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18th century, he founded a marital information company in London RAW novel - Chapter 78
78화 특별한 커피 열매
버틀러 부인에게 부탁한 다음 날.
그렇게 만나기 힘들었던 데이비드 스펜서 씨와의 만남이 거짓말처럼 성사됐다.
방문해도 좋다는 스펜서 씨의 전갈을 버틀러 부인이 직접 태오에게 들고 온 것이다.
대신 태오는 엘리사 버틀러 양을 만나 결혼 상담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버틀러 부인. 그럼, 토요일에 찾아뵙고 따님의 결혼 상담을 해드리겠습니다.”
“아, 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를 드려야지요.”
지난번 첫 만남 때, 엘리사의 표정이나 감정이 굉장히 좋지 못했지만, 외모나 심성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감정 상태도 그날따라 유난히 좋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어찌 보면, 그 자리에 모인 젊은 여성 중에 외형적으로 가장 빼어난 신붓감이었고, 집안도 자메이카에서 손꼽을 정도로 부유하기에 런던의 웬만한 집안과 견주어도 크게 뒤처지지 않는 조건이었다.
‘뭐, 엘리사 정도면 당장 런던의 사교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으니까.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몰라.’
◈ 다음 날
따각. 따각.
태오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스펜서 씨의 집으로 향했다.
매번 갈 때마다 주인이 없다는 말만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스펜서 씨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긴장되고 설레기까지 했다.
‘유비가 삼고초려를 하여 제갈량을 만났을 때 기분이 바로 이랬을까?’
태오는 문득 버틀러 부인에게 들었던 스펜서 씨에 관한 얘기가 떠올랐다.
그는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에서 프랑스인과 동업해 30여 년간 큰 커피 농장을 운영했다.
하지만 동업자와 큰 불화가 생기면서 목숨까지 위협을 받았고, 급기야 무일푼으로 쫓겨났다.
그는 입양한 어린 쌍둥이만을 데리고 간신히 생도맹그를 빠져나와 자메이카 섬으로 탈출했다.
천신만고 끝에 자메이카에 도착한 스펜서 씨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무작정 버틀러 경의 집을 찾아왔다고 한다.
당시 스펜서 씨는 조셉 버틀러 경과 얼굴 정도만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하지만, 자메이카에서 말이라도 건네 본 사람은 버틀러 경이 유일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정을 전해 들은 버틀러 경은 프랑스인이 야비한 수단을 동원해 영국인을 모욕 주었다면서 분개했고, 스펜서 씨와 쌍둥이 남매가 머무를 꽤 큰 집과 생활비 등을 아무 조건 없이 대여해 주었다.
그리고 버틀러 경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자메이카에서 다시 커피 농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쌓아온 실력 덕분이었는지, 스펜서 씨의 커피 농장은 짧은 시간 만에 제법 큰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스펜서 씨는 자기의 커피 열매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하면서, 자메이카의 재배 환경이 커피 농사에는 최악이라며 늘 불만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결국 대여금을 다 갚고 먹고 살만큼의 돈이 생기자, 미련 없이 커피 농장을 처분하고 더는 농사를 짓지 않았다.
이후, 특별한 부탁을 받으면 커피 농장에 가서 조언해주는 정도의 일을 가끔 했지만, 2~3년 전부터는 그마저도 일체 손을 끊었다고 했다.
텅텅텅-
태오가 도어 노커를 두드리자, 곧 젊은 흑인 하녀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동안 여러 번 만나 얼굴이 익숙한 하녀였다.
“스펜서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약속을 잡았거든요.”
“아, 네. 들어오세요.”
이미 소식을 들었는지 지금까지와는 달리 순순히 문을 열어주었다.
그동안 올 때마다 안 계신다며 매정하게 닫히던 문이 활짝 열리자 버틀러 경이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이쪽으로 오세요.”
흑인 하녀를 따라 걸어가는데, 옆 방에서 누군가가 나오며 태오에게 인사했다.
무의식적으로 모자를 들고 답례를 하려는 순간.
