁이 있어서요···.”
그레이 부인 말에 따르면, 손님으로 있는 부인이 태오를 몇 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태오와 눈이 마주치자, 앉아 있던 부인이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샌더슨 경, 안녕하세요?”
고급스러운 정장과 코트를 차려입은 중년 여성이 태오에게 공손히 인사했다.
태오는 그녀의 얼굴이 기억났다.
“안녕하세요? 버틀러 부인이셨죠?”
태오가 정확한 성까지 기억하자 중년 여성은 깜짝 놀라며 좋아했다.
“어머, 절 기억하고 계셨군요.”
“아, 네. 기억이 납니다.”
그녀는 아주 큰 규모의 사탕수수농장을 운영하는 조셉 버틀러라는 농장주의 아내였다.
그날 듣기로는 농장의 크기가 거의 400헥타르에 이르고, 흑인 노예 수만 350명이 넘는다고 했었다.
연간 설탕 생산량만 해도 큰 통으로 최소 800통은 넘게 나올 정도로 대단한 규모의 농장으로 이 근방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였다.
하지만, 태오가 버틀러 부인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단순히 자산 때문이 아니었다.
옆에 있었던 딸 엘리사 버틀러 양 때문이었다.
그날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유독 시무룩한 표정과 지친 얼굴의 엘리사는 태오의 눈에 두드러져 보였고, 자연스레 기억에 오래 남아 있었다.
엘리사 버틀러 양은 자메이카에서 나고 자랐지만, 교육 수준도 좋았고 외모나 심성도 훌륭해 보였다.
하지만 버틀러 부인을 따라온 엘리사의 표정에는 결혼에 대한 그 어떤 기대감이나 호기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묻는 말에만 짧게 대답할 뿐 자꾸만 시선을 회피했다.
크게 상심하고 마음이 아주 슬픈 상태라는 걸 미세 표정과 몸짓으로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결혼과 관련한 자리에서 그런 우울한 표정을 보일 때는 십중팔구 어떤 이성에게 마음이 가 있고, 그 관계에 문제가 생겨 힘들어하고 있는 경우인데···.’
게다가 대답할 때, 얼굴의 특정 부위가 반복적으로 떨리는 이상 증상까지 보였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그저 잠깐의 근육 경련처럼 보였겠지만, 태오의 눈에는 심상치 않았고, 그것으로 인해 그녀가 더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버틀러 부인이 태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방문 목적을 말했다.
“샌더슨 경, 다름이 아니라··· 저희는 우리 딸 아이를 올해 말쯤에 런던으로 보내, 그곳에서 결혼까지 시킬 생각입니다.
하지만 자메이카에 살면서 런던의 마땅한 짝을 고른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일반 중매업자들은 도무지 신뢰가 안 가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답니다.”
역시 예상대로 결혼 상담을 위해 온 것이었다.
“부인. 여기까지 찾아오셨는데··· 정말 죄송하지만, 지금 당장은 소개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
“제가 지금 막 커피 농장을 시작해서요. 처음 농장이 안정되기까지 한 두 달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이후에 제가 상담을 하면 안 될까요?”
“아··· 네. 그런 사정이 있으시군요. 뭐···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버틀러 부인은 몹시 실망한 표정으로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소파로 돌아가 앉았다.
‘엘리사가 아직 스무 살도 안 됐다고 들은 것 같은데, 왜 저렇게 실망하는 거지? 노처녀도 아닌데 빨리 런던으로 보내버리려는 걸 보면, 딸에게 어떤 사연이 있긴 있나 본데.’
그렇게 막 돌아서는데 뒤에서 누군가 태오를 불러세웠다.
“샌더슨 경!”
돌아보니 마틴 씨가 그레이 경과 함께 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마틴 씨. 그레이 경.”
태오가 반갑게 그들을 맞았다.
“커피 농장에서 아직 안 내려오셨나 했는데, 다행히 오셨네요.”
“네.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오늘 스펜서 씨는 만나보셨습니까?”
마틴 씨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분명히 집에 계신 것 같은데, 아무리 뵙고 싶다고 해도 무조건 없다고만 하시네요.”
“커피 얘기를 꺼낸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만나주지조차 않을까요?”
“글쎄요.”
마틴 씨가 대답을 못 하자, 옆에 있던 그레이 경이 그 이유를 추측했다.
“아마도 스펜서 씨를 찾아오는 사람마다 커피 관련 일을 부탁하는 터라 성가셨던 것 같습니다. 사탕수수농장을 커피 농장으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한때 많았거든요. 자메이카에서 커피에 대해 제대로 아는 분은 그분이 유일하니까요.”
태오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그럼, 결국 스펜서 씨를 설득하는 건 포기해야 하나 봅니다. 농장 일꾼들까지 뽑은 마당에 어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군요.”
그런데 그때였다.
소파에 앉아 있던 버틀러 부인이 엉거주춤 일어나며 물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만나시려는 스펜서 씨가··· 혹시 데이비드 스펜서 씨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부인께서 스펜서 씨를 아세요? 커피 농장을 하셨던 분인데?”
마틴 씨의 물음에 버틀러 부인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요? 그럼 맞는 것 같네요! 십 년 전에 생도맹그에서 커피 농장을 하다가 오신 분이잖아요?”
“아··· 맞습니다!”
태오가 놀라 하자, 버틀러 부인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샌더슨 경이 스펜서 씨를 반드시 만나야 할 일이 있다면, 제가 연결을 해드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네? 부인께서요?”
“네. 스펜서 씨가 우리 남편에게 큰 신세를 져서 남편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뛰어오거든요, 호호. 무슨 부탁하실 일이라도 있으신가 봐요?”
“···아, 네. 그게 말이죠···.”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태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