“와···.”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태오의 눈앞에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청년과 아름다운 아가씨가 서 있었다.
아마도 스펜서 씨가 입양했다던 혼혈 쌍둥이 남매로 보였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매력적인 얼굴에 뿜어져 나오는 충만한 감정을 보니, 스펜서 씨가 무척이나 아끼고 애지중지 키운 아이들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감탄하는 사이, 한 사내가 복도로 걸어 나오면서 말을 건넸다.
“샌더슨 경이라고 했나요?”
“아, 네. 그렇습니다.”
“데이비드 스펜서요.”
드디어 스펜서 씨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첫인상은 강렬했다.
60대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인해 보이는 외모에, 자기 일에 대한 확신과 자부심을 가진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자신감 있는 표정이 넘쳐흘렀다.
‘이분을 무조건 잡아야겠어.’
아직 대화를 나누기 전이었지만, 그가 커피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의 전문가 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썩 달갑지 않았다.
그저 버틀러 경의 부탁 때문에 잠시 시간을 내준 것뿐이라는 태도였다.
“준남작님이시라던데? 준남작님께서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신 거죠? 약속이 있어 곧 나가봐야 하니 본론만 간단히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소.”
무뚝뚝한 그의 표정과 감정에서 강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이런 경우 괜히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된다.
그의 감정을 송두리째 흔들만한 말.
지금은 그런 한방이 필요했다.
잠시 숨을 고른 태오가 입을 열었다.
“스펜서 씨는··· 정말 질 좋은 커피 열매를 찾고 계시죠?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스펜서 씨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사실 태오는 그가 좋은 커피 열매를 찾고 있다는 말을 누구에게서도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현대에서 만났던 커피 회사 CEO를 통해, 커피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좋은 커피 열매에 대한 환상과 열망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익히 알고 있었다.
게다가 노아와 버틀러 부인의 말을 종합해 보았을 때, 스펜서 씨가 커피와 관련해 뭔가를 계속 찾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마치 커피 회사 CEO가 수년에 걸친 노력 끝에 블루마운틴 공급권을 따내 미친 듯이 기뻐했듯이, 스펜서 씨도 정말 특별한 커피 열매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직접 개발하신 커피 가공 방법을 적용할 만한, 차원이 다른 커피 열매를 찾고 계신 것 아니세요?”
그의 얼굴에서 좀 전보다 더 강한 미세표정이 생겼다 사라졌다.
이걸 놓칠 리 없는 태오였다.
‘맞구나! 스펜서 씨는 최고의 커피 열매를 찾고 있었어. 자기 기술을 몽땅 쏟아부을 수 있는.’
추정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스펜서 씨는 다시 원래의 표정으로 고쳐잡고 퉁명스레 대꾸했다.
“험- 누가 그럽디까? 아니요. 난 더 이상 커피에 아무 관심 없수다. 커피 얘기를 하러 왔다면 그만 나가주시오. 커피라면 이제 아주 지긋지긋하니까.”
커피 얘기에 스펜서 씨가 몹시 거북해했지만, 그의 감정을 읽은 태오는 멈추지 않고 밀어붙였다.
“스펜서 씨. 클라이덴 커피 농장의 커피 열매보다 몇 배는 더 좋은 열매가 우리 농장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직접 보시면 아마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확신에 찬 태오의 말에도 스펜서는 콧방귀만 꼈다.
“흥! 누구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더 이상 커피 따위에는 관심 없다니까! 나는 커피가 이 세상에서 제일 지겨운 사람이요! 알겠소?”
그의 부정적인 반응에도 태오는 물러서지 않았다.
“우리 농장의 커피 열매는 아주 특별합니다. 스펜서 씨가 직접 개발하신 커피 가공 방법을 우리 커피 열매에 적용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른 커피 회사를 모두 누르고,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세상을 정말 깜짝 놀라게 할 그런 커피 말입니다!”
그의 눈동자가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
빤히 태오를 쳐다보던 스펜서 씨가 천천히 입술을 뗐다.
“커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젊은 양반이 내가 찾는 커피 열매가 어떤 건지나 알고 그런 확신을 하는 거요? 그리고 지금 수확 철도 한참 지났는데 무슨 커피 열매를 보라는 건지, 원.”
“네, 맞습니다. 솔직히 전 커피에 대해서 무지합니다. 하지만 물건을 보는 안목만큼은 뛰어나다고 자부합니다. 수확 철이 지났지만, 기후로 인해 다시 자란 열매도 있습니다. 썩은 열매도 스펜서 씨 같은 전문가가 보시면 좋은 커피 열매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지 않습니까?”
“······.”
“저는 지난 몇 주간 자메이카에 있는 유명한 커피 농장을 돌아다녔습니다. 그중 클라이덴 커피 농장의 상품을 자메이카에서 최고로 치고 있더군요.
하지만 그곳의 열매보다 우리 농장의 커피 열매가 훨씬 크고 밀도도 더 좋았습니다.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요.
현재는 돌보지 않아 엉망인 상황인데도 제가 보기에는 품질이 월등했습니다.
여기에 스펜서 씨만이 알고 있는 특별한 가공법을 접목하면 세계 최고의 커피를 이곳 자메이카에서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전 확신합니다.”
태오의 말에는 강한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상대를 설득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장사치로서도 오랜 경험이 있던 스펜서는 태오의 말이 괜한 허세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험, 험. 정말 그렇게 좋은 물건이 있었다면 왜 지금에서야 나서는 거요? 진즉에 커피 농사를 지었으면 되잖수?”
“저는 사실 런던에서 다른 사업을 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커피 농장 때문에 자메이카에 왔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런던’이란 말에 스펜서의 눈썹이 움찔거리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
“런던에서 사업하는 양반이 여기까지는 왜 온 거요? 그것도 돈도 안 되는 커피 농장을?”
“우연히 자메이카 커피 농장을 얻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땅만 살피고 팔아버릴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직접 와서 살펴본 커피나무와 그 환경이 범상치 않았습니다. 분명 제 농장의 커피 열매를 제대로 가공하면 아주 고품질의 커피가 나올 것 같은 판단이 들더군요.
하지만 제가 이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정말 좋은 건지 그저 내 느낌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스펜서 씨를 찾아오게 된 것이고요.”
“고품질의 커피라니?”
스펜서 씨는 고품질의 커피라는 말에 큰 관심을 보였다.
쐐기를 박아야 할 시간이 왔다고 생각한 태오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무릇 좋은 물건이라는 것도 그걸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야 그 가치가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커피나무와 열매라고 할지라도,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평범한 열매의 씨앗에 불과하겠죠.
저는 자메이카에서 좋은 커피 열매를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분은 스펜서 씨가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다 스펜서 씨가 개발하신 커피 가공법을 더하면, 자메이카 커피가 전 세계에서 금처럼 귀하게 팔릴 것이라고 감히 자신합니다.”
“······.”
데이비드 스펜서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었다.
한때는 죽기 전에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 보고 싶었던 그였다.
그래서 자신을 쫓아낸 프랑스 동업자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줄 꿈을 꾸며 커피 재배에 전념했다.
하지만 자메이카의 수준 떨어지는 커피 열매는 생도맹그 커피 열매에 한참 못 미쳤고, 그렇게 그의 꿈과 열정도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그 꿈을 태오가 강하게 자극하면서 잠자고 있던 그의 의지를 다시 일깨우고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스펜서가 못 이기는 척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험, 그래요, 뭐··· 버틀러 경의 부탁도 있고··· 뭐, 얘기를 들어보니 한번 직접 가서 살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 같군요.”
태오가 뛸 듯이 기뻐했다.
“정말입니까? 아,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큰 기대는 하지 마시오. 커피를 모르는 초짜의 눈으로 보니까 열매가 좋아 보이는 거지, 내가 가서 확인해보면 분명 형편없을 가능성이 클 테니.”
“네, 알겠습니다. 저는 그저 스펜서 씨의 냉정한 평가만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